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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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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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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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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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화 끼어들 준비

DUMMY

656화 끼어들 준비


“정신이 하나도 없구만그래.”


혀를 내두르며 술잔을 기울이는 대리국 제독 위운의 말에 마주 앉은 대리국 장수 이정국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습니다. 오죽하면 오늘 일이 여전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지경입니다.”


조선의 참가로 인해 제자리걸음을 벗어나나 했던 회담은 그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 나아감이 어찌나 심한지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어느새 전쟁이 그치고 말고가 아니라 더욱 큰 일이 오가고 있었다.


이는 이정국이 보기에 산에 올라 사방을 보다가 눈을 감고 뜨니 주변 풍경이 그대로 바다가 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자신이 생전 모르는 곳에 있으면 응당 그곳이 어딘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법이다.


하여 이정국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이 이야기가 갈 향방을 묻는 것이었으니 위운은 비워낸 술잔에 술을 다시 채우며 입을 열었다.


“나야 잘 모르지.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해.”


황량하여 인기척이며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황야에서 만나는 이정표와 달빛은 물론이고 별빛 하나 비치지 않는 심야에 보이는 등롱 하나가 얼마나 반갑던가.


지금 위운이 꺼내려고 하는 말이 이정국에게는 그것들에 비할 정도였으니 그는 기대를 담아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라는 거야.”

“예?”


아주 모르기만 하는 것보다야 하나라도 안다면 낫지 않나 싶던 심정에 기대한 것이 무색하게 위운의 입에서 나온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다.


자연스레 이정국의 얼굴은 당황에 이어서 황당함 그리고 실망감을 드러내니 위운은 농은 여기까지라고 하듯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양자 간의 골은 생각보다 깊을 걸세.”



***



“하.”


오늘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하나하나 적고 있던 명나라 병부시랑 오삼계는 돌연한 허탈함에 쓰던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제가 쓴 내용을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내리기 시작하니 오삼계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당장에라도 비치하여 둔 술병을 열어서 병을 입에 물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으다.


그러나 오삼계는 그 충동을 참아내고 다시 한번 붓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아직 다 쓰지 않은 내용을 마저 적기 시작한 그는 이윽고 일을 마치고 다시금 내용을 살폈다.


“내가 쓴 글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군. 심지어 이게 현실로 일어났던 일이라니, 더더욱 믿기지가 않아.”


일이 틀어져도 이렇게까지 틀어질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오삼계의 생각과는 다른 내용이 적혀 있는 장계를 보고 있다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허나 아직 하루도 되지 않은 일들을 부정하여도 저만 손해이며, 결국은 대명의 손해로 이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오삼계는 쓰게 웃으며 장계를 봉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봉하기를 마친 오삼계는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쉰 후에 바깥을 향해서 소리를 높였다.


“밖에 누가 있는가!”

“대인, 부르셨습니까.”


대답과 함께 얼굴을 비춘 것은 부관인 우승조였으니 오삼계는 그를 반가워하는 한편 의아함이 들었다.


“이 시간에 쉬지 않고 여기에는 어쩐 일인가?”

“대인께서 쉬지 않으시는데 제가 어찌 쉬겠습니까.”

“허어. 설마하니 다녀온 후부터 쭉 기다렸소?”


우승조가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음을 보이니 오삼계는 그 모습에서 든든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그를 아끼는 마음이 드니 오삼계는 살짝 고민하다가 다시 물었다.


“하남 수군 총병은 아직 잘 있으신가?”

“다시금 그를 남경에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우승조가 조심히 물으니 오삼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일을 전하는 사자는 공이 없어도 칭찬을 받으나 나쁜 일을 전하는 사자는 과가 없어도 질책을 받는 법일세.”

“무슨 뜻인지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이 일을 그에게 전하라고 보내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좋지 않다고 여깁니다.”


여기까지 말한 우승조는 혹여 누군가 들을까 봐 걱정스럽다고 하듯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궁지에 몰린 쥐는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궁지에 몰린 쥐라.”


들으니 일리는 있었다.


하남 수군 총병 좌량옥을 이렇게 써먹음도 바라면 가능은 하다.


하지만 자신이 이 일을 듣고 생각했던 것을 과연 좌량옥이라고 생각지 못할까 싶었다.


그리고 분명 자신이 전하는 소식이 흉보라는 것을 알면 어떠한 수작을 부릴 가능성도 있으니, 어쩌면 이 소식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는 곤란해.’


아무리 좋지 않은 일이라고 한들 일단 전해져야 하는 법이니 오삼계는 방금 궁리했던 일, 좌량옥을 사자로 삼아 자신의 사람들에게 오는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방식을 파기했다.


그러나 그렇게 결정한 것과 별개로 자신이 보낼 내용이 여전히 남경 조정을 뒤흔들 것이며, 여차하면 황상의 분노가 뒤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누구를 보냄이 좋겠는가?”

“저에게 가라고 하시면 두려워하지 않고 다녀오겠습니다.”


우승조가 자신 있게 하는 말에 오삼계는 잠시 고민하더니 돌연 다른 생각을 품었다.


“아니, 이건 그대가 가서는 아니 될 일이라 생각하네. 나도, 자네도 말이야.”

“직접 겪은 이들이 말하지 않으면 누가 말함이 옳다는 말씀입니까?”

“직접 겪었으니까 안 된다는 거야. 이 일이 좋은 일이면 모를까, 아니니 우리는 반드시 변명을 하려고 할 걸세.”


변명을 할 거라는 말에 우승조는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우승조는 불편한 얼굴로 현실을 인정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하여 영민한 이를 내세워 사정을 설명하게 할 생각이네.”

“염두에 두고 계신 이가 있으십니까?”

“있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오삼계는 속으로 생각했다.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제갈량조차 일을 모두 돌보다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이런 시국일수록 도울 사람이, 함께하여 뜻을 같이할 사람이 필요해.’


생각하니 더욱 뜻이 확고하게 굳어지는 걸 느낀 오삼계는 천천히 입을 열어서 말했다.


“하남 수군 총병 대리를, 장수 주옥을 보내도록 하겠네.”


이렇게 함으로 엉망진창인 이번 일에서 조금이나마 수확이라 할 만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여긴 오삼계는 한결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낫다고, 더 이상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서 말이다.



***



“미친 소리입니다.”

“흐하하하!!!”


순나라를 다스리는 자, 정왕이라 불리는 이자성은 술잔을 두고 마주 않아서 석잔 쯤 잔이 오간 후에 들려온 말에 크게 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비웃음이 아니니 기실 그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친 소리라, 옳은 말이오. 중재하라고 불려 온 이가 할 말은 아니긴 했지. 사실상 중재하는 게 아니라 더욱 크게 사이를 벌린 셈이니까.”


말을 마치고 술잔을 들어서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본 이자성은 단숨에 술잔을 비우며 말을 이었다.


“후우, 하지만 그래서 좋아.”

“감히 말씀드리자면, 미친 소리로 여기나 전하께서 이르신 것에 동감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조선이 내민 제안은 분명히 말해서 중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더욱 크게 싸울 공산이 큰 일이며, 실제로 오늘 오간 말들 가운데 여차하면 그대로 사방에서 물어뜯길 말이 많았다.


그러나 결국 조선은 성공하였으니, 이제 청나라든 명나라든 가리지 않고 이 일에 한번은 타기로 하였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리 말한 것은 아니다.


그저 양쪽을 대표하여 나섰던 이들이 한 발짝 물러나는 태도를 보이며 각각 남경과 심양에 상신하겠노라 하였을 따름이다.


하지만 이는 반쯤 승낙된 것이며, 저들 선에서 무시하기 어려움을 뜻했다.


그리고 이 일이 양쪽 조정에 전해지는 순간 반드시 갑론을박이 있을 것이니, 원하는 쪽도 바라지 않는 쪽도 한번은 행하려고 할 것이다.


각각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기 위해서 말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 그 일이 끝나기 전까지 그 중심이 되는 일들은 멈춘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고로, 이번 전쟁은 끝났으며 당분간은 시간을 벌었다.


순나라에 가장 필요한 시간을 말이다.


“전하께서는 이 일을 성사하여 이루실 생각이십니까?”

“그러하오. 적어도 세 번, 적당히 견제하며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지.”

“그러다가 때가 되면 달리 칭하실 생각이시고요.”


우금성이 묻는 말에 이자성은 이렇다저렇다 말하지 않고 그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흐흐흐.”

“이암에게도 이번 일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번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 이상 산둥에 갈 채비도 해둠이 옳을 터, 그 또한 채비하겠습니다.”


말과 함께 우금성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니 그는 이내에 산둥에 갈 인원을 낙점했다.


‘역시 내가 가는 게 가장 낫겠어.’


예부상서라는 지위도 그렇지만 이번 전쟁을 통하여 우금성은 한 가지 사실을 크게 실감한 바가 있었다.


바로 내정으로 뒤를 받치는 일은 자신이 이암만 못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다면 그 역시 이암처럼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한번 잘 해낸 이와 잘 해낼 자신이 있는 사람을 놓고 저울질하면 당연하게도 전자로 기울기 마련이었고, 이는 우금성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한 이암이 이번 일로 경험을 쌓았음을 생각하면 역시 산둥에 가는 것은 우금성이 되어야 마땅했다.


‘아마도 그 자리는 말과 머리로 싸우는 전장일 터, 딱 좋구나.’


그런 일이라면 남다르게 자신이 있던 우금성은 산둥에서 할 말을 고르고 시작했다.


허나 그 생각은 이내에 그치고 말았다.


“역시 갈 거라면 채비를 단단히 함이 옳지. 음, 그렇고말고.”

“······전하?”


방금 한 말에 담긴 이자성의 속내를 얼추 읽은 우금성은 당황하며 그를 불렀다.


그에 이자성은 씩 웃더니 입을 열었다.


“산둥에는 내가 갈 거요. 아니, 나도 간다고 하는 게 좋으려나?”

“전하!”


기겁하며 우금성이 외치니 이자성은 웃는 얼굴 그대로 말을 이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내가 참석하는 순간 저 자리에서 아마도 내가 가장 높은 사람일 거 같은데, 아니 그렇소이까?”

“그렇기야 하겠지요. 다만 청나라에서 친왕들이 참석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야 뭐 괜찮소. 오히려 나을 수도 있지.”


낫다고 말한 이자성은 걱정하지 말라는 얼굴로 술병을 들어 우금성에게 권하며 일렀다.


“찬성하는 쪽에서만 왕들이 나온다면 당연히 그쪽에 더 무게가 실리고 진실되어 보이지 않겠소이까?”


말과 함께 술을 따른 이자성은 이내에 자신의 잔을 들며 내밀다가 멈칫했다.


“흐음.”

“이 예부상서가 감히 청하니 위험이 따를 것을 걱정하신다면 당장이라도 말을 거두어주십쇼.”


혹여 뜻이 바뀌지 않을까 싶어 우금성이 급히 예를 갖추어 청하나 안타깝게도 이자성을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럴 수야 없지. 천하에 나와 같은, 아니지. 나와 겨룰 만한 이가 얼마나 되는지 재어볼 순간이 아닌가. 가볼 가치가 있는 일, 아니 응당 가야 할 일이야.”

“예? 자, 잠시만요. 전하께서 이르시는 말씀은 설마하니 다른 이들도 그러하리라 여기시는 겁니까?”


우금성이 크게 당황하여 묻는 말에 이자성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


묻는 말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여 준 이자성은 제가 든 술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 일렁이는 술잔 표면으로 몇몇 얼굴이, 더욱 정확히는 아직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여 얼굴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기왕이면 전부 보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둘이 겨루는 가운데 끼어들면 자칫 몰매를 맞기 십상이다.


그러나 홀로 끼어드는 게 아니라 둘, 혹은 그 이상의 숫자로 끼어들면 안전하게 몸을 들이미는 것에 더해 오히려 유리하게 될 수도 있었다.


고로 그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에 산둥에 가서 여러 얼굴을 보길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 산둥에 도착한 이자성은 그의 바람대로 원하는 얼굴들을 모두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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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 662화 달갑지 않은 방법 24.08.20 71 11 14쪽
662 661화 하늘 아래에 있는 세상 +2 24.08.19 70 12 13쪽
661 660화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다 +2 24.08.16 85 11 13쪽
660 659화 밝기 전이 가장 어둡다 24.08.15 79 14 12쪽
659 658화 현재만이 전부가 아니다 +3 24.08.14 72 14 12쪽
658 657화 두 마리 토끼 +1 24.08.13 87 10 13쪽
» 656화 끼어들 준비 +1 24.08.12 79 12 12쪽
656 655화 공정한 땅 +3 24.08.11 80 11 13쪽
655 654화 천하를 가둘 울타리 +3 24.08.10 88 12 12쪽
654 653화 천자론 +6 24.08.09 87 12 12쪽
653 652화 대신할 수 있는 자리 +3 24.08.08 81 11 12쪽
652 651화 천하를 다스리는 자격 +3 24.08.07 86 11 14쪽
651 650화 언제나 진심인 사람들 +2 24.08.01 86 9 12쪽
650 649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2 24.07.31 80 10 13쪽
649 648화 고장난명 +2 24.07.30 78 11 12쪽
648 647화 시작과 지속은 쉽지만 끝은 어렵다 +1 24.07.28 78 11 12쪽
647 646화 시시비비 +1 24.07.27 83 11 12쪽
646 645화 화전(和戰) +1 24.07.26 85 12 12쪽
645 644화 그들의 책임 +1 24.07.25 77 13 12쪽
644 643화 합의에 필요한 숫자 +1 24.07.24 79 12 11쪽
643 642화 내세울 만한 이 +1 24.07.23 83 13 12쪽
642 641화 빛이 보이면 다가간다 +2 24.07.21 93 14 12쪽
641 640화 스스로 서기 위하여 +2 24.07.20 90 14 12쪽
640 639화 고난 끝에 얻은 것은 +1 24.07.19 86 15 12쪽
639 638화 좋고 싫고는 중요하지 않다 +2 24.07.18 89 15 12쪽
638 637화 호언장담 +2 24.07.17 85 14 13쪽
637 636화 원동력 +1 24.07.16 83 13 14쪽
636 635화 버림받은 자의 각오 +2 24.07.15 77 14 13쪽
635 634화 뒤틀린 믿음 +1 24.07.14 94 15 13쪽
634 633화 파도는 변덕스럽다 +1 24.07.10 86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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