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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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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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16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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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DUMMY

시릴 슈드레거가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빈트뮐러 상단으로 편지가 왔다. 불을 보듯 뻔한 내용이었다. 거래를 받아들인다는. 그리고 그 후로 한 달이 지났다. 예상과는 달리, 란과 샤를리즈 모두 갑자기 바빠져 그들은 서로 만날 겨를이 없어졌다.


덕분에 빈트뮐러와 란 사이의 협상은 미루어지고 있었다. 란이 바쁜 이유를, 샤를리즈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그 쪽에는 사람을 심어두지 않았고, 직접 침투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반면, 샤를리즈가 바쁜 이유는 간단했다. 슈드레거가 일어설 때까지는 빈트뮐러의 검은 꽃 인장 아래에 보호를 해야 했기 때문에 슈드레거의 내부 사정에 직접적으로 개입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엉망이었고, 반발은 심했다.


그래서 매개자가 필요했다. 빈트뮐러의 말을 슈드레거에게 잘 전달할 매개자 말이다. 사실 샤를리즈는 그 역할로 ‘테미안’을 생각했지만, 그는 어째서인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스스로가 빈트뮐러의 첩자임을 밝히기 극도로 꺼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야!”


노크도 없이, 다짜고짜 소리를 내지르며 들어오는 모습에 샤를리즈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걸로 다섯 번째였다. 저 빌어먹을 고함소리와 함께 녀석이 들이닥친 게 말이다. 샤를리즈는 짜증스럽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넌 도대체 어디서 예의범절을 배웠기에 노크도 하지 않고 남의 방에 들어오는 거야?”


“그러는 넌 어디서 남을 이렇게 부려먹는 법을 배워온 거냐? 이게 사람을 엿 먹이려는 거지 일을 시키려는 거야? 도대체 하루 만에 이것들을 다 어떻게 하냔 말이야!”


시릴이 손에 잔뜩 들고 온 서류뭉치들을 들이밀며 말하자 샤를리즈는 꽤 상냥하게, 그러나 여전히 미간은 찌푸린 채 말했다.


“그 정도는 다들 하는 양인데? 넌 내 책상 위에 있는 서류들은 안 보이니? 도대체 너희 상단은 일을 어떻게 해먹었기에 고쳐야 할 것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에단이 상단을 굴려도 이 정도는 안 되었겠다. 무슨 말인 줄 알아? 이 대졸자야! 넌 평생 검만 들고 다녔던 건달만도 못하다는 거야!”


“건달이라니 말이 심하시네요.”


어느 새 들어와서 관전하고 있던 에단의 목소리에 샤를리즈와 시릴은 흠칫 놀라 에단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의 표정은 상반되게 달라졌다. 시릴은 꽤 겁먹은 표정으로, 샤를리즈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표정으로. 에단이 걸어오자 시릴은 슬슬 뒷걸음질 치며 피했고, 샤를리즈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에단, ‘저 거’ 좀 치워봐. 도대체 이 따위로 일을 처리해놓고 낯짝을 들고 찾아왔어. 이거 봐! 네가 한 것들 다시 내가 하고 있잖아! 너 전공이 뭐야? 뭔데 이렇게...”


“연금술! 알겠냐? 내가 아무리 대졸자라도 건달보다 못한 이유가 그거라고. 젠장.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 쳐 먹을 수도 없는 이런...”


“너 부전공은 정치학이나 경제학일 거 아냐! 그러니까 란이 널 기용한 거겠지. 안 그래? 아, 머리 아파. 야, 너 나가. 그리고 이거, 네가 처리한 거. 다시 해와. 로버트 씨에게 묻든 에단에게 묻든, 아니 아무나 붙잡고 묻든 제대로 해 와야 할 거야. 알았어?”


“그냥 네가 다 하면 되잖아!”


“그럼 네 상단을 나한테 주던가!”


그 말에 시릴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손에 쥐고 있던 종이들과 샤를리즈가 들이 민 종이들을 받아든 뒤,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의 사저를 빠져나갔다. 그가 나가자 샤를리즈는 한숨을 토해냈다. 에단은 꽤 재미있는 광경을 봤다는 듯 턱을 매만졌다.


사실 그로써는 당연했다. 샤를리즈의 주변에는 항상 그녀의 불같은 성질을 감내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만 있었다. 성질이 많이 죽은 에단, 유들유들하게 상황을 잘 무마하는 로버트 케일리, 샤를리즈와 얼굴 붉힐 일이 없는 마담 페트리시아나 샤를리즈에게 휘둘리기 바쁜, 성격은 좋은 란. 그리고 부드러움의 정점에 서 있는 에드리안까지.


그러나 시릴은 샤를리즈만큼이나 불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에단으로써는 흥미로웠다. 이런 식으로 샤를리즈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싸우는 걸 본적이 없었으니까. 항상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따져서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는 것이 샤를리즈였으니까. 에단은 연신 한숨을 내쉬며, 숨을 고르고 있는 샤를리즈를 바라보며 말했다.


“재밌는 사람이네요, 시릴 씨. 이제 슬슬 친해질 때도 되었는데 저를 계속 피하니까.”


“그거야 당신이 시릴을 보자마자 몇 방 날려서 그런 거잖아.”


시릴이 빈트뮐러와 슈드레거의 매개자가 되고 난 후, 빈트뮐러 상단에 오자마자 그는 에단에게 몇 대 얻어맞았었다. 그래도 성질이 많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에단은 시릴을 보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먹부터 날려버렸다.


영문도 모른 채 맞은 시릴이 이유를 들은 건,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아무튼 그렇게 다짜고짜 얻어맞은 시릴이었던지라, 그가 에단을 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시릴은 여태껏 문명인(?)들과 교류를 했지, 에단같은 이와는 만난 적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에단은 한숨을 내쉰 뒤, 꽤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때야 어쩔 수 없었죠. 그 자가 보낸 놈들 때문에 밤잠 설친 걸 생각하면 그 정도는 당연했어요. 당신이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죽기 직전까지 팼을 겁니다.”


“나도 후회해. 그 때 말리지만 않았다면, 저렇게 나한테 기어오르지도 않았을 텐데. 뭐, 저런 게 다 있지?”


샤를리즈가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보는 생명체-그것도 꽤 흉측한-를 묘사하는 듯 몸서리를 치며 말하자 에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신도 저런 사람들과 마주할 필요는 있어요. 주변에 워낙 점잖은 사람들만 있어서 면역이 덜 돼서 그런 겁니다. 조금만 지나면, 언제 스트레스 받았냐는 듯 잘 다루게 되겠죠.”


에단의 말에 샤를리즈는 애매한 표정을 짓고는 묻는다.


“왜 이렇게 사근사근하실까? 당신도 뭐, 문제 일으켜서 지금 나한테 아부 하는 거라면...”


“한창 불이 나 있는데 거기다 대고 깐죽거릴 정도로 머리가 나쁘진 않습니다. 게다가 오늘 시모어 경에게 좋은 소리도 들었고요.”


그 말에 샤를리즈는 몸을 일으켜 에단쪽으로 기울였다.


“어떤?”


“뭐, 제 몸도 서서히 시간이 흐르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하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최근 그 성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아직 제 몸에 직접 적용할 수는 없지만.”


꽤 뿌듯해 보이는 에단의 모습에 샤를리즈는 어색하게 웃었다. 늙을 수 있다는 말에 저렇게 기뻐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샤를리즈는 언제 어색하게 웃었냐는 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잘 됐네. 사실 난 긴가민가하고 있었거든. 시모어 경이 마법에 있어서는 권위자라고는 하지만 말이야. 내가 열 넷 때부터 봐왔지만, 당신은 그대로였으니까.”


“그 전에도 그랬습니다. 그 때는 시간 감각도 없어서 얼마나 이런 모습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죠. 아무튼 이제 저도 나이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행이죠? 당신이 외면상 나보다 나이가 많아질 일은 없어질 테니.”


“응? 그게 무슨 말이지?”


“그래도 아직까지는 제가 외모로는 나이가 당신보다 많아 보이지 않습니까? 이제부터는 저도 같이 늙을 테니까...”


에단의 말을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샤를리즈는 작게 탄성을 질렀다. 하긴, 그녀가 열 넷 때부터 에단은 저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제 몇 년이 지나면, 샤를리즈가 에단보다 더 늙은 모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에드리안마저 에단보다 더 나이 먹어 보이겠지.


그쯤 되면, 사람들도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수 년 간 늙지 않는 것이야 체질이라든가, 가족력이라든가 하는 걸로 둘러대면 이상할 게 없지만, 십 여 년이 넘도록 늙지 않는 것은 이상할 테니까. 샤를리즈는 그제야 사실을 실감했다는 듯 제 뺨을 어색하게 긁으며 말했다.


“아. 별로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그렇게 되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싱숭생숭하네.”


“싱숭생숭하다고요?”


“응.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데 말이야. 갑자기 팍 늙는 건 아니지? 여태까지 나이를 안 먹었으니까 갑자기 안 먹은 세월만큼 팍! 하고 말이야.”


샤를리즈의 물음에 에단은 꽤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 것까지는 못 물어봤는데. 설마 그렇겠습니까?”


“만약 그러면? 그럼 당신 몇 살이 되는 거지?”


“그만하세요. 아직 확정된 것도 없는데. 괜히 사람 기분 이상하게 만드시네요. 기분 좋았었는데.”


“미안. 근데 진짜 궁금한데.”


“다음에 시모어 경을 보러 가면, 물어보죠. 참 별 걸 다 신경 써서...”


툴툴거리면서도 물어는 주겠다는 에단의 모습에 샤를리즈는 키득거리더니 묻는다.


“시모어 경, 좋은 사람이지? 나와는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부탁 한 번 들어줬다고 거한 선물을 가끔씩 주셔. 받기만 뭣해서 후원을 하면, 더 큰 선물을 얹혀주시지. 정이 많으신 건지. 덕분에 마법은 쓰지도 못하는데, 마법 관련 물품들은 되게 많아. 언젠가 직접 찾아뵈어야 하는데... 란 씨가 도무지 만나러 올 생각을 안 하네.”


샤를리즈가 상당히 아쉽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러자 에단은 혀를 찼다. 불과 몇 주 전만 하더라도 란이 똑같은 소리를 하지 않았던가? 그런 주제에 ‘왜 안 찾아올까?’라며, 태평한 고민을 하고 있다니. 에단이 란을, 샤를리즈만큼 아끼는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하루에 한 번씩 찾아오며 고생하던 모습을 직접 봐왔다. 그러니 혀를 찰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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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31 808 23 11쪽
175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3 13.10.25 804 25 10쪽
174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4 13.10.21 939 23 10쪽
173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4 13.10.18 703 20 13쪽
»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6 802 25 10쪽
171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3 904 24 8쪽
170 제 13막. 사냥. +9 13.10.11 1,063 27 9쪽
169 제 13막. 사냥. +5 13.10.08 974 37 10쪽
168 제 13막. 사냥. +9 13.10.02 953 26 14쪽
167 제 13막. 사냥. +7 13.09.28 1,615 35 9쪽
166 제 13막. 사냥. +8 13.09.24 952 28 11쪽
165 제 13막. 사냥. +6 13.09.19 998 29 12쪽
164 제 13막. 사냥. +9 13.09.14 1,444 30 10쪽
163 제 13막. 사냥. +4 13.09.12 2,916 45 10쪽
162 제 13막. 사냥. +4 13.09.10 2,859 38 11쪽
161 제 13막. 사냥. +5 13.09.06 2,045 40 9쪽
160 제 13막. 사냥. +5 13.09.01 1,115 26 10쪽
159 제 13막. 사냥. +8 13.08.29 4,179 36 9쪽
158 제 13막. 사냥. +7 13.08.26 1,524 28 12쪽
157 제 13막. 사냥. +3 13.08.17 2,162 37 11쪽
156 제 13막. 사냥. +2 13.08.10 2,700 21 9쪽
155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8.03 1,148 18 9쪽
154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7.27 1,014 25 11쪽
153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4 13.07.20 952 18 23쪽
152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2 13.07.13 1,021 21 13쪽
151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4 13.07.06 925 15 15쪽
150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6.29 2,752 28 15쪽
149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2 13.06.22 981 19 16쪽
148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6.15 1,010 1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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