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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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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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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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화 빛이 보이면 다가간다

DUMMY

641화 빛이 보이면 다가간다


“하하, 이렇게 보게 되어 반갑소이다! 용장이라고 하더니 듣던 대로 듬직하시구려! 내가 바로 이자성이오!”


스스럼없이 말하며 소개하는 모습은 순나라 정왕이라는 말보다는 동네 아저씨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격의가 없었다.


잘 모르는 이가 본다면 호감은 몰라도 경계할 필요는 느끼지 않을 모습이기도 했다.


허나 명나라 병부시랑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운 좋게 사람 부리는 자가 대명을 위협하고 종국에는 번왕 자리를 얻었다? 하, 그 정도로 운이 좋다면 이미 그 자체로 위험하지. 아니라면 더더욱 위험하고.’


착각하지 않도록 자신에게 이른 오삼계는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명나라 병부시랑 오삼계입니다. 지난 전투에서 구원하여 주신 일은 실로 감사한 일이며,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저 당연한 일을 하였을 따름이니 시랑은 개의치 마시구려!”


크게 말하며 손을 젓는 모습은 개의치 말라고 하나 반드시 기억하라는 것으로 보이니 이 모순에 오삼계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신들을 도우면 이번 빚은 없는 걸로 해주겠다는 것으로 들리기도 하니 그는 의아함을 담아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담아두진 않겠다. 하지만 기억하라? 무엇을 위해? 순나라는 대체 무얼 바라고 있는 거지?’


응당 바라는 것이 있으며 원하는 바가 있으니 이리 행동하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바라며 원하는 것은 전에 논하여 들은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오삼계는 영 불편한 마음을 떨치기 어려웠다.


“이는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오. 시랑은 우리를 위하여 시간을 끌어주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우리 순나라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소이다.”

“승리라. 옳은 말이나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멀다? 아아, 그렇지. 여기서 남경까지 길이 그리 짧지는 않지. 그리고 그전에도 당분간은 머물러 기다려야 할 거니 길이 멀다는 말이 실로 맞소이다.”


남경까지 길이 멀다는 말에 더해 머물러야 할 거라는 말에 오삼계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순나라는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마음이 없었다.


‘설욕은 했다. 경험도 얻었다. 영토도 멀쩡하다. 허니 조금이나마 득을 보았을 때 끝내겠다?’


이자성을 비롯한 순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헤아린 오삼계는 이어서 조금 더 생각을 덧붙였다.


‘아니군. 조금이 아니야. 여기서 멈추면 순나라는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직접 이겨낸 셈이 된다. 영악하구나, 아주 영악해.’


상국은 번국에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


물론 이번에 명나라는 순나라에 도움을 베풀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상호보완하여 지킨 셈이라고 우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게 되었다.


허니 이대로 끝낸다면 순나라는 명나라를 높이 보이는 게 아니라 옆에 두고 볼 것이다.


호의적인 시선이 조금은 있겠지만 단지 그에서 그칠 것이니 이것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개봉 탈환까지는 어떻게······아니, 그게 더 위험한가.’


이길 수 있을지는 반반이다.


당장 이번에 전투를 치르면서 명나라 북방군은 적잖이 상했으며, 부관 우승조며 장수 주옥이 보고 온 바에 따르면 순나라 군사들은 이제 그나마 숫자에 의지할 수 있게 된 자들에 불과하다.


그런 이들을 의지하여 싸우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그리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나아가서 이기는 게 가장 좋기는 하지만 여기서 멈추는 건······내가 취사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오삼계는 제게 전장의 전권이 있을지언정 외교적 전권은 없다는 걸 기억하며 입을 열었다.


“정왕 전하께서는 이제 전쟁을 그치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더 싸워서 오랑캐들을 물리치면 좋기야 하겠지. 허나 그대로 알다시피, 슬슬 계절이 바뀌고 있소.”


싸우기 좋지 않은 계절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이 말에 오삼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이 있는 곳이 기후가 상대적으로 따뜻하여서 그렇지 몇몇 지방은 이미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들 역시 조금씩 쌀쌀해지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좋게도 싫게도 추위에 시달리며 싸우는 건 그들보다는 상대에게 유리했다.


“전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순나라에서 오롯이 뜻을 드러내 보일 수 있으신 전하와 달리 저는 황상의 명을 받아 전장에 나온 몸입니다.”

“그야 잘 알고 있지.”


어렵지 않게 오삼계의 말을 알아들은 이자성은 괜찮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은근히 일렀다.


“나라고 다르진 않지. 일을 시작한 것은 우리지만 함께 하여준 은의가 있거늘, 어찌 홀로 빠지고자 하겠소? 남경에 서신을 보내어 일러주시오. 잠시 숨을 좀 고르자고 말이오.”



***



‘제기랄.’


하남 수군 총병 좌량옥은 제가 참으로 운이 없다고 여겼다.


분명히 본대가 위험하여 도움을 청한답시고 오삼계가 도망하는 걸 그는 똑똑히 보았다.


하여 그는 남은 수군을, 더욱 정확히는 그보다 백 배는 더 중요한 제 목숨을 지키고자 철수를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황주를 버렸으며, 버티던 수군 절반을 버렸다.


하지만 그는 그게 잘못되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죽으면 끝이며, 살아만 있다면 몇 번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물론 살아난 방식에 따라서는 다시 시작하기에 참으로 지난하고 고난스러울 터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번 일은 그러한 일에 들지 않는다고 여긴 그는 후일을 걱정하지 않았다.


허나 참으로 야속하게도 하늘은 그를 버렸다.


반나절을 힘겹게 버티던 명나라를 돕고자 적들 후방에서 순나라 군사들이, 그것도 이십만에 이르는 대군을 이끌고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떠났다고 여겼던 아군이 돌아와 합세하니 전세는 말 그대로 극적으로 뒤집혔다.


덕분에 이제 좌량옥은 적전 도주라는 죄를 지은 몸이 되고 말았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계획이 있으면 응당 공유하여 알게 함이 마땅하거늘, 이리도 숨기다니! 덕분에 내 꼴이 우스워졌지 않나! 오삼계, 오삼계!’


속으로 분개하며 오삼계를 향하여 이를 가나 이미 상황은 엎지러진 물이요 코가 빠진 밥이니 돌이킬 수가 없다.


“하남 총병 좌량옥, 병부시랑을 뵈러 왔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군영에 도달하여 말을 전하니 병사가 가벼운 응대를 하며 안으로 들어서는 걸 본 좌량옥은 피가 거꾸로 솟는 거 같았다.


‘이제는 일개 병사도 날 무시해? 감히, 감히, 감히!’


본래라면 바로 들이거나 크게 예의를 갖추어도 모자랄 판이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말이다.

그런데 이리 대하는 걸 보니 좌량옥은 일그러지려고 하는 얼굴을 평범하게 두기 위해 부던히 애를 써야 했다.


지금 그가 받은 느낌이 그저 착각이며, 병사는 예의를 어기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여기서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면 오삼계와 마주했을 때 반드시 책을 잡힐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대인,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하십니다.”

“······크흠.”


병사가 이르는 말에 좌량옥은 제가 느낀 불편함을 헛기침으로 드러내며 걸음을 옮겼다.


허나 헛기침으로 해소한 불편함은 백분지 일, 아니 천분지 일도 되지 못하니 그 비워진 작은 자리를 채우겠다고 하듯 불편함은 사라진 것의 배로 차올랐다.


결국 하지 않느니만 못하게 된 셈이니 좌량옥은 오삼계와 마주한 순간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다시금 부던히 노력해야 했다.


‘참자, 참아.’


자신을 몇 번이고 다독이며 이른 좌량옥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하남 총병 좌량옥, 북방군 장군이신 오삼계 대인의 부름에 응하였습니다.”

“전에는 실로 큰일을 하셨소.”

“······예?”


보자마자 돌아오는 칭찬에 좌량옥은 분노며 짜증도 다 잊을 정도로 당황했다.


자신이 공을 세웠다고 말한 거 같은데,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렇게 볼 여지가 어디에 있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게 말하여 주면 좋기는 하나, 그는 욕심이 많은 거지 머리가 없는 게 아니었다.


공적을 찾으면 아마 없지는 않다.


적어도 그가 판단하기에 세가 기울었다고 여기기 전까지 그는 자리를 지켰고, 그전에는 오로지 수군만 싸워서 전공을 올렸으니 공적이 있기는 하다.


중요한 순간에 치명적인 실책을 범하여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덕분에 적들이 부교를 이용하는 일을 막았으니 그대의 공로가 큽니다. 과연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여주었으니 그대는 내게 있어 진정 좋은 장수며 동료입니다.”

“!”


생각한 대로 움직였다.


그 말에 좌량옥은 더 참지 못하고 얼굴을 벌겋게 했다.


‘이, 이 개자식이!’


그러나 아직 입 밖으로 말을 내지 않을 이성은 남았으니 그는 벌건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릴지언정 입술을 딱 붙어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고 보자. 아직 전쟁이 끝난 게 아니니 지금은 엎드리고 또 엎드리겠다. 그리고 기회를 얻기만 하면 네놈을 제치겠다!’


이리도 조롱을 당하니 오히려 독기가 솟은 좌량옥은 이를 세게 물고 다음을 노리고자 마음먹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 오삼계는 가벼이 웃었다.


좌량옥이 보기에는 비웃음으로 보이는 웃음을 지은 오삼계는 이내에 입을 열어서 본론을 시작했다.


“순나라에서는 이쯤에서 그만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만하자?”


다음이, 기회가 사라진다는 말에 좌량옥은 이내에 크게 흥분하여 따지듯이 물었다.


“지금 전쟁을 그만하자고 하신 겁니까? 저들이 시작한 일이야!”


흥분한 마음에 말을 하니 다소 예의가 사라진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오삼계는 굳이 지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제대로 들었소이다. 이번 전쟁은 해가 바뀌기 전까지는 여기서 끝이오. 적어도 순나라는 그렇게 될 거라고 여기며, 그렇게 되길 바라지.”

“그러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만회할 장소를 얻지 못할 자신은 어쩌한 말이냐.


이 말들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삼킨 좌량옥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끝났어.’


자신은 이제 끝났다.


남은 건 오로지 한직으로 물러나 하루하루 술과 푸념하는 세월이리니 그는 그러한 미래가 아주 가까이에 있음을 느끼며 허망함을 느꼈다.


다시 올라갈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며 언제고 부른다면 그는 다시 제 정당한 권리로서 한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로서 오기를 청할 것이다.


그러나 전에는 양사창이 죽기 전에는 어렵게 보였다면 이제는 오삼계가 죽기 전에는 어렵게 보이니 과연 언제나 기회를 얻을까 싶었다.


물론 전장에서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죽으면 기회가 오긴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다시 말해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또 그런 싫었다.


그가 바라는 건 높이 올려지는 것이지, 고난을 극복하는 게 아닌 것이다.


그저 칭송만 바라며, 권력만 바란다.


그것이 좌량옥의 소망이었다.


허나 그 모든 것이 지금 멀어지고 있으니 좌량옥은 닥치지 않았으나 곧 다가올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기분으로 눈을 뜨지 않고 고개를 떨궜다.


그런 좌량옥에게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전장에서 나는 지엄하신 황상을 대리하여 전권을 받았소. 허나 이 일은 전장의 일이 아니라 조정의 일이니 응당 다시금 남경에 뜻을 아뢰어 살펴야 하오.”

“남경에······아뢴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좌량옥은 믿기 어려운 제안을 듣게 되었다.


“해서 말인데, 총병께서 부디 남경에 다녀와 주시지 않겠소? 황상께 승전을 보고 하며 이 일을 어찌 하는 게 좋을지 청하기 위해서 말이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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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8 ageha19
    작성일
    24.07.21 21:21
    No. 1

    좌량옥이 자기 실수를 덮으려고 또 현장 상황을 왜곡해서 전하겠구나.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47 jk*****
    작성일
    24.07.21 21:47
    No. 2

    좌량옥을 좌천하지 않고 계속 전선에 함께할 생각으로 과를 덮어줄 심산이 아닐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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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 662화 달갑지 않은 방법 24.08.20 71 11 14쪽
662 661화 하늘 아래에 있는 세상 +2 24.08.19 70 12 13쪽
661 660화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다 +2 24.08.16 85 11 13쪽
660 659화 밝기 전이 가장 어둡다 24.08.15 79 14 12쪽
659 658화 현재만이 전부가 아니다 +3 24.08.14 71 14 12쪽
658 657화 두 마리 토끼 +1 24.08.13 86 10 13쪽
657 656화 끼어들 준비 +1 24.08.12 78 12 12쪽
656 655화 공정한 땅 +3 24.08.11 80 11 13쪽
655 654화 천하를 가둘 울타리 +3 24.08.10 88 12 12쪽
654 653화 천자론 +6 24.08.09 86 12 12쪽
653 652화 대신할 수 있는 자리 +3 24.08.08 81 11 12쪽
652 651화 천하를 다스리는 자격 +3 24.08.07 85 11 14쪽
651 650화 언제나 진심인 사람들 +2 24.08.01 86 9 12쪽
650 649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2 24.07.31 80 10 13쪽
649 648화 고장난명 +2 24.07.30 77 11 12쪽
648 647화 시작과 지속은 쉽지만 끝은 어렵다 +1 24.07.28 78 11 12쪽
647 646화 시시비비 +1 24.07.27 82 11 12쪽
646 645화 화전(和戰) +1 24.07.26 84 12 12쪽
645 644화 그들의 책임 +1 24.07.25 76 13 12쪽
644 643화 합의에 필요한 숫자 +1 24.07.24 78 12 11쪽
643 642화 내세울 만한 이 +1 24.07.23 82 13 12쪽
» 641화 빛이 보이면 다가간다 +2 24.07.21 93 14 12쪽
641 640화 스스로 서기 위하여 +2 24.07.20 90 14 12쪽
640 639화 고난 끝에 얻은 것은 +1 24.07.19 85 15 12쪽
639 638화 좋고 싫고는 중요하지 않다 +2 24.07.18 89 15 12쪽
638 637화 호언장담 +2 24.07.17 84 14 13쪽
637 636화 원동력 +1 24.07.16 83 13 14쪽
636 635화 버림받은 자의 각오 +2 24.07.15 77 14 13쪽
635 634화 뒤틀린 믿음 +1 24.07.14 94 15 13쪽
634 633화 파도는 변덕스럽다 +1 24.07.10 86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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