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익기
잠깐 동안의 휴식을 즐기고 슐레프 중대는 소련군 항공기의 눈에 띄지 않는 관목림 사이에 부실한 도로를 이용해서 진격하였다.
"차량 정차!!"
긴 차량 행렬이 정차하였다. 오토바이, 트럭, 차량, 전차, 장갑차, 야포 위에는 녹색 천막을 덮어씌워서 위장해놓고, 병사들 또한 그 천막 밑에 들어가서 기절하듯 잠을 잤다. 천막 밑으로 병사들의 군화가 이리저리 삐져나와 있었다.
현재 부대에 남은 연료로는 고작 15km 밖에 더 행군할 수 없었다. 슐레프 중대장은 초조하게 통신 차량으로부터 연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늘은 연료 보급을 해줄 수 없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토 또한 모기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모기장을 얼굴에 쓰고는 전차 옆에 자빠져서 잠시 기절해있었다. 그 때 우벤 전차장이 오토를 흔들어 깨웠다.
"소대장님!! 소대장님!!!"
오토는 비몽사몽하게 눈을 떴다.
"무슨 일인가?"
"소대 전차 점검 완료했습니다!!"
오토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걸 꼭 지금 보고해야 하냐!!'
오토는 각 소대 전차들의 탄약 수량을 보고 받고는 한숨을 쉬었다. 오토 소대의 티거의 경심철갑탄은 현재 4발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스탈린 전차만 안 만났으면 좋겠는데...'
듣기로 소련군은 현재 21대의 IS-2 전차로 중전차 부대를 편성하여 운용하고 있었다. 경심철갑탄 수량이 워낙 적었기에 슐레프 중대가 IS-2 중전차 부대와 교전이라도 한다면 고전을 면치 못할것이 분명했다.
오토바이 부대와 차량들은 급하게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었다. 소련군은 지뢰 뿐만 아니라 도로 곳곳에 독일군 차량의 타이어가 터지도록 못을 박아두었고, 덕분에 오토바이와 차량들의 타이어가 터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오토는 다시 눈을 붙이려고 하는데, 하늘에서 항공기 소리가 났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기절하듯 자고 있는 녀석들을 제외한 모든 병사들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병사들이 수근거렸다.
"어느 쪽이야?"
오토 또한 저 항공기들이 소련군의 항공기라면 자신의 전차가 있는 곳에서 최대한 도망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약 소련군의 항공기가 이 관목림에 폭탄을 투하하고 고폭탄이 가득 들어있는 전차에 소형 폭탄 한 개라도 떨어진다면 상당히 규모가 큰 폭발이 일어날 것 이었다. 누군가 외쳤다.
"우리 쪽이야!!"
병사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빠져서 휴식을 취했다. 게오르크 녀석 또한 3소대 티거 옆에 설치한 해먹에서 눈을 붙였다. 오토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하늘을 비행하던 루프트바페 편대는 잠시 뒤 오렐 비행장에 다시 착륙했다. 권터 또한 비틀거리며 자신의 매서슈미트에서 내리며 비행장에 발을 디디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단단한 땅이 권터의 발을 지탱해주었다. 권터는 발로 땅을 느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하늘을 비행할 때마다 권터는 무한한 환희를 느꼈지만 언제부턴가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 땅을 밟을 때마다 오늘 전투가 끝나고 지상을 다시 밟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조종사의 목숨은 하루살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계속되는 출격에서 조종사 그 누구도 자신이 돌아와서 저녁밥을 먹을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녀석도 엔진이 고장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권터는 아무렇지도 않은척 오렐 비행장을 걸어갔지만 한걸음 한걸음 디딜때마다 오늘 이 땅을 다시 밟았다는 것에 대해, 예전에는 믿지도 않았던 신에게 감사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누구나 에이스를 꿈꾸지만 전투를 몇 번만 경험하면 전쟁 영웅이나 에이스와 같은 단어는 허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느냐 죽느냐는 본인의 노력이나 실력, 인간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권터를 포함한 20대 초반의 루프트바페 조종사들은 모두 이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다들 대수롭지 않게 웃으면서 저녁을 먹기 위해 걸어갔다. 오늘은 운 좋게도 교전이 없었기에 모두가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이따가 긴급 출격이라도 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한편, 한스는 오렐-튤라에 있는 구데리안 2기갑집단에 대한 보고를 받고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현재 전차 부대들의 연료 보급은 그야말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전차 가용률이 80프로를 넘는 부대들도 연료를 보급 못 받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제아무리 탄약이 많고 전차병들의 실력이 좋아도 부대 전체를 써먹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따끈따끈하고 아직 멀쩡한 티거, 판터, 4호 전차들이 갑작스러운 소련군의 공격을 받고 늪지대에 버려지는 끔찍한 상상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안돼!!!'
몇 시간 뒤, 한스는 수많은 참모들과 함께 각 기업들이 신무기 개발에 투자를 받기 위하여 발표회를 하는 것을 들으러 갔다. 소련군의 스탈린 전차보다 강력한 방호력의 200mm 장갑에 132mm 주포를 장착한 전차에 대한 설계도도 있었다. 그 때, 무척이나 흥미로운 발표가 한스의 눈에 띄었다.
'전익기?'
한스는 마치 가오리처럼 생긴 모형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그 기술자는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전익기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 혁신적인 항공기는, 동체와 주익이 일체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체 전체의 구조를 통해서 양력을 얻을 수 있어, 현존하는 다른 항공기들보다 더 많은 항속거리를 %$$@&%"
한스는 그 놀라운 가오리 모양의 모형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꼬리 날개가 없어?'
한스는 여태까지 상상도 못해본 형태의 항공기였다. 기술자가 말을 이었다.
"일반적인 항공기는 수평 날개, 수직 날개, 꼬리 날개와 동체의 접합 부위에서 공기 저항을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일체형으로 항공기가 제작되면 공기 저항을 받지 않아서 연료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한스는 이 전익기를 보고는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쳤다.
'이런 혁신적인 상상을 하다니...'
발표회가 끝나고, 괴링이 전익기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군! 가끔 군 무기 제작을 장난감 제작하듯 쉽게 생각하는 녀석들이 있네! 종이 비행기도 아니고 전익기라니!"
한스가 말했다.
"공기 저항을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인 설계가 될 수도 있네."
괴링이 말했다.
"아 그래! 한스 파이퍼 자네라면 저런 것에 흥미가 있겠지! 하지만 말일세! 지금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저렇게 완전히 새로운 항공기를 설계하고 실전 배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괴링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지금 소련과의 전쟁은 속도전이었고, 저렇게 혁신적인 항공기를 설계하고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실전 배치까지 하는 것은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이 소모될 것이 분명했다. 제아무리 천재적인 설계라고 할지언정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설계된 무기일수록 막상 만들고 실전 투입해보면 온갖 문제점이 발견되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조종사들은 무척이나 귀한 인력이었기에, 검증 받지 않은 새로운 항공기를 도입하는 것은 신중해야 했다.
하지만 한스의 머리 속에는 계속해서 그 새로운 전익기가 떠올랐다.
'10년 뒤에는 어떤 무기가 나올지 궁금하군...'
한스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계속해서 집무를 보았다. 그런데 부관 프란츠가 심각한 표정으로 어떤 서류를 가지고 왔다. 한스는 불길함을 느끼며 프란츠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프란츠가 말했다.
"그 여성 포로 수용소에서..."
프란츠는 직접 말하지 않고 서류를 한스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한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프란츠의 표정이 좋지 않아서 중부집단군이 갑작스러운 소련군의 공격이라도 받은줄 알았던 것 이다. 여성 포로 수용소에서 뭔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정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소한 일일 것이 분명했다.
"이런것까지 굳이 보고할 필요는 없네."
한스가 서류를 책상 옆으로 밀어내자 프란츠가 말을 이었다.
"그...아드님과 연관된 일이라서...일단 읽어보시는 것이..."
'???'
이 때, 슐레프 중대는 다행히 연료 보급을 받고는 시가지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소련군은 아주 작정하고 모든 길목에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대전차 지뢰를 설치해둔 상태였다. 오토 소대의 뷜리겐 전차장이 무선으로 보고했다.
"대전차 지뢰 밟았다! 우측 궤도 파손!! 기동 불가!! 구난 요청한다!!"
"알았다!!"
중대 본부의 구난 부대가 뷜리겐 전차장의 전차를 구난하러 갔다. 오토는 관측창을 통해서 각 건물들의 창문, 옥상 뿐만 아니라 소련군이 대전차 지뢰를 매설해두었을 것 같은 길목까지 관찰했다. 하지만 전차 내부에서 이걸 관찰하는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오토는 혹시나 대전차 지뢰를 밟을까봐 전전긍긍했다.
"사거리에서 우회전!!"
하지만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는 길목에는 전차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거대한 철제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런 시발!!! 계속 전진해!!"
트으응 트드드등 트드등
오토의 전차가 가는 길목에서는 하이에 보병 소대원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서로를 엄호해주며 은밀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오토는 0시 방향에 5층 짜리 건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저긴 분명히 소련군이 저격수나 기관총을 배치해두었을 것 이었다.
"고폭탄 3연속 장전"
그 때, 5층 창문에서 역시나 소련군의 기관총이 불꽃을 뿜었다.
드륵 드르륵 드르르륵
오토가 외쳤다.
"고폭탄 발사!!"
퍼엉!!!
오토는 그 와중에도 연막탄을 발사했다. 티거 옆에 달려있는 벌집 같은 연막탄 발사기를 통해서 연막탄이 도로에 발사되었다.
순식간에 뿌연 연막이 넓은 도로를 가득 채웠고, 그 틈을 타서 하이에는 소대원들과 함께 빠른 속도로 건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오토의 티거가 다시 건물 5층 쪽으로 고폭탄을 발사하는 틈을 타서 하이에와 소대원들은 건물 1층을 향해 수류탄을 냅다 던졌다.
쿠광!! 콰과광!!
수류탄이 폭발하자마자 하이에와 소대원들은 잽싸게 창문으로 건물로 진입했다. 건물의 1층 천장은 펑 뚫려있었고, 하이에는 천장의 구멍을 향해서 다시 수류탄을 2층으로 던졌다.
쿠과광!!
소대원들이 천장을 통해 2층에 총을 갈기는 동안 하이에는 몇 소대원과 함께 잽싸게 계단으로 올라갔다. 하이에는 발로 문을 뻥 차고 수류탄을 냅다 방 안으로 던졌다.
쿠과광!!!
그리고 하이에는 방 안으로 진입한 다음 구석에 소련군을 향해 MP40을 갈겼다.
탕! 타앙! 탕!!
치열한 교전 끝에 하이에 보병 소대는 이 5층짜리 건물을 점거하는데 성공했다. 하이에 소대는 5층 건물에 거치된 소련군의 기관총을 노획하고 이곳 저곳에 저격수를 배치했다. 이 곳은 무척이나 중요한 거점이었고, 오토 또한 이를 무선으로 중대 본부에 보고했다.
"28 확인점 건물 점거 완료!!"
연료가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연료를 보급받아야 했다. 그렇게 오토는 중대 본부가 있는 23확인점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때, 티거의 좌측 궤도가 대전차지뢰를 밟았다.
쿠과광!!!
"으악!!!"
오토와 전차병들은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티거의 궤도가 끊어지고 말았다.
"정지!! 대전차 지뢰!! 1소대 1호 전차 기동 불가!!"
오토는 해치 위로 머리를 내밀고는 궤도 상태를 살폈다.
"이런!! 시발!!!"
오토가 무선으로 중대 본부에 구난 요청을 하고는 자신의 소대 판터 전차에 외쳤다.
"27확인점으로 와달라!!"
정비 부대가 와서 티거를 구난하고 궤도를 수리하기 전까지는 판터에서 오토가 소대를 지휘하면 될 것 이었다. 그런데 무선으로 판터 전차장 우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도 똥(지뢰를 뜻하는 전차병들 암호) 밟았습니다!! 망했습니다!!"
"시발!!!!"
다행히 중대 본부에서는 금방 구난해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이렇게 오토의 소대 전차는 4대 중에 3대가 기동불가된 상황이었다. 오토는 슈뢰어의 4호 전차로 가서 지휘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현재 슈뢰어의 전차가 이 쪽으로 오고 싶었지만 중간에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오토가 직접 가는게 더 빨랐다.
오토는 MP40과 수류탄을 챙기고는 티거 밖으로 조심스럽게 빠져나갔다. 위험하긴 했지만 이 인근 구역은 아군 보병들이 점령했고, 소대를 지휘하는 것이 더 급했다. 아군 박격포병들은 이미 중요 거점에 박격포를 배치해둔 상황이었다. 저 쪽에서는 포탄 보급을 해주러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퀴벨바겐 차량이 보였다.
오토는 그렇게 슈뢰어의 4호 전차를 향해 은밀하게 달려갔다. 길목에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저 앞에는 슈뢰어 녀석의 4호 전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 철제 바리케이트만 넘어가면 될 것 이었다. 오토는 골목에 엎드린 채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서 혹시나 매복한 소련군 저격수나 기관총 사수가 없는지 살펴보았다. 길을 건널 때 이렇게 엎드려서 주위를 정찰하는 것은 필수였다. 오토는 시커먼 도심 속에서 눈을 굴렸다.
'하나, 둘, 셋 하면 달려야...'
그 때, 한 건물의 2층 창문에서 반대편 골목을 향해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드륵 드르르륵
4호 전차가 그 건물을 향해 고폭탄을 발사해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현재 4호 전차가 있는 곳에서는 소련군 기관총이 있는 곳을 향해 사격각이 나오지 않았다. 오토는 식은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다..다른 곳으로 우회할까?'
하지만 그 건물에 기관총 사수는 계속해서 아군 보병을 향해 기관총을 긁고 있었다.
드륵 드르르륵
기관총 소리가 시가지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동안, 오토는 허리춤에서 달걀형 수류탄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달려가면서 달걀형 수류탄의 핀을 뽑고는 소련군의 기관총이 불을 뿜는 2층 창문을 향해 수류탄을 냅다 던졌다.
'으아악!!!'
그리고 오토는 잽싸게 근처에 골목을 향해 몸을 날렸다.
쿠궁!! 쿠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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