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병 훈련
예거 장군이 말했다.
“뭐 젊은 친구는 알 것 없네! 자, 그러면 좀 더 재미있는 곳에 가자고.”
예거 장군은 한스를 데리고 베를린에서 가장 잘 나가는 술집에 갔다. 금발 머리에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여자 둘이 예거 장군과 한스 옆에 앉았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전쟁 중에 저런 옷을 입는다고? 저 다이아몬드 반지를 살 돈이면 전차를 수리할 부품을 만들 수 있을텐데...’
요하나라는 여자는 예거 장군의 여자친구로 보였다. 그 옆에 있는 에밀라라는 여자는 요하나의 친구였다. 에밀라가 한스를 깔보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 장군님. 이 분은 누군가요?”
요하나와 에밀라는 베를린 최고의 인기녀들이었고, 장교가 아니면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에밀라는 부사관인 한스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예거 장군이 말했다.
“이 친구는 한스 파이퍼 하사라네. 아직은 부사관이지만 몇 십 년 뒤에 이 친구가 독일의 영웅이 될 걸세. 혼자서 프랑스 전차 10대를 격파한 영웅이야!”
에밀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흐음...정말인가요?”
금발 미녀 에밀라에게는 접근하는 군인들이 많았고, 그들은 늘 자기가 전투기 조종사라느니, 수십 대를 격추시켰다느니 허풍을 떨어댔다. 에밀라는 한스를 눈여겨보며 생각했다.
‘저건 부사관 옷인데...영웅이라기엔 자신감도 없어 보여.’
한스는 지금 자리가 몹시 불편해서 차라리 동료들과 자신의 전차가 있는 전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 전선으로 돌아가기 전에 전차끼리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주광 램프와 신병들을 보충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저, 예거 장군님. 전차끼리 모스 부호로 연락할 수 있는 주광 램프를 하나씩만 보충해주십시오. 그리고 신병들도···”
예거 장군이 한스에게 말했다.
“이보게. 전쟁 이야기를 하면 숙녀분들이 지루해하지 않나?”
“죄...죄송합니다···”
한스는 머리 속에 전차에 대한 생각 밖에 없었기에, 에밀라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돈도 없고 부사관인 자신한테 저런 화려한 미녀가 관심을 가질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에밀라는 한스 파이퍼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자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 남자는? 나한테 관심이 없어?’
에밀라의 아버지는 군수 공장의 사장이었고, 전쟁이 시작되자 돈을 갈퀴로 주워담고 있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준다는 장교들도 마다하고 그들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만 치다가 버리곤 했다. 에밀라는 자신에게 눈길 한 번 안 주는 한스 파이퍼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에밀라가 입을 열었다.
“전쟁이라면 저도 잘 알아요. 저희 아버지가 군수 공장을 하시거든요.”
에밀라의 말에 한스가 관심을 보였다.
“저..정말입니까?”
에밀라가 속으로 한스를 비웃었다.
‘역시...부잣집 딸이라고 하니 관심을 보이는군..너도 하찮은 남자야..’
“물론이죠. 조만간 프랑스 놈들의 전차를 격파하기 위한 새로운 무기가 나올 거라나 뭐라나...아버지한테 들었어요.”
한스는 눈을 크게 뜨고 에밀라를 바라보았다.
“저...혹시 새로운 전차를 개발한다는 소식은 없습니까?”
한스는 에밀라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고 전차 개발에만 관심이 있었다. 에밀라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뭐야? 숙녀가 말하는데 정말 무기 이야기나 하는 거야?’
곧이어 예거 장군은 취해서 요하나와 함께 팔짱을 끼고 술집을 나섰다. 한스는 숙소로 돌아가서 하룻밤 잔 다음에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에밀라가 한스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밤이라 위험하네요. 마차를 타야 하는데...지갑을 놓고 나왔어요..”
한스는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에밀라한테 내밀었다.
“저...이거라도 타고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스는 슬쩍 팔을 빼고 숙소로 걸어갔다. 그 때 에밀라가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여자 혼자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은 위험할 것 같은데요?”
한스는 에밀라가 왜 화가 난 것 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그...그러면 자택으로 에스코트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한스는 베를린에서 마차를 잡느라 허둥댔다. 마차를 타는데 드는 돈은 한스가 평소에 쓰던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었다. 한스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돌아갈 때는 걸어가야겠다···’
에밀라가 한스에게 물었다.
“파이퍼 하사, 귀족 출신은 아닌가보죠?”
“네? 아...네···.귀족 출신은 아닙니다.”
“귀족 출신이라면 그렇게 잘 싸웠는데도 아직 부사관일리가 없잖아요?”
에밀라는 한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신경쓰지 말아요. 우리 집안도 귀족 집안은 아니에요.”
잠시 뒤, 마차가 멈추었고, 한스는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에밀라와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에밀라의 저택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호화로웠다.
‘아니! 참호에서는 다들 순무빵만 먹는데 이렇게 호화롭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니!’
에밀라가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스를 쳐다보고 말했다.
“제 이름은 알아요?”
“네? 아...저···”
“내 이름은 에밀라에요. 기억하는 것이 좋을 거에요.”
그렇게 말하고 에밀라는 저택의 문을 꽝 닫고 들어갔다.
한스의 요청에 의해서 독일군은 노획 전차 부대를 추가로 운용하고, 새롭게 전차병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사실 따로 전문적인 전차병을 모집했다기보다는, 보병, 포병, 운전병 중에서 지원자를 뽑아 차출하는 방식이었다.
폴이라는 이등병 또한 전차병으로 지원을 했다. 전차병으로 지원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전차에 들어가 있으면 얼어 죽지는 않겠지···’
뿐만 아니라 폴은 농장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트랙터 운전에는 자신이 있었다. 수류탄을 던지고, 소총으로 적군을 맞추는 것 보다는 전차를 운전하는 것이 더 자신 있었다.
폴, 패트릭, 욘트, 밀란 등 많은 병사들은 긴장한 상태로 새로 온다는 교관을 기다렸다. 패트릭이 말했다.
“우리 교관 말인데...혼자서 프랑스 전차 10대를 격파했다고 들었어!”
“그게 말이 되냐? 전선 신문에서 허풍치는 거겠지.”
“아니야. 그 인간이 격파한 전차만 총 50대가 넘는다고 들었어. 마크 전차를 하도 많이 노획해서, 영국놈들이 교관 목에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고 했어.”
“근데 왜 부사관인데?”
“귀족 출신이 아니라 진급에서 밀린거지 뭐.”
“전선 신문에서도 그런 기사 못 봤는데?”
그 때, 병사들 앞에 한스 파이퍼가 들어왔다. 병사들이 한스를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저렇게 작아?’
‘훈장도 하나도 없는데?’
한스는 예전에 신병들을 훈련시킬 때 히틀러가 조언해준 대로 침묵을 통해 신병들을 압도한다거나, 슈톰트루퍼들에게 강의를 할 때 농담을 통해 자신의 말에 집중하게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스는 이미 베테랑이나 다름없었고, 그런 잔재주 따위 안 써도 될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한스가 입을 열었다.
“마크 전차를 조종하려면 조종수 1명, 양 쪽 기관사 2명, 총 3명이 필요하네. 트랙터 운전 경험 있는 병사 있나?”
폴이 손을 들었다. 한스가 폴을 지목하고는 말했다.
“전차 노획 부대가 마크 전차를 한 대 노획했네. 자네가 조종수를 하도록. 차 운전 경험 있는 병사 손 들어봐.”
패트릭, 욘트가 손을 들었다. 한스가 말했다.
“자네가 좌측 기관사, 자네가 우측 기관사를 맡게.”
폴이 속으로 생각했다.
‘뭐...뭐야? 원래 이런 체계야?’
폴은 자신이 전문적인 전차병이 된다는 생각에 자랑스럽고 설레였는데, 절차가 너무 대충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실망스러웠다. 다른 병사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한스가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여태 보병이나 포병으로 전투하면서 제법 괜찮게 싸웠다고 들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있었던 전투 경험은 모두 잊어버리도록.”
한스는 칠판에 전차와 보병들을 그렸다.
“몇몇 멍청이들은, 전차를 보병을 나르는 보조 무기로만 생각한다. 이건 완전한 착각이다! 전차라는 것은 무인지대에서 벌어지는 이 지루한 소모전을 끝낼 혁신적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태까지 보병으로서 익혔던 습관, 전투 패턴은 모조리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 아무리 베테랑 보병일지라도 전차병으로서는 빵점자리가 된다.”
한스의 말에 병사들은 주눅이 들었다.
“전차에서 전차장 다음으로 중요한 자리는 조종수의 자리이다. 전차장이 죽으면 조종수가 전차장이 해야할 지휘를 대신 해야 한다. 멍청한 보병은 혼자 죽는다. 하지만 멍청한 전차병은 전차를 자신과 동료들의 무덤으로 만든다. 죽을 때 춥지는 않을 것 이다. 전차가 활활 불타오를 테니까.”
병사들의 표정이 모두 어두워졌다. 밀란은 전차병으로 지원한 것을 후회했다. 한스가 말을 이었다.
“이제 자네들은. 두 다리를 이용해서 앞으로 걷는 인간이 아닐세. 철조망을 짓밟으며 나아가는 무한궤도를 전진시키는 전차의 부품일세! 바깥에 노획 마크 전차가 있네. 영국놈들이나 프랑스놈들은 훈련 받을 때 전차 측면이 뚫려 있는 모형 전차를 쓴다더군. 하지만 자네들은 해치까지 완전히 닫고 훈련을 받을 걸세!”
욘트가 슬쩍 손을 들며 말했다.
“해...해치를 닫으면 일산화탄소가 나오지 않습니까?”
한스가 말했다.
“당연하지. 정해진 코스를 다 완주하면 해치를 열 수 있네.”
병사들의 표정이 아연실색이 되었다. 한스가 계속 말했다.
“실제 전투에서는 사방으로 포탄 파편이 날라 다니기 때문에 한참 동안 해치를 열지 못한다! 나는 전차장으로 있으면서 가능하면 해치 위로 몸을 내밀지만 해치가 닫힌 상태에서 좁아 터진 관측창으로 주변 지형을 파악하는 것에 익숙해 져야 하네.”
“저...전차장은 해치 위로 몸을 내밀어야 합니까?”
“당연한 소리를! 물론 무인지대에서 포탄 파편이 사방에서 쏟아질 때는 닫아야 한다. 하지만 전차장이 항상 해치 위로 몸을 내밀고 주위를 살피지 않으면, 수류탄을 들고 옆으로 기습하는 적은 어떻게 피할텐가? 또한 부상당한 아군을 모르고 깔아뭉개면?”
병사들은 이 작고 왜소한 부사관의 말에 완전히 위압당했다. 여태까지 훈련소 교관들 중에는 전투 경험 한 번 없으면서 쓸데없이 고약한 훈련을 시키던 교관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몰래 뒤에서 똥물을 퍼붓고 가는 훈련병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스 파이퍼라는 이 교관은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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