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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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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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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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화 대신할 수 있는 자리

DUMMY

652화 대신할 수 있는 자리


“그걸 정말 받아들이실 생각이십니까?”


돌아오는 길에 예부상서 우금성이 정왕 이자성에게 묻는 말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우 선생은 마뜩잖은 모양이시군.”

“마음에 들고 아니고를 따지는 게 아닙니다. 이런 게 과연 소용이 있을까, 그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조선에서 생각보다 크게 나섰다는 걸 알았으며, 세자가 온 것 역시 그저 중재만을 위함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기에 우금성은 두려웠다.


저들의 생각, 아니 광기에 자신들마저 잠식되어 버릴까 두려웠다.


그러한 두려움은 곧 말이 되어서 입 밖으로 나왔다.


“저 나라는 미쳤습니다.”


말을 한번 꺼내니 속이 품었던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기 시작하니 그 흐름을 느낀 우금성은 자제하지 않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저들이 하고자 하는 일은 자칫하면 명과 청은 물론이고 그와 함께하는 이들 모두에게 싸움을 거는 일입니다. 중재가 아니라 천하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섶을 얹는 꼴이라 보아도 무방, 아니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때로는 그러한 방식도 필요한 법이 아니겠소.”


이자성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듯 말하니 우금성은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그를 보며 물었다.


“불이 붙으면 그 불길은 어디로 향할지 모릅니다. 천하를 삼키려고 멈추지 않고 달릴 것이니, 그 불길의 끝에 살아남는 것은 어디일지 모르나 가장 먼저 덮칠 곳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순나라겠지.”


그 정도는 알고 있다고 대꾸하니 우금성은 알고 있음에도 이리 태평한 이자성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여 물었다.


“외람되지만 묻고자 하니, 혹여 그 자리에 서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까?”

“하하,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보이지 않소.”


이자성이 가벼이 웃으며 대답하나 우금성은 그것으로 부족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러한 얼굴을 마주한 이자성은 재지 않고 다음 말을 입에 담았다.


“다만 정왕이라는 자리, 아니 단체를 이끄는 장이 되어서 살다 보면 직감할 때가 있소. 일종의 흐름을 안다고 해야 하나?”

“조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어찌 끝날지 안다, 그 말씀이십니까? 정녕 그렇다면 그 끝은 순나라에 이롭겠습니까?”

“아니.”


기대를 담아 물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부정하는 단답과 고개를 가로젓는 행동이니 우금성은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 그가 무어라 더 말하기 앞서서 이자성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착각하는 거 같아서 바로잡자면, 내가 느끼는 직감이나 흐름은 조선에 관한 게 아니요. 이대로 있으면 다시금 전쟁을 해야 하며 순나라가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거지.”

“······.”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이번에 정전이든 화친이든 반드시 이루어지길 바라서 조선에 굳이 이렇게 다녀가고 있던 참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결과가 바라던 적극적 개입이 아니다.


아니, 적극적인 개입이라면 개입이긴 한데 그 방향성이 전혀 달랐다.


이는 이자성도 잘 알고 있으니 이어지는 말에는 그 점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분명 조선이 하려는 일은 우리가 바라던 일은 아니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은 걸지도 모르오.”

“그래서 좋다? 저런 일이 말입니까?”


입에 담기도 껄끄럽다고 하듯 생략하여 묻는 말에 이자성은 진심을 담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고작 화친 정도로 원하는 것을 얻기가 어렵소. 명줄이 조금 더 길어질 따름에 불과하니, 이 정도로 파격적이고 미친 안건이 나오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소이다.”


말을 마친 이자성은 이제 보이지 않게 된 이들, 조선 사람들이 있는 방향을 힐끗 보며 말을 덧붙였다.


“천지가 뒤집어지는 일이 있다면 응당 생명력 질긴 자가 살아남기 마련이지.”



***



“믿을만한 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밤이 깊었으나 이제 곧 있을 회담을 생각하면 일찌감치 잠들기란 힘든 법이다.


하여 늦은 밤에 이런저런 말을 나누어 보고자 마련한 자리에서 대뜸 들려온 물음에 소현세자는 빙그레 웃었다.


“그럴 리가. 가슴에 야심이 있는 자는 믿을 수 없는 법이라고 역사가 증명하고 있소.”


이자성이며 순나라를 믿지 않는다는 말에 산둥 아문 첨정 송시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동감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번에 모인 이들 가운데 가장 찬동할 뜻을 소극적으로나마 보일 이가 그뿐이라는 것 역시 명백하지.”

“훌륭하십니다.”


순수하게 감탄하여 대답한 송시열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저하께서 이리 영명하시니 아국의 앞날이 실로 밝다고 하겠습니다.”

“괜한 말은 되었소. 나라 이끄는 일에 임금의 역할은 매우 지대하나 대신하지 못할 일은 아니오.”

“위험한 말씀을 이르시는군요. 저를 시험코자 하시는 겁니까?”


인군의 위엄을 손상케 하는 것은 금기 가운데 금기라고 할 수 있으니 그것은 세자라고 한들 변함이 없다.


그러니 아무리 여러모로 명성을 날리며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한들 결국 일개 신하에 불과한 송시열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시험이라니, 섭섭한 말씀을 하시는군.”


이에 소현세자는 가벼이 웃음 지으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그리고는 진중한 얼굴로 말을 이어가니, 그는 먼저 이 일이 자신의 개인적인 발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미리 말하지만, 이는 이미 한양에 있을 무렵 성상께 들은 말이오. 물론 처음에 들었을 때는 나도 그대처럼 생각하고 말했다오.”


자신과 같은 반응이었다는 말에 송시열은 먼저 친밀감을, 이어서는 궁금함을 느꼈다.


“임금이 할 말이 아닌 거 같소? 나도 그렇게 생각하였소. 그리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지. 그런데 듣고 살피니 또 그렇지가 않더군.”

“살피었다?”


마치 그러한 예시가 이미 존재한다고 하듯 이르는 말에 송시열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허나 그도 잠시, 송시열은 그 예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청나라가 그와 비슷한 상황이었지요.”

“그렇지.”


작금 청나라는 순치제 아이신기오로 푸린이 아직 장성하지 못하여서 사실상 도장 찍는 일 말고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나라는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차근차근 나라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북경을 제압한 것은 선대가 한 일이라고 하나 이후에 화북 지역을 제 것으로 삼는 일이며 부흥하는 일은 당대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모두는 순치제의 이름으로 행하여 지나 순치제의 의견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대신하여 그를 보좌한다고 하는 섭정친왕회 그리고 북경과 낙양에 있는 두 친왕의 뜻이 들어 있었다.


이러한 이치며 상황을 살피면 분명 저들은 지엄한 황제의 자리를 여럿이 대신하고 있었다.


“청나라는 이미 머리가 여럿인 나라가 되었소. 황제가 있음과 별개로 머리들이 움직이며, 그러함에도 황제의 권위는 하나도 상하지 않고 있지. 어쩌면 그 전대보다 더욱 단단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거요.”

“전대 청나라 황제가 즉위 초기에 암투하였다는 말을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 후에도 기반 다지기를 하였다는 말도 들었지요.”

“그렇소. 전자는 지금 황제도 있었으나 적어도 피는 보지 않았으며 후자는 무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알아서 다져지고 있지.”


청나라의 어린 황제를 무시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이는 소현세자도 알고 송시열도 아는 일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근본은 제하면 바꾸지 못할 것이 없음을 이미 주장한 분이 내 눈앞에 계시오.”

“······인의학의 도리로 저들을 설복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에 물으니 소현세자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걸 들으면 맹자께서 그렇게 고민하며 궁구하셨겠소? 지금 모인 이들은 왜 이득을 논하느냐고 하면 그것 말고 뭐가 중하냐고 할 사람들이 아니외까.”


잠시 말을 그친 소현세자는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여 그들에게 인의를 논하며 유학적 도리로 전쟁 그치고 덕치를 펼치라고 할 생각은 없소이다. 어차피 안 들을 게 뻔하지. 아니, 반대로 내가 저들 자리에 있다면 역시 눈과 귀를 가리고 들은 체도 아니 하겠지.”


자신 역시 다르지 않다고 토로한 소현세자이나 그것은 포기 선언이 아니었다.


이는 반대로 각오며 다짐을 강하게 드러내는 일이었다.


“다만 인의학처럼 가장 중요한 것이 바뀌지 않으면 그것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오. 중심되는 것을 제하면 모든 걸 대체하고 바꿀 수 있는 법이 아니겠소이까.”

“옳은 말씀입니다. 다만 저하께서 생각하시는 중심되는 것이 무엇인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알면서 물으시는 거 같소만?”


장난스레 웃으며 묻는 말에 송시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하나마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기는 합니다. 하여 그것이 옳은지 확인코자 합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니 말입니다.”

“실로 현명하신 말씀이오. 과연 첨정은 송자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분이외다.”

“크흠.”


종종 그렇게 불린다는 걸 송시열 역시 알고 있으나 그렇다고 한들 여전히 불편한 것은 가시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헛기침하니 소현세자는 그만 놀리고 대답해 주었다.


“천자와 덕치요.”



***



“이렇게 보니 전보다 훤칠하게 변했군. 그래, 잘 지냈는가?”


회담장에서 소현세자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건넨 이는 다름 아닌 청나라 사람으로 가장 높다고 할 사람인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었다.


그의 반가운 인사에 소현세자는 예를 갖추어 대답했다.


“예친왕 전하께서도 강녕하신 듯하니 실로 기쁩니다. 북경 다스리는 일에 이언이 많아 심화가 크실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고 순조로운 듯하니 참으로 기쁘고 다행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언이라. 그래, 적지 않기는 했지.”


도르곤이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하니 소현세자는 그를 잠시 살폈다.


이윽고 살피기를 마친 소현세자는 평이한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예친왕께서는 어떠한 결과를 바라십니까?”

“바라는 결과는 있는데, 그것이 이루어질지는 잘 모르겠군. 아무래도 만만치 않은 상대가 하나 생긴 거 같아서 말이야.”

“저런, 안타까운 일입니다. 뜻있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응당 합하여 훌륭한 결론을 냄이 마땅하거늘 대치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말입니다.”

“여전하군, 여전해.”


졌다는 듯이 고개를 흔든 도르곤은 이내에 서늘한 눈으로 물었다.


“하나만 묻지.”

“무엇이든 물으시지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면 충분하오.”


하나면 족하다고 한 도르곤은 날카로운 눈으로 소현세자의 언동 하나하나를 기억하겠다고 하듯 살폈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도르곤의 입에서 질문이 나왔다.


“조선왕은 이 일에 얼마나 개입하고 있지?”

“제가 하는 말은 조선의 임금을 대신합니다.”

“과연.”


알겠다고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도르곤은 몸을 돌렸다.


‘쉽지 않은 하루가 되겠군.’


그저 직감, 근거가 없이 그저 그렇게 생각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감은 제대로 맞아떨어졌으니, 그간 오갔던 영양가 없는 이야기 후에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발언권을 얻기 시작한 순간 그건 현실로 드러났다.


“조선은 지쳤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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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68 ageha19
    작성일
    24.08.08 21:29
    No. 1

    "조선은 지쳤다"... 이제와서 외교적 노력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닐테고, 오히려 천하를 두고 헛되이 소모전만 계속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얘기인 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5 g9******..
    작성일
    24.08.09 07:29
    No. 2

    와..조선은 지쳤다..저게 갑자기 '중대장은 실망했다.'로 보였었어..ㄷㄷ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53 K.S
    작성일
    24.08.11 17:23
    No. 3

    미어캣은 실망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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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 662화 달갑지 않은 방법 24.08.20 71 11 14쪽
662 661화 하늘 아래에 있는 세상 +2 24.08.19 70 12 13쪽
661 660화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다 +2 24.08.16 85 11 13쪽
660 659화 밝기 전이 가장 어둡다 24.08.15 79 14 12쪽
659 658화 현재만이 전부가 아니다 +3 24.08.14 72 14 12쪽
658 657화 두 마리 토끼 +1 24.08.13 87 10 13쪽
657 656화 끼어들 준비 +1 24.08.12 79 12 12쪽
656 655화 공정한 땅 +3 24.08.11 80 11 13쪽
655 654화 천하를 가둘 울타리 +3 24.08.10 88 12 12쪽
654 653화 천자론 +6 24.08.09 87 12 12쪽
» 652화 대신할 수 있는 자리 +3 24.08.08 82 11 12쪽
652 651화 천하를 다스리는 자격 +3 24.08.07 86 11 14쪽
651 650화 언제나 진심인 사람들 +2 24.08.01 86 9 12쪽
650 649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2 24.07.31 80 10 13쪽
649 648화 고장난명 +2 24.07.30 78 11 12쪽
648 647화 시작과 지속은 쉽지만 끝은 어렵다 +1 24.07.28 78 11 12쪽
647 646화 시시비비 +1 24.07.27 83 11 12쪽
646 645화 화전(和戰) +1 24.07.26 85 12 12쪽
645 644화 그들의 책임 +1 24.07.25 77 13 12쪽
644 643화 합의에 필요한 숫자 +1 24.07.24 79 12 11쪽
643 642화 내세울 만한 이 +1 24.07.23 83 13 12쪽
642 641화 빛이 보이면 다가간다 +2 24.07.21 93 14 12쪽
641 640화 스스로 서기 위하여 +2 24.07.20 90 14 12쪽
640 639화 고난 끝에 얻은 것은 +1 24.07.19 86 15 12쪽
639 638화 좋고 싫고는 중요하지 않다 +2 24.07.18 89 15 12쪽
638 637화 호언장담 +2 24.07.17 85 14 13쪽
637 636화 원동력 +1 24.07.16 83 13 14쪽
636 635화 버림받은 자의 각오 +2 24.07.15 77 14 13쪽
635 634화 뒤틀린 믿음 +1 24.07.14 94 15 13쪽
634 633화 파도는 변덕스럽다 +1 24.07.10 86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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