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제 담배
한스가 헤이든의 등을 발로 툭 치고는 말했다.
“잠시 정지!!정지!!!”
한스가 해치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 때, 피셔 하사가 외쳤다.
“후퇴해!!!후퇴!!!”
한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여태까지 전차를 몇 대나 파괴했는데? 이기고 있는거 아니었어?’
피셔 하사가 주먹을 날리며 외쳤다.
“우리 지고 있어!!! 전차장!!! 빨리 후퇴하라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 이기고 있던 것 아닙니까?”
“멍청한 자식! 지금이 마지막 후퇴 기회야! 네 놈 부하들을 다 죽이고 싶나?”
‘무...무슨 소리지?나는 이렇게 잘 싸웠는데? 내가 몇 대나 더 격파해야 하는 거야?’
그 때, 하늘에서 일제 포격이 쏟아졌다.
쉬이익 콰과광
슈욱 콰과광
“젠장!! 저 놈들 자기쪽 전차가 파괴되어도 상관 없다는 건가?”
그 때 한스 머리 속에서 불현듯 독일군이 프랑스의 모든 전차를 격파시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근처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을 느꼈다.
쿠광!!콰과과광!!!
그리고 몇 초 뒤 슉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쉬이이잇 쉬이잇!
지축의 흔들림과 함께 사방으로 금속 파편과 진흙이 튀어오르며 포탄이 폭발하면 어김없이 그 후 몇 초 뒤에 쉬이이잇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독일군에게 프랑스의 전차보다 공포스러웠던 이 1897년식 75mm 야포가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이 쪽으로 포탄을 쏘고 있었다! 능숙한 포수는 1분에 최대 15발을 발사하는 이 야포가 한스의 전차를 노리고 있었던 것 이다.
한스가 헤이든의 왼쪽 어깨에 발을 올려놓었다.
“좌측으로 가!! 후퇴!!! 후퇴한다!!”
에밋이 외쳤다.
“우리 포병은 뭐 하는 거야! 티거는 잘 싸웠는데!!! 설마 우리가 지고 있어?”
쿠과광!!! 쉬이잇
그 다음 순간, 에밋의 머리 위로 무언가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한 폭발을 우측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아악!!”
한스가 외쳤다.
“이제 우측으로!!! 이제 우측으로!!!”
마크 전차가 끼이이익거리며 한 쪽 무한궤도만 움직였다. 그리고는 거대한 차체를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천천히 8m 정도 나아갔다.
쿠과광!!! 쉬잇
아무 엄폐물도 없는 무인지대에서 마크 전차는 후면 장갑이 프랑스 야포들에게 노출된 상태로 느린 속도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한스의 1호 전차뿐 아니라 요나스의 2호 마크 전차, 바그너 상병의 3호 전차도 용케 소식을 들었는지 천천히 끼이익거리며 후퇴했다.
“빌어먹을!! 빨리!!빨리!!”
그 때 독일군도 아군의 후퇴를 돕기 위해 일제 포격을 시작했다.
쉬이익 콰과광!! 슈욱 콰과광!!!
독일 포병이 쓴 포탄이 한스의 전차로부터 불과 3m 거리에 떨어졌다. 다행히 불발이었다!
한스가 외쳤다.
“젠장!!오인포격만 하지마!! 이 얼간이 자식들!!”
포병들이 퍼붓는 포격소리는 마치 둥둥거리는 심장 소리와도 비슷했다. 병사들은 그 포격소리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심장이 쿵쿵 뛰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무인지대 위로는 독일과 영국군의 전투기까지 날라다녔다. 그 전투기들은 뒤로 꼬불꼬불한 연기를 뿜어대며 죽음이 펼쳐지는 무인지대 위에서 나비가 춤을 추듯 비행하였다. 곡예를 하던 그 두 전투기는 서로 날개를 부딪쳐 박살난 상태로 폭발했다.
쿠과광!!!콰광!!!
뱅글뱅글 회전하는 박살난 두 비행기는, 시꺼먼 연기를 꼬불꼬불 하늘에 그리며 무인지대로 추락하였다. 그 전투기들의 잔해는 무인지대에 추락한 이후에도 시꺼먼 연기를 사방으로 뿜어댔다.
그 때 하늘에 영국군의 정찰 비행기가 떠올랐다. 언제나 저 놈이 하늘에 뜨면 적군의 포격이 시작되고는 했었기에, 독일 병사들은 그 무엇보다 저 정찰 비행기를 증오했다. 독일 포병들은 쉬지 않고 대공포를 발사했다.
퍼엉! 쉬이익 쿠과광!!
정찰 비행기는 대공포가 절대 자신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기교도 부리지 않고 느릿느릿 비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개의 포탄은 비행기를 전혀 맞추지 못하고 빗나갔다. 그 때!
쿠과광!!콰광!!!
놀랍게도 한 포병의 대공포가 영국놈들의 비행기를 맞추었다! 비행기는 한쪽 날개가 고장난 상태로 뱅글뱅글 돌며 시꺼먼 연기를 꽈배기처럼 하늘에 그리며 추락했다. 독일 포병들이 환호했다.
“와오!! 내가 맞췄어!!”
독일 포병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하며 짜릿해했다.
“폴 넌 철십자 훈장을 받아야 해!”
잠시 뒤, 하늘에는 양날개에 철십자 무늬가 그려져 있는 거대한 독일의 폭격기, 체펠린 슈타켄이 나타났다. 한 독일 포병이 외쳤다.
“저..저거 진짜야?”
“엄청 비싸서 20대도 못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체펠린 슈타켄의 독일 조종사는 위험을 감수하고, 고도를 낮추고 프랑스 포병들 쪽으로 비행했다. 그리고는 폭탄을 투하하고는 다시 고도을 높였다.
쿠과광!!!콰과광!!!
엄청난 폭발 소리가 들려왔지만, 체펠린 슈타켄의 조종사는 자신의 포격이 프랑스 포병에게 타격을 주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뭔가 예감이 좋다고 느꼈다. 일단은 놈들의 대공포가 다시 자신을 노릴 수 있기에 고도를 높이는 일에 집중하였다.
한스는 프랑스 포병의 포격이 아까보다 줄어들었음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멍청한 독일 포병의 포격은 계속 되었다.
쉬이익 콰과광!!
슈욱 콰과광!!
헤이든이 외쳤다.
“빌어먹게도 정확하게 쏘네 이 자식들이!!”
거너는 계속해서 정신나간 듯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으아아아!!”
그렇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용케 명령대로 변속기를 조절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포탄 파편이 사방에 튀어서 해치를 계속 닫아두었기 때문에 전차 안은 일산화탄소로 가득했다. 암모늄 알약이 구급상자 안에 있을 테지만 누구도 그걸 찾아서 먹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시뻘건 양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 때 한스는 앞에 소총에 걸려 있는 독일군 철모를 보았다.
“정지!! 정지해!!”
한스는 마크 전차를 열고 뛰쳐나갔다. 루이스가 외쳤다.
“전차장님!!!나가면 안됩니다!!!”
포탄 파편이 한스의 뺨을 스쳤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전진하면 살아있는 부상병을 깔아뭉갤지도 모른다.
한스가 재빨리 철모가 걸려있던 참호 구덩이 안에 뛰어들었다. 그 안에는 한 이등병이 다리가 부상당한채로 쓰러져 있었다. 한스는 이등병을 질질 끌고 구덩이에서 끌어냈다. 다행히 마크 전차가 엄폐물이 되어주고 있었다.
“으아아!!”
한스는 온 힘을 다해 부상병을 전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자신도 재빨리 들어가서 해치를 닫았다.
“출발해!!전진!!”
그렇게 한스의 1호 마크 전차, 티거는 체펠린 슈타켄 덕분에 무사히 복귀할 수 있었다. 요나스의 2호 전차, 바그너 상병의 3호 전차도 무사했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실패였다. 요나스가 말했다.
“우리 잘 싸웠잖아! 근데 왜 후퇴한거야?”
루이스가 말했다.
“작전도 완벽했고 우린 정말 잘 했습니다. 왜 패배한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니클라스가 말했다.
“운도 기가 막히게 좋았지. 하지만 우린 졌어.”
에밋이 분개해서 말했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길 수 있었습니다! 르노 전차 서너 대 정도야 더 격파할 수 있었습니다!”
피셔 하사가 말했다.
“이보게. 놈들의 르노 전차 수십 대, 그리고 생샤몽까지 몰려오고 있었네. 우리에게 승산은 없었네.”
거너가 말했다.
“마...말도 안돼...우리는 A7V를 고작 이십 대 생산했는데···놈들은 우리가 공격하는 것을 알고 미리 그 쪽에 전력을 집중해 놓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누군가 우리 작전을 유출한 겁니다!”
한스가 말했다.
“놈들은 르노 전차를 수천 대 생산했네. 딱히 그 지역에 미리 집중해 놓은 것이 아닐세.”
거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수천 대요?”
“우...우리 A7V가 20대이고 도중에 기동불가 된 것만 여러 대인데···.”
병사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날 밤, 병사들은 무인지대에 가서 부상병을 데려오는 작업을 하고, 철조망을 보수했다. 신병들은 3중 철조망을 만드는 일에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에밋, 거너, 헤이든, 루이스가 철조망 보수 작업을 마치고 돌처럼 굳은 순무빵을 칼로 부수기 시작했다. 루이스가 말했다.
“근접전에 무기 없으면 이걸 무기로 써도 되겠군.”
에밋이 말했다.
“젠장...이번엔 노획도 못했어..”
굶주린 독일 병사들에게는 공격 명령이 떨어졌을 때 적군의 통조림을 노획할 수 있는 것만한 포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적군의 음식이나 담배를 노획해 올 기회도 없었다. 그 때 피셔 하사가 다가오더니, 에밋, 거너, 헤이든, 루이스에게 담배를 한 개피씩 나눠주었다.
“노획하는 것도 기술이지.”
“가...감사합니다.”
거너는 심심해서 옆에 놓여있던 군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 신문에는 피셔 하사의 사진이 크게 인쇄되어 있었고, 헤드라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슈톰트루퍼는 언제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며 전투에 임한다.”
거너가 피셔 하사의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저···.하사님은 매번 돌격하는 것이 두렵지 않으신가요?”
피셔 하사가 눈을 크게 뜨고 거너를 바라보았다.
“두렵다고?”
“저..저는 매번 전차를 탈 때마다 두렵습니다..”
“당연히 나도 두렵지.”
“그..그런데 어떻게 매번 전투를 합니까?”
“이게 내 일이니 할 수 없지. 하기 싫으면 뭐 튈 생각인가?”
피셔 하사는 돌덩이 같은 순무빵을 칼로 숭덩숭덩 베어 먹고는 말했다.
“나도 첫 전투 때는 오줌을 지렸어. 두 번째 전투때도 지렸을 거야. 하지만 나는 매 전투마다 다짐했지. 꼭 오늘 전투에서 살아남아서 더럽게 맛없는 군용빵을 한 번만 더 먹겠다고 말이야. 돌격대가 한 번 전투를 치루면 절반 정도만 다음 날 군용빵을 먹는다네. 그러다보니 여태 살아남았지.”
“그...그렇게 여러 번 싸우면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 입니까?”
“뭔 소리! 아직도 두려워! 그래도 살았으니 이렇게 담배도 빨고 순무빵도 먹지 않는가?”
피셔 하사가 맛있게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말했다.
“프랑스 놈들 담배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드는군!”
이 때, 한스는 멘탈을 추스리고 있었다.
‘놈들의 전차가 많다고 무조건 패하리란 보장은 없다. 분명 무언가 방법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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