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만능 수도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완결

공장성소
작품등록일 :
2023.11.30 09:20
최근연재일 :
2024.04.07 18:5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6,229
추천수 :
315
글자수 :
416,508

작성
23.12.03 18:00
조회
1,236
추천
30
글자
12쪽

웨일스(1)

DUMMY

공왕을 신께서 보우하시길, 그의 아들은 주의 보호를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고, 내 약을 필요로 한다고 편지가 왔다.


어찌 명예로운 일인가. 오줌을 모아 그리스의 불을 만들던 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허리 춤에 단단히 묶고 천으로 감싼 뒤에 하던 연구를 제쳐두고 하루를 내리 이동하고, 성에 거의 다다르자, 내 조수가 내게 말을 건다.


"스승님. 공왕님의 아들을 고치러 가는데 긴장되지도 않나요?"


왕을 만난다는 게 걱정되는지 멍청한 질문을 한다.


"별을 주께서 수놓으시면서 별에 맞는 식물을 만드셨고, 몸은 작은 우주이니, 이에 맞추어 균형을 맞추면 고치지 못할 병이 없다는 걸 모르더냐?"


"...아. 네."


내가 한말을 곱씹는 건지 곧바로 대답하지 않는 녀석을 회초리로 계도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때릴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한다.


"이 풀이 뭔지 아느냐?"


"짚신 나물이요..?"


틀리면 멍청하다고 때리려 했지만 맞췄다. 네가 하나님께서 보우하심을 알아라.


"가자꾸나."


그냥 트집을 잡고 예절을 주입하기에는 성쪽에서 병사들이 다가온다. 계도에도 시간과 장소가 있지 않던가.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그위네드 공왕과 아픈 아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피곤해 보이는 그의 자세는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지 아십니까?"


"두통이 심한지 머리를 부여잡고 토를 하오. 그리고 눈도 잘 안 보이는 듯하고, 이따금 헛소리를 하오."


누운 아이는 손을 떨고, 신음을 흘리고,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다. 수도원에 보관된 고대 그리스 문헌에서 이런 사례를 본 적 있다. 두개골에 죽은 피-검게 죽은 살덩이라고도 했다-가 쌓여 압력이 높아져서 생겼다는 문헌이 있었다.


"머리에 죽은 피가 쌓인 모양입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머리를 쪼개고 검은 피를 들어내는 것일겁니다."


약간 고뇌하던 공왕은 이내 탄식을 내뱉으면서 말한다.


"...약사라고 들었소. 그렇다면 약을 파시오."


"그렇다면, 피를 다시 맑게 하기 위한 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강한 주정에 수은, 균형을 위한 산미나리와 로마에서 축복받은 향료를 담은, 불과 금속이 섞인 강장제를 담은 병을 건냈다.


"어떻게 먹이면 되겠소?"


"이발사에게 시켜, 피를 뽑은 후, 차가운 욕조에 잠시 들어가 마시면 됩니다."


조수가 그말을 듣고 안절부절 못한다. 귀족의 존재가 평민에게는 이리도 두려운 건가? 신께서 보호하시는 나는 이런 농노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대의 명성을 믿겠소. 베드로 수사. 고맙소. 쉬시오."


병을 병사 한명에게 건넨 공왕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한다.


그렇게 방으로 안내를 받는 중, 조수가 끝끝내 본인의 비이성적인 공포가 공포를 이긴듯, 귀엣말을 해온다. 어찌도 버릇없는지 만약 수도원에 있었으면 남색을 즐기는 수도사에게 버리고 왔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 주여. 저의 죄많은 생각을 용서하소서.


“스승님, 혹시 그 수은하고 산미나리 섞은 술은 아니죠?”


“맞다. 연금술의 완벽함을 상징하는 수성의 현현인 수은과, 시간을 관장하는 토성의 영향을 받는 산미나리로 그 흡수성을 늦추는 동시에 진통효과를 내었고, 술로 마귀를 쫓아내니, 혈액이 급하게 흘러 머리에 쌓인 병을 해결하기에 정확한 처치지.”


의문까지 표하다니. 주여 이 어리석은 아이를 도우소서.


“끄아아아아악!!”


녀석이 마귀를 토해내는 목소리로 포악하게 고개를 마구 흔들면서 소리를 마구 지른다.


“도대체 왜! 그렇게 수은을 좋아하는 건데!”


그 짧은 사이에 마귀가 옮겨 붙었나 고민하는 사이에 녀석은 손톱을 마구 물어뜯다가 손을 깨물고 다시 발광하다가 심호흡을 하고 조용해졌다.


병사가 원래 이러냐는 듯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굳이 조수의 명망까지 챙길 필요는 없겠지.


“자주 이러지는 않네. 고쳐지는 중이지. 빨리 방으로 데려다 주게나. 또 이럴까 두렵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병사는 뛰다시피 해서 우리를 방으로 데려갔고, 방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질문을 하려하기에 회초리를 잡았다.


“이 어찌 품위 없는 행동을 하나. 돌아가신 부모님께 부끄럽지도 않···.”


훈계가 필요한 시점이라 녀석의 말을 끊고 말했지만, 녀석이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통에 할말을 잊었다. 이게 어찌 사람의 얼굴이란 말인가.


“부모 뒤진 내 얘기 말고, 저기 멀쩡히 애비 살아있는 아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나 말해! 제발.”


이따금 치료가 잘 안 되면 화를 내거나 죽이려 드는 귀족을 생각하고 이렇게 두려움에 떨던 것 같다. 그럴 수 있지. 죽겠다 싶으면 사람은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하지 않던가. 암. 눈이 돌아서 안 때리는 게 아니다.


“나의 이름도 있는데, 나를 죽이지는 않겠지. 처방이 완벽하니 그럴 일도 없겠지만. 몇대 맞는 정도 아니겠나.”


성호를 그으면서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잇는다.


“나를 믿거라. 내가 헤이스팅스에서 살린 사람 수만해도 백이 넘는다. 수은을 잘못 쓰면 독성이 있는 것은 다들 아는 바 아니겠나.”


정복공이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는 결정적인 전투에서 내가 돌본 부상자들은 절반이 넘게 살았다. 그 뒤로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노르망디를 돌아다니며 병자들을 고쳐왔는데 내 약을 먹자마자 사람이 죽겠는가?


“그런 것보다, 그동안 공부는 얼마나 했는지 보자꾸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시간 정도 수업을 이어나가고, 성서와 라틴어를 함께 가르치던 중에 문이 굉음을 내며 부서지고 사람 하나가 패대기 쳐지고 그 뒤에서 웨일스 왕이 소리친다.


“베드로 수사! 어찌 세속의 사사로운 정치로 내 아들을 암살했소! 카드왈론은 내 유일한 아들이었단 말이오···.”


그리고 쓰러진 병사 뒤로 지옥의 겁화처럼 붉게 타오르는 그위네드 공왕의 얼굴은 나를 향해 있었다.


“그 어찌 불경한...! 도대체 무슨 소리요!”


분노로 제정신이 아님이 분명한 왕에게 항의했지만 웨일스 왕은 내 뺨을 후려치고 균형을 잃어 쓰러진 내 위로 침을 뱉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도 못하는 내게 왕이 살기 가득한 말을 잇는다.


“불경은 네놈이 한 짓이 불경이지. 어찌 주에게 서약한 자가..! 사생아 윌리엄 놈의 아들을 위해 내 아들을 죽인단 말인가! 내가 세번은 못 싸울 것으로 생각한 것이오? 아일랜드에서 배가 올 것이오. 그위네드의 제후를 장악했다고 끝이라 생각 마시오!”


그대로 칼을 뽑아 죽일듯이 나를 바라보던 왕은 떨리는 손을 다잡고 그를 뒤늦게 따라온 다른 병사들에게 방에 있는 모두를 잡아가라고 명령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잉글랜드 국왕 폐하를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내가 저 왕의 아들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 주여.”


주께서 흐릿해진 이성에 광명을 주시기를 바라며 읊조려 봤지만 충격 때문인지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다. 분명 나는 완벽한 처방을 했을텐데. 무엇이 잘못 됐단 말인가.


병사가 어깨를 붙들고 나를 질질 끌고 가던 와중 조수가 다시 몸부림치며 발광을 하며 엄청난 힘을 발휘해 내게 달려오더니, 허리춤에 달린 그리스의 불이 보관된 병을 뜯어내- 지금까지 이 병이 깨지지 않은 것은 진정 하느님이 보우하심인가?- 병사가 있는 곳에 던져버리자 하얀 섬광과 함께 조수를 잡으려던 두 병사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른다.


그리고 다른 병사들은 그 두 병사는 그를 구하려다 불이 옮겨붙어 함께 불타올랐다. 그 두 병사는 불운하게도 첫 병사들 처럼 빠르게 타오르지 못하고 죽여달라고 연신 애원하다가 돼지가 도살장에 들어가는 소리를 내며 죽었다.


“맙소사···.”


성호를 그으며 갑옷마저 불타오르는 병사들을 바라보던 나는 조수에게 뺨을 맞고 그가 이끄는 대로 달려, 변소가 이어지는 하수로를 지나 성 밖으로 달려나와 강을 미친듯이 헤엄쳐서 밀물이 드는 강에 휩쓸리다 보니 땅에 다다랐다.


뭍에 올라와 뭐라고 말하는 듯했으나,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달리기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깊은 숲까지 들어와서 조수는 멈췄고 우리를 따라오던 발소리도 함께 멈췄다.


뒤를 돌아보자 먼 곳에는 성은 타오르고 있었고 가까운 곳에는 병사 하나가 지친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발소리의 주인은 병사였고, 조수는 그를 보며 긴장한 듯 쳐다보자, 병사가 손을 마구 내저으며 말한다.


“잡으러 온게 아니라 같이! 같이 도망친 겁니다!”


한쪽 뺨이 퉁퉁 부어오른 병사는 이제는 손이 안보일정도로 내저으며 계속 말을 반복한다.


“그러고보니 우리랑 같이 잡혀가던 사람이긴 하네.”


“네. 네. 마법사님. 저도 거기 있었으면 죽었을 목숨인지라,”


“그렇겠지. 이해했어.”


조수가 긴장을 푸는 듯 말했지만 나는 납득하지 못했다. 아니, 상황 자체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느냐! 살인을 한 거다!”


분을 못참고 쏟아냈다.


“우리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걸 말했다면 충분히 살아서 나올 수 있을 것인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무모한 짓을 한거냐! 왜 이런 죄를 지은 것이냐. 이미 너의 삶은 힘들진데, 어찌 너의 손을 더럽혔느냐···. 내가 죽는다 할 지라도 아무런 관련도 없는 너는 살아서 갈 수 있었을진데···.”


살인하는 죄를 지으면 어찌 그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평생 영혼에 새겨져 잠에 들 때마다 몇번이고 떠오를 것이다.


“아직 스승님께 세례도 못받았는데. 죽을 수 없잖아요.”


“...그렇구나.”


그러고보니, 조수는 여러 이유로 보통 태어나자마자 받는 세례를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을 받으니 녀석에게는 아직 한번의 기회가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세례를 해줄 수는 없다. 나는 이미 죄인이 됐으니.



“나는 이제 세례를 못하는 몸이다. 대주교께 가자. 안셀무스 주교님께 부탁드릴테니 세례를 받거라. 그 분께 받는다면 너의 죄도 지워질 수 있겠지. 그 때까지는 참회하며 사는 수밖에 없으니 매일 기도하거라.”


나 역시 너를 위해 기도할 테니. 라는 말은 삼키고 조금은 건조하게 말한다.


“그러니 켄터베리로 가자.”


이에 쭈뼛이며 병사가 내게 묻는다.


“사제님이신가요...?”


“주님의 말씀을 수행하는 수도사일 뿐이네. 이제는 그마저도 내려놓고, 각지에서 사람들의 삶을 살필 뿐이지. 그러던 와중에 약초에 해박하여, 이름을 알렸고 그렇게 도움을 바라는 편지에 왔건만···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던가.”


한숨을 푹쉬자 병사가 다시 묻는다.


“그런데 왜 마법사···? 님이랑 같이 다니시나요? 불경한 것 아닌가요?”


병사는 완전히 조수 녀석을 마법사로 생각하는 모양인지 눈치를 한껏 살피며 속삭여 묻기에 그냥 약품일 뿐이고, 단순한 연금술이라고 하자 나까지 마법사로 생각하는 눈치기에 입을 다물었고, 고통스러울 정도의 침묵이 이어지던 와중, 병사가 말했다.


“저, 저는 존입니다요. 고귀하신 분들. 이제 어차피 살길도 없으니 죽을 때까지 모시겠습니다요.”


만약 저 화재가 웨일스 왕을 죽이지 않았다면 추격자가 붙을게 뻔하니 힘 좀 썼을 법한 병사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뭐가 됐든, 켄터베리에 가야만한다.


“그래. 나는 베드로 수사라고 하네. 베드로라고 부르게. 이 녀석은 올리버. 부디 우리를 고귀한 분이라고 부르지 말아주게. 우리는 모두 주님의 날개 아래 같은 사람 아니겠는가.”


“아, 알겠습니다 베드로님, 올리버님.”


경칭도 할 필요 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겁먹은 사람의 귀에는 뭐든 들리겠나. 그럴 시간에 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겠다.


숲속을 헤매던 중, 해가 한쪽에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갈길은 참으로 먼데, 영혼의 짐은 그 무엇보다도 무겁고, 가진 것은 무엇 하나 없다. 부디 이 여정의 끝에 용서와 따뜻한 포옹이 있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며 발을 이었다.


작가의말

데건위는 웨일스 서쪽에 있는 성으로, 서쪽에 강을 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서쪽에는 지금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귀디르 숲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중세 만능 수도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식을 올리다(2) +2 23.12.17 55 3 12쪽
21 식을 올리다(1) 23.12.16 74 3 12쪽
20 웨일스 병합전쟁(4) +2 23.12.16 62 3 11쪽
19 웨일스 병합전쟁(3) 23.12.15 55 3 12쪽
18 웨일스 병합전쟁(2) 23.12.15 51 3 12쪽
17 웨일스 병합전쟁(1) +1 23.12.15 64 2 13쪽
16 런던의 연금술사(7) 23.12.14 75 4 12쪽
15 런던의 연금술사(6) 23.12.14 69 2 13쪽
14 런던의 연금술사(5) 23.12.13 89 3 12쪽
13 런던의 연금술사(4) 23.12.12 76 4 13쪽
12 런던의 연금술사(3) 23.12.11 87 4 13쪽
11 런던의 연금술사(2) 23.12.10 97 4 14쪽
10 런던의 연금술사(1) +1 23.12.09 128 4 13쪽
9 수도사와 수도사의 문답 23.12.08 126 4 18쪽
8 전쟁을 늦추는 전령(4) 23.12.07 135 5 15쪽
7 전쟁을 늦추는 전령(3) 23.12.06 145 5 12쪽
6 전쟁을 늦추는 전령(2) 23.12.06 221 7 17쪽
5 전쟁을 늦추는 전령(1) +2 23.12.05 344 14 20쪽
4 웨일스(4) +1 23.12.05 379 14 11쪽
3 웨일스(3) +2 23.12.04 452 17 14쪽
2 웨일스(2) +2 23.12.04 692 18 15쪽
» 웨일스(1) +4 23.12.03 1,237 3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