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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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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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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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화 내세울 만한 이

DUMMY

642화 내세울 만한 이


남경에 가라.


이 말을 들은 순간 하남 수군 총병 좌량옥은 사방에 가득하던 어둠 속에서 서광이 비쳤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에 그는 깨달았다.


이게 물에 빠진 사람을 위한 동아줄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말씀은 감사하나 소인이 부족하여 감히 남경에 가기 두렵습니다. 또한 이번 전투로 인해 수군에 손상이 많으니 어찌 맡은 바 소임을 두고 그리하겠습니까.”


슬그머니 빼면서 한번 상황을 살피고자 하니 병부시랑 오삼계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그것이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말처럼 걱정되는 말도 없다고 하던가.


이어서 들린 말에 좌량옥은 그 사실은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었다.


“수군은 그대가 자리를 비운 동안 내 휘하 장수 가운데 하나를 보내어 살피게 할 것이오.”

‘놈!’


하남 수군은 사실상 그가 쥐고 있는 마지막 밑천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간 그는 하남 수군 총병으로서 적지 않은 전과를 올렸다.


물론 그 실상은 그저 나아갔다가 돌아오고를 반복하였음에 불과하니 대단한 전공은 아니다.


허나 매사는 꾸미기 나름이니 이미 지난날 남경에 보내는 장계에는 하남 총병이 나아가 호령하니 적들이 흩어지기 바빴으며, 저들이 겁을 내어 감히 추격할 생각을 하지 못하니 유유히 돌아오기를 반복하였다고 적었다.


그러니 이번 전투에서 추궁을 당한다고 한들 그는 마지막 발악이나마 주장할 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자신이 땅에서 싸우는 일에는 재주가 없어 잘 몰르고 실수하였으나 물에서 싸우는 일에는 자신이 있으니 공으로 과를 갈음하겠다고 말이다.


이게 통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아주 희망을 놓을 일도 아니니 좌량옥은 여차하면 이렇게 주장하며 뻗댄 후에 물러날 생각이었다.


그리고 수군이 깨지면, 아니 활약이 지지부진하여 하는 것이 없게 보이기만 해도 당당하게 소리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없기에 하남 수군이 강병이 아니게 되었노라고 말이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상황이 그렇게 보이는 게 중요했다.


통한다면 그는 다시금 기회를, 그것도 예상보다 빠르게 잡을 것이며 아니라면 적어도 면죄부 하나 가지고 사는 일이 될 터였다.


그저 장소를 고르지 못했기에 다 피지 못한 불운한 명장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지금 오삼계가 제안하는 것은 이 마지막 수단을 아예 밑바닥부터 뒤엎어 버리는 일이었다.


그가 하겠노라 하면 수군을 잠시 손에서 놓아도 좋다고 인정하고, 또 오삼계든 아니면 누구든 뒤에 오는 이 역시 잠시 부재한 중에 맡기어도 좋다고 인정한 셈이니 말이다.


부총병 황주가 살아있을 때라면 할 필요가 없는 걱정이다.


그에게 맡긴 후에 나중에 실책이 있다면 자신보다 부족한 부총병이 실수하였다, 그렇게 주장하면 끝이니 말이다.


하지만 황주는 이미 지난 전투에서 전사하였으니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남경에 간다?


갈 때는 몰라도 올 때 역시 그가 하남 수군 총병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터였다.


어쩌면 돌아올 필요조자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오삼계가 과연 제 사람 하나 남경에 보내지 않고 잠잠히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또한 총병을 보좌하기 위해 내 부관인 우승조를 함께 하게 할 것이니 가는 길이며 보고하는 일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생각을 하자마자 그렇다고 하듯 오삼계가 말을 꺼내니 좌량옥은 더는 참기 어려워서 입술 끝을 부들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오삼계는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앞서 말했듯, 순나라는 여기서 전쟁을 그치고 싶어 하외다.”

“······이미 들었습니다.”


수군을 내어놓으라는 이 상황 자체가 거기에 근간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니 좌량옥이 품고 있던 분노가 순나라를 향했다.


허나 그 분노는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증식한 것이니 분노는 반이 아니라 배가 되었다.


“나 역시 나아가서 더욱 전과를 올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불확실하니 수군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오.”


수군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 말에 좌량옥은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윽고 오삼계가 다시 입을 여니 그 다름의 근간이라 할 말이 들려왔다.


“북경으로 간다면 북방군을 더욱 충원함이 옳겠지. 하지만 이곳에서 대치한다면 전과 같은 일이, 청나라 놈들이 도적 흉내 내는 일이며 강에서 저들이 멋대로 굴어 배다리 놓던 것들을 견제하고자 하면 수군이 더욱 규모가 있어짐이 좋다고 생각하외다.”

“하남 수군을 늘리고 싶으시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수군을 더 늘리고 싶소. 이를테면 개봉 주변이며 순나라 주변을 오가는 하남 수군이 하나, 그리고 북방을 도모할 경우 지원이며 도움을 위한 북방 수군을 하나 더.”


오삼계가 그리는 구상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알게 된 좌량옥은 잠시 분노를 내려놓았다.


잠시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생각하던 그는 이내에 입을 열어 물었다.


“병부시랑께서 그만한 수군을 손에 쥔다면 대명 병력 절반은 손에 쥐고 있다고 한들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과분한 일이지요.”


과분하다고 하나 사양이나 거부 그리고 부정은 생각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니 좌량옥은 미간을 좁혔다.


그런 좌량옥에게 오삼계는 당당히 일렀다.


“이 구상에 총병께서도 힘을 빌려주셔야겠소이다. 그렇게만 하여주신다고 약조하면 내 저번 일은 그저 공적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오삼계는 이렇게 말한 후에 엄하고 냉랭한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어려운 일은 아닐 거요. 향후 수군을 움직임에 있어서 이 사람이 하는 ‘조언’에 귀를 기울여주시면 될 뿐이니까.”


조언이라고 하나 그것이 사실상 강권이요 명령이라고 하기에 더 적당할 것을 좌량옥은 어렵지 않게 알았다.


여기에 더해 자신이 부재한 동안 휘하 장수로 수군을 파악하고 장악할 심산이라는 게 눈에 뻔히 보였다.


다시 말해서 지금 오삼계는 좌량옥에게 두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오삼계의 휘하에 들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남경에 가서 은퇴할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이 두 선택은 싫다고 하여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좌량옥은 필히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다.


이에 비견될, 혹은 그보다 훨씬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면 말이다.


좌량옥으로서는 매우 안타깝고 씁쓸하게도, 그에겐 그런 훌륭하고 입맛에 맞는 대안이 없었다.


“당장은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상황이 촉박하니 부디 총병께서는 근시일에 가부를 정하여 말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주도권을 쥔 것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좌량옥은 어리석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 하는 것이 그가 바라는 목적에 더 가까운지도 분명히 알았다.


당장 내일, 아니 지금 이 자리에서 오삼계가 벼락에 맞아서 돌연사하지 않는 한 결정이 빠를수록 좋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여 다음 순간 좌량옥의 언행은 대단히 공손했다.


“시랑 대인께서 대계를 세우신 듯하니 보는 눈이 부족한 소인으로서는 따름이 마땅하겠지요. 말씀하신 대로 행하여 남경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제 살길을 찾고자 한 좌량옥의 말에 미혹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때때로 이성적으로 내린 판단과 별개로 움직이는 법.


좌량옥은 저도 모르게 감정을 실은 말을 내고 말았다.


“시랑 대인께서는 아주 공사다망하여 소소한 일들은 돌볼 겨를이 없는 분이 아니십니까. 응당 그 정도 작은 일은 맡아서 훌륭하게 해내야 하겠지요. 대인께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신경 쓰시지 않게 말입니다.”

“고마운 일이나 내 천성은, 아니 현실은 내게 그러지 못하게 합니다. 하여 이번은 어렵지만 부디 다음에는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천연덕스럽게, 그리고 좌량옥 보기에는 가증스럽게 이야기한 오삼계는 그가 아니라 멀리 시선을 주며 말을 이었다.


“전쟁은 순나라와 청나라가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도리로서 우리 대명은 함께하였지요.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그리하였으니 응당 그들 모두의 뜻이 있어야 진정으로 나아가든 끝나든 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리국 사람을 불러서 물어보실 생각입니까?”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당연하다고 한 오삼계는 복잡한 마음으로 말을 덧붙였다.


“당사자들이 모두 이야기한다면 응당 서로를 상하지 않게 하도록 도울 이에게도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랑 같이 개봉 쪽으로 가자고 하였네.”


되묻는 대리국 장수 이정국의 말에 대리국 제독 위운은 흔들림 하나 없이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이에 이정국은 제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알고 입을 떡 하고 벌렸다.


“뭐, 나라고 좋아서 이러는 건 아니야. 솔직히 대학사가 보장하고 전하께서 묵인하셨다고 하나 나는 여전히 그대며 그대의 사제들, 그리고 뜻을 함께하였던 이들은 다 잠재적인 적으로 보거든.”


위운이 이르는 말에 이정국은 벌렸던 입을 닫았다.


그리고는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니 그와 대조적으로 위운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그대들이라고 하여도 이번 전쟁을 통해 제법 뜻을 보였지. 조금 풀어주었다고 바로 손에 쥔 칼을 반대로 겨눌 이들은 아니라고 말이야. 그러니 이제는 어느 정도 믿기로 했네.”

“······감사하다고 하면 족하시겠습니까?”

“필요 없네. 바라지도 않고.”


이정국이 간신히 입을 열어서 묻자 위운은 가벼이 거절했다.


그 모습에 이정국이 묘한 얼굴을 하고 있자니 위운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호불호와 별개로 자네는 저들 가까이서 싸운 장수야. 그리고 훌륭하게 막았지.”

“그냥 저들이 몇 번 다투더니 물러난 것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제는 떠나지 못할 처지가 되었지요.”


제가 한 일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고 이른 이정국은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말을 덧붙였다.


“안타깝게도 준비한 마지막 비책 역시 쓰지 못하고 그대로 묻히게 되었으니 제가 세운 공이라는 건 그저 이곳에서 아둥바둥 버틴 것이 전부입니다.”

“나도 들어서 알고는 있지.”


고개를 끄덕인 위운은 이정국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다만 그것이 열이면 열이 죽을 상황을 열에 다섯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준비한 구명책이라는 걸 기억하면 참으로 다행이라고 함이 옳지.”

“그건······그렇습니다.”


구명책이 왜 구명책인가.


목숨(命)을 잃을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도이기 때문에 구명책이다.


다시 말해서, 구명책이라고 하는 것은 최악을 가정하여 대비하니 최악에 몰리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진다.


허나 그것을 아쉬워함은 어리석은 일이니 제게 최악이 닥치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대비는 하되 닥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이니 분명 위운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대가 애능기에게 명하여 처리한 일, 지금 보고 오는 길이네. 본래 목적대로 방어선으로서 훌륭하게 지어졌네. 그리고 이제는 병참 허리를 책임지는 훌륭한 요지가 되었어. 아마도 향후 십년, 이 상황이 길어진다면 그 길어지는 것에 따라서 그 가치가 계속 올라갈 걸세.”


다행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에는 어딘가 거리낌이 있으니 이정국은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이정국에게 위운은 처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당분간은 정체하겠지. 그러니 자네도 나와 함께 개봉으로 가지.”

“제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정국이 에둘러 거절하니 위운은 그게 아니라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자네 공적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닌가? 그대는 대리국 장수로서 적들을 막았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아직도 모르겠나?”

“······.”


여기까지 들은 이정국은 위운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그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았다.


하지만 구태여 제 입으로 말하자니 여러모로 껄끄러운지라 입을 꾹 다물고 있자니 대신하겠다고 하듯 위운이 입을 열었다.


“그대가 우리 대리국에서 내세울 승장(勝將)이라는 말이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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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8 ageha19
    작성일
    24.07.23 21:05
    No. 1

    명과 순, 대리국, 그리고 옵저버 자격으로 조선까지 불러서 현재 전쟁의 출구전략을 논의한다는 거네.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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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 662화 달갑지 않은 방법 24.08.20 71 11 14쪽
662 661화 하늘 아래에 있는 세상 +2 24.08.19 70 12 13쪽
661 660화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다 +2 24.08.16 85 11 13쪽
660 659화 밝기 전이 가장 어둡다 24.08.15 79 14 12쪽
659 658화 현재만이 전부가 아니다 +3 24.08.14 72 14 12쪽
658 657화 두 마리 토끼 +1 24.08.13 87 10 13쪽
657 656화 끼어들 준비 +1 24.08.12 78 12 12쪽
656 655화 공정한 땅 +3 24.08.11 80 11 13쪽
655 654화 천하를 가둘 울타리 +3 24.08.10 88 12 12쪽
654 653화 천자론 +6 24.08.09 87 12 12쪽
653 652화 대신할 수 있는 자리 +3 24.08.08 81 11 12쪽
652 651화 천하를 다스리는 자격 +3 24.08.07 86 11 14쪽
651 650화 언제나 진심인 사람들 +2 24.08.01 86 9 12쪽
650 649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2 24.07.31 80 10 13쪽
649 648화 고장난명 +2 24.07.30 78 11 12쪽
648 647화 시작과 지속은 쉽지만 끝은 어렵다 +1 24.07.28 78 11 12쪽
647 646화 시시비비 +1 24.07.27 82 11 12쪽
646 645화 화전(和戰) +1 24.07.26 85 12 12쪽
645 644화 그들의 책임 +1 24.07.25 76 13 12쪽
644 643화 합의에 필요한 숫자 +1 24.07.24 79 12 11쪽
» 642화 내세울 만한 이 +1 24.07.23 83 13 12쪽
642 641화 빛이 보이면 다가간다 +2 24.07.21 93 14 12쪽
641 640화 스스로 서기 위하여 +2 24.07.20 90 14 12쪽
640 639화 고난 끝에 얻은 것은 +1 24.07.19 86 15 12쪽
639 638화 좋고 싫고는 중요하지 않다 +2 24.07.18 89 15 12쪽
638 637화 호언장담 +2 24.07.17 85 14 13쪽
637 636화 원동력 +1 24.07.16 83 13 14쪽
636 635화 버림받은 자의 각오 +2 24.07.15 77 14 13쪽
635 634화 뒤틀린 믿음 +1 24.07.14 94 15 13쪽
634 633화 파도는 변덕스럽다 +1 24.07.10 86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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