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귀농했더니 국보급 관광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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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절미.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11.03 14:44
최근연재일 :
2024.01.10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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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칩의 요구사항

DUMMY

루팡플러스 사무실의 복합기가 오랜만에 종이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콘텐츠 수급매니저 브라이언이 진우진 작가의 차기작 <블루칩>의 기획안 인쇄하기 시작했으니까.


“진우진이라면 그 사람이잖아? 최근에 복귀한 그 작가.”

“맞아요. 복귀한 소설로 베스트셀러 1위도 찍었잖아요.”

“지금도 1등일 걸?”

“아, 그런 가요?”


제시카는 끊임없이 나오는 복합기의 요란한 소리에 불안한 듯 입을 열었다.

또 브라이언이 무슨 실수라도 한 줄 알았으니까.


“브라이언.”

“네?”

“2부 뽑은 거 맞아? 뭐가 저렇게 많이 나와?”

“네 맞는데···. 아 근데 대본까지 싹 다 인쇄 버튼 눌렀거든요.”

“대본?”


보통 OTT 플랫폼에 작품이 들어올 때는 기획안과 함께 대본 4부 정도가 들어왔다.

4부 정도로도 플랫폼 측에선 작품의 퀄리티를 판단할 수 있거니와, 작가의 입장에서도 완결까지 쓰려는 리스크를 굳이 감당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네. 12부작 드라만데 12부 다 보내셨더라고요.”

“무슨 소리야 브라이언. 보통 4부까지 보내지 않아? 근데 통으로 대본을 다 보냈다고?”


이와중에도 영어 이름은 꼬박꼬박 부르는 제시카였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흥분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네. 와, 이 작가님 이걸 언제 다 쓰셨지? 보통 작품 사이에 텀이 2년은 걸리지 않아요?”


브라이언의 감탄에 이내 냉정을 되찾은 제시카는 숨을 죽이고 말했다.


“놀랍긴 한데, 둘 중 하나겠지···.”

“둘 중 하나요?”

“어. 아주 예전에 써놓은 대본인데, 엄청 재미없어서 여기저기 돌다가 결국 우리 루팡플러스에 넣어놓은 거.”

“그게 아니면요?”


브라이언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게 아니면···.”


제시카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쓸어 올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는 멀찍이 복합기에서 나오는 종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 내림이라도 받아서 초인적인 힘으로 단 며칠 만에 후루룩 대본을 썼다던가.”

“···에? 그게 가능해요?”

“안 그러면 설명이 안 돼. 누가 전작 드라마가 방영도 되기 전에 다음 드라마를 집필해? 무슨 약이라도 빤 게 아닌 이상.”


브라이언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삐비빅! 삐비빅!


그 순간, 복합기에서는 종이가 고프다는 듯 신호음을 울렸다.


“뭐해! 얼른 가서 종이 넣어! 빨리 읽어보고 싶어 죽겠으니까!”

“아, 넵!!!”


루팡플러스의 콘텐츠수급팀은 오랜만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턱!


한부마다 스테이플러로 찍은 대본을 책상 위에 올려둔 브라이언이었다.

제시카는 마치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둔 듯 입맛을 다셨다.


“자, 그럼 읽어볼까···?”

“넵!”


두 사람은 그렇게 ‘블루칩’의 세계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

.

.


“···후아!!!”


고작 4부까지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마치 운동경기 하나를 뛰고 온 것처럼 온몸이 소진된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이거, 혹시 잘못 보낸 거 아니야?”

“네? 왜요?”


브라이언이 가쁜 숨을 내쉬며 물었다.


“이걸 넥스트림이 아니라 우리한테 보냈다고? 이 흡입력 쩌는 대본을?!”


제시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경을 벗었다.

그러자 안경을 썼을 때와는 달리 순한 외모가 드러났다.


“아, 아니에요 선배님! 메일에 분명 루팡플러스라고 써놨거든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바보야!”


괜히 또 한소리 듣는 브라이언이었다.


‘이건 무조건 돼.’


블루칩의 배경은 시골 고등학교였다.

모두가 잘 지낼 것만 같은 학급 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주인공.


‘시작은 평이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전학 온 학생으로 인해 주인공의 인생은 변화한다.

서울 전학생으로부터 주식에 눈을 뜬 주인공은, 자신이 주식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돈을 점점 불리기 시작하고.


‘게다가 충청도 특유의 특징까지 살렸어.’


주식은 존버라고 했던가.

충청도인의 느긋함에 주인공의 자산은 날이 갈수록 몰라보게 불어난다.

덕분에 못 보던 옷이라든가, 새로 산 핸드폰, 노트북 등은 학급 친구들의 시선을 달라지게 만드는데 기여하고.


‘점점 학교를 먹는다.’


같은 반은 물론이고 같은 학교 선배들까지 돈 앞에 군림한다.

점점 지역의 블루칩이 되어가는 주인공.

짜릿한 역전극을 보여주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도파민을 분비하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제시카. 이거 대본 다 안 봐도 딱 알겠는데요?”

“나도 그래. 박연지 피디한테 빨리 답장 보내.”

“네? 뭐라고요?”


제시카는 발등이 불이라도 떨어진 듯 말했다.


“뭐라긴! 루팡플러스 편성시키겠다고 얼른!!!”

“아아. 네!!!”


제발로 굴러들어온 황금은 얼른 잡아야 한다.

자칫 소문이 나면 넥스트림이든 다른 OTT든 괜히 복잡해지니까.


“밀당하면 돈으로 잡아. 알겠지?”

“네!!!”


* * *


나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예능 프로를 보고 있었다.

차기작 대본까지 다 썼으니 마음은 한결 여유로운 상태.

사실 되든 안 되는 크게 상관없었다.

나에겐 이미 집과 모든 것이 마련돼있었으니까.


‘박연지 피디는 플랫폼에 돌렸을라나?’


그녀에게 대본 파일을 보내고 나는 한 가지 조건만 걸었다.

모든 OTT 플랫폼에 대본을 뿌린 뒤, 가장 적극적인 곳에 편성시켜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박연지 피디는 Tns가 아니라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어차피 제작은 CX미디어니까.’


그쪽도 손해볼 건 없었다.


-띠링!


때마침 그녀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작가님~ 내부회의 마친 후 바로 OTT 쪽에 뿌려놨습니다~!]


‘좋았어.’


그리고 이어서 그녀의 한 마디.


[근데 정말 OTT로 가고 싶으세요? 채널도 가능한데 굳이 왜···.]


[다음 건 OTT로 하고 싶어서요. 큰 이유는 없습니다.]


그때였다.

문자를 보낸 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깜짝이다냥!


-왈!!!


벌써 진다방 오픈 시간이었다.

사실 지각을 해도 불평불만 늘어놓지 않는 손님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악의적으로 늦으면 안 되니까.


[네네 작가님. 어느쪽이라도 연락 오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


진다방에 도착하자 어르신들이 서있었다.

부쩍 허리가 조금씩 펴진 것 같은 어르신들이었다.


“이제 오남?”

“네. 기다리셨죠?”

“으응. 괜찮여.”


나는 얼른 문을 연 뒤 주문을 받았다.

날이 따뜻해져서인지 아이스커피의 주문량이 많아졌다.


그리고 잠시 후.


“야야야. 오늘은 자리 있다!”

“오, 가자가자.”


교복 입은 하교한 학생들이 다방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역시 혈기 왕성한 녀석들이라 그런지 목소리가 잔뜩 울려퍼졌다.


“아아 두 잔이요.”

“그래. 근데 너네 뭐하니?”


핸드폰을 보아하니 벌써부터 주식을 하는 녀석들이었다.

사실, 녀석들 덕분에 차기작 드라마에 영감을 받았긴 했다.


“주식이요. 아, 오늘 떡락했네.”

“야이씨! 니가 이거 추천했잖아. 아 괜히 들어가가지고.”


돈은 어디서 난건지 한숨을 푹푹 내쉬는 녀석들이었다.

그나마 불법 도박은 안 해서 다행인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간 녀석들은 테이블에 앉아 단숨에 그것을 들이켰따.


“아유, 그니깐. 불편해죽겠어 아주!”


이번에는 어르신들 테이블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어르신들의 고민은 보나마나 농사, 아니면 자식에 관한 것일터.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나는 커피 제조를 마치고 시간도 남아 어르신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말동무가 생기는 걸 언제든 반기는 어르신들은 나를 반겼다.


“아니. 서울 사는 할매한테 요 며칠전에 전화가 왔는데. 한참을 놀리는 거여 그래.”

“놀려요? 뭐를요.”

“거기 시골 사람들은 하루배송도 안되냐면서 말이여! 하루배송 그 있잖여.”


하루배송이라면···.

요즘 이커머스 업계를 주름잡는 루팡에서 시행하는 배달 서비스였다.

도시와 지방 몇군데만 가능한, 오늘 시키면 내일 바로 도착하는 혁신적인 서비스.


“그죠. 여긴 뭐 시키면 삼 사일 걸리니까요.”

“에구구. 시골 사는 게 죄지 아주! 우린 왜 안 시켜주는 겨.”


뭐라 위로해드릴 만한 말이 없었다.

애초에 나도 사료 시킬 때 불편함을 느끼던 바였으니까.


-띠링!


그때.

진다방의 문에 새로 단 종이 울려펴졌다.

함익평 이장님이었다.


“여기 있었구만 다들.”

“안녕하세요 이장님!”


뒷짐 지고 권력의 맛을 느끼면서 걸어오는 이장이었다.


“주문하시겠어요?”

“음. 난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응?

있을 수 없는 메뉴를 주문하는 이장님이었다.


“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뜨거운거요?”

“으응.”


얼추 추리했는데 맞았다.

이장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어르신들의 테이블에 합석했다.


“우리 함이장. 기분이 좋나벼.”

“그럼! 다 우리 현명하신 마을 사람들이 뽑아준 덕택이지!”


연초에 새로 시행된 이장 투표.

함익평 이장의 연임은 그가 왜 지금 기분이 좋은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뽑아주면 봉사를 해야지. 응?”

“봉사? 그게 무슨 말이여. 내가 얼마나 동네 일 열심히 돌보는데. 그걸 몰라줘?”


함이장은 서운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어르신들은 조금 전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이. 우리 마을은 왜 이렇게 택배가 안 좋아. 뭐 시키면 어쩔 땐 일주일이 걸린다니깐!”


그러자 이장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그건 대통령도 못 할 일이여요! 한낱 이장뿐인 내가. 어? 그 뭐다냐. 무슨 물류센터를 지을 수도 없고! 그런 건 나도 하고 싶어도 못 해유!”


맞는 말이었다.

함익평 이장은 물론 그 누가 와도 해결 못 할 일이었다.

도시 사람들만 누리는 인프라의 맛, 하루 배송.

시골 어르신들은 그것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뭔가 방안이 없으려나···.’


생각하던 그때.


-지이잉!


박연지 피디에게서 문자가 왔다.


[작가님! 루팡플러스 측에서 제일 먼저 답장 왔는데요?]


역시.

가장 급한 플랫폼에서 제일 먼저 답장이 온 건가.


[좋네요. 조건이 어떤가요?]


[지금 문자로 넣어드릴게요! 잠시만요!]


‘가만?’


뭔가 떠오른 나는 그녀에게 얼른 답장했다.


[하나 추가하고 싶은 조건이 있어서요.]


현실감은 없었지만, 한번 시도해볼만은 했다.


* * *


“제시카 선배!!!”


루팡플러스의 브라이언은 헐레벌떡 탕비실에 있는 제시카에게 달려왔다.

기분좋게 믹스커피를 마시려던 찰나, 그녀는 결국 종이컵을 내려놨다.


“왜 또 왜. 급한 거 아니면 호들갑 떨지 말랬지!”

“그게, 급한 건데요?”


얼마나 자신 있으면 저 깐족거리는 표정을 지을까.

제시카는 브라이언이 내미는 핸드폰의 문자를 확인했다.


“뭐야. 바로 회신왔어?”

“네! 진우진 작가가 미팅 한번 잡자고 하시던데요?”


그러자 활짝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 제시카였다.


“그래? 그럼 빨리 날짜 잡자.”

“아 근데요.”


갑자기 곤란한 얼굴을 하는 브라이언이었다.

괜히 불안해진 제시카는 똥씹은 표정을 했다.


“왜 또. 뭔데 그래?”

“그 작가님이 특이한 요구를 하나 해가지고요.”

“특이한 요구?”


보나마나 집필료 얘기겠지.

제시카는 혼자 단정하고는 믹스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고 탕비실을 나서려 했다.


“페이는 만나서 얘기하자 그래.”

“페이 얘기가 아닌데요?”


그러자 걸음을 멈추는 제시카였다.


“그럼? 뭐가 또 있지?”


미간을 찌푸린 제시카에게 브라이언이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저도 이런 요구는 처음인데···.”

“빨리 말해봐.”


제시카는 다시 종이컵을 내려놨다.

브라이언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까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진우진 작가님께서 지금 시골에 사는데요. 혹시 그곳에···.”

“응.”

“저희 루팡 하루배송 서비스를 해줄 순 없냐고 물어보시는데요?”

“뭐?!”


살다살다 이런 요구사항은 처음이었다.

드라마 대본을 내밀고 판돈으로 하루배송을 걸어?


‘뭐야 이 사람?’


제시카는 점점 더 이 작가에 대해 궁금해져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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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칩의 요구사항 +7 24.01.10 1,897 79 12쪽
50 루팡플러스 +3 24.01.09 2,245 96 13쪽
49 원대한 꿈 : 네버랜드 +2 24.01.08 2,605 104 17쪽
48 차기작 +6 24.01.07 2,730 105 16쪽
47 유명해지고 싶어요. +4 24.01.06 2,891 100 17쪽
46 드라마틱한 커피차 +5 24.01.05 3,125 117 18쪽
45 슈퍼푸드 +4 24.01.04 3,301 111 15쪽
44 진다방 오픈 +8 24.01.03 3,525 116 18쪽
43 스노우볼 굴러가유 +6 24.01.02 3,650 113 14쪽
42 대본 리딩 +6 24.01.01 3,769 115 16쪽
41 가짜 관광객 +1 23.12.31 3,972 106 17쪽
40 레시피의 단서 +4 23.12.29 4,125 118 18쪽
39 이거, 꽃놀이패였군요? +4 23.12.28 4,304 108 18쪽
38 재능은 꽃 피우는 거야 +3 23.12.27 4,471 121 15쪽
37 인생은 마법 같은 일 +5 23.12.26 4,710 121 15쪽
36 새해 맞이 특종 +4 23.12.25 4,880 126 14쪽
35 크리스마스 대소동 +5 23.12.24 5,102 127 16쪽
34 관광도시 프로젝트 23.12.23 5,226 121 16쪽
33 두 마리 토끼와 황금사자 +4 23.12.22 5,474 128 18쪽
32 마케팅 대결 +5 23.12.21 5,722 119 17쪽
31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3 23.12.20 5,908 129 17쪽
30 진우진이 돌아왔다고? +2 23.12.19 6,019 135 17쪽
29 정면 돌파 +12 23.12.18 6,146 130 16쪽
28 냉해 입은 존재들 +15 23.12.17 6,644 146 18쪽
27 유자와 탱자 +6 23.12.16 6,773 153 17쪽
26 허니 스위트 루왁커피 +4 23.12.15 6,927 147 17쪽
25 내가 자꾸 유명해진다 +7 23.12.14 7,278 148 16쪽
24 음악은 작물도 춤추게 해 +6 23.12.13 7,283 17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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