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군
롬멜 소위가 한스를 따로 불러서 이야기했다.
“프랑스 놈들이 전차를 대량으로 만들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네. 우리 전투기가 공장을 파괴하려 했지만 실패했네.”
“슈네데르입니까 생샤몽입니까?”
“둘다 아니네.”
‘그···그렇다면···’
“놈들은 그 신무기에 확신을 갖고 있는지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네. 전차 노획도 쉽지는 않을걸세.”
‘도대체 어떤 전차이길래···’
한스는 두려움과 함께 심장이 쿵쾅거림을 느꼈다.
“놈들은 신 전차를 몇 대 정도 생산하고 있습니까?”
“1500대 정도 생산 예정이라는군.”
롬멜 소위의 말에, 한스의 머리 속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네?? 며···몇 대요?”
“1500대라네. 1500대!!”
‘내···내가 잘못 들은건가? A7V 전차가 고작 20대 생산되었는데···’
한스가 진정하고 말을 이었다.
“우···우리 군은 무슨 대비책이 없습니까?”
“없네. 그 흡착 지뢰 말고는.”
한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롬멜이 말했다.
“이번 노획 작전에서 프랑스의 신형 전차의 약점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내야 하네. 노획하지 못한다면 놈들이 쓰지 못하도록 모두 파괴하고 오게.”
한스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장교 앞에서 할 말 못 할 말 구분 못하고 지껄였다.
“1500대 중에 고작 몇 대를 파괴한다고 전투의 결과가 바뀔 수 있습니까? 고작 전선에서 5분 더 버틸 수 있을 것 입니다!”
롬멜의 삼각형 모양의 눈이 한스를 쳐다보았다. 한스가 속으로 움찔했다. 롬멜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한 대 파괴하는 것으로 독일군 10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지. 내일 당장 출발하게.”
한스는 멍하니 대피호로 걸어갔다. 한 병사가 거울을 보며 면도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텐데 면도는 뭣하러 하지···’
한스가 주저앉아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력하면 무언가 바뀔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완전히 박살났다. 전차 노획은 매우 위험한 임무였고, 이 임무를 위해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것인지 한스는 고민에 빠졌다.
‘왜 싸우러 가야 하지?’
불과 몇 달 전이었다면, 한스는 이번 작전을 통해 탈영을 시도했을 것 이다. 전차 노획 작전은 절호의 탈영 기회였다. 모아둔 돈도 충분히 있었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옷만 훔치면, 대충 먹고 살 수 있다. 근데 얼마 전부터 한스는 탈영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한스의 머리 속에서는 궁금증이 떠나지 않았다.
‘프랑스의 새 전차는 어떤 형태일까?’
한스는 새 전차를 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 날 밤, 한스는 이등병들에게 주기적으로 전차의 시동을 걸어주고, 제대로 관리하라고 한참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는 동료들과 같이 프랑스의 신형 전차를 노획하러 작전을 떠났다.
‘1500대는 무리일 거야···프랑스도 자원이 부족할텐데···1500대는 잘못된 첩보일지도 몰라. 기껏해야 400대 정도 되겠지···’
한스는 동료들과 한참을 행군하다가 자리에 앉아서 불을 피우고는 조금 휴식을 취했다. 원래 불을 피우면 연기가 나기 때문에 위험했지만, 너무 추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병사들은 모닥불 옆에 둘러앉아서 도시락 통에 감자, 당근, 오래된 소스, 순무를 집어넣고 물을 따른 다음 끓여서 먹기 시작했다. 에밋이 커피를 끓여서 모두 한 모금씩 마셨는데, 맛이 정말 형편 없었다. 요나스가 말했다.
“우웩!이건 도저히 못 먹을 맛이야!”
루이스가 말했다.
“이건 커피가 아니라 순무를 커피처럼 만든 것 같습니다.”
“중세시대라도 이렇게 음식으로 장난을 치는 상인이 있었다면 교수형을 당했을 거야. 먹을수록 내 위장이 썩어들어가는 것 같아.”
한스가 말했다.
“놈들이 우리 전차들은 잘 관리하고 있겠지? 주기적으로 시동을 걸어줘야 하는데···”
요나스가 말했다.
“망가뜨리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헤이든이 말했다.
“우리 전차는 왜 측면에 포가 달려 있을까요?”
“영국놈들이 그렇게 만들었으니 할 수 없지.”
“포를 쏠 때마다 이리저리 회전시켜야 하는게 너무 시간이 많이 듭니다. 이렇게 회전하다보면 이미 야포한테 박살이 날 겁니다.”
“맞아. 놈들의 야포는 1분에 15발까지 발사하는데, 우리 전차만 끼기기긱 거리며 돌리고 있으면 이미 박살나지.”
한스가 말했다.
“그래서 전차보다 야포를 먼저 박살내야 하네. 야포가 훨씬 위험해.”
“우리 독일의 신형 전차는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한스가 대답해주었다.
“A7V는 앞에 포가 달려 있고, 후면이랑 양 측면에 기관총이 달려있네. 총 6개의 기관총이 여기저기 달려있지.”
요나스가 놀라며 말했다.
“히익! 기관총만 6개라고?”
헤이든이 말했다.
“그래봤자 포가 한 방향만 커버할 수 있으니 측면이나 후면에서 야포가 날라오면 금방 박살나겠군요. A7V도 야포에 속수무책일 겁니다.”
그 때, 루이스가 말했다.
“전차가 아니라 포만 360도 회전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한스가 종이에서 설계도를 꺼내며 말했다.
“나도 사실 그 생각을 하고 있었네. 그래서 이렇게 포탑이 위에서 360도 회전하도록 만들었지.”
한스의 동료들은 그 설계도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런 전차는 언제 나올까요?”
“10년? 20년 뒤에는 나오겠지?”
“아직은 전차가 야포한테 상대가 안됩니다.”
“멋진 설계도야. 하지만 내가 장군이라도 전차보다는 야포에 돈을 더 투자할 것 같아. 프랑스놈들의 1897년 75mm 보다 좋은 야포를 우리가 만든다면, 이번 전쟁에 승산은 있어.”
동료들의 말에 한스가 말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지만 한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네들 말이 옳다면 다행이겠지···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병사들은 식사를 한 이후에 불을 끄고 다시 행군을 떠났다. 걸을 때마다 여기 저기 생긴 물집 때문에 발이 아팠다. 병사들의 발에 생기는 커다란 물집들을 의무병이 터트리면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피가 툭하고 쏟아져 나왔고, 거의는 참호에서 지냈기에 의무병을 좀처럼 찾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행군을 하다 보니 진작 의무병을 찾아가서 물집을 터트리지 않은 것을 다들 후회하였다.
앙상한 나무들만 끝도 없이 있었기에, 병사들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요나스가 말했다.
“한스, 우리 맞게 가고 있는 거야?”
한스는 지도와 나침반을 보았다. 맞는 방향으로 계속 가고 있었지만, 왠지 같은 자리를 뱅뱅 도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속마음을 숨기고 동료들을 안심시켰다.
“이 쪽 방향으로 계속 가다보면 전차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나오네. 그 곳에 매복해야 해.”
병사들은 이제 반쯤 졸면서 행군했다. 에밋이 졸면서 행군하다가, 이마가 헤이든의 등에 부딪쳤다.
“아악! 졸지마!”
병사들은 모두 비틀거리며 겨우 힘을 내어 행군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천 대가 넘는 전차 군단이 독일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휴식을 취할 수는 없었다. 사실 낮에는 계속 휴식을 취하고 밤에만 행군하는 것이 맞았지만, 한스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낮에도 잠깐의 휴식을 제외하고는 행군을 명령했던 것 이다.
그렇게 한참을 행군하는데, 멀리서 위이이잉 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행기 소리였다.
“젠장! 어느 쪽 비행기야!”
“엎드려!”
병사들은 모두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저 비행기가 적군의 것이고, 만약 들킨다면 저 비행기는 한스 일행이 있다는 것을 적군 보병에게 바로 알릴 것 이다. 그렇게 되면 모조리 죽을 것이 분명했다. 절대 들키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위이이잉
한스는 슬쩍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았다.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에 하늘에 보였고, 저 멀리 위에서 비행기가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비행기는 한스 일행이 숨어있는 곳을 지나서 유유히 비행했다.
지이이잉
비행기가 이 쪽으로 접근할 때는 위이이잉 하는 소리가 났지만, 한스 일행의 위쪽 하늘을 지나 멀리 날아가니, 지이이잉 하는 소리가 났다. 비행기 소리가 멀어지자, 병사들이 하나씩 일어났다.
요나스가 말했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을걸···”
니클라스가 말했다.
“괜히 재수없는 소리 하지말게.”
한스가 말했다.
“이번 작전에서는 꼭 노획을 하지 않아도 좋다. 적군 전차의 정보를 입수하고 그걸 아군한테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능하면 싸움은 피한다.”
롬멜 소위는 전차를 하나라도 파괴하라고 했지만, 한스는 그 명령에 따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밤이 되기 전까지 그 곳에서 휴식하기로 했다. 그렇게 일행은 잠시 눈을 붙였다가, 해가 지고 나서 한참을 더 행군했다.
그렇게 한참을 행군하다보니 어느덧 이른 아침이 되었다. 한스는 휴식을 취할만한 장소를 물색하였다. 그런데, 어떤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제일 앞서 가던 한스가 동료들을 돌아보며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병사들의 눈이 공포로 커다랗게 변했다. 한스가 귀를 기울였다. 11시 방향에서 분명히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엄폐할 곳이!’
그 때, 헤이든이 저지대에 움푹 패인 곳을 발견했다. 헤이든이 손짓을 하며 이 쪽으로 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일행은 모두 잽싸게 그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 곳에 몸을 구겨 넣어 매복했다. 소리는 점점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이 소리는!’
소리로 미루어보건데 상당히 많은 병사들이 행군하고 있었다. 병사들의 규칙적인 발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한스의 온 신경을 집중시킨 것은 그와는 다른 소리였다.
츠츠츠츠 츠츠츠 츠츠츠츠
이것은 분명 전차의 무한궤도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그런데 여태까지 들었던 다른 전차들의 무한 궤도 소리와는 약간 달랐다. 한스는 잠망경을 살짝 위로 올려, 프랑스의 신형 전차를 발견했다.
츠츠츠츠 츠츠츠츠
많은 병력과 함께 신형 전차가 저 쪽 길을 통해서 지나가고 있었다. 훨씬 더 많은 병사들을 데리고 왔어도 노획은 절대 불가능했으리라. 한스는 전차 노획이나 파괴는 포기하고, 그저 정보만을 얻어가기로 했다. 옆에서 동료들은 혹시나 들킬까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스는 쌍안경으로 전차를 자세히 관찰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들킬 것이 분명했기에, 잠망경을 뚫어지게 바라 보면서, 전차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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