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_그린섬의 비밀 공간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30화>
그린섬의 비밀 공간
* * * * *
정민은 소식이 없었고 연이가 그린섬에 자주 왔다.
재인은 갑자기 일이 많아진 것 같았다.
집을 자주 비웠다.
벼리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연이가 자주 찾아와 그 공백을 메워줬다.
연이와 벼리는 벼리의 아버지에게 갔다.
아버지가 모처럼 쉬는 날이라고 했다.
“벼리야, 갑자기 어쩐 일이냐?”
“연락이라도 하지. 맛있는 거 해놓았을 텐데.”
벼리의 어머니도 반가워하며 뛰어나왔다.
“연이야, 우리 며느리 왔어?”
벼리 어머니는 연이를 먼저 반겼다.
“엄마는 며느리만 보여? 이 딸은 안 보이고?”
“미안타. 며느리가 더 좋은 걸 어떡 하냐?”
“아무리 사실이라도 너무 하잖아. 대놓고. 나도 어렵게 왔다고.”
“벼리야, 대신 넌 내가 있잖냐.”
아빠가 달랬다.
“하하하”
모두 오랜만에 반가운 모습으로 거실에 앉았다.
당연히 정민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민은 연락 없지?”
“아직 연락이 없어요. 그렇게 소식을 안 주는 친구가 아닌데.”
연이도 한 마디 했다.
“참, 아버지, 정민 아버지랑 친구였잖아요. 그때 정민 아버지는 어떻게 그리 갑자기 돌아가신 거예요?”
“나도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겸재는 너희들도 알다시피 매우 조심스런 사람이거든. 음주운전을 할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 음주운전에 심장마비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야.”
“혹시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어요? 여긴 집이고, 저희들만 있으니까 편히 이야기 좀 해주세요.”
“나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몇 번 했어.”
“이상한 이야기요?”
“사실 이런 이야기는 잘못 뱉으면 큰일 나니까 섣불리 못해.”
“어떤 이야기요?”
“사고 당시 경찰에게 정민 엄마가 몇 가지 이야기했는데 경찰들이 워낙 명확한 음주사고라고 선을 긋고 사건을 빨리 종결시켜버렸어. 이야기할 겨를이 없었어. 그리고 난 그때 내 취직이 중요해서 이런 일들에 내가 엮이면 안 좋을 걸로 생각했어. 그때 그린섬 사람들은 내가 겸재랑 잘 아는 사이인 거 몰랐거든. 별말을 하지 못했지.”
“............”
“직감적으로 어떤 위험한 일이 있다고는 생각했어.”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들이 있었어요?”
“아니야, 이상한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어. 아주 무난하게 건물이 완공되었고 아름다운 건물이 되었지.”
“맞아요. 특별히 이상할 것이 없는 건물이에요.”
벼리는 맞장구를 쳤다.
“아니야. 그린섬은 그렇게 아주 평범한 건물이 아니야.”
“평범하지 않아요? 어떤 것이요?”
“음, 이상하다고 하면 이상하고, 아니라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데...”
“...............”
“그린섬 옆에 아주 큰 정원이 있지? 그 정원이 좀 이상해. 정원 가운데 연못이 하나 있잖아. 커다란 달 모양의.”
“그 연못은 정말 멋져요.”
“그건 처음 설계할 때 없었던 거야. 내가 알아. 그런데 그 정원은 그린섬 대표가 설계에 직접 관여했다고 했어. 그렇게 들었어. 그린섬 대표가 재인인 것이 영 마음에 걸려. 정원은 아무도 못 들어갈 수 없도록 설계했어.”
“...........”
“나중에 보니까 그 정원에 있는 나무도 대표가 직접 관리한다는 거야. 그런 것에 취미가 있었나? 좀 이상해.”
“에이, 아버지. 정원은 저도 드나들고 있어요. 특별할 것이 없어요. 나무와 연못과 잔디가 있는 보통 정원이에요. 다르다면 좀 더 아름답다는 거예요. 여느 정원과 다를 게 없어요.”
“네가 잘 몰라서 그래.”
“개방적이지 않은 것은 재인 씨의 성격 같아요. 그리고 특별히 아끼는 마음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아. 왜냐하면..”
“어떤?”
“겸재가 사고가 있기 전에 그린섬이 만들려는 정원에 비밀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거든.”
“비밀요? 어떤 비밀요?”
“무슨 비밀인지 들었어요?”
“나도 잘 몰라. 전화하면서 말하길 다음에 만나서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었어. 그런데 바로 그렇게 사고가 났거든. 이야기는 못 들었지.”
“비밀이란 게 뭘까요? 정말 비밀이 있었을까요?”
“그냥 좀 예쁜 정원인데...”
“그런데 내가 그린섬 경비잖아. 경비실에 있으면 빌딩의 우편물을 한꺼번에 받게 되거든.”
“그렇죠. 경비실에서 우편물을 받을 테니까요.”
“정말 이상한 일이 있었어.”
“이상한 일요?”
“빌딩이란 것이 워낙 덩치가 큰 건물이잖아. 전기도 아마 어마어마하게 사용할 거야.”
“그런데요?”
벼리와 연이는 큰 비밀이 쏟아질 것 같은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들어봐. 이상한 일이 맞을 거야."
"..........."
"빌딩을 운영하자면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건 당연해. 물론 당연한 일이야. 그런데 빌딩 전체 사용 전력과 맞먹는 전기를 그린섬의 지하에서 사용하고 있더라 이 말이야. 그린섬 지하는 겨우 주차시설이 전부인데 그런 전기를 어디서 쓰는 거지?”
“전기요금 고지서가 따로 나와요?”
“전기 용량이 큰데 당연히 따로 관리를 하지.”
“그린섬 지하에는 특별한 시설이 없어요. 뭔가 잘못 본 것이 아닐까요?”
”이상했어. 그래서 내가 여기 전기요금 고지서 사진을 핸드폰으로 찍어놨잖아."
아버지는 핸드폰을 꺼내 고지서 사진을 보여줬다.
"아니, 이게 정말 전기요금이에요? 착오가 있는 거겠죠. 고지서가 잘못 나왔나 봐요,."
"말이 돼? 이 전기요금이? 그래서 건물 지하를 몇 번이나 내려가서 살펴봤어.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특별할 것이 없었는 거야.“
“봐요,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냥 좀 특이했던 거예요.”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생각하면서도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엔가 지하에서 전기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전기 소리가 어디서 들려요?”
“비 오는 날이었어. 비 오는 날은 소리가 전달이 잘 되는 법이야. 아마 그래서 그랬겠지? 전기설비가, 아니면 어떤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였어.”
“무슨 소리였을까요?”
“결국 못 찾았어. 나중에 다시 더 깊이 생각해 봤는데 혹시 정원 아래에 어떤 지하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황당한 생각이지. 하지만 그런 공간 아니고서는 큰 전기시설이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모르는 공간에 전기시설을 둘까요? 어떤 목적으로?”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이지.”
“벼리가 정원에 드나든다니까 한 번 살펴보면 어떨까 싶다.”
“이번 주 재인 씨가 해외 출장이 있어.”
“제가 같이 한 번 볼게요. 어떤 비밀이 있다면 밝혀 봐야죠. 겸재 아저씨도 정민이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에 엮인 게 분명해요. 촉이 그래요.”
“연이 언니, 뭔가 미심쩍은 것은 사실이지만 재인 씨는 의심하지 말아 줘. 재인 씨는 더 없이 좋은 사람이야.”
“벼리 아가씨, 좋은 사람이 죄를 안 짓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쩌면 거꾸로 재인 씨가 위험에 빠져있을 수 있어.”
“맞아. 재인이 위험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린섬에 어떤 비밀이 있긴 한 것 같아요. 민수 씨가 그러는데 정민이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연락한 장소가 그린섬이었대요. 경찰은 이번 사건을 실종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민이 연락을 하고 떠났다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정민의 행방은 묘연해요. 어떻게든 민수 씨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에요. 우리들은 일단 그린섬의 지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게요.”
벼리와 연이는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서로 말이 없었다.
벼리는 재인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이 불편했다.
연이는 정민의 실종과 정민 아버지 죽음에 대한 일들이 풀리지 않는 미로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안개와 같아서 답답했다.
더군다나 연이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때죽나무나 라일락은 마음에 크게 걸렸다.
연이는 정민과 때죽나무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다.
정원에 때죽나무가 새로 심어졌고 라일락이 심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정민이 때죽나무에 대해 말한 것은 어릴 때의 일이었다.
어쩌면 정민은 기억조차 없을 수 있었다
어릴 때의 일이었다.
벼리가 집에 왔을 때 재인은 막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제 왔어? 늦었네. 아버지랑 어머니랑 안녕하셔? 혼자 가게 해서 미안해. 오늘 아버지가 호출하는 바람에 시간을 못 냈어. 다음엔 꼭 같이 가자.”
“괜찮아요. 오늘 바빴잖아요.”
“미안해.”
“내일 출장이죠? 준비는 다 했어요?”
“준비랄 게 뭐 있어, 성 부장이 준비할 거야.”
“아....네....”
벼리는 다소 기운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버지가 아프신가?”
“아니에요. 아무 일 없어요.”
“목소리에 힘이 없는데?”
“별일 없어요. 그냥 피곤한 거 같아요. 재인 씨도 내일 출장 가려면 피곤하겠어요. 어서 쉬세요.”
“그래, 나의 귀여운 벼리 씨.”
재인은 두 팔을 벌렸다.
요즘 재인은 벼리를 만나면 이렇게 두 팔을 벌렸다.
재인의 두 팔 안에 있는 품은 모든 걸 녹일 만큼 따뜻하고 포근했다.
벼리는 재인의 품으로 안겼다.
‘아, 이렇게 좋은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서 어떤 미심쩍은 일이 있다는 걸까?’
벼리는 재인의 품에서 재인을 더욱 꼬옥 껴안았다.
불안에 더 꼭 껴안았다.
“벼리 씨,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무슨 일이야?”
“아니에요. 아무 일 없어요. 아무 일도.”
벼리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왜 눈물은 먼저 쏟아지고 수습하게 하는 걸까?’
벼리는 눈물을 숨기려고 했다.
불안이 몰고 오는 눈물은 저절로 커다란 눈물이 되었다.
재인은 벼리를 꼭 껴안아 줬다.
등을 토닥였다.
쓰담쓰담,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물을 흘리는 눈 위에 키스를 했다.
재인의 다정함에 벼리의 눈물은 더 큰 강물을 이뤘다.
벼리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벼리를 재인은 안아 들었다.
재인은 벼리를 안고 침대로 향했다.
벼리를 그대로 침대에 눕히고 눈물을 흘리는 벼리를 다시 껴안아 줬다.
벼리는 이 다정한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져서 불안이 깊었다.
재인이 나쁜 일에 연루되어 있을까봐 눈물이 대신 슬퍼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아냐.”
“...........”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 다 해결된다고 하잖아. 우리가 하는 걱정의 70%는 전혀 필요 없는 거야. 괜찮아, 괜찮아. 자, 내 품에서 자자. 귀여운 벼리, 사랑스러운 벼리.”
재인은 벼리의 눈 위에 천천히 키스했다.
재인의 키스는 벼리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린섬 정원에 새로운 나무가 늘었다.
그 나무는 어떤 비밀이 있을 것이었다.
그린섬의 비밀 공간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벼리의 꿈에 그린섬 나무들이 벼리를 불렀다.
나무들이 어느 순간 그린섬 연못의 달을 통해 비밀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벼리야, 살려 줘.”
나무들이 비밀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는 비명이었다.
벼리는 온몸이 땀에 젖었다.
아침이었다.
재인은 이미 없었다.
사랑을 한다면 잠들기 전 팔베개가 있는 따뜻함으로 잠들고 싶을 것이다.
아침에 깨었을 때 곁에 있는 체온의 품에서 깨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재인은 벼리의 아침에서 늘 사라지고 없었다.
벼리의 사랑은 꿈의 절벽에서 구출되지 못한 채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벼리는 오늘 랜디를 만나서 정원의 나무 이야기를 물어봐야겠다 생각했다.
현실은 의심이었다.
기대는 믿고 싶은 마음이었다.
꿈은 살려달라는 비명의 연속이었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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