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왕따 고딩 1차 대전 게임 속으로
2021년 독일에 한 김나지움, 루카 파이퍼는 오늘도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루카 파이퍼가 다니는 김나지움은 수학과 과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영재들을 위한 학교였지만, 그 곳에서도 왕따는 있었다.
루카가 남몰래 좋아하던 금발 머리 치어리더 엠마는, 잘생기고 건장한 농구부 막스의 옆 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막스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다이어트 요거트를 먹던 엠마는 루카가 자신을 쳐다보자 기분이 나빠서 고개를 돌리고는 투덜거렸다.
“저 음침한 녀석은 왜 자꾸 쳐다보고 지랄이야?”
막스가 엠마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은데?”
“어우, 막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막스는 일부러 보란 듯이 엠마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루카가 속으로 생각했다.
‘여자 따위 필요 없어..나한텐 기계 공학이 전부야!’
식판을 들고 지나가던 치어리더 여학생들이 루카를 보고 수근거렸다.
“야! 저기 니 남친 있다!”
“죽을래 썅년아?”
루카는 그 날 학교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컴퓨터를 켰다. 루카의 부모님은 어린 시절부터 맨날 싸웠는데 한 달 전부터는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루카의 어머님이 집을 나가서 이혼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루카는 아버지가 퇴근하기 전 까지는 마음 편히 컴퓨터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신작 게임이나 해야지..’
루카의 눈에는 ‘왕따 고딩의 1차 대전 생존기’ 라는 게임이 눈에 들어왔다.
“1차 대전 영웅 한스 파이퍼?”
한스 파이퍼는 1차 대전 독일 전차 에이스이자 루카의 고조 할아버지였다. 나름 피규어도 나오고 밀덕들에게는 인기가 있었지만 루카는 가족을 싫어했기 때문에 몇 번 구글에서 검색을 해본 것을 제외하고는 한스 파이퍼에 대해 잘 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게임은 최근 급상승 1위였던 탓에, 루카는 호기심에 다운을 받아 보았다.
“젠장! 용량 엄청 잡아먹네!”
루카는 게임을 다운 받는 동안 얼마 전에 용돈을 모아 구입한 일본 애니 피규어를 보다가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잠시 뒤, 루카는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러서 잠에서 깼다.
‘뭐..뭐지?’
루카는 자신의 손가락을 간질이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쥐!!쥐다!!”
루카가 있는 곳은 자신이 잠을 자던 방이 아니라 어두컴컴한 흙바닥이었다. 옆에는 안 씻은지 최소 1달은 되어 보이는 수염투성이의 낯선 인간들로 가득했다.
“시..시발!! 당신들 뭐야? 여기가 어디야?”
고등학생 정도 나이로 보이는 한 병사가 물었다.
“이봐 한스! 정신 차려!”
“뭐..뭐야? 왜 다들 1차 대전 옷 입고 있어? 영화 촬영이야?”
쉬잇 쿠과광!!콰광!!
“아악!!으아악!!”
루카의 얼굴 위로 시꺼먼 흙먼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정체불명의 폭발 소리는 사방에서 들리고 있었다.
쉬잇 쿠광!!콰광!!
루카는 바지에 똥오줌을 지린 상태로 땅바닥을 통해 전달되는 지축의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다.
쉬잇 콰광!! 슈웃 콰광!!
흙 속에 대충 파서 만든 듯한 이 공간은 딱 보기에도 매우 부실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램프가 흔들거렸다. 루카가 외쳤다.
“나..난 나갈래! 나갈 거야!!”
“슈타이너! 저 새끼 나가는데? 잡아!!”
루카는 슈타이너라는 덩치가 큰 사내한테 붙들렸다. 슈타이너가 말했다.
“이보게 한스! 겁나는 것은 알겠지만 조금만 참게!”
루카가 외쳤다.
“뭔데 못 나가게 하는 거야! 나갈 거야! 나간다고!!”
계속 발버둥치자 슈타이너가 한숨을 쉬고는 루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퍼억!!
“아악!!”
루카는 껌껌한 흙 바닥에 코를 박고 엎어졌다. 생전 맡아본 적 없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넘어 뇌까지 들어왔다.
“시발 도대체 이거 무슨 냄새야!!당신들 다 고소할거야! 고소한다고!!이거 불법이야!!”
그 때 루카의 눈 앞에는 작은 거울이 눈 앞에 보였다.
‘내..내 얼굴이?’
거울 속에는 루카와는 닮았지만 분명히 다른 얼굴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위키디피아에서 흑백 사진으로 몇 번 봤던 얼굴, 한스 파이퍼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카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마..말도 안돼!! 내가 왜??이..이게 진짜야??’
슈타이너라는 사내가 어린 병사들에게 외쳤다.
“조금 있으면 토미 놈들이 공격을 시작될 거야! 다들 준비해!!”
루카는 잽싸게 머리를 돌려 보았다.
“여..여기가 참호?”
루카는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한 병사를 붙들고 외쳤다.
“오..오늘이 며칠이야? 아니 몇 년이지?”
“한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1915년이잖아!”
루카가 절규했다.
“안돼!!이럴 리 없어!!”
“한스, 여기 자네 소총 챙기게!”
루카는 자신의 소총을 챙겼다. 희한하게도 자신의 몸은 소총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나..난 안 나갈 거야..”
슈웃 쿠과광!! 쉬잇 콰광!!
포탄이 폭발하는 소리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한 발의 일격을 날리듯. 그리고 엄청난 폭발이 지축을 흔들었다.
쿠광!!콰광!!
이어지는 적막,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며 병사들이 미친듯이 밖으로 달려나갔다.
“빨리!! 빨리 가!!”
루카는 대피호에 주저앉은 채로 자신의 소총을 꼭 껴안고 있었다. 한 젊은 병사가 루카를 불렀다.
“한스! 자네도 가야지!”
하지만 루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 자리에 가만히 않아 있었고 그 젊은 병사는 루카를 내버려두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 때 한 장교가 들어왔다.
“자네, 뭐 하고 있나? 빨리 나가지 못하나!!”
“아..안됩니다! 못 나갑니다!!”
루카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가로질렀다. 그 장교가 루거를 허리춤에서 빼들고 말했다.
“당장 나가게..”
루카는 이를 악물고 그 장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타앙!!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루카는 자신의 두개골이 뚫리는 것을 느꼈다.
“젠장!!아프잖아!!”
17년의 짧은 인생이 순식간에 루카의 머리 속에서 지나갔다. 그리고, 파란 화면에 수 많은 숫자들이 내려오는 광경을 보았다.
‘게..게임이었나? 이제 나가는 건가?’
그리고 루카는 다시 20분 전 참호 속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포격 소리를 듣고 있었다. 루카는 다시 똑 같은 짓을 반복했다.
“아악!! 나갈 거야!!! 나가게 해줘!!!”
아까처럼 똑같이 슈타이너가 루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새..생각을 정리해보자..죽으면 반복인가?’
루카는 눈치껏 주변을 둘러보았다. 슈타이너가 미안한지 루카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네 한스!”
“괘..괜찮습니다.”
쉬잇 쿠과광!! 슈웃 쿠과광!!
루카가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 계속 있으면 아까처럼 또 장교가 와서 내 머리에 총을 겨누겠지? 어디 다른 숨어있을 곳 없나? 화장실이라던가..’
“잠시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슈타이너가 말했다.
“화장실은 무슨..그냥 저기다 싸게!”
슈타이너는 병사들이 똥오줌을 누는 양동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루카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젠장..’
쉬잇 쿠광!! 슈웃 콰광!!
포격 소리는 점점 거세어졌다.
‘만약 아까 일이 반복되는거라면 조금 있다가 다들 밖으로 나가고 장교가 들어온다..’
슈타이너는 품에서 술병을 꺼내고 있었다. 이 때를 틈타 루카는 잽싸게 대피호 밖으로 나갔다.
“저..저 새끼 잡아!!”
“돌아와!!”
쉬잇 콰광!!
슈웃 콰과광!!
루카가 있던 병사들이 숨어있던 대피호는 독일군이 파둔 참호에서 계단으로 내려간 곳에 있었다. 루카는 잽싸게 계단으로 올라왔다. 참호에는 여기저기 시체가 널려 있었다.
“우욱..”
루카는 톱니 형태의 참호를 따라 미친듯이 달렸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포격 소리에 귀가 멀어버릴 것 같았다.
쿠광!!콰광!!
‘제..젠장!!그냥 들어갈까!아! 후방 쪽으로 일단 튀면 되겠다!’
한참을 톱니 모양의 참호를 달리다 보니 루카는 후방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좋아! 여기로!!”
그 순간 루카는 아주 짧은 휘파람 소리를 들었다.
쉬잇!
폭발은 루카의 3m 옆에서 일어났다.
콰광!!쿠광!!
루카는 자신의 고막이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포탄 파편들이 자신의 몸에 박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
루카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독일 병사들이 입는 바지의 왼쪽 아랫부분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뜨끈한 무언가가 얼굴로 흘러내렸다.
‘이..이렇게 죽는 건가?’
슈웃 쿠과광!! 쉬잇 콰광!!
하지만 아까 전에 순식간에 죽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쉽사리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루카는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아악!!으아아악!! 살려줘!! 도와줘!!”
쿠광!!쿠과광!!
하지만 루카의 비명 소리는 포격 소리에 완전히 묻혀 버렸다. 그제서야 견디기 힘든 고통이 온 몸을 쑤시기 시작했다.
“아악!!누가 좀 죽여줘!!아파!!아프다고!!”
체감상 3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루카는 순식간에 목이 쉬어버렸다. 목에서는 그릉그릉하는 소리가 났다. 루카는 썩은 냄새가 나는 참호 바닥에 누워서 하늘 위로 포탄이 이리저리 날라가는 것을 보았다.
쉬잇! 슈웃!
그 휘파람 소리는 포탄이 공기를 가르고 날아오는 소리였다. 루카는 이제서야 자신의 코를 찌르던 여러 냄새 중에 하나가 화약 냄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찍찍__찍찍__
루카는 손가락이 간지러워서 흠칫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고양이만한 크기의 뚱뚱한 생쥐 여러 마리가 루카의 손가락을 갉고 있었다.
“으악!!저리가!! 저리가!!”
루카가 생쥐를 향해 주먹질을 하자 생쥐들은 잽싸게 도망갔다. 어느덧 포탄 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준비!!준비해!!”
루카가 소리질렀다.
“도와줘!! 누가 나 좀 도와줘!! 나 다쳤어!! 나 다쳤다고!!”
수 많은 병사들의 군홧발이 루카의 얼굴을 짓밟고 지나갔다.
“으악!!으아악!!”
그 때 한 병사가 루카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이..이봐!!”
루카가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도..도와줘..”
그 병사는 동정과 안쓰러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루카를 바라보더니, 자신의 소총으로 루카의 머리를 겨누었다.
“안돼!!”
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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