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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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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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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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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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칠흑의 꽃. 제 10막. 진실을 알아챈 고양이.

DUMMY

“아, 란 씨. 여긴 웬일로...”


“저야, 그라니언 각하께서 후원하는 장학생인지라... 오늘 모임이 있다고 해서. 아니, 그것보다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상대방의 변화에 매우 둔감한 그조차도 그녀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거기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몰라도 잔뜩 얼어있는 모습이 낯설다. 항상 날이 선 채로 그를 맞이하던 그녀였다.


그래서인지 이런 모습은 꽤, 아니 매우 당황스럽다. 저조차 어찌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샤를리즈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이내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얼굴은 창백하고, 서 있는 것조차 용해보일 정도인데도 말이다.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그런 모임이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지각한 거 아니에요? 얼른 가보세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꼴을 하고 있는 사람을 두고 어떻게 가던 길을 갑니까?”


“내 꼴이 뭐가 어때서요? 얼른 갈 길 가 봐요. 나 때문에 늦었다고 해서 뭘 또 뜯어낼 생각이라면 관둬요.”


그 말에 란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여자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나오니 저도 모르게 울컥해서 조금 소리를 높여 말했다.


“어차피 약속은 늦었고, 지금 가봐야 그라니언 각하의 잔소리만 듣겠죠. 그런데 내게는 지금 핑계거리가 없으니 당신이 핑계거리가 되면 되겠군요. 이제 됐습니까? 항상 계산적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순간에도 그렇게 나오니 솔직히 불쾌하군요.”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그의 태도에 당황했는지 샤를리즈는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이마를 짚는다. 예민해진 터라 자신도 모르게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눈을 살짝 감고는 말했다.


“불쾌하다면 사과하죠. 하지만 당신도 보다시피 제가 지금 상태가 영...”


“다리가 불편한 겁니까?”


“네?”


“아까부터 한 쪽 다리로만 몸을 지탱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잠깐, 이봐요!”


샤를리즈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란은 그 자리에 앉아 샤를리즈의 발목을 본다. 무척이나 무례한 행동이었음에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긴, 정작 신경이 쓰이는 것은 샤를리즈 쪽이겠지만. 누가 봐도 부어 오른 그녀의 발목에 란은 일어나 그라니언 가문의 저택을 바라보았다.


이 여자는 보나마나 그라니언 저택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 꼴을 하고 여기까지 걸어온 셈이다. 의학 쪽의 지식은 거의 없는 그였기 때문에 그녀의 상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꼴로 신전-치료사 등은 신전에 있었다.-에 갈 수 없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공작가에서 마차를 빌리자니 지금 그의 신분은 그 정도 위치가 못된다. 사정사정해서 빌렸다고 말해도 이 예민한 여자가 믿을 리가 없다. 그는 이를 으득 간다. 쓸데없이 예민한데다가 똑똑하고 눈치는 더럽게 빨라서 이 상황에도 그의 신분이 들키지 않고 그녀를 신전까지 데려다 줘야 할 방법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그나마 최선의 방책을 말한다.


“일단 업히세요. 신전까지 가는 방법은 그 방법뿐이니.”


란의 말에 샤를리즈는 눈을 크게 뜨고는 인상을 팍 찌푸린다.


“농담이죠?”


“제가 이 상황에서 농담할 것처럼 보입니까?”


“됐어요. 신경 쓰지 말고 가 봐요. 계산적이게 얘기 안 할 테니까.”


“아, 진짜 왜 이렇게 고집을 피웁니까? 그 다리를 하고 어떻게 신전까지 갑니까? 내가 거기까지 걸어가도 30분이 넘는 거리에요. 다리가 붓고 있는 거 안 보입니까?”


“걱정 마요. 이래 뵈도 악바리는 있으니까. 그 정도 거리 못 갈 줄 알아요?”


“거리가 문제가 아니잖아!”


저도 모르게 짜증을 내며, 그것도 반말로 소리를 치자 샤를리즈도 란도 놀란다. 란은 눈을 크게 뜬 샤를리즈를 보고는 당황해 애꿎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건 실수. 그러니까 왜 그렇게 고집을 피워서... 아, 아무튼 미안합니다.”


안 그래도 항상 날이 서 있었던 샤를리즈에게 조금 섭섭했던 그이다. 그래도 이쪽에서는 진심으로 친해지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렇게 나오니 저도 모르게 욱한 모양이었다. 이 일로 여태까지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까 걱정이다. 하긴, 갑자기 다리를 보지 않나, 아픈 사람에게 짜증을 내지 않나.


“아뇨. 저야말로 호의를 베푸는데 까칠하게 굴어서 미안하군요.”


기분이 상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그에 무어라 말을 꺼내려다 이내 입을 다문다. 사실 이쪽도 기분이 상한 것은 매 한가지이다. 거기다 자신은 모임에 꽤 늦은 지라 갈 길도 바쁘다. 그리고 도움을 기를 쓰고 거절하는 여자. 란은 눈동자를 굴리다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싫다는데 계속 이쪽에서 고집을 피우는 것도 예의는 아니겠죠.”


“...?”


이만 가보겠다고 말할 참이었다. 그래서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아까보다 더 안색이 안 좋아진 얼굴을 마주하니 차마 하질 못한다. 란은 생각했다. 늦었지만 공작이 주최하는 모임에 있는 이들이 더 중한가, 빈트뮐러 상단과 깊이 연관된 눈앞의 여자가 더 중한가?


사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지금으로써는 바로 정할 수 없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봤다. 이미 한참 늦었다. 가봤자 본전도 못 찾을 상황. 그는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넣은 뒤 말했다.


“어차피 약속은 너무 늦었고, 설령 늦지 않았다 해도 지금 당신을 본 이상 그냥 가는 것도 그렇고. 그런데 돕겠다는 걸 극구 사양하시고. 하긴, 업고 가는 건 당신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군요. 신전으로 가는 길에 사람이 많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부축 정도는 괜찮겠죠.”


그렇게 말하고 란은 샤를리즈의 팔을 덥썩 잡는다. 샤를리즈가 뭐하냐는 듯 따지기 위해 몸을 움직였고, 그 순간 다리를 잘못 디뎠는지 윽, 하는 신음소리를 낸다. 그에 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봐요. 이러고 어떻게 혼자 걸어갑니까? 갑시다. 한 시가 급하니까.”


“당신이 말만 안 걸었으면 이렇게 오래 끌지도 않았어요.”


짜증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란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는 그녀를 부축하며 걷는다. 남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인정했는지 이번에는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따라온다. 잔뜩 찌푸린 인상에 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오늘따라 굉장히 감정을 드러내는군요. 무슨 일이 있었고, 그 때문에 다친 건 알겠습니다.”


“알면 됐어요.”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겠죠?”


“네. 난 지금 당신과 이렇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엄청 스트레스 받고 있으니까요. 물론, 당신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지금 제 상황이 상황인지라.”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가면을 쓰고 이야기할 상황이 아닌데 내 앞이라 어쩔 수 없이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럼 신전까지는 말을 하지 않고 가죠.”


“좋아요.”


짧게 샤를리즈가 대답하자 란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앞만 바라보고 그녀를 부축한다. 샤를리즈 빈트뮐러. 샤를리즈가 란에 대한 조사를 했듯, 그 또한 샤를리즈에 대한 조사를 했었다. 출생지는 불명, 어느 순간 빈트뮐러 상단의 전대 총수가 입양한 딸.


결혼조차 하지 않은 전대 총수가 어떤 연유로 그녀를 입양한 것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단순히 그녀가 총명해서? 혹은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해서? 아무튼 그 총수와 샤를리즈 빈트뮐러 간에는 가족애와 같은 끈덕진 정은 없었다고 했다.


그 외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데 샤를리즈 빈트뮐러의 입양은 그가 가족이 필요해서 입양 했다기 보다는 무언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았다. 그렇다면, 그녀를 입양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작 아홉 살짜리 여자 아이의 입양을 대가로 그가 받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그 일에 지금의 총수가 관여하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지금의 총수가 빈트뮐러 상단의 일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 샤를리즈 빈트뮐러가 전대 총수에게 입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였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총수는 샤를리즈 빈트뮐러를 굉장히 아낀다고 들었다. 혈연관계일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곁눈질로 샤를리즈를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안색이 더 안 좋아졌다. 란의 ‘믿을만한 정보통’에 의하면 그녀는 생각보다 상단의 일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베스트셀러 작가에 불구하지만 실제로는 상단의 간부급. 혹은 그 이상. 그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바켄바우어 측에서 굳이 힘을 써 공작부인을 이용해 샤를리즈 빈트뮐러를 납치할 이유가 없었다. 총수가 아끼니 그를 흔들어보겠다고 납치한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만일 그 정도로 흔들릴 인물이라면 이쪽에서 사양이다. 아무튼 파면 팔수록 계속 뭔가가 나오는 것이 샤를리즈 빈트뮐러였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빈트뮐러 상단의 중심에 있는 여자. 분명 뛰어난 학식이 있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마녀로 몰리지 않은 여자. 칼라일 시모어의 말에 의하면 그라니언 공작 가문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빈트뮐러 상단의 여자였기 때문에 그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라니언 공작의 가호를 받아 마녀로는 몰리지 않았다고.


게다가 요즈음에는 마녀 사냥이 거의 일어나지도 않았다. 아마 비앙카 드 나이팅게일의 죽음을 시점으로. 그래서인지 귀족 여자들 사이에서는 몰래 학식을 쌓는 여자들도 제법 있다고 들었다. 그 때문에 프리실라도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꽤 열심히 책을 읽는다고는 들었지만, 그녀가 읽는 책 제목을 듣고는 어이가 없어 웃었던 그였다.


생각해보면 그라니언 공작은 제 자식의 교육에 있어서는 참 무관심했다 싶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그의 아들인 에드리안 드 그라니언은 뛰어난 학식으로 학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소문을 떠올린다. 여느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에게만 관심이 있는 자였던가? 아무튼 그로써는 그런 공작의 철학(?)이 실로 유감이었다.


사실 프리실라와 약혼을 한 이유도 그라니언 공작 가문의 비호를 받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의 능력을 미루어보면 그 딸도 영민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란 씨.”


“예?”


갑작스러운 샤를리즈의 부름에 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창백한 것을 넘어 흙빛이다. 생각에 잠겨 있는지라 그녀의 상태가 이렇게 악화된 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핏기가 가신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열었다.


작가의말

p.s 1
사람들이 생각하는 빈트뮐러 상단 총수의 추정 나이는 30대 후반입니다.
란 또한 그 정보를 토대로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런 추측을 하는 것이죠.
혹시나 란이 답답하다고 생각하실까봐 적습니다.^^

p.s 2
사실 업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에단에게도 자존심 상한다고 안업히던 샤를리즈여서 관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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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00화 자축 외전]라제칸의 등대지기(3) +3 12.10.04 1,022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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