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 르 메리트
한스는 영국이 새로 개발했다는 전차의 성능에 대해 아주 궁금했다. 그래서 먹다 남은 잼 통조림을 보여주며 왓슨 대위에게 물었다.
“자네, 영국에서 새로 개발 중이라는 전차를 본 적 있나? 영국에서는 전차로 견인하는 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왓슨 대위 뿐 아니라 다른 영국 포로들도 모두 불을 켜고 그 잼 통조림을 쳐다 보았다. 하지만 왓슨 대위가 외쳤다.
“아무것도 모른다! 절대로 모른다!!”
하긴 보병 중대장이 이런 소식에 대해 알 턱이 없었다. 한스는 정보를 더 얻을 것을 포기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영국 포로들은 여전히 눈에 불을 켜고 한스의 통조림을 쳐다 보았다.
‘그냥 줄까?’
그래도 한스는 자신의 소대원들을 먹일 것이 더 중요했기에 잼을 주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3소대 소대원들은 철조망을 만들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철선으로 만드는 철조망과 달리, 금속 판을 톱니 모양으로 길게 잘라서 만드는 것 이었다. 철선 철조망은 다리에 그냥 상처를 낼 뿐이었지만, 이런 톱니 모양의 철조망에 잘못 긁히면, 깊게 파이는 상처가 남았다.
‘방어를 신경 쓰는 것도 중요하지.’
한스는 중위가 되고 나서 새로 받은 멋드러진 가죽 지도 케이스에서 지도를 꺼내 보았다. 18군이 승리해서 차지한 이 지역은 거대한 돌출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혹시나 적군이 작정하고 사방에서 공격한다면 독일군은 많은 인명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한스는 연필, 각도기, 나침반, 자, 수첩이 들어있는 지도 케이스를 다시 벨트에 장착했다.
‘중위로 진급하니 이거 하난 좋군.’
그 때 1소대 상병이 이등병에게 기합을 주고 있었다.
“보초를 서는 녀석이 계속 자리를 비워?”
“죄송합니다! 배가 아파서 그랬습니다!”
“핑계대지 마라! 다 정신력 문제다!”
잠시 뒤, 전차를 정비하던 한스에게 프란츠가 달려오며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파..파이퍼 중위님이..”
바그너가 말했다.
“뭐야?! 제대로 말하라고!!”
“파..파이퍼 중위님이 18군 예하 직할 전차 중대의 중대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모든 전차병들의 표정이 밝아졌지만, 한스는 중대장이 된다는 것에 긴장되어서 벌벌 떨기 시작했다.
‘소대 정도가 편한데..뭐 중대라고 해도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겠지?’
요나스가 물었다.
“중대면 규모가 어떻게 되는 건데?”
“역시 대단합니다!”
한스는 식은 땀을 뻘뻘 흘렸다.
“화..확실한 것은 들어봐야 아네.”
그런데 그 소식은 사실이었다. 한스는 애써 좋은 점을 생각해보려고 했다.
‘기왕 전차로 싸울거면 중대 규모로 싸우는 것이 생존율도 좋겠지..저 쓰레기들 면상도 안 봐도 되니까..’
호프만, 켈러는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반면 베르너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한스는 자신의 짐을 챙겨서 장교 대피소 밖으로 나갔다. 그 때 켈러가 뒤따라와서 한스에게 말했다.
“축하하네. 파이퍼 중위. 왜 자네가 전차장으로 임명되었는지는 알고 있나?”
한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켈러가 말을 이었다.
“조만간 니 어머니가 네 놈 전사 소식을 들을 걸세.”
한스는 짐을 내팽개치고 켈러에게 주먹을 날렸다.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모두 뜯어말리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켈러 중위가 말했다.
“네 놈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걸세!!”
호프만 또한 이 모습을 지켜보며 비웃었다.
“파이퍼 중대장, 시작이 좋군!”
한스가 외쳤다.
“영창 좋지! 기왕이면 닭장보단 지하실에 갇혔으면 좋겠군!”
켈러가 더 한스를 약올렸다.
“네 놈 중대원들도 모조리 전차 안에서 불타서 맛 좋은 바비큐가 될 걸세!”
3소대장 슈뢰더 소위가 말했다.
“켈러! 입 좀 닥치라고!!”
한스는 여태까지 쌓아뒀던 모든 분노가 폭발하였다. 그 때 베르너가 천천히 장교 대피호에서 걸어 나왔다.
“호프만, 켈러, 내가 직접 이 일은 처리하겠네. 파이퍼 중위, 잠시 들어오게.”
베르너는 희한하게도 의기양양해보였다. 한스는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최악의 경우도 며칠 영창 가는 거다..딱히 걱정할 일은 없어..’
베르너가 바깥에 있는 모든 장교와 병사들에게 말했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게!”
베르너는 한 서류를 꺼내서 한스 앞에서 천천히 읽어 보았다.
“자네는 슐츠와 롬멜 밑에서 일등병으로 있던 시절에도 꽤나 많은 공을 세웠더군! 특히 전차 노획이 인상 깊네! 이등병들만 데리고 작전을 성공시키다니 자네는 중대장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네!”
베르너는 한스를 유심히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한스는 베르너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무슨 소리지?’
“현재 자네의 동료인 에밋, 거너, 헤이든, 루이스, 요나스 모두 휼륭한 독일의 전차병일세! 그리고 안톤 카이저?”
한스는 누군가 등줄기를 얼음으로 저억, 베어내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다.
‘서..설마..그 일을..’
“안톤 카이저라는 이 친구는 딱히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닌데 롬멜의 허가로 병원으로 간 이후에 집으로 돌아갔더군. 진료 기록에서는 무슨 민간인을 죽였다느니 헛소리를 했다던데···뭐 전투로 인해 실성한 병사들은 많이 있으니 딱히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안 그런가 파이퍼 중위?”
한스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베르너가 서류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자네가 작전을 나갔던 지역에 민간인의 시체 3구가 발견되었네. 나이든 남자 하나, 나이든 여자 하나,젊은 여자 하나. 이에 대해 아는 것 있나?”
“모르겠습니다.”
베르너가 말했다.
“그래! 모르겠지! 그리고 설령 작전 도중 오인사격으로 민간인을 사살했더라도, 그게 무슨 잘못인가? 지금은 전쟁 중이 아닌가! 그런데 왜 하필 젊은 여성이 있었는지 궁금하군.”
한스는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이보게 파이퍼 중위, 자네도 그냥 위안소를 이용하지 그랬나?”
베르너와 호프만은 후방에 있을 때 장교 전용 위안소를 들락거리다 성병에 걸린 적이 있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오인 사살한 것은 맞지만 그런 적은 없으니 쫄 필요도 없다.’
한스가 말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베르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한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업가로서 잘나가고 인품 좋기로 유명한 뮐러씨도 같은 생각을 할지 궁금하군! 임신한 자네 아내, 그리고 브레멘에 있는 자네 어머니도 이것을 알게 되면 참으로 자랑스러워 할 걸세!”
한스는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생각했다. 방아쇠를 당기고 손가락을 조금만 움직이면 될 것 이다. 베르너가 말을 이었다.
“지금 중요한 공세가 있는 만큼 굳이 이 일을 들쑤시지는 않겠네..하지만 어딜 가던 입조심은 하는 것이 좋을 걸세.”
베르너는 자신이 한스의 공을 빼돌린 것에 대해서 한스에게 입을 닥치고 있으라는 협박을 하고 있었다. 잠시 뒤 한스는 장교 대피소를 나왔다. 다음 날, 한스의 전차 소대는 18야전군 사령부에 도착했다. 한스의 전차 중대의 1소대는 티거, 판터, 푸마, 레오파드 4대의 마크 IV 전차와 마우스라고 이름 붙인 1대의 마크 휘핏 전차, 2소대는 브륀힐트를 포함한 두 대의 A7V, 3소대는 두 대의 A7V로 이루어졌다. 한스는 자신의 전차 중대를 바라보니 엄청난 위압감과 부담감을 느꼈다. 등에는 식은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긴장하면 안 된다..내가 긴장하면 중대원들도 긴장한다..’
소위로 진급해서 1소대의 소대장을 맡은 바그너 또한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1소대 전차병들도 앞으로는 더욱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될 거라는 생각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요나스가 한스에게 속삭였다.
“저기, 저 쪽 봐봐.”
그 곳에는 이번에 증원되어 온 예비대가 있었고 아주 익숙한 얼굴, 슐츠가 있었다. 슐츠는 대위로 진급해서 중대장을 맡고 있었다. 후방에서 꿀을 빨고 있었는지 군복 또한 깨끗하고 흠 하나 없었고, 느닷없이 전방으로 온 것에 대해 매우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슐츠 또한 한스를 보고 걸어와서 말했다.
“아, 한스 파이퍼 아닌가! 그 동안 전선 신문에서 소식 들었네! 중대장은 많은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직책일세. 아무튼 축하하네!”
“가..감사합니다.”
슐츠는 한스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이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자신한테 이득이 될 거라 판단했던 것 이다.
슐츠가 지나간 뒤에 요나스가 수근거렸다.
“이제보니 슐츠도 천사 같네.”
잠시 뒤, 후티어 장군이 한스를 불렀다. 한스는 바짝 긴장한 자세로 경례를 했다. 후티어 장군은 한스의 경례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지도를 펼치며 보여주었다.
“영국 5군이 이쪽에 우리가 형성한 이 돌출부를 버터 자르듯이 잘라내려고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네.”
‘도..돌출부를 포위하는 전략?’
“놈들은 이 두 방향에서 전차 부대를 보내서 포위한 다음 보병과 기마병을 보내서 섬멸하는 전략을 쓸걸세.”
한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도만 보고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후티어 장군이 말했다.
“자네는 이 쪽 지역에서 밀고 들어올 영국의 전차 부대를 상대하는 걸세.”
“네..넵! 알겠습니다!”
후티어 장군이 한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 전술로 영국군의 대규모 전차 부대를 막을 생각인가? 자네가 담당할 이 쪽에서만 놈들은 최소 마크 V 전차 20대로 총 공격을 펼칠 걸세.”
“그..그..대전차 지뢰나 대전차호를..”
후티어가 매서운 눈빛으로 한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놈들도 공병을 앞세우고 지뢰를 제거하고 대전차호를 메꿀걸세. 대전차 지뢰로 몇 대 정도는 파괴할 수 있겠지만 놈들의 전체 전력을 막을 수는 없네.”
한스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버벅거렸다. 후티어 장군은 순간 한스 파이퍼를 중대장 직책에 넣은 것이 옳은 판단인지 의심하였다.
“나중에 보고서를 올리게.”
“알겠습니다!”
후티어 장군이 말을 덧붙였다.
“이번 방어를 제대로 해내면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받을 수 있을 걸세.”
‘푸..푸르 르 메리트?’
“가..감사합니다!”
한스는 등이 축축해진 상태로 방을 나왔다.
‘젠장..마크 20대를 상대로 어떻게 이기란 말인가!!’
하지만 한스는 푸르 르 메리트 훈장에 대한 욕심이 스멀스멀 나기 시작했다. 푸르 르 메리트 훈장! 그것은 모든 독일 군인의 마음을 뛰게 하는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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