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티어 장군
어머니의 편지를 손에 쥔 한스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제서야 한스는 여태까지 자신이 죽인 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훈장, 진급, 전선 신문, 새 탱크, 전투 등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스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한스는 맨 처음 자신이 참호에서 죽였던 적군부터 전차장이 되고 나서 깔아뭉갠 적군까지 그들의 죽기 직전 표정들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고통스러웠겠지?'
차라리 정신병이 걸려있을 때는 괴로움이 없었는데 막상 어머니의 편지를 받으니까 그 때서야 한스는 죄책감에 괴롭기 시작했다. 한스는 이등병 시절 왜 탈영하지 않았나 뒤늦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그래도 그 죽은 녀석들은 이제는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고통은 짧았을 거야..근데 그들도 기다리는 가족이 있었을텐데..’
이제 와서 탈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한스는 애써 좋은 점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나도 잘한 것이 있어! 내 소대원들을 지켜왔고, 아돌프라는 착한 동료도 살렸는걸! 이번 전쟁만 끝나면 적어도 다음 세대는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될 거야!'
한스는 편지에서 눈을 떼고 앞을 바라 보았다. 2소대의 몇 녀석들은 낙하산의 천을 이용해서 유용하게 쓸 만한 손수건을 만들고 있었다. 손수건은 사실 기름 투성이 전차에서 일하는 전차병들에게 더 필요했지만 2소대 녀석들이 나눠줄 리가 없었다. 한스는 앞으로 있을 전투를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1928년 독일, 오토 파이퍼는 ‘베르너 보병 전술’을 읽고 군인으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전투기 조종사의 구조를 위해서 장갑차를 운용하는 방안을 건의했다니, 정말 대단해! 나도 이런 장교가 되고 싶어!”
카를이 빈정거렸다.
“조종사는 일반 보병보다 목숨값이 비싸니까 전쟁에 필요해서 그런 거야.”
“아니야 카를! 이 책을 보면 부하들의 목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적혀 있어. 심지어 포로들도 기사도 정신을 갖고 대우했다고 나왔다고!”
오토는 군복을 입고 전투를 지휘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카를이 말했다.
“멍청한 자식..네 정도면 물리학은 무리겠지만 생물학이나 화학 정도는 할 수 있을텐데..”
오토는 슬슬 카를의 말에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멍청한 것은 너도 마찬가지야. 네가 나중에 쓸 논문도 어쩌면 무기에 이용될 수도 있어. 전쟁 터지고 수학자고 물리학자고 탄도 계산하느라 끌려간 것 모르냐?”
열 받은 카를이 말했다.
“그럴 리 없어. 난 이론 물리학을 연구할 거라고.”
오토는 학교에서 빌려온 책에 A7V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영국의 마크 전차나 프랑스의 르노, 생샤몽보다 A7V가 훨씬 멋있어! 수량이 적게 생산된 것은 아쉽지만, 분명 성능도 최고였을 거야!'
생전 애국심 따위는 가져본적 없는 오토였지만 독일의 자랑스러운 명품 전차 A7V를 보자 가슴에 독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날 저녁, 오토는 에밀라에게 가서 자신의 포부를 말했다.
“저는 군사 학교에 가고 싶어요.”
카를이 말했다.
“오토가 뒤지고 싶은가 봐요. 물리학을 할 만큼 똑똑하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로 멍청할 줄이야!”
에밀라가 카를을 꾸짖었다.
“카를, 그러지 마라. 오토도 똑똑하단다. 오토, 너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무척 많이 있단다. 그런데 왜 하필 군인이니? 좀 더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오토는 조금 더 군인다운 말투로 자신의 포부를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저는 제 꿈을 펼쳐보고 싶습니다. 독일이 훗날 서쪽, 동쪽으로 국경선을 넓히지 못하리란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학교는 너무 작고 제 숨을 막히게 합니다. 하지만 전쟁은 제 가슴을 뛰게 합니다. 군사 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허락해주시면 나중에 분명 저를 자랑스러워하실 겁니다.”
“오토,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지원해줄 수 있어. 하지만 군사 학교에 가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단다.”
에밀라가 방에서 나가자, 카를이 오토를 비웃었다.
“멍청한 자식..”
하지만 오토는 포기하지 않았다.
“몰래 도장을 훔쳐서 입학 신청서를 낼 거야! 내가 군사 학교에 합격한다면 그 때는 허락해 주시겠지!”
카를이 말했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기껏해야 꾸중 밖에 안 들을 거야! 학교 담장 박살냈을 때도 다음 날에는 용서해주셨는걸!”
한편 후티어 장군이 139대대 3중대에 훈장을 수여하기 위해 멋들어진 장갑차를 타고 방문했다.
‘후티어 전술에 그 후티어 장군!’
한스는 베르너, 호프만, 켈러, 슈뢰더 등과 함께 각 잡힌 자세로 서 있었다. 훈장을 못 받는 것은 아쉽지만 한스는 이런 자리가 불편했기에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빨리 끝나고 전차 보수나 해야지..’
“부대 차렷!!”
그 때, 후티어 장군의 옆에 있던 장교가 한스를 쳐다보고는 후티어 장군에게 뭐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러자 후티어 장군 또한 한스를 쳐다 보았다. 한스는 속으로 식은 땀을 흘렸다.
‘뭐..뭐지? 내가 아니라 중대장을 본 거겠지?’
그 장교는 빛나는 푸른색에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꺼내어 후티어 장군에게 내밀었고 후티어는 직접 그 훈장을 베르너에게 걸어주러 갔다.
“어쩌구 저쩌구 기상과 드높은 용기로 독일을 위해 어쩌구 저쩌구 이번 공세를 성공시켜 어쩌구 저쩌구 독일 국법에 의해 푸르 르 메리트를 수여한다!”
다른 장교들도 모두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바라보았다. 이 것은 독일에서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였고 수 많은 군인들이 이 훈장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훈장에 욕심이 없는 한스조차도 막상 훈장을 보니 욕심이 났다.
‘저..저 훈장만 있으면..’
베르너와 후티어가 서로 경례를 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에이 훈장 받아봤자 괜히 귀찮기만 하겠지. 우리 소대는 보급만 잘 받으면 그만이다..’
훈장 수여식이 끝나고 한스는 불편한 자리를 빠져나갈 생각에 속으로 좋아했다.
‘남는 시간에 기계공학 책이나 읽어야지..’
잠시 뒤, 후티어 장군은 3중대 장교들을 불러놓고 공세에 관한 중요한 회의를 시작했다.
“영국놈들이 그 동안 우리 쪽 암호를 모조리 해독하고 있었네.”
베르너가 당황했다.
“그..그런..”
후티어 장군이 말을 이었다.
“지난번 파이퍼 중위가 획득한 암호 해독기 덕분에 이것을 알 수 있었다네. 이제는 이 쪽에서 가짜 정보를 보낼 걸세.”
후티어 장군이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17군이 다시 주공을 맡고, 우리가 공세를 분산시킬거라고 적군은 알고 있다. 하지만 18군에 대대적으로 예비대가 증원 될 걸세.”
‘그..그 말은?’
“우리 18군이 앞으로도 계속, 아미앵을 총공격하는 주공을 맡을 걸세. 이번에 승리해서 아미앵 철도역을 차지한다면 놈들의 보급에도 타격을 줄 수 있네. 그리고 파이퍼 중위!”
한스는 당황해서 대답했다.
“넵!”
“자네 소대의 전차 전력이 어떠한가?”
“현재 마크 IV 전차 4대, 마크 휘핏 전차 1대, A7V 한 대 보유하고 있습니다!”
“놈들은 새로 개발한 마크 VIII를 조만간 전선에 투입할 계획일세. 그리고 전차를 개조해서 야포와 곡사포를 탈착식으로 운반하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했다는군.”
‘?!!!마크 V보다 더 개량된 전차가? 몇..몇 대나? 그리고 야포, 곡사포를 견인해서 쓴다고?’
후티어 장군이 말을 이었다.
“우리 쪽에서 해독한 놈들의 메시지에 의하면, 아미앵 쪽에도 최소 20대는 투입된다고 하더군. 놈들은 우리가 공세를 분산시킬 것 이라고 알고 있기에 20대만 투입하는 걸세.”
한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빠른 시일 내로 우리 쪽에서도 A7V보다 쓸만한 새로운 전차를 개발한다고는 하지만 아미앵 전투가 얼마 남지 않았네. 파이퍼 중위, 자네는 전차를 효과적으로 운용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가?”
베르너, 호프만, 켈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한스는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후티어 장군은 후티어 전술의 창시자답게 무표정할 때도 정말 무시무시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하지만 한스는 수십 번도 더 생각했던 자신의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전차를 소규모로 여러 곳에 투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대규모로 한 번에 적진을 돌파하는 식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또한 지금의 보전협동전술을 넘어서, 보병, 포병, 공병이 모두 전차의 역할을 보조하는 식으로 가야 합니다.”
호프만이 속으로 생각했다.
‘저 자식 드디어 미쳤군..’
켈러도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자기 손으로 무덤을 파는군..’
후티어 장군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한스를 쳐다보았다.
“자네는 지금의 체제로는 전차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보병, 공병, 포병, 오토바이 부대 등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기갑 부대가 창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티어 장군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전차가 특정한 상황에서는 위력적일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네. 하지만 전차는 엄연히 한계가 있는 무기일세. 대규모 전차 부대에 경우 그만큼 위험성이 크지 않은가?”
한스가 대답했다.
“대규모 전차 부대는 위험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게 그 날 회의가 끝나고 후티어 장군이 돌아갔다. 켈러가 한스를 비웃기 시작했다.
“보병, 공병, 포병의 지원을 받는 기갑 부대? 이래서 군사 학교도 안 나온 녀석들이 장교를 하면 안 되는 걸세. 아무것도 모르는 군.”
호프만도 빈정거렸다.
“머저리 같은 자식..”
한스는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옆에는 닭장을 뜯어내서 만든 철망으로 만들어진 영창이 있었다. 상관한테 대들거나 명령 불복종 등에 이유로 몇 병사들이 그 영창 안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그 병사들은 누구보다도 속편하게 드러누워서 자고 있었다.
닭장 옆을 지나가던 베른트가 하인리히에게 중얼거렸다.
“나도 영창이나 들어가고 싶다..”
하인리히가 말했다.
“요샌 영창 가는 일도 빡세. 상관한테 대들어도 3일 밖에 못 갇혀 있는대.”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분위기가 정말 개판이군..’
조금 더 가다보니 영국 포로들이 잡혀 있는 곳도 있었다. 그 중에는 중대장이었던 왓슨 대위도 있었다. 왓슨 대위는 처음에는 자신의 책임으로 패배했다는 죄책감에 식사를 이틀간 거부했었다. 다른 영국 포로들이 왓슨 대위에게 계속해서 식사를 권유했다.
“그래도 먹어야 힘이 나지 않겠습니까?”
결국 배가 고팠던 왓슨 대위는 병사들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독일군이 준 톱밥 들어간 순무 빵을 먹고 있었다. 왓슨 대위는 순무 빵을 먹다가 지나가는 한스를 보자 쪽팔려서 슬쩍 등뒤로 순무 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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