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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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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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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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화 고장난명

DUMMY

648화 고장난명


“이게 뭐람.”


장헌충 휘하 반군 장수, 반군 출신 대리국 장수, 승전하여 공을 세운 대리국 대표 장수.


이상이 지금까지 이정국이 거쳐온 직함이자 경력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정국은 이 직함이자 경력 끝에 추가로 적어넣을 말을 얻었다.


번국 대표 장수 이정국.


여기서 말하는 번국 대표라고 함은 그저 대리국만을 칭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번국 대표 장수라고 하지 않고 대리국 대표 정도로 하면 충분하다.


지금 이정국이 맡은 직책, 번국 대표는 그보다 더 확장된 의미였으니 바로 세 번국을 대표한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이정국이 양나라, 순나라, 대리국 세 나라 모두를 대표한다는 말이다.


‘대체 왜?’


남들 앞에 나서길 싫어한다면 거짓말이며, 높이 올라서 대표하길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 그 또한 거짓말이다.


그러나 매사에는 정도와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고 자신의 바라거나 상상하던 이상으로 일이 닥친다면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사람이다.


하여 지금 이정국은 얼떨떨함과 경계심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이거 자칫하면 덤터기 쓰기 딱 좋은데.’


번국들을 대표한다고 들으면 마치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제를 살피면 이는 대단한 사람이 된 게 아니라 대단한 책임이 지워진 것에 불과했다.


“감투 하나 씌워주고 부려 먹을 생각인가? 명나라는 그렇다 치고 순나라도 이런 발상이라니, 하여간 사람은 높이 올라가면 다 똑같다니까.”


이정국의 귀에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은 제독 위운이니 그는 그저 말만이 아니라 이 일이 진정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제독?”

“아마도 이건 명나라에서 나름대로 배려해 준 걸 거다.”

“이게 말입니까?”


그냥 사람만 덜렁 보내서 직책을 맡겼다.


그런데 배려라니, 이정국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배려라는 단어의 정의가 바뀌었나 싶었다.


그런 이정국의 반응에 위운은 이해한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너 말고 우리 대리국을 배려했다고.”


위운이 입에 담은 적나라한 말에 두어 번 눈을 껌벅거리던 이정국은 밀려 들어오는 현실감에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하.”


짜증이 샘솟고 분노가 치민다.


결국 이는 명나라에서 만일을 대비하여 버릴 희생양으로 이정국을 골랐다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우습게도 배신감은 없었다.


대리국에서 그렇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명나라에서 그렇게 하는 게 어떻냐는 식으로 일을 밀어붙였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정국이 명나라에 대한 기대를 버린 것 벌써 옛날 옛적이니 지금 그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니들이 그러면 그렇지’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위운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미안함과 위로를 담아서 말을 건넸다.


“기분은 이해한다. 솔직히 나도 썩 좋은 신세는 아니었으니까.”

“위 대인은 토벌군 소속에 제독까지 오른 분이 아니십니까?”


동병상련을 드러내는 말에 이정국은 저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같은 처지라며 위로를 받기에는 그와 자신이 너무나도 처지가 다르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제가 한 말이 위운이 한 배려를 다 흩어버리는 무례이자 눈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든 이정국은 급히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위운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네가 아는 나는 사천 토벌군 소속 장수며, 참칭, 크흠.”


평소 자신을 자랑하는 말이며 전공을 늘어놓던 습관대로 ‘참칭자 장헌충의 수급을 취한 자’라는 묘사를 내려던 위운은 그 말이 지금은 대단히 부적절함을 느끼고 헛기침을 했다.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한들 그것을 무작정 들이밀고 자랑하는 것은 머리가 없는 놈들이나 할 짓이었고, 적어도 위운은 그렇게 생각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크흠, 크흠.”


어색함을 덜어내기 위해 두어 번 더 헛기침한 위운은 계속 말을 이었다.


“네가 아는 나는 사천 토벌군 소속이며, 성도에 가기까지 가장 앞장서서 가장 용맹하게 싸운 장수며, 대리국 제독으로 이곳에 온 사람이겠지.”

“그렇습니다.”

“그거 아냐? 나는 본디 노상승 장군 휘하에 있었다.”


노상승이라는 말에 이정국은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 되었다.


그 이름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 노상승 휘하에 있었다가 현 대리국 국왕이자 전 사천 총독인 임경업 휘하로 옮겨갔다면 그다지 처지가 달라지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이정국의 의문을 읽었는지, 아니면 그가 무어라고 생각하든 개의치 않는 건지 위운은 계속 말을 이었다.


“노상승 장군 휘하 토벌군은 토벌을 거의 완수했다. 하지만 마무리 짓지는 못했어.”

“청나라가 내려왔고 그를 막기 위해 군을 돌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 아마도 그게 북경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이었을 거다.”


그것만은 자신도 차마 부정할 수 없다고 여긴 위운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만 그 당시 명나라 분위기는 북경을 빼앗기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생각이 팽배했었다.


위운 역시 그러할 거라고 생각했고 말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끝에 우리는 패배했다.”

“······.”


담담한 어조로 말하나 거기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후회가 담겨 있었다.


그걸 피부로 느낀 이정국은 입을 다물었고, 위운은 그걸 살짝 살피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좋은 일은 아니다. 바란 일도 아니고.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하여 북경에 간신히 도착한 후에 가장 먼저 한 건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는 거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떠올린 것은 복수였지.”

‘복수라.’


문득 이정국은 위운에게 자신이, 아니 더욱 정확히는 사제들이 겹쳐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품었지만 드러내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한 자신과 달리 아직 품은 것을 올곧게 드러내는 사제들, 특히나 애능기에게 지금의 위운은 닮아있었다.


“그런데 북경 조정은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패잔병으로 취급하여 싸우지 못할 거라고, 못 써먹을 거라고 판단한 태도나 시선은 그나마 나았어.”


패자에게 용무는 없다.


그런 의미로서 소외당했나 싶었던 이정국의 예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이었다.


“당시 북경 조정은 우리를 모두 없는 걸로 취급했다. 노상승 장군의 장례는 잘 치러주며 그분은 치켜세워주나 그분의 뒤를 이을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어. 오로지 한 사람, 당금 대리국 국왕이신 전하께서만 그러하였을 따름이다.”

“······당시 황제도 말입니까?”


대리국 사람은 그 기조로 인해 명나라를 폄훼하지 않는다.


그러니 함부로 말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정국은 지금 반드시 묻고 싶었고, 내뱉은 말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황제는 죽은 장헌충만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남경에 있는 황제도, 북경에 있다가 죽은 황제도 그에게는 별달리 의미가 없었다.


“불경하긴.”


그러한 이정국에게 위운이 가볍게 타박하나 진심으로 책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리를 조심히 가리라는 충고와 비슷하게 말한 것이니 이어지는 대답이 그를 증명했다.


“뭐, 그 말대로긴 했지. 명령은 하셨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당시 황상은 전혀 가깝지 않았어.”


위운은 그렇게 말하더니 복잡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아무리 토벌군에서 공적을 여럿 세웠다고 한들 한번 패배하여 패주한 장수며 병사다. 너 높이 계신 분께 우리가 보일 리가 없지.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네게 어느 정도 공감해.”


공감한다고 한 위운은 몸을 돌리며 말을 덧붙였다.


“돌연 붕 떠서 어느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신세, 날 무시하는 그 시선들에는 나도 익숙하거든.”


위운이 이른 말에 이정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위운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 이제 슬슬 갈까.”


가자는 말에 이정국은 저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거 정말 예의가 없는 거 아닙니까?”

“누가 아니라냐.”


투정하듯 하는 말을 받은 위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협상 당일에 우리에게 알리다니, 통보라는 말도 아까울 지경이다.”



***



“대리국 장수들이 곧 도착합니다.”


부관 우승조가 고하는 말에 병부시랑 오삼계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청나라 놈들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판을 깰 생각인가?”


고민 어린 얼굴로 중얼거리는 말에 대답한 것은 우승조가 아니라 동석하여 대리국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하남 수군 총병 좌량옥이었다.


“그렇게 되면 곤란해지시겠군그래?”

“곤란한 건 우리가 아니오. 순나라가 곤란할 따름이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한 오삼계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아, 그대도 곤란해지던가?”


뿌득


오삼계가 하는 말 자체에는 어떤 비웃음이나 조롱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에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


허나 좌량옥은 그 무엇도 달갑지 않았으며, 이만한 조롱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오삼계, 오삼계!’


정말로 열이 받는 점은, 저 말이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좌량옥은 본래 하남 수군 총병이나 이제 자리는 이름뿐인 허울이 되었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총병 대리라는 우습지도 않은 직함을 내민 젊은 장수가 완벽하게 수군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주대전, 그 탐욕스러운 늙은이의 손자라는 걸 알았다면 조금 더 주의하였을 텐데.’


실로 알기 쉽게도 하남 수군은 총병 대리 주옥이 뿌린 재물에 홀랑 넘어갔다.


물론 재물만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며, 가장 드러나는 것 또한 그것이었으니 좌량옥은 오로지 재물이 부족함만을 탓했다.


그가 없던 것을 가진 주옥 그리고 그 할아비인 주대전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하여 하남 수군을 잃은 그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하나, 황명을 받았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리고 그 황명은 바로 이번 일을 훌륭히, 최선을 다하여 성사하라는 것이었다.


순나라의 의향에 따라서 진행되고 있는 잠시간의 화의 말이다.


물론 이는 그만이 책임질 일이 아니며, 그만이 노력하여 할 일도 아니다.


허나 성사되지 않을 경우 책임을 질 대상을 고르면 반드시 그가 제일 먼저 물망에 오를 것이니,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황제의, 의흥제 주자랑의 명령을 받아서 전하라고 하였으며 그 보고 역시 하라고 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책임을 돌릴 수도 있고, 남을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경에서는 이 일에 대한 창구로 그를 골랐으니 당연히 일이 틀어지는 순간 가장 먼저 질책당하는 것도 그다.


그리고 그 책망은 분명하게 말해서 그를 끝장낼 터였다.


관직과 삶, 양쪽 모두에서 말이다.


“그렇게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 모두는 화친을 바라고 있소. 모두가 숨 고를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외다.”

‘정작 중요한 청나라 놈들은 아니지 않더냐!’


차마 겉으로는 내지 못하나 답답함에 속으로나마 고함을 지른 좌량옥은 이를 악물었다.


고장난명이라 하였거늘, 어찌 한쪽의 의사만으로 싸움이 일어나고 그치겠는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대인, 개봉성에서 이쪽으로 오는 무리가 있습니다!”


바깥에서 장수 하나가 화급히 달려와서 알리는 소리에 오삼계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럼 첫 논의를, 제대로 마주하고 논하는 일을 해봅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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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47 jk*****
    작성일
    24.08.01 00:30
    No. 1

    이자성이 맡은~ 이정국이랑 헷갈리네요 오타인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8 금빛시계
    작성일
    24.08.01 16:12
    No. 2

    해당 부분은 오타입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감상 되시고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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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 662화 달갑지 않은 방법 24.08.20 71 11 14쪽
662 661화 하늘 아래에 있는 세상 +2 24.08.19 70 12 13쪽
661 660화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다 +2 24.08.16 85 11 13쪽
660 659화 밝기 전이 가장 어둡다 24.08.15 79 14 12쪽
659 658화 현재만이 전부가 아니다 +3 24.08.14 72 14 12쪽
658 657화 두 마리 토끼 +1 24.08.13 87 10 13쪽
657 656화 끼어들 준비 +1 24.08.12 78 12 12쪽
656 655화 공정한 땅 +3 24.08.11 80 11 13쪽
655 654화 천하를 가둘 울타리 +3 24.08.10 88 12 12쪽
654 653화 천자론 +6 24.08.09 86 12 12쪽
653 652화 대신할 수 있는 자리 +3 24.08.08 81 11 12쪽
652 651화 천하를 다스리는 자격 +3 24.08.07 86 11 14쪽
651 650화 언제나 진심인 사람들 +2 24.08.01 86 9 12쪽
650 649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2 24.07.31 80 10 13쪽
» 648화 고장난명 +2 24.07.30 78 11 12쪽
648 647화 시작과 지속은 쉽지만 끝은 어렵다 +1 24.07.28 78 11 12쪽
647 646화 시시비비 +1 24.07.27 82 11 12쪽
646 645화 화전(和戰) +1 24.07.26 84 12 12쪽
645 644화 그들의 책임 +1 24.07.25 76 13 12쪽
644 643화 합의에 필요한 숫자 +1 24.07.24 78 12 11쪽
643 642화 내세울 만한 이 +1 24.07.23 82 13 12쪽
642 641화 빛이 보이면 다가간다 +2 24.07.21 93 14 12쪽
641 640화 스스로 서기 위하여 +2 24.07.20 90 14 12쪽
640 639화 고난 끝에 얻은 것은 +1 24.07.19 85 15 12쪽
639 638화 좋고 싫고는 중요하지 않다 +2 24.07.18 89 15 12쪽
638 637화 호언장담 +2 24.07.17 85 14 13쪽
637 636화 원동력 +1 24.07.16 83 13 14쪽
636 635화 버림받은 자의 각오 +2 24.07.15 77 14 13쪽
635 634화 뒤틀린 믿음 +1 24.07.14 94 15 13쪽
634 633화 파도는 변덕스럽다 +1 24.07.10 86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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