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운명 제2화
"으차.."
난간에 올라 내 옆에 앉아 버리는 그녀..
............
"너 진짜 뛸 거냐?"
"응.."
"흠.."
"왜? 겁나?"
"겁나긴 무슨.."
긴장되어야 할 상황이.. 참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
이건 무슨 죽으려고 올라선 모습이라기 보단..
한강을 감상 하려고 난간에 앉아있는 다정한 커플의 모습 아닌가..
...........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르고..
그녀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저씨.."
"왜?"
"손 줘봐.."
얌전히 손을 건내자 그녀는 내 손을 살짝 움켜 쥐어버린다.
"마지막으로 할 말 있어?"
나에게 묻는 그녀..
"할 말?"
"응.. 이제 떠나니까.. 가장 하고 싶은 말 딱 한마디만 해봐."
"............"
"없어?"
"어.."
딱히 떠오르질 않았기에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다.
"나도 없는데.. 그럼 그냥 뛰자. 준비됐지?"
헛..
뛰어 내리려고 마음먹고 올라선 나였는데..
막상 그녀의 말에 심장이 뛰기 시작해 버린다.
"자.. 잠깐.. 하.. 할 말 있어."
"그래? 그럼 빨리 해.."
"저.. 그게.. 그러니까.. 어.. 그게.."
아.. 생각이 안 난다.
뭔가 떠올려 내야 할 거 같은데..
"뭐야.. 할 말 없는 거 같은데.."
"............."
"자.. 그럼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뛰는 거야.. 알았지?"
헛.. 얘는 뭐가 이렇게 성급한 거야..
마음에 준비도 아직 다 안됐는데..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그녀는
허공에 대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있었다.
"하나.."
아.. 안돼!!
생각해 보니까..
"둘.."
아직은 아냐.
"아.. 안돼.."
"셋~"
쿵..
"아~~"
그녀와 함께 추락한 곳은.
역시나 강물 쪽이 아닌 도로 쪽이었다.
이번에도 나에겐
죽을 용기 따윈 생기지 않았다.
............
"아.. 뭐야.."
그녀가 일어나면서 불평을 한다.
"............"
할 말이 없었다.
"에이씨.. 아파 죽겠네."
"............"
그나마 내가 밑에서 쿠션 역할이라도 해줘서 덜 아픈 줄 알아라 얘야..
이 아저씬.. 머리가 띵하구나..
사실.. 떨어질 때 땅바닥에 머리를 살짝 찧었던 나였다.
"할 꺼야 말 꺼야?"
당돌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쏘아붙이는 그녀..
"뭘?"
"뛸 꺼냐고 말 꺼냐고.."
"............"
"안 뛸 꺼구나?"
"어.. 그냥 내일 뛸란다."
"뭐야.. 순 겁장이였네.."
"그래.. 겁장이다. 막상 뛸라니까 무서워서 못뛰겠다. 됐냐?"
".............."
내가 왜 이런 꼬마한테 이따위 변명이나 하고 있어야 하는건지..
에휴.. 답답하다.
"너나 뛰어봐. 겁 안 나나 본데.."
"싫어. 아저씨도 안 뛰는데 내가 뭐하러 뛰어.."
"뭐야.. 너도 무서운 거구만."
"그러니까 같이 뛰자는 거였잖아. 같이는 뛸 수 있어."
"난 싫어.."
"이씨.."
............
오랜만에 보는 여자의 화난 표정..
지연이의 뾰루퉁하던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나 배고파.. 밥 좀 사줘.."
옷에서 먼지를 털어내며..
터무니 없는 요청을 해오는 그녀..
"니 밥을 내가 왜 사줘?"
"그냥 좀 사줘. 지갑 아까 강에 던져 버려서 지금 돈 하나도 없어."
"............"
에휴.. 불쌍하게 왜 이래..
그냥 돈 쥐어주고 보내 버릴까?
괜시리 엮였다간..
뭔가 피곤한 생활이 시작 될 거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야.. 이 돈 줄 테니까 가면서 알아서 사 먹어. 난 그냥 집에나 갈 테니까."
"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거지야?"
"............."
그냥 받고 좀 가지..
왜 이래 귀찮게..
"됐어. 귀찮은가 본 데 알았어. 그럼 잘 살어. 아니 잘 죽어.."
그러고는 뒤돌아서 가버리는 그녀였다.
.............
에휴.. 내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착한 짓 한번 해보자..
"야.."
멀리 가고 있는 그녀를 불러버린다.
"해장국 두 개 주세요.."
해장국 집에 들어와 주문을 했다.
딱히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 혼자 먹기에 민망 할 거 같아 내 것도 같이 주문해 주었다.
"아줌마.. 찬 이슬도 한 병 주세요."
소주를 시켜버리는 그녀..
............
갈수록 가관이군.
담배에 술에..
누군지 몰라도 부모님 속은 문드러 지겠구만.
"야.. 너 나이도 어린 게 무슨 술이야? 아줌마 아니에요. 해장국만 주세요."
"에이씨 진짜.. 나 애 아니라니까."
"그럼 민증 꺼내봐."
"얘기 했잖아. 지갑 버렸다고.."
"원래 없으면서 지갑 핑계는.."
"아.. 아저씨 은근 사람 짜증나게 하는 스타일이네."
"..........."
"믿든 말든 맘대로 하고.. 암튼 아줌마 찬 이슬도 갖다 주세요.."
"네?"
그러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는 아줌마..
"한 병 주세요.."
포기했다.
하긴 뭐 얘가 술을 먹든 말든 뭔 상관이냐..
어차피 밥 먹고 헤어지면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아저씨.. 머리에 피나.."
내 이마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녀가 말했다.
피? 왠 피?
슬쩍 머리에 손을 가져가 본다.
"아니.. 옆에.."
그녀의 지시대로 옆 머리로 손을 가져다 대니..
살짝 축축함이 느껴져 왔다.
"아.. 이런.."
성급히 앞에 있던 휴지를 꺼내.. 머리에 댄다.
그리곤 현관 쪽의 거울로 다가가 확인해 본다.
............
흠.. 아까 다리에서 넘어질 때 생긴 상처인가 보군..
다행히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찝찝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
해장국 먹고 병원에 잠시 들러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차비는 줄 테니까.. 이거 먹고 얌전히 집에 돌아가라."
"신경 꺼.."
"너.. 혹시 가출했냐?"
옷차림새나 하고 있는 짓 들을 보아하니..
영락없는 가출 청소년이다.
"신경 끄라니까.."
"야.. 나도 너 같은 사춘기 겪어봐서 아는데.. 그거.."
"아 시끄러 진짜.. 조용히 좀 하라고.."
결국 승질을 내버리는 그녀..
"............"
아.. 짜증 나네 이거..
기껏 배고프다고 밥 사주고 술까지 사줬더니.. 뭐가 어째?
"야.. 너 근데 아까부터 왜 반말이냐?"
"왜? 존댓말 해줘?"
"됐다."
후.. 이건 뭐 말도 안 통하고..
답답한 마음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어 버린다.
............
잠시간의 침묵..
그녀는 말없이 소주잔만 연거푸 기울이고 있다.
뭐야.. 건배라도 하자고 하던가..
왜 혼자 마시고 난리야..
"어이.. 같이 한잔 할까?"
그러면서 그녀에게 건배를 청했다.
..............
내 말을 못들은 건지.. 무시하는 건지..
고개 숙인 채.. 아무런 미동도 없는 그녀였다.
"아줌마.. 여기 찬 이슬 한 병 더 줘요.."
.............
또 한병을 시키는 그녀였다.
"개자식.."
............
조용히 술만 마시던 그녀의 입에서 뜬금없이 욕이 터져 나온다.
"뭐?"
설마 나한테 한 건 아니겠지?
"개새끼.."
...........
고개를 숙인 채 내뱉는 욕인 걸 보니.. 나는 아닌데..
흠.. 실연 이라도 당했나?
딱 봐도 남자한테 버림받은 여자의 모습 같은데..
잠깐의 욕설 후..
또다시 술잔을 들고 마셔 대는 그녀였다.
"야.. 여기 차비.."
계산을 마치고 나니 내 주머니에도 그녀의 차비 정도 되는
만오천원 정도만이 남아버린 터였다.
"필요 엄써.."
이미 한참 전부터 혀가 꼬부라진 그녀..
당연히 몸도 재대로 못 가누고 있었다.
.............
그래.. 택시나 빨리 태워 보내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받아. 그리고 너 집 어디야? 택시 잡아 줄 테니까 얘기해봐.."
"집 없어."
.............
"장난하지 말고 빨리 얘기해. 무슨 동이야?"
"없다니까.."
...............
진짜 가출 했나 보네.
집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싫은가?
"야.. 나 피곤해 죽겠다. 빨리 타고 좀 가라.."
"그냥 가.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
그럼 고맙지..
진작 그렇게 얘기하던가..
"그래? 알았다 그럼.. 그래도 이건 줄 테니까 알아서 택시 잡아서 타고 가. 알았냐?"
"아.. 진짜.. 알았어. 알았으니까 가.. 좀.."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짜증이 섞인 말투로 나에게 신경질을 내고 있는 그녀..
결국 난 그녀의 손에 돈을 쥐어 주고는..
후다닥 그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
그래.. 뭐..
알아서 잘 기어들어 가겠지..
안 그래도 심란한데..
남에 일까지 신경 쓸 필요 뭐 있어?
가자..집으로..
가서 내 걱정이나 하자.
또다시..
악몽의 시간을 맞이해 보자 김봉구..
우당탕~
멀찌감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
.............
왠지 불안하다.
그녀가 쓰러진 게 아니길 바라면서..
슬쩍 돌아 보았다.
아.. 젠장할..
얘 왜 이래 진짜..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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