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
티거는 우측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궤도로 후진을 시도했다.
끼이익 끼이이익
전차병들은 티거가 한쪽 궤도만 움직이며 헛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헤이든이 외쳤다.
“좌측 궤도가 나갔습니다!”
쉬잇 쿠과광!! 슈웃 콰광!! 탕! 탕!
영국군 전차들은 후퇴하면서도 이 쪽을 향해 기관총을 쏘아 댔다. 총알들이 티거 장갑에 콩이 튀기듯 튕겨져 나오는 소리와 함께 파편이 녹으면서 뜨거운 금속 액체가 티거 안에 흘러내렸다.
드득 드득 드득 탕!
“앗 뜨거!!아악!!”
프란츠가 비명을 지르며 영국군의 전차를 향해 쉬지 않고 기관총을 쏘아댔다.
“으아악!!”
드드득 드드득 탕! 탕!
양 쪽에서 예광탄이 만드는 빛이 어둠 속에서 번쩍거렸다. 멍청하게도 프란츠는 기관총을 끊어 쓰지 않았기 때문에 총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점점 총알이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한스가 외쳤다.
“계속 움직여!!프란츠!!고폭탄 장전해!!”
헤이든이 비명을 지르며 남아 있는 우측 궤도를 조종했다.
“으아악!!아아악!!”
한스가 벤에게 외쳤다.
“빨리 쏴!!자유 사격!”
퍼엉! 쉬잇 쿠과광!!
포탄이 발사되면서 순간적으로 티거는 뿌연 포연에 휩싸였다. 한스가 외쳤다.
“계속 발사!!”
프란츠가 외쳤다.
“고폭탄 장전!!”
퍼엉! 쉬잇 쿠과광!!
봄이 되어 이제 막 새싹이 나기 시작한 나무와 덤불이 불타올랐다. 그 덕분에 시꺼먼 연기가 사방에 번져서 한스의 전차는 어느 정도 엄폐할 수 있었다. 하늘에서는 조명탄 7~8개가 이 곳을 대낮처럼 훤히 비추고 있었다. 영국군의 전차는 아직 절반 정도가 멀쩡히 남아 있었고 그들은 저만치 후퇴하고 있었다.
독일군의 포격은 어마어마했지만, 포병 관측 장교의 실력이 형편없는 것이 분명했다. 좌측, 우측, 앞, 뒤 사방에서 포탄이 폭발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독일군과 영국군의 대갈통을 두들겼다. 계속 이러다간 두개골에서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영국 전차 중대도 갑작스러운 포격에 최대한 빠른 속도로 후퇴하고 있었다. 한 영국 병사는 달려가다가 포탄 폭발의 충격에 산산조각나더니 높다란 나뭇가지 위에 빨래 조각처럼 시체 일부가 걸렸다.
한 영국군 전차의 포수는 후퇴하면서 이를 갈았다.
“크라우트 새끼!! 한 명이라도 죽여야 한다!!”
영국군의 마크 V 전차 우측 측면에 달린 포가 더듬이 마냥 움직이더니 티거가 있던 쪽을 겨냥했다. 하지만 티거는 포연에 휩싸여 있었고 마크 V 전차도 선회하는 중이었기에 조준이 쉽지 않았다. 포수가 외쳤다.
“발사!!”
퍼엉! 쉬잇 쿠과광!!콰광!!
티거의 좌측 포를 다루던 벤과 프란츠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금속이 폭발하는 소리를 들었다.
타앙!!
벤과 프란츠는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으악!!아악!!”
“좌측 포신이 망가졌다!!”
짧지만 믿음직하던 티거의 좌측 포신이 포탄을 맞고 나뭇가지 부스러지듯 조각나더니 파편이 휙, 하고 멀리 날아갔다. 이제 좌측에 남은 무기는 기관총 밖에 없었다. 프란츠는 다시 기관총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드드득 드드드득
고약한 기름냄새, 화약냄새가 전차병들의 코를 찔렀다. 한스가 외쳤다.
“탈출!!탈출한다!!”
벤, 루이스, 에밋, 헤이든, 거너는 재빨리 해치 쪽으로 달려갔지만 프란츠는 한스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기관총을 긁어댔다.
드득 드드득
한스는 프란츠의 뒷목을 잡고 끌어낸 후에 자신도 뛰어나갔다.
“뛰어!! 빨리 뛰어!!”
여기저기서 포탄에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총알보다 무섭게 땅으로 내리 꽂히고 있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망할 포병 관측 장교 새끼 같으니라고!! 티거는 궤도를 교체하고 재생공장으로 보내면 다시 쓸 수 있을..’
그 순간, 뒤에서 엄청난 폭발이 느껴지며 한스와 전차병들은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몸을 내던졌다.
쿠과광!!콰광!!쿠과광!!
폭발은 한 번으로 끊이지 않았다. 한스가 외쳤다.
“엎드려!!”
쿠광!콰광!!
쉬잇 쉿
머리 위로 쉿쉿거리며 날라가는 날카로운 파편 소리가 들렸다. 뜨거운 공기가 바람을 타고 오는 것이 뒤통수로 느껴졌다. 몇 파편들은 나무 기둥과 땅에 깊숙이 박혔다. 한스와 전차병들은 머리를 바닥에 쳐 박은 채로 계속해서 앞으로 기어갔다. 언제나 침착하던 벤은 자신의 얼굴 위로 피가 흘러내리자 정신이 나가서 도저히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괴이한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버버버..어버버버..”
쉬잇!
전차병들은 대충 날아오르는 소리만으로 포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들린 소리는 꽤나 육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독일군의 305mm 포탄이 대지 위에서 폭발했다.
쿠과광!!!콰광!!
대지 깊숙한 곳까지 전달된 충격에 땅이 진동하였고 반경 50m까지 흙가루가 사방팔방 흩뿌려졌다. 이 정도 폭발로 생기는 포탄 구덩이는 최소 1개 소대가 넉넉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랗다.
어마어마한 포연이 유령처럼 시꺼먼 땅 위를 둥둥 떠다녔다. 독일군은 계속해서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 천만 다행히도 포격은 이제 끝난 것 같았다. 잠시 뒤 바람에 포연이 흩어졌다. 한스와 전차병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시뻘건 화염에 사방이 주황색으로 물들어있었다. 나뭇가지가 부러진 앙상한 나무의 검은 실루엣, 새까맣게 얼굴이 그슬린 시체, 나무 위에 빨래처럼 걸려 있는 시체, 검게 그슬린 파편 조각, 나무 파편들 또한 언뜻언뜻 보였다.
밑기둥이 꺾인 채로 쓰러져 있었는 나무 옆에서 망가진 티거 안에서는 여전히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한스와 동료들을 굳건하게 기관총으로부터 보호해준 티거는 종이가 구겨지듯 쉽게 으스러졌던 것이다.
‘티거?’
“중대장님!!빨리 가야 합니다!!”
한스는 얼굴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껴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갖다 대보았더니 작은 금속 파편이 박혀 있었다. 한스는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그 조각을 얼굴에서 빼어냈다. 손가락에 뜨끈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한스는 자신의 동료들을 따라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한스의 전차 중대의 전차들은 여기저기 총알 자국, 파편 자국 등이 남아 있었다. 구경하러 온 보병이 이 참혹한 광경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어마어마하군..”
고작 티거 한 대만 격파 당한 것이 기적이었다. 큰 부상을 입은 병사는 없었지만, 여러 전차병들이 화상을 입어 위생병들의 치료를 받게 되었다. 전차병들은 포병 관측 장교에게 속으로 이를 갈았다.
‘망할 새끼들..그거 하나 관측을 제대로 못해서..’
푸마의 한 전차병은 어딜 다친 것인지, 얼굴 한 쪽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다들 치료를 받는데, 한 전차병이 의무병에게 외쳤다.
“아까부터 오른쪽 귀가 안 들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포격에 한 쪽 고막이 나가서 영구적으로 한 쪽 귀를 못 듣게 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의무병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며칠 뒤면 괜찮아질 걸세!”
“정말? 며칠 기다리면 괜찮아지는 거야?”
의무병은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고 다음 부상병을 치료했다.
바그너가 말했다.
“이 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이야.”
한스는 의무병에게 간단한 소독만 받았다. 군복은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옷깃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의무병이 한스에게 수건을 내밀었고 한스는 그 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닦았다. 시꺼먼 먼지, 페인트 가루, 핏자국이 수건에 묻어 나왔다. 한스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바로 보고를 하러 갔다. 후티어 장군이 입을 열었다.
“포병 지원까지 해줬는데 왜 후퇴 명령을 내렸는가?”
“제 중대가 위치한 곳에 포격이 있었고, 이 이상 공격을 할 경우 아군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후티어 장군뿐만 아니라 14군단장, 232사단장 등 다른 장교들도 모조리 한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한스는 여전히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고 피가 묻은 한쪽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후티어 장군이 그 특유의 매서운 눈빛으로 한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 중대가 후퇴하는 적을 분쇄했으면 최대한의 피해를 줄 수 있었을 걸세.”
“죄..죄송합니다! 하지만 계속 교전이 벌어졌으면 중대가 몰살당할 수도..”
후티어 장군이 천천히 일어서서 다가와서 한스를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한스는 후티어 장군이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었단 것을 눈치챘다.
‘그..그 상황에서 반격 했어야 했다고?’
한스는 공포심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후티어 장군이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파이퍼 중대장, 병사들을 적절할 때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자네의 임무일세. 이런 상황에서 후퇴한 것은 승리의 기회를 내다버린 것이나 다름없네.”
하르트만 소령도 속으로 생각했다.
‘저런 멍청한 자식..여태까지 18군에서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죽었는지는 알고 저렇게 지껄인 건가..’
후티어 장군이 말했다.
“가서 얼굴 좀 닦게나.”
한스는 잠시 뒤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요나스가 한스에게 술병을 흔들며 외쳤다.
“여기 슈납스 있어!”
“조만간 마크 V 전차를 견인할거래! 그거 하나 밖에 안 남은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아까운 영국 전차들과 장갑차, 오토바이들은 포격에 대다수 망가져 있었고 유일하게 쓸만한 것 은 궤도 한 짝이 나간 마크 V 뿐이었다. 마크 V를 견인하러 온 병사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체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당분간 고기 스프는 못 먹겠네.”
“이거 치우려면 철모로 여기저기 긁어서 모아야겠어!”
“시발!!나 밟았어!!”
티거의 전차병들은 새로 얻게 된 티거 3세의 내부에 들어가보았다. 에밋이 외쳤다.
“확실히 넓은 게 좋기는 좋아!”
벤이 말했다.
“포탄이 많이 남아있어서 다행이야.”
원래대로라면 정비공장에 맡겨서 독일군이 쓸 수 있는 포로 교체 작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영국군이 쓰다 남은 포탄을 써야 했는데, 다행히 당분간 전투에서 쓸만한 포탄이 충분이 남아 있었다.
한편 퇴각하던 영국 하워드 대위의 전차 안에 탑승하고 있던 포수 데이빗은 포탄 파편을 복부에 출혈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하워드 대위는 구급 상자 안에서 붕대를 꺼내어 어떻게든 지혈을 하려고 했지만 흰 붕대는 금새 피로 물들었다.
“데이빗! 조금만 참게!!”
하지만 마크 IV 시절부터 수 많은 전공을 세웠던 최고의 포수 데이빗은 결국 과다출혈로 몇 시간 뒤 사망했다. 대대장이 이를 갈며 저격수들에게 말했다.
“보슈놈 전차장을 사살하면 1계급 특진, 한스 파이퍼를 사살하면 2계급 특진에 포상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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