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_넌 누굴 잃은 거니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70화>
넌 누굴 잃은 거니
* * * * *
재인은 갑자기 바다에 가자고 하더니 인천이 아닌 화성시 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화성시의 꽃이라고 불리는 제부도로 향했다.
제부도는 물때가 맞지 않으면 섬에 들어갈 수 없었다.
또한 섬에서 나올 수도 없었다.
제부도는 하루에 두 번 물길이 열리는데 바닷길에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지금은 자동차로 통행을 할 수 있었다.
물때만 맞으면 자동차를 타고 유유히 바다로 들어설 수가 있는 곳이었다.
“벼리, 모세의 기적 알지? 바닷물이 갈라져 바다에 길이 만들어지는. 이곳 제부도가 바로 모세의 기적이 하루에 두 번 이루어지는 곳이야.”
“정말요? 영화처럼 바닷물이 쫘악, 갈라지고 그 사이로 바닷길이 생겨요? 어떻게 그렇게 바다가 갈라져요?”
“하하, 벼리는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그게 아니라, 밀물과 썰물 있지? 바다에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알죠, 밀물과 썰물. 저를 어떻게 보시고..”
“밀물과 썰물을 모른다는 말이 아니야. 설마 벼리 씨를 그렇게 놀리겠어? 여기 제부도의 바닷길이 갈리지는 것에 대해 설명하려고 물어본 말이었어.”
“아...”
“밀물과 썰물이 일어날 때 바닷물이 서서히 들어오고, 서서히 밀려가지? 그런 것처럼 여기도 천천히 물이 들어오고 천천히 물이 빠지는 거지.”
“
“아하, 천천히.. 그럼 영화처럼 물이 한 번에 쫘악, 갈라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네요.”
“귀여운 벼리 양. 그런 것까지는 보여주지 못해 미안해. 그래도 정말 신기한 것은 바다 사이를 자동차로 지나갈 수 있다는 거야. 그것만 해도 신기하지 않아? 난 엄청 신기했어. 육지와 섬 사이의 바닷길을 자동차로 지나간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우와, 정말 신기하겠어요. 바닷길을 자동차가 정말 지나가요?”
“제부도는 바닷길이 하루에 두 번 열려. 그래서 물때에 맞춰 가야만 해. 물때를 맞추지 못하면 자동차로 섬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그런데 물때를 못 맞춰서, 반대로 못 나오면 어떡해요?”
“그렇지. 그게 중요하겠지? 섬에 들어가 나올 수 있냐? 없냐? 그게 정말 중요하잖아. 이건 옛날이야기인데, 젊은 남녀들 중에는 섬에서 못 나오게 물때를 속이고 들어간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거야. 물길이 열릴 때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잠을 자고 와야 하잖아? 그런 연인들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재인 씨? 우리도 혹시 제부도에 들어가서 못 나오는 건가요?”
“하하, 말했잖아. 하루에 두 번 물길이 열린다고. 일단 우리가 가는 시간은 첫 번째 열리는 시간이야. 오늘은 오후 3시까지 바닷길이 열려 있어. 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와도 충분해. 만약 3시 17분까지 못 나오면, 다음 시간인 저녁 시간에 열리니까 그때 나오면 돼.”
“전 또 잠깐 걱정했어요. 못 나오는 줄 알고.”
“난, 제부도에서 못 나오면 좋겠다. 제부도에서 벼리 씨랑 단둘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위험할 일도 없을 텐데...”
“재인 씨, 육지에 오면 뭔가 위험한 일이 있어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섬에서 벼리 씨랑 단둘이 지내보고 싶다, 그 말이지.”
사랑하는 사람과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지내는 일이 섬에 갇혀 지내 봤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피어났다.
벼리도 닿을 듯 그러나 닿지 못 하는 재인의 섬에서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하고 바랐다.
재인은 벼리를 태우고 제부도의 열려진 길을 달렸다.
바닷길로 차가 다닐 수 있다니 벼리는 신기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불안했던 마음을 지우고 재인과 함께 하는 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젯밤의 일이나 재인의 불안해 보이는 느낌들은 잠시 모른 척하기로 했다.
재인은 벼리를 자주 바라봤다..
무언지 슬픈 얼굴이 언뜻 비치곤 했다.
벼리는 재인이 자신의 곁에서 벼리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주고 챙겨주는 것이 조금 불안했다.
재인의 다정함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벼리는 스스로 책망하면서 재인과의 시간을 잘 보낼 것을 다시 다짐했다.
“벼리, 거기 서 봐.”
<찰칵>
<찰칵>
<찰칵>
핸드폰 카메라 작동음이 연신 울렸다.
재인은 벼리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벼리는 재인이 자신을 찍은 적이 있던가 생각해 봤다.
아직까지 그런 적이 없었다.
‘어젯밤 내가 불쾌했을 사건이 맘에 걸려 그러는 걸까?“
“예뻐서 찍는 거야. 예쁘다. 바다랑 잘 어울려. 오늘의 하늘색 원피스도.”
벼리의 생각을 읽었던 것인지 예뻐서 찍는 거라고 말하는 재인의 모습이 벼리는 나쁘지 않았다.
둘은 바닷가를 걸었다.
어느새 벼리는 재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오늘은 이런 포즈가 자연스러웠다.
재인은 어깨를 둘러 벼리를 감쌌다.
한여름이 가까워오는 날씨였지만 벼리는 재인의 감싸는 어깨가 싫지 않았다.
“벼리, 미안해.”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야, 그냥 미안해.”
재인의 미안하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벼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더 걸었다.
걷다가 둘은 카페에 들어갔다.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는 곳이었다.
카페의 이름은 베르 자르당이었다.
베르는 유리, 자르당은 정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재인이 가르쳐 줬다.
베르 자르당은 이름처럼 커다란 유리온실에 정원이 함께 있는 카페였다.
바깥에서 보니 유리온실에 키가 온실 끝에까지 닿아 있는 야자수가 심어져 있었다.
들어가기 전, 재인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벼리는 베르 자르당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유리온실의 천장에 닿을 만큼 야자수나무의 키가 엄청 컸다.
벼리는 열대지방으로 여행 온 느낌이 들었다.
들어가면서 나무들에게 살짝 인사했다.
“안녕, 나무들아..”
“벼리야, 어서 와.”
커다란 나무들이 바람 없는 온실 안에서 살짝 흔들렸다.
벼리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벼리는 나무들이 있는 곳이면 마음이 편했다.
안쪽에 카페가 있어 바리스타가 커피 주문을 받고 있었다.
커피는 재인이 오면 같이 시킬 것이었다.
통유리 너머로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향기가 진하게 몰려왔다.
벼리는 향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유리 온실의 안쪽에 커다란 야자나무 뒤로 작은 통로가 있었다.
야자나무가 마치 들어가란 듯이 몸을 살짝 움직인 것 같았다.
쥐똥나무와 담쟁이가 문을 열어준 것처럼 커다란 야자나무가 몸을 살짝 비틀어 벼리에게 통로를 열어 주었다.
벼리가 통로를 들어서는 순간, 벼리의 팔목에 있던 랜디의 이파리들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한낮이라 빛이 많은데도 랜디의 이파리는 이 세상의 빛과는 다른 빛을 발했다.
랜디의 이파리들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자라났다.
<퐁, 퐁퐁, 퐁퐁퐁, 퐁퐁퐁퐁, 퐁퐁퐁퐁퐁>
수많은 물방울 소리가 들리더니 아주 많은 이파리들이 자라고 유리온실은 랜디의 숲이 되어 있었다.
그곳에 구골나무가 있었다.
전에는 구골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들이 와 있었는데 오늘은 구골나무가 와 있었다.
구골나무는 온통 아름다운 향기를 뿜고 있었다.
하얀 꽃이 눈처럼 나무 가득 피어 있었다.
구골나무는 가을의 끝에 꽃을 피우는 나무였다.
지금은 한여름의 계절이었다.
구골나무가 꽃이 필 리가 없었다.
구골나무 꽃의 계절이 아니었다.
벼리는 향기를 맡고 너무도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하얀 꽃 가까이 손을 댔다.
쓰다듬듯이 꽃이 핀 가지를 들어 꽃과 눈을 맞추는 것처럼 꽃을 바라봤다.
‘벼리야...“
익숙한 목소리였다.
바로 그린섬 정원에 있었던 구골나무의 목소리였다.
“구골나무, 너였어? 그린섬 정원? 어떻게 여기에 왔어?”
벼리는 랜디의 숲을 통해 그린섬 정원에 있던 구골나무가 자신에게로 왔다는 것을 알았다.
구골나무에게 어떤 일이 있는 것이었다.
“구골나무야, 무슨 일이 있어?
“행복하지 않은 나무들이 그린섬에 있다고 말했었지?”
“응, 너희들은 왜 그렇게 슬픈 나무들이야? 나무들이 슬프다는 것은 너희에게 들어본 이야기야. 다른 나무들은 슬퍼하지 않아.”
“벼리야, 우리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나무들이야. 그래서 슬픈 나무들이야.”
“구골나무야, 넌 누굴 잃은 거니? 네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니?”
“언젠가 말했지? 향기를 잃은 아이를 구해달라고. 그 아이를 찾아서 향기를 찾아 달라고.”
“맞아. 그런데 향기를 잃은 아이는 누구니? 왜 그 아이는 향기를 잃었어?”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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