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 탈출 준비
독립군에 숨어있던 KGB스파이 세 명이 중국 잡화점 1층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황 범은 사무실에서 나와서 큰 자물쇠로 1층 후문의 문을 잠갔다.
스파이 세 명은 들어올 땐 보이지 않던 황 범이 문을 잠그는 것을 보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누구지? 저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인데······.”
“덩치가 매우 크군. 새로운 독립군인가.”
“설마 드미트리가 우릴 죽이려고 보낸 것은 아니겠지.”
황 범은 세 명이 속닥거리며 불안해 하는 모습을 봤다.
그러자 황 범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반갑습니다. 저는 드미트리 중령이 보내서 온 사람입니다. 저도 여러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황 범의 이야기를 듣자 세 명의 스파이들은 마음을 놓으며 같이 웃었다.
“하하하하.”
“사실 좀 놀랬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해서. 그런데 당신도 정 찬홍 선배가 불러서 온 것입니까?”
“맞소.”
“이상하다······. 갑자기 찬홍 선배가 왜 우리들을 부른 거지?”
“그러게······. 좀 이상하긴 해. 더군다나 우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만 보냈다는 게 좀······.”
“설마 우리 신원을 알고······.”
황 범은 다시 불안해하는 세 명의 스파이들을 보며 말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사실 정 찬홍 동지도 드미트리 중령 편입니다.”
“네? 정말입니까? 헐!”
“그동안 그렇게 조국을 위하는 척 하더니 알고 보니 스파이였다니······.”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더니 대단하군. 정말.”
황 범은 스파이 세 명을 보며 속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있는 나라 팔아먹는 더러운 것들. 지들 드러운 건 생각 안하고 남 욕하고 있네. 에이 더러워서 못 봐주겠네. 안 되겠다. 그냥 빨리 처리해야지.’
방금 전까지 웃으며 친절하게 말하던 황 범은 무표정한 얼굴로 세 명의 스파이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세 명은 움찔하며 경계를 했다.
“갑자기 왜 이러시오?”
“무슨 전할 말이 있어서 우릴 부른 거 같은데 그런데 표정이 왜 그렇게 ······.”
황 범은 아무 말 안하고 그냥 세 명의 뺨을 빠르게 한 대씩 쳤다.
그러자 스파이 세 명은 1층 바닥에 나뒹굴었다.
황 범은 바닥에 누워서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스파이들을 한 놈씩 번쩍 들어서 1층 난간에서 지하실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그러자 지하실 바닥에서 쿵! 하는 충격음과 함께 신음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동료가 지하실로 던져지는 것을 본 스파이 한 명은 기겁을 하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황 범 앞에서는 그저 도망쳐봐야 소용없는 쥐새끼 같은 존재였다.
황 범은 나머지 한 놈도 덥석 잡고는 양팔로 높이 들어서 지하실 바닥으로 던졌다.
세 명을 모두 던진 황 범은 서둘러 지하실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리곤 한 놈씩 손목과 발목에 플라스틱 타이를 묶었다.
“이제부턴 이 몸이 너희랑 잠깐 놀아줄 거다. 기대해도 좋아.”
“······!!”
황 범은 번쩍이는 안광으로 어두운 지하실에서 세 명의 스파이들을 천천히 노려봤다.
마치 지하에 있는 호랑이 굴에 힘없는 사람 셋이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
KGB위원장에게 황 범과 독립군들 모두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마크심 중령은 KGB에 소속 된 스페츠나츠 특수부대의 지휘관이다.
1950년에 창설된 러시아의 스페츠나츠 특수부대는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다.
스페츠나츠는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친 뒤 스페츠나츠 전문 훈련기관에서 훈련을 하고 ‘스페츠나츠 여단’에 배속된다.
스페츠나츠에 소속된 군인들은 모두 최정예 군인들이다.
그들은 다양한 극한의 훈련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삼보, 시스테마 등 격투 훈련부터 방탄복을 입은 채 바로 앞에서 실제 총알을 맞고 견디는 훈련도 한다.
물론 이들은 인질 구출작전, 극한의 서바이벌 연습, 죄수 심문하는 방법 등도 훈련을 한다.
그리고 이들은 필요에 따라서 다양한 임무를 하는데 그 중의 비중 있는 역할은 바로 국방부, 내무부, KGB에 예속되어 활동하는 임무이다.
즉 스페츠나츠 특수부대는 국가기관의 군사적전을 실행하는 역할을 한다.
KGB를 비롯해서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들은 각자 그 기관에서 관리하는 스페츠나츠를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가의 안정에 위험이 되는 타 국가의 정치인이나 특정 테러 단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KGB나 러시아의 기관에서 테러주요 인물이나 단체를 제거 하고 싶다면 그들이 관리하는 스페츠나츠 특수부대원들을 작전에 투입시키는 것이다.
***
1985. 12. 27.
10:00. 금요일.
모스코바. 러시아.
루반카 KGB 본청사.
마크심 중령은 KGB위원장의 명령을 받은 후 그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위원장실의 문을 열고 나오면 처음 보이는 것은 문 양 옆에 있던 비서 두 명이었다.
비서들은 간단한 전화 응대 업무와 위원장의 스케줄 조정 업무를 담당하던 사람들이었다.
마크심 중령은 큰 책상 앞에 앉아서 업무 중이던 비서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전화 좀 써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친절히 알려주었다.
“이 전화기를 쓰시면 됩니다.”
“아, 감사합니다.”
마크심 중령은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KGB 본청사의 전화기는 모두 도청이 불가능한 전화기들이었다.
마크심이 들고 있던 수화기에서 신호대기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누군가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예! 중령님.”
“어! 예고르. 너와 나 포함해서 정예요원 15명으로 한 팀 짜도록 해. 나도 곧 갈 테니까 모두들 부대 안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네! 중령님!”
간단하게 지시만 내린 마크심 중령은 KGB 본청사를 나와서 그가 속해있던 부대로 복귀하였다.
***
“대장님. 결국 최 종훈이······.”
“그래. 그렇다니까.”
정 찬홍 의병은 박 준호 대장의 연락을 받고 서둘러 대장의 집에 찾아왔다.
그리곤 김 만호 스파이의 이야기가 녹음 된 테이프를 듣곤 당황했다.
“와······.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나도 솔직히 이럴 줄은 몰랐다.”
“저는 최 종훈이 그녀석이 진짜 와······. 진짜 그 녀석이 그럴 줄은 몰랐어요. 정말 거짓말을 감쪽같이 했거든요.”
“그래. 그렇게 거짓말을 잘하니까 스파이겠지 들키면 스파이겠냐.”
“그건 그렇죠······. 그럼 이제부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단 황 범이 세단카에 있는 중국인 잡화점에서 스파이들을 처리 하고 그리고 처리가 완료 되면 우리한테 전화를 줄 거야. 그럼 우린 세단카로 가서 황 범을 태우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뜨는거야.”
“그럼 제가 해야 할 일은요.”
“일단 자네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요원들 추슬러서 트럭 두 대를 가지고 다시 이 곳으로 와.”
“네. 알겠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 독립군들 운영비랑 무기들 그리고 간단한 서류들 챙겨서 다 같이 뜰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아참! 대장님. 혹시 우리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있을까요?”
“행선지는······. 자네를 못믿어서가 아니라 혹시나 일이 틀어질 수 있으니 이따 출발하면서 이야기 하겠네.”
“네 알겠습니다.”
“일단 자네는 서둘러서 남아있는 독립군들을 소집해.”
“넵!”
***
황 범은 지하실 바닥에 스파이 세 명을 나란히 눕혔다.
한 명은 기절한 상태로 아직도 눈을 감고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은 황 범을 보며 벌벌 떨고 있었다.
“어이. 일어나. 여기가 너네집 안방이야?”
황 범은 기절해있던 한 명을 깨웠다.
그러자 눈을 뜬 스파이는 소리를 질렀다.
“끄아악!! 왜 그러십니까! 같은 스파이들 끼리 왜 그러십니까!”
황 범은 그런 그를 보자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그러십니까? 이 놈이 이거 뒤질라고 확 그냥!”
황 범은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소리를 지르던 스파이가 입을 꾹 다물고 조용해졌다.
“어이 이 개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아. 이 시골 논밭에서 떠돌아다니는 떠돌이 개의 똥꼬에 붙어있는 똥딱지 같은 색히들아. 이제부터 내 말 잘들어. 알았어?”
“예. 예······.”
“이 색히들이 진짜 대답 똑바로 안해?”
“죄! 죄송합니다!”
“이제부턴 내가 묻는 말에 솔직히만 말하면 네놈들 살려줄 거야.”
“네······.”
“야. 너희들 저쪽에 뭐있는지 봐봐. 저 놈 보이지?”
황 범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얼굴이 피떡이 된 김 만호 스파이가 누워있었다.
저 넘 누군지 알아?
“예, 김 만호 의병입니다.”
“뭐? 의병? 의병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저 넘은 스파이야. 스파이. 나한테 걸린 스파이. 알아들어?”
“예!”
“그리고 너네도 나한테 걸린 스파이고. 맞지?”
“예! 맞습니다!”
“어이, 스파이들. 지금 저 김 만호 놈은 보다시피 죽었어. 왜냐면 내가 묻는 말에 제대로 답을 안했거든.”
“네······. 네······.”
“너희들도 죽기 싫으면 똑바로 대답해.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황 범은 세 명이 오기 전에 김 만호를 죽였다.
왜냐면 어차피 스파이들은 다 같이 죽일 생각이었다.
조국을 배신한 놈들을 살려둬선 안된다는게 황 범의 생각이었다.
황 범의 계획은 이랬다.
아직 멀쩡한 세 명의 스파이에게 좀 더 정보를 얻은 후 나머지 셋도 죽이려고 했다.
그 후 네 구의 시체들을 1층 잡화점에 두 구, 지하실에도 한 구, 1층 사무실에도 한 구 이렇게 배치시킬 생각이었다.
그 후에 점포 안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뒤 달아낼 생각이었다.
황 범은 일단 모든 스파이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독립군 내의 스파이 인원이 몇 명이야?”
“그게 그러니까······.”
“허허, 이것들이 빨리 대답안해?”
“아! 아뇨. 지금 생각을 좀······.”
“자 이제부턴 선착순으로 한다. 제일 나중에 말하는 놈이 나한테 한 대씩 맞는 거야. 너네 나한테 뺨 맞아봤지.”
“네! 네!”
“주먹으로 맞으면 너희 죽는다.”
“예!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다시 선착순으로 대답한다. 현재 독립군에 숨어있는 스파이들이 몇 명이야?”
“저! 저요!”
“그래. 너부터 말해봐.”
“열 명 입니다.”
“열 명?”
“네. 맞습니다.”
“어이. 두 번째로 손든 놈. 너는 몇 명이라고 알고 있어?”
“저도 열 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야? 너네 둘이 일부로 똑같이 대답하는 건 아니지?”
“예! 당연히 아닙니다!”
“좋아 마지막으로 너. 네가 아는 인원은 몇 명이야?”
“저는 여섯명인줄 알았는데요.”
“뭐야 너는. 너 스파이 된 지 얼마나 됐어?”
“저 이제 갓 1년 차라.”
“에효. 스파이 1년차 참 자랑이다. 알았어. 그럼 너희 둘. 왜 열명인지 그 열명에 대해 아는 사람들 이름 불러봐.”
“그······. 그게.”
“어쭈? 맞아 죽고 싶어?”
“아! 아뇨!”
“아! 저부터 말할게요.”
“그래 두 번째 말했던 너. 너부터 말해봐.”
“일단 김 만호 그리고 또······.”
황 범은 드미트리 중령이 말해준 열 명의 명단과 그의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스파이들이 말하는 이름들을 비교했다.
그런데 역시, 열 명의 이름이 정확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황 범은 당황했다.
‘대체 이 확인 안되는 두 명은 뭐지? 드미트리가 일부로 뿌린 떡밥같은 건가? 아무리 모스코바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스파이들끼리도 모르는 이 두 명은 뭘까?’
황 범은 미심쩍은 느낌이었지만 일단 서둘러서 박 준호 대장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좋다. 수고했어. 이젠 너희들 갈길로 각자 가도 좋다.”
“정말입니까?”
“그래. 너희들은 모두 내 시험에 통과했어. 모두들 아주 정직하게 말하는군.”
“그럼요! 우리가 얼마나 정직한데요.”
“하하하하. 너희가 정직? 미치겠군. 지금 내 앞에서 말하듯 KGB앞에서도 그렇게 술술 불었어?”
“아, 아뇨. 그건······.”
“됐고. 이제부턴 내가 너희들을 각자 가야할 길로 보내줄거야.”
“그······.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어디냐고? 그거야 당연히 이제부터 너희가 갈 길은, 황천길이지.”
“에?”
“너희 모두 조국을 배신하고 동료를 배신한 죄로 이 황 범 님 께서 황천길로 보내줄거야. 즐거운 저승길로 가는 여행 되도록 해.”
황 범은 미리 준비한 몽둥이를 들고 서서히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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