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보다 위험한 상대
그렇게 만토이펠 대대장은 꼬맹이와 함께 근처에 숲으로 걸어갔다. 만토이펠 대대장은 자신의 홀스터에 들어있는 토카레프 권총을 슬쩍 건드려보았다. 이 권총은 얼마 전 소련군에게서 노획한 것 이었다.
꼬맹이가 물었다.
"어디까지 가요?"
"이제 거의 다 왔다."
독일 융커 사회에서는 사냥 대회가 유행이었고 만토이펠은 늘 사냥 대회에서 승리를 거두곤 했다. 토끼, 사슴 등을 쫓아갈 때면 만토이펠은 잔인한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만토이펠은 그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짜릿하기 시작했다. 그 때, 달갑지 않은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
만토이펠의 귀는 360도 모든 방향에 집중하고 있었고, 누군가가 숲 속을 달려오며 사냥꾼인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
'어떤 새끼지?'
오토 파이퍼가 외쳤다.
"대대장님!!"
만토이펠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무슨 일인가!"
만토이펠은 자신의 취미를 방해하는 오토 파이퍼를 열받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급하게 달려온 오토는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대대장님 상부에서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만토이펠은 3초 정도 오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만토이펠은 여태까지 수 많은 병사와 장교들을 상대해왔다. 그리고 오토의 굳은 얼굴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있는 녀석들이 짓는 표정이었다. 만토이펠은 씨익 웃었다.
"그걸 전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나?"
"네!"
다시 5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돌아가지."
그렇게 오토가 앞장섰고 그 뒤를 만토이펠과 꼬맹이가 따랐다. 오토는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만토이펠의 발소리를 들었다. 만토이펠의 군화가 풀잎을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만토이펠이 외쳤다.
"내가 있는 곳 까지 잘도 찾아왔군! 미행이라도 했나?"
"풀이 눌린 곳을 따라갔습니다!"
"자네도 사냥에 제법 재능이 있는 것 같군! 사냥 해본적 있나?"
"없습니다."
오토는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만토이펠의 발자국 소리에 집중했다. 만토이펠한테는 토카레프 권총 뿐만 아니라 작은 단도가 있었다. 만토이펠은 오토를 뒤에서 덥쳐서 목을 칼로 베어내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꼬맹이가 달아날 터였다. 잠시 뒤, 그렇게 셋은 모두 마을로 돌아왔다.
오토는 자신의 선택이 엄청나게 자랑스러웠다. 여태까지 오토는 불의를 잘 참는 그런 군인이었던 것 이다.
'해냈어!! 내가 저 꼬맹이를 구한거야!!'
오토는 스스로가 구역질 나고 비겁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이에를 질투하고 있었던 것 이다. 하지만 오토는 스스로의 선택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나도 할 수 있다!!'
오토가 이렇게 뿌듯해하고 있을 때, 독일 병사들은 마을 사람들을 의심에 찬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 자들이 파르티잔에게 정보를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장난스럽게 보초를 서던 독일 병사들도 매의 눈으로 마을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당시 러시아의 마을에는 식품을 보관하기 위한 지하실이 있었다. 독일군은 이 지하실까지 수색해보았지만 아무 것도 발견된 것은 없었다. 에밀이 말했다.
"분명 파르티잔이랑 내통하는 것이 확실해!"
마티아스가 말했다.
"근데 증거가 없잖아!"
"보초 선 녀석들이 말하는데 우리가 마을에 들어오고 나서 마을 사람들이 마을 밖으로 나간 적도 없다더군!"
전차병들이 있는 곳 옆에서 지크프리트 4인조가 휴식을 취하며 초코렛을 먹고 있었다. 지크프리트 4인조는 1차 대전때 받았던 철십자 훈장에 전차전투장(전차부대원 혹은 전차부대를 지원하는 병사가 공을 세웠을 경우 수여되는 것), 근접전투장(백병전에서 공을 세운 병사들에게 수여되는 것)도 받았다. 이들이 받은 훈장만 보면 그야말로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었다. 알프레트가 지크프리트 4인조에게 물었다.
"이반 놈들은 우리 정보를 어떻게 알아낸걸까요?"
호르스트가 초코렛을 먹으며 말했다.
"이반 놈들이 우리 정보를 알아냈다고?"
"네! 전차들을 엄폐해두었던 곳에 정확히 포격을 때렸습니다! 소대장님이 전차를 옮겨놔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중대 전차들이 다 박살날 뻔했습니다!"
"어제 오후부터 새벽 사이에 누가 침입해서 정보를 빼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누..누가 침입했다고?"
경계를 설 때 농땡이 쳤던 지크프리트 4인조가 억지로 태연한척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하하!! 나..나도 잘 모르겠네!!"
로베르트가 말했다.
"적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있잖은가! 예상하지 못했던 녀석이 정보를 빼돌렸을 수도 있네!"
잠시 뒤, 만토이펠 대대장이 외쳤다.
"전 대대 장교 회의실로 집합!!"
만토이펠 대대장은 오두막에 만들어진 임시 대대 지휘소에 장교들을 불러서 내일 공격 계획을 설명했다.
"1중대 1소대는 보병 지원 없이 37확인점, 38확인점을 따라 진입해서 이 교차로를 점령한다!!"
오토는 만토이펠 대대장의 말에 당황했다.
'?? 여길 보병 지원 없이 간다고?'
슐레프 중대장이 외쳤다.
"37, 38확인점은 인근에 소련군 야포가 매복해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보병 지원과 정찰이 필요합니다!"
38 확인점 근처에는 롤반이 교차하는 교차로가 있었다. 그 교차로 쪽에는 야포를 엄폐하기 좋은 덤불이 가득했다. 분명 소련군은 그 교차로에 야포, 기관총, 그 외 대전차 화기로 매복하고 있을 것 이었다. 이런 교차로는 중요한 거점이었기에 당연히 소련군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을 것 이다.
만토이펠 대대장이 슐레프 중대장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자네는 이 작전이 불가능하다는건가?"
"아..아닙니다!"
만토이펠 대대장은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작전 계획을 설명했다.
"2중대는 49확인점으로 내일 오전 11시에 &%$&*@"
오토는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서..설마 아까 그 일 때문에 일부러??'
전술적으로 이건 누가 봐도 오토의 소대인 1중대 1소대에 악의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만토이펠은 오토가 자신의 고약한 취미를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소련군한테 죽게 하도록 일부러 위험한 곳으로 보낸 것 이었다. 오토는 추후에 자신의 아버지인 한스 파이퍼에게 만토이펠의 만행을 고자질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만토이펠은 이런 명령을 내린 것 이었다.
오토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괜한 오지랍으로 인해서 자신과 소대원들의 목숨이 위험해진 것 이었다. 만토이펠은 절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완전히 잘못 걸렸다!!!'
만토이펠은 작전 설명을 끝냈다.
"질문 있나?"
평소에 오토는 작전 회의가 끝나면 세세한 것들을 질문했다. 하지만 오토는 지금 자신에게 닥친 충격적인 상황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만토이펠이 외쳤다.
"해산!!!"
오토는 멍한 표정으로 지도를 펼치고는 자신의 소대원들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내일은 보병 지원 없이 이 교차로를 점령해야 한다."
1소대 판터 전차장 우벤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교차로를 우리 소대만으로 점령하는 겁니까?"
뷜리겐 또한 물었다.
"다른 지원은 없습니까?"
"없다."
다들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오토는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토는 아까 전에 꼬맹이를 구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만토이펠은 오토가 자신의 고약한 취미를 방해했다는 것을 알아챈 것 이다.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더라도 앞으로 계속해서 오토의 소대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길 것 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꼬맹이 새끼 하나 때문에!!!'
오토는 작전 설명이 끝난 이후 전전긍긍하며 티거 안에서 고민했다.
'시발 어떻게 하지? 아니다!! 괜한 걱정일거다! 내가 그 새끼 고약한 취미를 안다는 것을 그 놈은 모를거다! 아니다...눈치챘나? 시발!!! 이래서 그 딴 쓸모없는 꼬맹이 따위 구하는게 아니었다!!'
오토는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꼬르륵
오토는 들판 위에 떨어진 수 많은 식량 캡슐을 떠올렸다. 그거 하나 가져온다면 소대원들이랑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야간이라고 해도 그 캡슐을 주우러 가는 것은 위험했지만 어차피 내일 전투 때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두렵지 않았다.
만약 내일 죽을 고생을 해서 전투에 승리하면, 그 맛있는 캡슐들은 후속해서 오는 부대가 모조리 차지할 것이 분명했다. 다른건 몰라도 다른 부대 녀석들이 캡슐에 들어있는 식량을 모두 먹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나 혼자 들고 올 수는 없을텐데...'
캡슐은 상당히 무거웠기에 혼자서 들고 오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오토는 에밀, 마티아스, 알프레트, 요하네스를 데리고 가기로 마음 먹었다. 다섯이면 캡슐 두 개는 챙길 수 있을 것 이었다.
"마티아스 자네가 나랑 캡슐 한 개 든다!!"
마티아스는 투포환 선수 출신이었기에 힘이 상당히 좋았다. 그렇게 다섯은 마을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보초를 서고 있던 지크프리트 4인조가 물었다.
"암호!!"
"투숑카 통조림!!"
지크프리트 4인조는 의아한 눈빛으로 오토와 전차병들을 바라보았다. 오토가 말했다.
"식량이 들어있는 캡슐을 가지고 올걸세!"
지크프리트 4인조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오토와 전차병들을 계속 보았다.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들 고자질하는건 아니겠지?'
"이따가 자네들도 나눠주겠네!"
그제서야 지크프리트 4인조는 싱글벙글 웃으며 오토에게 경례를 했다. 그렇게 오토는 전차병들과 함께 시커먼 어둠 속을 조심스럽게 기어갔다. 어디 소련군이 매복해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가야했다. 하지만 배가 너무나도 고팠고 오토와 전차병들은 내일 죽더라도 먹을거라도 충분히 먹고 죽자는 생각이었다.
조심조심 기어가니 어느덧 캡슐이 수북히 떨어져있는 들판이 나왔다. 에밀이 속삭였다.
"어느걸 고를까요?"
다섯 명이선 기껏해야 캡슐 두 개만 운반할 수 있었기에 잘 골라야했다. 기껏 고생하며 가져왔는데 콘돔만 수북히 들어있는 캡슐이면 난감했다. 오토가 말했다.
"살짝 흔들어보게! 통조림이 들어있는건 소리가 날걸세!"
그렇게 오토는 마티아스와 함께 캡슐 하나를 골랐다. 적당히 흔들어보니 통조림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에밀, 요하네스, 알프레트도 이미 캡슐 하나를 고른 상태였다. 녀석들은 그렇게 캡슐을 같이 들고는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오토 또한 마티아스와 함께 캡슐을 양쪽에서 나누어 들었다. 생각보다 캡슐은 무거웠다.
'윽!! 무겁군!!'
이 통조림이면 앞으로 식량 보급을 못 받더라도 소대 전체가 며칠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이었다. 오토는 야간에 위험을 무릎쓰고 나온 것이 뿌듯하기 시작했다. 에밀, 요하네스, 알프레트는 한참을 앞서서 가고 있었다.
'저 녀석들은 뭐 저렇게 빨라?'
그 때, 옆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토가 마티아스에게 물었다.
"뭐라고 했나?"
마티아스가 대답했다.
"네?"
"방금 자네가 뭐라구 꿍얼대지 않았나?"
"저..전 아무 말도 안했는데요?"
오토와 마티아스는 제자리에 멈추었다.
'호..혹시 인근에 소련군이?'
하지만 지금 오토와 마티아스는 광활한 들판에 서 있었고 주변에는 소련군이 엄폐할만한 덤불도 없었다.
'벌레 소린가...'
다시 오토는 캡슐을 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따가 이 통조림을 요리해서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빨리 먹고 잠이나 자야지...'
그 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
"한심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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