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췌장암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수술에 실패한다면 반년밖에 사실 수 없습니다."
"내가 반년밖에 못 살 거라고요? 하하, 하하하!"
너무 고통스러우면 웃음이 나온다고 하던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정치 생활 삼십여 년.
오로지 대통령이라는 한 길만 바라보고 걸어왔다.
그 결과 4년 전 유력 대선후보가 되었지만.
0.5%의 득표 차로 당선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으니 다시 도전한다면.
대통령 당선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 대선 후보 지명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췌장암에 걸리다니.
지금 상황이 허탈한 나머지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뭔가 할 수 있긴 한 것일까.
길어야 반년이면 죽는다고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미치겠군."
문을 열고 나와 터벅터벅 병원 앞으로 나가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저렇게 일하기 싫다는 티를 내며 내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분명 내가 이 병원에 왔다는 것을 알고 찾아온 초짜 기자겠지.
"기자 분입니까? 인터뷰할 생각 없습니다."
"기자? 저는 그런 직업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기자가 아니라고요?"
나와 초면인 사람 중 기자가 아니라면 대부분 두 부류 중 하나다.
나를 좋아하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
그런데 이 사람은 뭔가 달랐다.
일하기 싫다는 티를 내면서 오는 것을 보면.
내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나를 찾아온 이유는 분명 일을 위한 것이 분명한데
대체 무슨 일을 위해 찾아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슨 일을 위해 저를 만나러 온 것입니까."
"당신의 환생을 돕기 위해 온 것이지요."
"환생?"
...아무래도 내가 잘못 판단했던 것 같다.
나는 오늘 처음 만난 거지만.
이런 방식으로 포교를 하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지금 만난 사람은 그런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 거 믿을 생각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신기하군요."
"...신기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 죽을 운명인데 죽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요."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죽을 운명인데 죽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췌장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리 말하는 게 뻔했다.
망할 의사 같으니.
내가 이 병원에 돈을 얼마나 쓰는데 이런 사이비 놈에게 정보를 팔다니.
팔아도 이런 놈에게 팔 정도로 내 정보가 값어치가 없는 정보였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를 믿지 못하시는 것 같군요.”
“하, 당신 같은 사이비를 못 믿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사이비라···. 하긴, 아직 보지 못하셨으니 그런 말씀을 하시겠지요.”
“...보지 못했다? 그게 무슨···.”
그는 아무 대답 없이 그의 옆에 있는 벽을 만졌다.
아니, 벽을 만지려 한 것처럼 보였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벽에 손이 통과했으니까.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당신 뭐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 사람은 맞는 것입니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환생을 도우러 왔다고. 자,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이런 광경을 보여줬는데 믿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대통령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그것만 얻을 수 있다면 지금 내 앞에 보이는 것이 천사건 악마건 거래에 응할 수 있었다.
내가 그리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물론 환생에 대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대가건···. 지금처럼 기회가 없는 것보단 낫겠지.”
“좋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대가를 쉽게 받아들이시겠군요.”
그는 그리 말한 후, 내게 환생의 대가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원하는 목표, 그것을 오십 살까지 달성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영혼이 소멸합니다.”
영혼이 소멸한다?
그게 대체 무슨 조건인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쨌건 오십 살 안에 대통령이 되는 조건을 내가 충족하지 못할 리 없다.
난 지금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까지 갔으니까.
“조건을 받아들이겠소.”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받으십시오.”
“이건?”
작은 알약.
이런 병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 알약을 먹고 오 분, 그 시간이 지나면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
“알겠소.”
그 말을 듣고 알약을 삼킨 그때였다.
“저, 저거 차가 왜 저래!”
병원 앞을 지나가는 차가 쏜살같은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차를 피해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커, 커억.”
차에 치인 것으로 큰 고통이 오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지금 이 알약을 먹었으니 환생은 순조롭게 이뤄질 테니까.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된다고?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대체 무슨 문제가 있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놈에게 묻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뭐, 환생은 되니까 인사고과에 문제는 없겠지.”
이것이 내가 살면서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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