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의 계략
티거 안으로 들어가면서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그래도 신문에 나오는 건데 멋있게 나오는 것이 좋겠지?’
한스는 카리스마 있는 무표정한 얼굴로 티거 위에 상체를 내밀고 포즈를 취해주었다.
찰칵!
한 기자가 사진을 찍고 한스에게 말했다.
“소위님! 좀 자연스럽게 하셔도 됩니다!”
‘부..부자연스러웠나?’
사진 촬영이 끝난 후에 전선 기자가 말했다.
“저, 몇 가지만 더 여쭈겠습니다!”
한스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젠장..언제 끝나는 거야?’
전선 기자가 물었다.
“전투를 하는 도중에 무엇을 생각하면서 힘든 시기를 이겨냅니까?”
한스가 대답했다.
“전투가 끝나고 나서, 해치를 열고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마시는 첫 공기는 정말로 시원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전투가 힘들어도, 이 전투가 끝나고 마시게 될 시원한 공기를 생각하면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선 기자는 한스의 대답과는 달리 엉뚱하게 자기 수첩에 메모했다.
[조국을 생각하면 그 어떤 시련이라도 이겨낼 수 있다.]
“파이퍼 소위님! 혹시 지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 입니까?”
한스가 말했다.
“전차 내부 환기 시스템과 정비병들이 더 필요합니다. 또한 하급 장교나 사병들이라도 전술이나 무기 관련해서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다면 더 효과적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선 기자는 이렇게 메모했다.
[파이퍼 소위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조국의 승리, 그것뿐이라고 한다.]
그렇게 귀찮은 인터뷰와 사진 촬영이 끝난 후 한스는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한 숨을 돌렸다.
‘어휴 오늘 뒤지는 줄 알았네..’
루덴도르프에게 훈장을 받을 때부터 바짝 굳어 있던 온 몸의 긴장이 그제서야 풀리는 것 같았다. 요나스가 말했다.
“한스 정말 대단해! 이제 자네는 우리 독일 군의 영웅이 되는 거야!”
“그..그런가?”
니클라스가 말했다.
“한스 자네는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한다고. 고향에 돌아가 봐. 다들 영웅이라고 떠받들걸?”
‘고..고향에 돌아가면 영웅이라고 떠받든다고?’
한스는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니클라스의 말이 옳았다. 좆 같은 한스의 아버지는 제복을 입은 사람 앞에서는 늘 비굴했다. 한스가 소위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면 분명 온 동네에 한스에 대해 자랑을 하고 다닐 것은 분명했지만, 예전처럼 패악질을 부리지 못할 것이었다.
‘장교도 된 마당에 전쟁 끝나면 한 번 돌아가봐? 다들 날 보고 놀라겠지?’
한스가 무심코 말했다.
“그런데 호프만 중위는 나를 엄청나게 싫어하는 것 같더군.”
요나스가 말했다.
“자네는 평민 출신인데 능력 만으로 장교가 되었으니까 그 새끼는 샘을 내는 거야! 호프만 그 새끼는 귀족 출신이지만 실력은 형편 없다고 들었어! 총을 쏴 본 적이나 있을는지!”
“수류탄 던지는 것도 모르는 것 아냐? 그런 멍청한 장교한테 수류탄 던지라고 하면 지 머리 위에 던질 거야!”
바그너가 말했다.
“제가 듣기로는 호프만 중위 그 자는 꽤 간사한 인물이라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조심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바그너는 한스의 능력을 존경했지만, 아무리 봐도 한스는 정치적인 수완이나 눈치는 없었기 때문에 조금 걱정스러웠다. 바그너가 속으로 생각했다.
‘호프만 그 작자는 슐츠처럼 공만 빼앗고 만족할 인물이 아니야..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훈장을 받아서 기쁜 요나스가 말했다.
“그래봤자 그 자식은 싸우지도 않는데 뭘 어쩌겠습니까? 전투에 나가면 십 분도 못 버틸 겁니다!”
니클라스가 말했다.
“호프만 놈이 아무리 열 받아 봐야 우리 전차 부대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할 것 아닌가! 전투에 나서지도 않을 거면 얌전히 있어야지!”
한스도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이번에 2급 철십자 훈장을 받은 A7V 브륀힐트의 전차장, 슈테켄 상사도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파이퍼 소위님과 싸우고 싶습니다.”
술에 잔뜩 취한 제프 디트리히도 말했다.
“전쟁 이후에도 전우회를 만들자구요!”
잠시 뒤, 한스는 결국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기사가 뜨면 마을 사람들 전부 돌려보겠지? 다들 나를 무시했는데 말이야!’
[어머니 그 동안 바빠서 편지를 쓰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루덴도르프 참모차장님께 훈장을 받았습니다. 참모차장님은 제 군복에 훈장이 겨우 3개 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빨리 더 많은 훈장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전선 신문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무슨 사진을 그렇게 여러 번 찍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소위로 진급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바쁠 것 같지만 신문이 나오면 보내드리겠습니다. 생활하시는데 보탬 되라고 돈을 부칩니다.]
한스는 뿌듯하게 웃으며 편지를 봉투에 넣었다.
‘에밀라도 전선 신문을 보면 깜짝 놀라겠지?’
한스는 에밀라가 집안도 부유하고 미모도 뛰어나서 자신이 조금 꿀린다고 생각했기에, 이번 일에 의기양양해졌다.
‘전쟁영웅이라···귀찮기는 하지만 나쁘진 않군!’
한편 호프만과 베르너는 속으로 분노를 씹고 있었다. 호프만이 중얼거렸다.
“전쟁 통이라고 평민 새끼들이 제멋대로 설쳐대는군! 루덴도르프 그 망할 새끼! 이러다가 평민 새끼들이 윗대가리 다 쳐먹겠군!”
베르너가 말했다.
“호프만 자네 말이 옳아. 파이퍼 그런 새끼는 초장부터 밟아놨어야 해..”
베르너는 지도를 꺼내어 보자 호프만이 물었다.
“공세가 코 앞이라 기갑 소대가 필요한데 놈을 죽여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베르너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기갑 소대에서 하나 빠져도 문제 될 것 없지..”
베르너가 지도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호프만이 말했다.
“그 쪽은 안개가 자주 끼고 숲 속이라 동부 전선 출신 정예병들이 매복해서 보초를 서고 있지 않은가? 거긴 왜?”
베르너가 말했다.
“세 가지 상황에서 전차는 보병 지원을 받지 못하면 통조림 깡통과 다를 바 없네. 야간, 시가지, 그리고 안개.”
베르너가 중얼거렸다.
“영국 놈들에게 통조림 선물을 하나 주지..”
다음 날, 호프만 중위는 한스와 티거의 승무원들에게 영국군이 정찰을 오는 숲 속에 가서 전차로 매복해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호프만 이 새끼 무슨 생각이지? 아무리 전차에 대해 몰라도..’
“이 숲은 안개가 자주 끼고 전차 기동이 힘들기 때문에 전차로 매복하는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여성형 전차, 판터의 전차장인 요나스도 말했다.
“티거는 포가 달려있기 때문에 야포나 적 전차 상대로는 강력하지만 이런 임무에는 기관총이 많이 달려 있는 여성형 전차인 판터나 나스호른이 적합합니다!”
6호 전차 나스호른의 전차장 마르코가 말했다.
“제..제가 티거 대신 나스호른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마르코가 식은 땀을 흘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전차 소대에서 내가 여태까지 제일 공을 세우지 못했다..그러니 이런 일이라도..’
호프만 중위가 뻔뻔스럽게 말했다.
“이보게! 이번 결정은 베르너 중대장의 결정일세! 나한테 이런 저런 말 해봤자 소용 없네!”
한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동부 전선 출신 정예병들로 하여금 제 전차를 호위하게 해주십시오!”
호프만 중위가 말했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 할 일이 있네!”
전차병들은 지금 당장에라도 호프만을 죽이고 싶은 심정을 느꼈다.
‘공세가 코 앞인데 멍청한 융커 새끼들이!’
바그너는 호프만의 표정을 보고 눈치를 챘다.
‘베르너와 이 새끼가 일부러!!’
한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한스의 말에 바그너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말도 안돼! 차라리 다른 전차가 가야..'
바그너는 계속 한스를 쳐다 보았다. 한스가 바그너보고 괜찮다는 눈짓을 하고는 호프만에게 말했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영국 포로에게 노획한 소총이 몇 자루 필요합니다.”
호프만이 비웃으며 말했다.
“전차병들에게는 권총이 있지 않은가? 소총?”
‘기관단총도 아니고 소총? 뒤지기 전에 노획품이라도 챙기고 싶다는 건가? 멍청한 평민 새끼 주제에..’
한스가 대답했다.
“네! 영국 포로의 소총이 필요합니다!”
잠시 뒤, 한스는 전차병들과 함께 티거에 탑승했다. 모든 전차병들은 이번 명령에 분노를 터트렸다. 바그너가 외쳤다.
“저 호프만이랑 베르너 자식은 일부러 저런 명령을 내린 겁니다!
한스가 말했다.
“중대장 명령인데 별 수 없지 않습니까.”
바그너가 분통을 터트렸다.
“저런 새끼들한테는 한 번 본때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군 생활이라고 무조건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니클라스가 외쳤다.
“맞아! 베르너 같은 중대장 밑에서 싸우다가 다 죽을 거야!”
한스가 바그너에게 여태까지 구상한 전차 전술을 메모해둔 종이 뭉치를 내밀며 말했다.
“자네가 소대를 지휘해야 할 수 있으니 이걸 갖고 있게!”
한스는 티거 안에 탑승했다. 티거가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끼기긱 끼기기긱
바그너가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젠장! 빌어먹을!”
한편 영국 병사들은 조지 병장의 죽음에 비통함과 분노를 느꼈다. 조지 병장은 혼자 농장 일을 하고 있는 아내의 남편이자 다섯 아이들의 아버지였고 동료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았다. 조지 병장을 쏜 프레디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난 쏘라고 해서 쏜 것 뿐인데..조지 병장님은 왜 암호를 말하지 않은 거지?’
프레디를 탓하는 동료들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동료들의 시선이 안 좋아진 것 같았다. 한편, 영국군 또한 독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기관총 사수 네빈슨이 말했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어! 훈족한테는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해!”
헨리가 말해다.
“하..하지만 조지 병장님이 그렇게 당한 것을 보니 만만한 놈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뒤에 공세도 있을텐데 방어 태세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헨리 멍청한 자식아! 어차피 누군가 정찰은 가야 해! 그 때 놈들한테 빅 엿을 먹이면 되는 거야!”
“정찰 때 가급적 교전 피하라고 명령 내려오면 어떻게 합니까?”
“명령이야 씹으면 그만이야!”
프레디는 동료 병사들의 대화에 끼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조지 병장님도 살고 싶었을 텐데 일부러 암호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훈족 새끼들이 정예병일 가능성이 높은데..’
하지만 동료 병사들이 열을 올리며 복수 계획을 짜고 있었기에 프레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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