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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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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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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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이 되어볼까 합니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UCLA에서 기숙사 입주 기간인 '무브 인 데이(Move in day)'가 시작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입생들로 인해 UCLA가 북적거렸다.

가족, 친지들이 입학생들과 함께 앞으로 머물게 될 기숙사를 구경하거나 학교 투어에 나서는 모습을 캠퍼스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류지호는 의무적으로 기숙사에서 지내야 하는 1학년이 아니다.

따라서 기숙사 입주로 골치를 싸맬 필요가 없었다.

무브 인 데이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강의가 시작되기 전 신입생을 위한 행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캠퍼스 곳곳에서 신입생들의 웃음소리 끊이질 않았다.

반면에 고학년으로 올라가는 재학생들은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인지, 잔뜩 인상을 구기며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류지호는 2학년이 되었지만 전공강의를 신청할 수 없었다.

2학년 마지막 쿼터에서 심사를 통과해야 3학년부터 영화전공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수 전공입문인 영화사, 그 중에서 유럽영화사와 심리학, 미술이해 등 3과목으로 시간표를 짰다.

UCLA의 교수 숫자는 상당히 많다.

그 만큼 강의도 많을 수밖에 없다.

몇 개 되지 않은 과목과 교수를 두고, 어떻게든 시간표를 짜려고 노력하는 한국 대학생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물론 UCLA에서 인기가 많은 강의는 순식간에 정원이 차버린다.

그렇다고 실망하는 재학생들은 많지 않다.

UCLA는 강의의 숫자뿐만 아니라 좋은 강의도 많으니까.

특출 난 강의 몇 개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교수와 강의가 높은 수준으로 고른 편이라 재학생들은 자신에 맞는 강의를 미리 정해놓았다가 신청해서 들었다.

학교로 돌아온 류지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이번 학기도 잘 해보자.’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을 빼고는 2학년이 되어서도 류지호의 일상은 변함이 없다.

새벽에 기상해 차를 몰고 UCLA로 등교한다.

여자 친구 낸시와 함께 UCLA 캠퍼스를 가볍게 조깅하고,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식사 시간을 이용해 각종 신문, 잡지를 읽는다.

그로 인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식사 시간이 꽤 긴 편이다.

아침식사를 오랜 시간 하는 걸 잘 아는 친구들은 류지호를 가급적 방해하지 않았다.

강의실과 도서관 그리고 식당을 순회하다보면 어느새 해가 진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아파트로 돌아가기 전까지 낸시와 함께 도서관이나 기숙사 로비 혹은 스터디 룸 등에서 공부를 한다.

낸시를 기숙사에 바래다주고, 웨스트우드 아파트로 돌아와 영화를 틀어놓고 잠을 취한다.

꿈속에서라도 영화공부를 하려는 듯이.

주말이 되면 지인들의 파티나 낸시와 데이트를 한다.

때론 LA 시내로 나가 태권도를 수련하고 돌아온다.

그렇게 2주 정도가 흐른 시점에서 류지호의 일상에 균열이 발생했다.


“Jay, 혹시 시간 내줄 수 있어?”

“무슨 일인데?”

“내가 이번에 단편영화를 찍거든. 네가 합류했으면 좋겠어.”

“내 역할이 뭔데?”

“촬영을 해 주었으면 해.”

“며칠 촬영할 생각이지?”

“3일.”

"스크립트 줘봐. 읽어보고 결정할게.“

“좋았어.”


작년 맥도웰 교수의 마지막 수업에서 류지호가 찍은 단편영화를 상영했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인물이 류지호인 것을 알게 된 전공생들이 단편영화 참여를 부탁하는 경우가 생겼다.

류지호는 대부분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자신과 다른 시각을 가진 친구들과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3학년에 올라가면 내 작품 찍기도 바쁠 테니까.’


올 초까지는 자신의 영화를 찍기 바빴다.

단편영화는 기획부터 최종적으로 프린트를 뽑기까지 감독이 거의 전부를 책임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류지호는 강의와 학교생활에 집중할 수 없었다.

스태프로 참여하게 되면 다르다.

모든 걸 책임지며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다.

어떤 4학년은 엉뚱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너의 팀 모두가 합류해줘.”

“나의 팀?”

“로이, 아담스, 낸시, 쉘라, 더스틴, 쉐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너는 무조건!”


같은 친구들과 연속해서 4편의 단편영화 작업을 하다 보니, 영화과 학생들 사이에서 하나의 팀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게다가 친구들이 ‘캡틴’이라고 부르는 농담도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 친구들은 내 팀이 아니야.”

“네가 캡틴인 것은 틀림없잖아.”

“한 번 물어볼게.”

“땡큐. 브루인.”


친구들은 단편작업을 함께 하면서 류지호에게 많은 것들을 배웠다.

실기, 실무 그리고 현장에서의 자세 등.

누군가는 류지호가 대단해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냐며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 4학년 졸업작품 전부를 로이 캠블과 아담스 영이 나눠서 촬영하는 상황이다.

두 사람은 류지호의 팀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류지호와 어울리면서 촬영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이 사실이다.

더스틴과 쉐인 역시 앞 다투어 합류시키고 싶어 하는 스태프 일 순위다.

영화과 교수들도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따라서 류지호 팀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영화전공 심사는 보나마나 합격이다.


“자네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를 소유한 투자회사 오너인 줄 몰랐어.”

“그 사실이 학업을 이어가는데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출석과 과제만 잘 해 오게. B학점은 보장해줄 테니까.”


유럽영화사 교수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주인인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줄 알았다.


“대신 내 수업 말고 더 다양한 교양수업을 들어보게.”

“......”

“영화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잘하기 위해서.”


멕도웰 교수와 똑같은 충고다.

아마도 그의 수업 중에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영향인 듯 싶다.

그 내용은 대략 이랬다.


“유럽에서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고, 추앙하는 것은 성급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그는 장래가 기대되는 뛰어난 예술가임에는 틀림없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교수님.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다르다면 얼마든지 반박을 해도 좋아요.”

“그는 충분히 추앙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그의 지금까지의 영화들을 보십시오. <아빠는 출장 중>, <집시의 시간>만 놓고 봐도 그는 리얼리즘과 영화의 본질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고 있습니다. 그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충분히 누벨바그 감독들과 비교될 만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페데리코 펠리니를 잇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옹졸한 민족주의 사고와 무정부주의자인 척하는 철학은 충분히 모순되지 않을까요?”

“그를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는 영화감독이기도 하고, 락 밴드의 멤버이며 정치운동가이긴 합니다만.”


락 밴드라는 말에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교수가 류지호를 시험하는 듯한 질문을 던졌다.


“일부에서는 그의 영화에 대해 리얼리즘을 화려한 수사학으로 가린 재미없는 서커스라 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을 시기해서 그럴 겁니다. 젊은 나이에 거장 소리를 듣는 것이 배가 아픈 모양이지요. 리얼리즘이라 함은 현실의 문제인식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습니까?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은 저 유명한 제작자 데이브 푸트넘의 <집시의 시간>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깐 감독입니다. 그때 그가 그랬다고 하죠. 난 할리우드에서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그리고 아카데미상을 받을 생각도 없다.”

“오오!”


학생들의 탄성이 터졌다.

마지막 말이 유럽의 예술영화감독의 패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안 지나서 에멜 쿠스트리차는 콜럼비아스 영화사 사장 데이브 푸트넘에게 전화를 걸어야만 했습니다. 신문에서 유고의 집시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집시들이 범죄조직에 의해 유럽 전역으로 팔려나가 앵벌이에 동원되고, 매춘에 내몰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는 푸트넘 사장에게 단 두 가지 조건만 받아들인다면 영화를 연출하겠다고 말했죠. 영화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게 될지 나도 모른다. 간섭하지 말고 보채지도 말라.”

“콜럼비아스의 사장 푸트넘은 그걸 수락했고.”


교수가 사실을 확인해 줬다.

영국출신의 데이브 푸트넘은 알란 파커의 <핑크플로이드의 ‘더 월’>과 알랑 조페 감독의 <미션>을 제작한 거물 제작자다.

그런 대단한 인물에게 젊은 에밀 쿠스트리차가 건방을 떤 것이다.


“그리고 에밀은 그의 시나리오 파트너와 함께 집시 마을로 들어가 10개월 동안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합니다.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노래를 배우고, 아픔을 느끼고, 낭만을 함께 공유했습니다. 다시 문명세계로 나와서는 서유럽의 폭력조직에 대한 걸 조사했죠. 그리고 그 모든 걸 영화에 담았습니다. 그는 유랑하는 민족의 애환, 신비주의, 낭만, 폭력보다 더 한 학대를 받는 것 등을 리얼리즘과 일종의 마술적이고 의미심장한 영상언어로 절묘하게 펼쳐냈습니다.”


류지호는 잠시 말을 끊으며 학생들의 주목을 이끌었다.

그리고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말하죠. 사라져가는 저 민족의 현실을 보라.”

“그러니까 현실의 문제의식을 기반에 두고, 그걸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선동영화로 만든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냈다고 말하고 싶은 거죠?”

“그렇습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어떤 소수 민족은 지금 이 시간에 사라져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우리의 탐욕과도 맞닿아있습니다. 마치 서유럽의 폭력조직처럼 말입니다. 역사 속에서 전쟁과 폭력으로 강제로 사라져야 했던 민족의 사례도 무수히 많고 말입니다. 이 강의실에 앉아있는 어떤 학생들의 민족에게도 해당됩니다. 저는 에밀 쿠스트리차가가 자신의 조국에 살고 있는 한 민족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예술적인 기교에만 매몰되어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류지호는 강의시간 내내 <집시의 시간>을 두고 교수와 토론을 벌였다.

사이사이 영화를 본 학생들이 토론에 참여했다.

공산주의가 붕괴하며 혼돈스러운 발칸 반도의 상황 등으로 주제가 확장되기도 했다.

류지호는 영화에 대한 분석과 비평뿐만 아니라, 현재 유럽과 동구권이 처한 상황에 대한 식견을 잔잔하게 풀어냈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은 1995년에 더욱 화려한 기교와 철학적 깊이를 보여주게 될 <언더그라운드>를 세상에 내놓는다.

이 감독의 영화들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언더그라운드>로 여러 평론가와 감독들에게 비난과 복잡한 논쟁이 벌어지게 되고, 이후 은퇴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몇 년 후 다시 복귀하지만.

어쨌든 류지호는 영화 말고 인간 에밀 쿠스트리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유고의 악명 높은 학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옹호하질 않나 모두가 옳지 않다고 여기는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독재자 볼로댜 부친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한 과목 부담 덜었네.....’


류지호는 맥도웰 교수에 이어 유럽영화사 교수의 눈에 들게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사를 소유한 영 앤 리치(Young and rich)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가 작업한 단편영화의 높은 수준과 토론에서 보여준 뚜렷한 영화관 때문인지.

알 순 없다.

다만 교수들이 류지호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어쨌든 부담 없이 단편영화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할 수가 있게 됐다.

한 과목의 부담을 던 류지호는 단편영화에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류지호는 자신의 팀으로 불리는 친구들과 함께 여러 단편영화에 참여했다.


‘이런 방향으로 가면 친구들의 미래가······.’


기업에서는 바로 일에 적응하고 해낼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과거와 달리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가르치는 걸 원치 않는다.

할리우드라고 다르지 않다.

어쩌면 더 잣대가 엄격할 수도 있다.

이론과 실무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류지호의 팀이라 불리는 친구들은 인재다.

류지호가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시켰기 때문에 웬만한 현장에 투입해도 곧잘 해낼 수가 있다.

그들 모두가 할리우드에서 일을 하게 될지 누구도 알 순 없다.

그럼에도 대학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낸다면 졸업 시즌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될지도 몰랐다.

류지호가 보기에 더스틴과 쉘라는 충분히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그 둘과 친분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일종에 투자 개념이다.

사람에 대한.

반대로 친구들 역시 류지호와 무조건 친분을 유지해야 했다.

트라이-스텔라와 파라맥스의 오너는 굉장한 인맥이니까.

류지호와 낸시가 나무 그늘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낸시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책을 읽고 있는데, 쉐인 에이커가 찾아왔다.


“여기 있었구나? 한참을 찾아다녔잖아.”

“비퍼를 하지 그랬어?

“아차, 그랬지?”


낸시가 류지호가 보고 있던 책을 낚아채며 말했다.


“그냥 셀룰러 폰 사지 그래?”


쉐인 역시 류지호를 타박했다.


“맞아. 부자인 놈이 의외의 구석에서 검소하단 말이야.”


1989년에 최초의 플립 폰인 모터로라 마이크로택이 출시되었다.

기존의 투박한 무선전화기 모양에서 일대 혁명 같은 디자인으로 휴대전화에 있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무게 384g에 출고 가격은 2,495달러.

폴더폰인 스타택이 나오려면 5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현재는 통신요금이 무척 비싸기 때문에 쓰고 싶어도 못 쓴다.

참고로 현재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모터로라(Motorora)와 세이블 모바일(Sable mobile)이 나눠 지배하고 있다.


“무슨 일로 날 찾았어?”


류지호가 몸을 일으켰다.


“혹시, 스테디캠 다룰 줄 알아?”


디지털 카메라용 짐벌은 꽤 사용해 본 적이 있다.

이전 삶에서.

영화용 스테디캠을 직접 다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촬영팀도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연출자가 해봤을 리가 없다.


“스테디캠은 뭐 하게?”

“내 단편에서 써보려고.”

“비디오로 찍을 거야?”

“아니. 필름. 16mm.”


류지호로 인해 친구들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 같다.

전통적으로 카메라가 움직이며 촬영할 경우 기차기 움직이는 것처럼 바닥에 레일을 깔고 그 위에 카메라를 올려서 찍는다.

이렇게 할 경우 레일을 깔 수 있는 곳에서만 촬영이 가능하고, 레일이 화면에 나오면 안 되기 때문에 화면 구도의 제약이 생긴다.

그래서 고안된 장비가 스테디캠(Steadicam)이다.

레일을 쓰지 않고 촬영자가 짐벌(gimbal) 장치 등을 이용해 카메라를 몸에 부착 한 후에 흔들림이 카메라에 전달하지 않고 촬영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레일에서 해방된 헨드헨들 기법에 흔들림 없이 깔끔한 화면을 만들 수 있는 장비다.

전문장비다.

비싸다.

전문 오퍼레이터가 운용한다.


“스테디캠은 촬영분야에서도 독립된 전문분야야.”

“알아.”

“로이는 뭐래?”

“안 다뤄봤대. 4학년들도 직접 스테디캠을 다뤄본 사람이 없더라. 너는 해봤을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누가?”

“로이가.”


친구들 기준을 너무 높여놓은 모양이다.


“너도 안 다뤄봤어?”

“홈비디오를 얹어서 찍으면 어찌어찌 해볼 수는 있을 것 같긴 한데. 필름 카메라는 무리지 싶다.”

“......!”

“롱테이크야?”

“아니. 1분 30초 정도.”

“인마, 그게 롱테이크지.”

“너는 핸드헬드로 4분도 찍어봤잖아.”


류지호는 3학년 단편을 찍다가 허리 나가는 줄 알았다.


“내가 알기로 스테디캠에 필름 카메라 올려서 찍으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 무게중심 잡은 것 하고, 밸런스 잡으려면 숙련되고 경험이 많아야 할 거야.”

“그 정도야?”

“나와 로이 그리고 4학년생이 함께 하면 어찌어찌 해볼 수 있겠지. 하지만 촬영에 들어가기 전 준비시간도 오래 걸리고, 리허설 몇 번 하면 금방 지쳐서 나가떨어질 걸.”

“학교가 가지고 있는 제일 가벼운 카메라를 써도?”

“아리플렉스 ST가 한 44파운드(20kg) 하지? 100피트 매거진에 베스트, 암, 무게추까지 대충 50파운드 잡아야 하려나....? 암튼, 무게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밸런스 잡는 것하고...”


벌떡.

류지호가 일어섰다.


“안되겠다. 가자!”

“어딜?”

“로이와 촬영 전공하는 애들 만나러.”

“걔들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장비 보관실에서 게리와 놀고 있겠지.”


류지호의 말이 맞았다.

로이를 포함해 TV·영화 촬영전공 학생들이 장비 보관실에 모여서 관리인 게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헤이.”


인사를 나누며 류지호가 학생들에 한 소리 했다.


“게리 좀 그만 괴롭혀.”

“오오. 구원자가 강림했도다!”


게리가 과장되고 익살스럽게 외쳤다.


하하하.


학생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전공생도 아닌 주제에 하도 장비실을 자주 들락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장비를 사용한 후에 완벽하게 정비를 해서 반납하는 것이 류지호다.

때문에 게리를 포함해 장비실 직원들이 무척 좋아했다.

게다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를 소유한 투자회사 오너인 것까지 알게 되어 류지호만 보면 매우 살갑게 대했다.


“쉐인이 단편영화에서 스테디캠을 써보고 싶대. 들었지?”

“응.”

“해보자.”


류지호가 게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게리가 무슨 의미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비실에 스테디캠 있어요?”

“없어. 누가 학생 단편에서 스테디캠을 쓰겠어. 쓴다고 해도 전문가를 고용하지.”

“4학년 촬영 전공 중에서 실습해 본 사람?”


아무도 없다.


“이번 학기에 스테디캠 실습을 하긴 할 것 같은데....”

“고등학생이야?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만 때가 되면 배울래?”

“.......”

“스테디캠을 포함해서 특수장비 실기 교수가 누구지?”


4학년 생 한명이 대답했다.


“로버트 레이먼드.”

“좋아. 레이먼드 교수에게 스테디캠 사용법에 대해 배워보자.”


류지호와 4학년생들이 레이먼드 교수 면담요청을 신청했다.

스테디캠 실기교육을 부탁했지만, 레이먼드 교수는 학생들의 부탁을 거부했다.

따로 교육을 하진 못하고 추후 정식 수업에서 실기를 해보라고 설득했다.


“여러분들의 열의와 열정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왜 그런 촬영기법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런 것들이 발전한 배경 등 이론적인 기반을 충분히 숙지하고 실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자로서는 타당한 충고일지 모른다.

4학년 촬영전공생들이 순순히 물러났다.

류지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차피 4학년들은 실습수업에서 스테디캠을 다루어 볼 기회가 있을 것이기에.

류지호가 가난한 유학생이었다면 교수의 말에 순순히 따랐을 터.

일반적인 학생이 아니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도 있다.

로이가 은근한 어조로 류지호에게 물었다.


“이대로 포기하는 건 아니겠지?”

“당연하지!”

“그럴 줄 알았어.”

“혹시 스테디캠 오퍼레이터 아는 사람 있어?”

“알 리가 없잖아.”


류지호는 그길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로 전화를 걸었다.

지난 인사이동 때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승진한 버나드 휴즈에게 스테디캠 렌탈숍과 오퍼레이터를 소개 받았다.

류지호 팀의 로이와 아담스는 물론 4학년 촬영전공생들까지 데리고 버나드 휴즈가 소개한 렌탈숍으로 달려갔다.

현역 스테디캠 오퍼레이터에게 운용 교육을 받았다.

장비조립과 간단한 운영요령일 뿐이었지만, 류지호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촬영 전공생들처럼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고, 카메라의 무게가 어떻게 분산되며, 카메라의 밸런스를 잡는 공학적 원리 등에 골치를 썩을 이유가 없다.

스테디캠의 발명가 가렛 브라운(Garrett Brown)처럼 새로운 카메라 기종이 나올 때마다 그에 맞는 장비를 개발할 것도 아니고.

위대한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처럼 하면 되니까.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기술을 어떻게 상상력과 결합시켜 혁신적으로 구현할 것인가.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스테디캠을 발명해 영화에 처음 적용한 것은 1975년 가렛 브라운이다.

그런데 스테디캠을 완벽하게 영화에서 구현한 것은 스탠리 큐브릭이었다.

스테디캠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가 영화 <록키>에서 발보아가 아침 운동하는 장면 외에 여러 장면에서 스테디캠을 사용하면서 할리우드 촬영감독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마침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샤이닝>에서 스테디캠은 이렇게 사용하는 거야를 제대로 보여줬다.

몇 년 후에 고언 형제가 <아리조나 유괴사건>에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스테디캠의 사용법을 보여줬다.

장비는 자주 많이 다뤄봐야 숙련된다.

감을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까짓것 하나 사지 뭐.’


류지호는 스테디캠 연습을 위해 구입을 결정했다.

재산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사치를 부리지 않는 류지호다.

정확하게 말하면 돈 쓸데가 없다.

류지호의 부탁을 받은 버나드 휴즈가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스테디캠을 가지고 웨스트우드 사무실을 찾아왔다.


“미스터 류의 장난감은 남다른 데가 있군.”

“장난감이 아니라 실습교재입니다.”

“실컷 가지고 놀다가 싫증나면......”

“UCLA에 기증하려고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GARAM Ventures 이름으로 기증할 생각이다.

재학생이 기증했다가 괜히 뒷말이 나오면 곤란하니까.


“단편영화에 사용할 생각이라고 들었는데.”

“친구 단편을 촬영하고 내 것도 한 편 찍어볼까 고민 중이네요.”

“행운을 비네.”


류지호가 스테디캠 장비를 익스플로러에 싣고 학교로 왔다.

4학년 촬영전공생들에게 스테디캠을 보여줬다.

다들 재미난 장난감을 손에 쥔 어린이처럼 눈빛을 초롱초롱 빛냈다.

설명이 필요 없었다.

곧장 실전 연습에 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비구성을 숙지하고, 각 파트의 조립도 점점 능숙해졌다.

카메라 수평과 밸런스 잡는데 소요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실제 필름을 돌리지 않지만 다양한 동선과 공간에서 카메라 워킹을 연습했다.

사실 전문 오퍼레이터들도 힘든 것이 스테디캠 촬영이다.

요령이 있어야 하는데 영화과 학생들은 패기와 체력으로 극복했다.


“...음.”


4학년 촬영 전공생들의 시뮬레이션을 지켜보며 류지호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무척이나 애매했다.

마치 태권도를 수련할 때 품세동작의 의미와 쓰임을 모르고, 무작정 품세순서를 암기하는 느낌이랄까.


“아!”


류지호는 문제를 깨달았다.

콘티 없이 하는 연습이다.

당연히 아무런 목적성도 의미도 없다.

장비운용을 몸에 붙이는 훈련.

그 이상의 창의적인 운용에 대한 고민이 없다.

이대로는 그저 장비를 가지고 노는 것 밖에 안 된다.

함께 스테디캠을 가지고 노는 친구들을 류지호가 불러 모았다.


“잠깐 모여 봐.”


저마다 입에서 ‘끙’ 신음이 흘러나왔다.

16mm 카메라를 달았다고 하지만 스테디캠을 착용하고 움직이는 것은 체력과 허리 및 그 밖의 관절에 꽤 무리를 준다.

요령까지 부족하니 힘이 부칠 수밖에.


“<샤이닝> 콘티북과 세트 디자인을 구할 수 있을까? 아니면 도서관에서 그와 관련된 자료를 본 사람?”

“콘티북은 TFT자료실에 있는 걸 봤어. 세트 디자인은 모르겠고.”

“필름 보관소에 <샤이닝> 프린트도 있을 걸?”

“좋아. <샤이닝>, <애리조나 유괴사건>, <록키> 콘티북을 구해보자. 필름 보관소에서 영화 상영회 신청도 해 놓고.”

“왜?”

“이제 장비는 충분히 가지고 놀았으니까. 감독들이 그걸 어떤 식으로 영화에 적용했는지 연구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후 쉐인의 단편에서 어떻게 쓸지 연구를 해보자. 물론 내 영화에도.”


로이가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샤이닝>이 스테디캠의 교과서구나.”


교과서까지는 아니어도 다양한 표현방식을 보여준 참고서인 건 맞았다.


“내가 당장 떠오르는 영화는 그 세편뿐이야. 너희들은 생각나는 영화 없어?”

“<광란의 사랑>에서 근사한 롱테이크 씬이 있었던 것 같은데....”

“좋았어. 그런 영화를 보면서 함께 연구해보자.”


나이나 학년은 상관없다.

잘난 놈이 리더다.

류지호는 자연스럽게 영화과 전공생들을 이끌었다.

UCLA, 뉴욕대, USC 등 명문영화과를 보유한 대학의 필름 보관소에는 수많은 영화를 필름으로 보관하고 있다.

때때로 필름 보관소에서 특별상영회도 개최하고, 최소 인원수를 채우면 학생들을 위해 극장에서 상영을 해주기도 했다.

<샤이닝> 상영회에는 3학년들도 상당수 참여했다.

일정 인원을 모아서 신청하지 않으면 필름 상영을 해주지 않았기에 평소 친분이 있는 친구들까지 끌어 모았다.

류지호는 예술대학 극장에서 필름으로 상영한 <샤이닝>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80년대 전에 만들어진 수백 편의 영화필름을 유실한 한국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어쨌든 류지호와 친구들은 스터디 그룹처럼 스테디캠을 파고들었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즐겁게 주말 맞이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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