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만능 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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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공장성소
작품등록일 :
2023.11.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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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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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런던의 연금술사(5)

DUMMY

올리버의 개소리는 제쳐두고, 그냥 가죽 주머니들에 들어간 여러 재료들의 연금술 적인 쓰임새를 올리버에게 가르쳐주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스의 불 같은 경우에는 만들어낸 게 너무도 신나서 말해줬지만 나머지 재료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야 얼마 전까지는 성경과 말부터 가르쳐야하는 아이였으니까. 다만, 이제는 완전한 어른으로 대해줘야하는 사람으로 변했으니 가르치는 내용도 달라야하지 않겠는가.


“너무 내용이 많아요. 어디 적어 놓을 곳이라도 없을까요?”


“적는다고···? 그럼 너가 적는 글씨부터 보자꾸나.”


펜과 잉크를 주니 나무판에 글을 적기 시작하는데 그 글자의 모습이 심히 일정하지 않은 것이 아직 어린 아이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함을 보이기에 따끔하게 혼냈다.


“글씨를 제대로 적지 못하면서 종이와 펜을 낭비할 생각을 하는 것은 사치하는 마음이 너에게 깃든 것 같구나. 좀 더 글자를 잘 쓰게 된다면 내가 하는 말을 책으로 엮어내도 되겠지.”


“네? 책이요? 아니, 그.”


아이는 책을 쓴다는 말에 크게 놀라서 말을 또 더듬기 시작한다. 천년 뒤 미래에도 책을 엮는 여자가 몇 없는 것인가?


“여자라고 하여 책을 엮는 데에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니. 그렇게 놀랄 필요 없다. 그래도 훌륭한 마음가짐이다. 미래에 모두가 기억하지 못할까 싶어 스승의 연구를 곧장 책으로 엮어내겠다는 건 감동이구나.”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던 올리버는 감동이라는 말을 듣자 약간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네. 정말 스승님의 연구를 책으로 만들고 싶네요.”


뭐가 됐던, 중요한 것이 아니니 곧바로 다시 채비를 갖춘다. 존 역시도 뭔가 주섬 주섬 챙기는 듯 보였지만 그냥 거슬려서 구석에 처박혀나 있고, 말한테 밥이나 먹이라고 하자 곧장 말에게 먹일 짚하고 당근을 가져다 준다.


먹을 당근도 얼마 없는데 말에게 가져다주는 꼴이 화가나서 팰까 생각했지만, 생각만으로 그쳤다.


“내 검은 잘 손질 해뒀더냐?”


세자루의 기사검을 바야드에게 선물해주고, 한자루의 검은 내 것이니 손질만 해두라고 했는데, 역시 기억하고 있던 것인지, 곧장 어디 마루 밑에 만들어둔 공간에서 검을 한자루 빼온다.


벌써 40년을 고치고 쓰고 고치고 쓰고를 반복하던 오랫동안 사용한 애검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균형이 잡히지도 않았고, 특별히 튼튼하지도 않지만 오래 써온 티가 나면서도 시간이 이렇게 지나도록 부숴지지 않은 이유는 웬만하면 검을 뽑지 않아서다.


일단은 검집과 가죽끈을를 조정해서 차보니 아직 차고 다닐만 한 것이 이번에 갈 때에도 차고 다녀야겠다 싶다. 도망다니면서 검이 필요했던 일이 얼마나 있던가. 물론 검이 없어서 그 누구와도 싸우지 않고 온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뿐만이 아니라 올리버도 지켜야하는 상황이니 들고 다니는 것이 안전할 듯 싶었다.


오랜만에 뽑아보는 검을 보고 마당에서 바야드와 몇번 검을 부딛혀보고 곧장 잠에 들었다.


아침에 해가 뜨는 방향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서 켄트 지방으로 달렸다. 존은 여전히 게으르고 사악한 습성을 버리지 못했는지 꾸벅꾸벅 졸았지만 딱히 말에서 떨어지거나 하는 천벌은 떨어지지 않았다.


달리면서 염장을 한 청어를 살짝 그을려 먹고 해가 질무렵에야 켄터베리 대성당 앞에 다다랐다. 올리버와 존은 내가 겨우 보일 거리에 두고, 성당에서 근처에 자란 나무 앞에서 말고삐를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니 평범한 옷을 입은 노인 한명이 말을 건다.


“베드로인가? 너무 젊은데? 자네 맞나?”


“안셀무스 대주교님 맞으십니까? 은하,(your grace) 어찌 이리 야위셨습니까···.”


노인의 눈은 탐욕으로 가득하다. 그 음습함이 내게 느껴진다. 평생 교리 탐구 책을 쓰게 하려는 정말로 두려운 사람이다.


“자네는 하나도 늙지 않았군. 그래서 편지의 내용은 사실인가? 정말로···!”


늙지 않았다는 말에는 환희가 있다. 더 오래 눈도 침침해지지 않고 책을 쓸 수 있다는 말이겠지.


“아닙니다. 단지 한 아이의 세례를 부탁하고 싶습니다만 그 누구에도 알릴 수 없는 사정이 있어 그렇습니다.”


내 말에 대주교의 들뜬 말투가 곧장 가라 앉는다.


“아이가 누구길래 그런 것인가?”


“이제 열한살이 되었는데도 세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대주교님. 공사가 다망하심을 압니다만, 제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야, 자네가 우리 수도원에 투신해주기만 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겠나?”


“그러기는 힘든 일을 아시지 않습니까.”


“이제는 한 수도원에 눌러앉아 회수도승이 될 때가 된 것 아니겠나? 내가 자네의 수도원장이면 어떤가. 정말 즐겁게 주의 진리를 찾기 위해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


베네딕트회의 수도사답게 은하께서는 내가 이제는 방황을 그만 둘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나의 방황은 세속을 떠도는 뭇 영광을 쫓는 수도사와 다른 헌신일진데.


“은하, 일단 아직도 죄의 무게에 고통받고 있는 아이의 죄를 씻어주시고 그것을 생각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래, 내가 뒷문을 열어줄테니 곧장 나의 집무실로 아이를 데려오게나.”


그래서 존과 올리버에게 손짓을 하니 로브를 뒤집어쓴 올리버와 그냥 멍청하게 겅중겅중 뛰어오는 존이 달려온다.


그대로 뒷문으로 고개까지 숙여가면서 달린다. 통금령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지는 않지만 조심해서 나쁠 일은 없으리라.


존은 문 앞에 세워두고, 집무실에 들어가자 물이 가득 채워진 커다란 은그릇이 중앙에 있었고, 그 앞에 안셀무스 대주교께서 모든 의복을 어느새 갖춰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이 아이더냐? 늦게도 주의 은총에 닿게 되었구나.”


곧장 이어지는 라틴어의 성사는 태어나면서 생겨난 인간의 원죄와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씻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찬이 이어지며 올리버에게 묻는다.


“아델리자의 딸, 정복왕 윌리엄의 손녀이자, 베드로 수사의 제자인 쁘호의 올리버, 너의 삶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주의 십계명을 지키며 살아갈 것을 맹세하느냐?”


원래 이어지는 성사와는 전혀 다른 질문이다. 원래 아이의 세례는 질문이 없이 기원하는 축문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안셀무스 대주교께서 알려드린 적도 없던 올리버의 출생을 곧장 밝히자 아이는 충격이라도 받았는지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대주교 은하께 고개를 들어 바라보기만 한다.


하지만 대답을 하려던 때에 나는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신성한 성사를 방해하고 끼어들었다.


“그리고 제 양딸입니다.”


안셀무스 대주교께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성사를 말하신다.


“베드로 수사의 양딸인, 만체의 올리버, 너의 삶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주의 십계명을 지키며 살아갈 것을 맹세하느냐?”


이번에는 올리버는 망설이거나 기다리지 않는다.


“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리고 주기도문과 성모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올리고 올리버를 곧장 물그릇에 빠뜨리신다.

그리고 이미 거의 졌던 해가 다시 떠오르기라도 한듯, 집무실 창문이 붉게 물드는 듯한 환상을 본 것 같다.


“좋다. 그럼 저 밖에 있는 청년은 왜 데려온 건가?”


존은 자기 입으로는 뉘우치고 싶다면서 내게 말을 했지만,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한다.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뱉은 적은 없으나, 이따금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음기 서린 얼굴이 이를 증명한다.


그냥 싫어하는 얼굴이라 그런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녀석은 지금까지 밥이란 밥은 전부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죄책감에 고통받는 자라고 보기에는 힘든 행동만을 계속한다. 오히려 죄책감을 이따금 눈에 띌때마다 연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셨던 안셀무스 대주교님을 만나는 데에 데려왔다.


“들어와라 존.”


“옙.”


빠르게 들어온 존을 두고 내가 말했다.


“안셀무스 대주교님. 이 청년은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죄인입니다. 또한 제가 뒤집어 쓴 죄의 장본인 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녀석을 데리고 회개를 시켜보려고 했으나, 하느님의 존재하심을 가르치는 데에는 더 영명하신 대주교 은하의 가르침이 필요할듯 싶습니다.”


“그게 사실인가? 내가 그 책을 집필한지도 벌써 20년이나 지났지만 청년 한명 정도야 설득할 수 있겠지.”


“제가, 주를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이 본인이 불신자라 인정하는 법이 없지만 그 눈에는 혼탁함이 보인다네. 너는 어떠한가? 솔직해져도 좋네. 내가 베드로 수사가 데려온 손님을 곧장 교수대에 매달기라도 할까?”


그렇게 들은 존은 그 말을 믿은 건지, 조금 달라진 표정으로 말한다.


“지식을 쌓을 수록, 주변의 사건들을 볼 수록 저는 주의 부재를 느낍니다.”


“그런가. 세상에 대한 이해가 점점 촘촘해지면서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보다는 이성적인 세상의 이해가 그 앞을 가린 것 아닌가? 이해를 찾기 위한 믿음이 필요한 시점이지 않겠나. 하지만 너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더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은하. 다만 제가 알면 알수록, 미혹을 떨치면 떨칠수록, 무엇이 미혹인지 모르게 됐나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거라. 한 존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는 짐승은 본인의 몸 정도다. 사람은 자신의 가족, 귀족은 자신의 영지를 통제한다. 그렇다면 왕은 자신의 국가를 통제하고. 황제는 여러 국가를 통제한다. 그 위에는 무엇이 있겠느냐?”


존이 조금 생각하다가 말한다.


“교황 성하인가요?”


그 말에 은하께서는 잠시 웃으시고 말을 이었다.


“속세의 권력을 넘어 주, 그러니까 예수님께 교회의 열쇠를 받으신 베드로의 권위를 받으신 교황 성하는 어떻게 보면 황제보다 높은 통제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서로의 영역이 다를 뿐 어느 쪽이 더 큰 범위의 통제를 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지 않더냐?


우리가 모르는 비가 오고, 번개가 치고, 바람이 불며 불이나고, 그런 자연의 법칙들을 통제하는 것 또한 존재하지 않겠더냐? 어찌 인간만을 범주에 두느냐?


그렇다면 너는 그 신비에 대해 모든 것을 알더냐? 그렇게 더 큰 범주를 찾고 찾다보면 가장 위대한 존재, 즉 우리의 하느님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떠하냐. 내가 너를 설득 시켰더냐?”


은하께서 풀어서 말씀하신 신의 존재증명은 벌써 20년은 지난 오래된 저서이다. 가장 강력한, 가장 넓은 존재.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것이고 그것이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내용이다.


이미 불신자인 존에게 과연 말이 닿을지는 모르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의 이해가 믿음을 잃었다는 사실은 안 것이 틀림이 없나이다. 하여 후회합니다.”


존은 눈물을 흘린다. 회개인지, 악어의 눈물인지는 모른다. 모든 것이 명쾌하게 들린다면 세상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로써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은하께 알리면.


“너는 이미 수도원에 있지는 않으나, 너 자신이 수도하고 있음은 틀림이 없구나. 이런 너에게 수도원에서 책만을 쓰라는 말은 가혹하겠구나. 하지만 약속해주겠나? 너가 이루고자한 바를 마쳤을 때, 부디 함께 책을 적어보자꾸나.”


수도서원은 벗어날 수 있음이라.


“약속하겠습니다. 저 역시 은하께 제 소견을 남김없이 전할 수 있을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비어있는 약속을 하면서 조금은 가벼워졌을 올리버의 마음에 축복이 있기를 기도한다.


작가의말

매일 오후 6시 연재입니다.


해당 안셀무스 대주교가 존과 나눈 말은 실제로 안셀무스 대주교가 하신 존재증명을 참고한 말입니다. 본래 원문은 첫번째로 위대한 존재는 있을 수 밖에 없고 이는 가장 위대한 존재, 즉 신이 존재한다는 말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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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의 연금술사(5) 23.12.13 90 3 12쪽
13 런던의 연금술사(4) 23.12.12 76 4 13쪽
12 런던의 연금술사(3) 23.12.11 88 4 13쪽
11 런던의 연금술사(2) 23.12.10 98 4 14쪽
10 런던의 연금술사(1) +1 23.12.09 129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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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쟁을 늦추는 전령(2) 23.12.06 222 7 17쪽
5 전쟁을 늦추는 전령(1) +2 23.12.05 344 14 20쪽
4 웨일스(4) +1 23.12.05 380 14 11쪽
3 웨일스(3) +2 23.12.04 453 1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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