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만능 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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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공장성소
작품등록일 :
2023.11.30 09:20
최근연재일 :
2024.04.0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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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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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식을 올리다(2)

DUMMY

주께서 이 땅에 도래하신 날짜에 노르망디 공작 전하의 잉글랜드 왕으로의 즉위식이 정해졌었다. 그 때의 나는 연금술을 열심히 연마하고, 여러 비밀들을 전수 받았지만, 이게 과연 연금술인지를 고뇌하고 있던 젊은 영혼이었다.


헤이스팅스 전투라는 거대한 사건이 지나고, 잉글랜드의 온갖 촌락들에 숨은 잔당들을 잡아내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죄악이 행해지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그것을 막고자 했지만 칼에 찔릴 뻔한 경험을 한 이후로 그냥 그 근처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고 있으면 어느정도 죄책감이 들어 멈추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쉽게 죄악의 길로 빠지는 것을 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찰하게 됐다.


인간은 처음부터 악한가?


그래서 이를 벗어나 고귀한 선함을 얻어내는 것이 어찌 아름다운 것인가 싶었다.


즉위식을 맞이해서, 윌리엄 폐하는 나에게 뭔가 멋있는 걸 해달라고 하셨다. 모든 것을 축복하는 그런 무언가를 바라셨고, 연금술을 연구하면서 이를 고민하다가 잠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목도하고, 들었다.


보아라.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거대한 목소리가 내 귀를 찢을 듯 파고 들었다. 눈이 타버릴 듯한 광휘가 나의 눈의 뒤를 넘어 뇌까지 녹이는 듯했지만, 상냥한 어둠으로 곧 그 빛이 약간 줄어들었다.


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어떤 상징이 보였다. 뭐에 홀린 것처럼 나는 연금을 시작했다. 아무런 정형화된 식도, 실험도, 무엇도 없이 어떤 손짓에 이끌린 것처럼 섞고, 태우고 그 위에 끓이고 별빛을 쬐고, 달빛을 쬐고, 태양 빛을 쬐게 했다.


일주일이 지나 손에 들려 있던 건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액체였다. 주의 성혈이 이렇게 빛났을까? 저 오래된 로마의 이교도들의 신들이 흘리는 피가 금빛으로 빛났듯이, 이렇게 빛났을까?


확실한 것은 하나다. 이건 주로부터 비롯된 신성한 물질이다. 감히 만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돌린다.


그런데 세상을 쪼갤 듯한 음성이 내게 명령한다.


마셔라.


아니옵니다. 저는 그리할 수 없나이다.


마셔라.


저는, 이런 위대함을 감당할 수···.


마셔라.

더 이상 그 음성을 거부할 수 없던 나는 몸을 파르르 떨면서 그 신성함을 내 더러운 몸에 흘려넣었다. 어느 정도 마신 뒤에, 음성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만 마셔라. 이제 나의 축복을 내가 도래한 날에, 모두에게 이를 보여주어라.


남은 액체는 얼마 없었다. 하지만 뭘 해야할지 나는 완벽히 알고 있었다.


즉위식이 다가왔다.


===


즉위식까지는 네달이 남은 시점에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즉위식 준비를 위해 여러가지 재료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선박들에게 여러 재료의 매입을 부탁했다. 런던 근처에서는 이미 많은 재료를 매입해서 이제는 가격을 너무 높게 잡는 상인들이 많아진 관계로 이런 식의 매입이 더 싸지는 수준이 됐다.


그나마 진작 많은 양을 사두었던 수은과 은, 금 정도가 사올 필요가 없는 물건이 되겠다.


거기에 폐하가 나의 물건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관세를 줄여주는 방안까지 마련해서 더욱 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9월까지의 죽을 것 같은 실험 끝에 만들어진 분량은 여왕 폐하께 드릴 양으로 충분했고, 다 자란 올리버에게도 줄만한 양이 충분히 나왔다. 거기에 폐하께서 배합을 알려주신 흑색 화약도 어느 정도 최적의 비율을 찾는데에 성공했지만, 베드로의 소금(초석)이 너무도 부족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그 위험성에 대한 실험과 취급방법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았다.


올리버가 미래의 야무진 아이디어로 쇠로 만든 관에 화약을 밀어넣고 불을 붙여서 금속 조각을 쏘게 끔 만든 무기를 만들었는데. 그대로 뒤가 터져버리는 바람에 죽을 뻔했다. 그리고 계속 뭔가 터진다는 소리가 난다는 상소를 들은 폐하께서 말을 타고 상기된 얼굴로 달려오셔서는 실물을 보자마자 가지고 싶은 영지를 찍으라며 난리를 내셨다.


속세의 영광은 제게 중요하지 않다며 사양했다.


이대로 노르망디에 볼일이 있어서 가지만, 즉위식과 대관식을 할때 나를 직접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다.


이 화약의 쓸모를 나름 찾았다. 신의 축복을 하늘에서 뿌리는 데에 꽤 멋진 효과를 낼것 같았다.


빛나는 금빛 물결이 굉음과 함께 대관을 받으시는 폐하 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어찌 상서롭지 않겠는가? 하지만 기적은 직접 만들고 보이는 것이 아닌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니 해서는 안 될일이다. 물론 폐하께서는 그렇게 좀 더 극적인 효과를 도모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화약의 군사적 효용성을 더 높게 산 것 같다


그 어떤 동물도 이런 식의 폭발력을 낼 수 없고 지금까지 발견된 어떤 물질도 이렇게 누군가를 죽이는 데에 효과적이고 효율적이고 작은 부분에 한하여 원하는 만큼 사용할 수 있었을 리는 없으니.


그리스의 불은 병이 부서지기만 해도 불타오르기 시작하니 불안정하여 수성전이 아닌 전장에서는 사용하기 힘들다는 것을 채득했다. 끄는 방법도 빠르게 흙을 덮어 끄는 방법 뿐이니까 안전을 위해 모래까지 수레에 실어 다니기에는 보급 소요가 너무 크다.


분명 만드는 법은 어느 정도 숙달이 됐지만, 그와는 별개로 성전에서 쓸만한 무기로 만들기에는 큰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실제 역사에서도 이것이 무기로 쓰이기 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으리라 생각하고, 공방을 떠난다. 주의 축복을 지상에 만들어낸다는 핑계로 예배를 본지도 너무 오래됐다. 그래서 안식일도 아니지만 수도원을 찾는다.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에 들어가자 길게 이어지는 예배당과 내부의 약초밭을 감싸는 네면의 벽을 돌게 된다.


그리고 오래도 알고 지낸 길버트를 만난다.


“이전 수도원장, 란프랑크 대주교-주께서 그의 이름을 축복하시길-께서 너를 여기에 박아버리신 덕분에 10년은 못봤구만 그래.”


“정말 오랜만이네요. 언젠가 당신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는데, 늙지는 않았어도 그렇게 말라버린 얼굴을 보니, 필시 전쟁의 열기가 당신의 정기를 뺏어간듯 보입니다.


안셀무스 대주교께서 안 그래도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길 잃은 어린양을 데리고 다닌다고 하셨지요.”


두리번 거리더니 저에겐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하고 중얼거리기에 말을 받았다.


“전쟁이 정말 사람의 모든 정기와 힘을 빼앗아가는 그런 인큐버스와도 같은 특징을 가졌다고 생각하네. 거기에 죄에 빠지기 정말로 쉬운 길이라. 정말로 힘들었네.”


“그랬습니까. 그냥 푸념만 하러 10년만에 왔을리는 없고,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길버트는 잡설은 그만두라는 듯 손짓하고 말하기에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폐하께서 성전을 나가시니, 섭정을 구하실 때에 자네가 지원할 수 있겠나?”


그는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안 그래도 행정업무의 어느 부분은 자네가 감당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이전에 봤는데, 도저히 그 붉은 윌리엄 왕자께서는 잉글랜드를 평화로이 유지하지 못할 것 같네.”


결국은 이미 정해진 섭정이 너무 말도 안되는 병신 짓거리를 했던 탓이라는 말에 길버트가 한숨을 크게 푹 내쉰다.


“알겠습니다.제가 직접 주청 드리겠습니다. 저는 성화도 그려야하고 책도 적어야 하며, 태피스트리도 만들게 밑그림을 만들어야 하고 잉크도 구해다가 삽화도 그려야 하는데다가 행정업무도 한 다음에 폐하께서 성전을 나가시면 제가 섭정까지 해야된다는 말이군요.”


“제자가 없는가? 제자를 시키면 되지 않나.”


그 말에 얼굴이 점점 사과처럼 붉어지더니 얼마전에 만든 화약에 불을 붙인 것처럼 폭발한다.


“그럼 너도 너 제자 시키던가! 왜 내가 그냥 런던 근처 수도원장이라고 이렇게까지 일을 도맡아야 하느냐는 말이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은 내가 속세에 뜻을 두는 방황 수도사라고 하던데. 전부 엿이나 처먹어라!”


“진정하게. 누구는 안 바쁜 줄 아는가?”


나도 전쟁이고 뭐고 다 했다고 말하려는 찰나에 길버트가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안 바쁘지. 사생아인지 뭔지 모를 녀석이나 끼고다니는 네놈이 뭐가 바쁜가? 폐하의 조언가로 활동할 때면 모를까. 연금술인지 뭔지하는 이상한 이교도 마술 같은 짓이나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잠시 말문이 턱 막혔지만, 곧장 반박할 수 있는 부분을 파고 들었다.


“사생아도 아니고, 제자이고, 양자로 들였을 뿐이네. 또한, 나의 연금술은 이교도 마술이 아니라 진정 주의 가르침을 물질화 하는 신성한 작업이네. 셀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고.”


“확실히 자네가 약으로 사람을 살리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긴했네, 최근에 그게 전부 공왕의 아들을 독살했다는 소식으로 변해버린게 문제지만. 이제 그도 죽지 않았나? 그냥 전쟁을 내기 위한 암살 아닌가? 주의 종으로 위장한.”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화가 나서 지껄이는 말이라고 흘리고자 했지만, 힘들어진 심신은 이런 말을 그냥 넘기기 힘들었는지 귀에 박혀버렸다. 법정에서 메아리 치는 선고음처럼 다시 들리는 것만 같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반박한다.


“정말로 내가 그런 간악한 인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길버트는 웨스트민스터의 수도원장이 되고 나서 부터 조금씩 잃기 시작하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생각하다가 진심을 담아 말한다.


“그렇지는 않네. 하지만, 만약 자네가 그럤다면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네. 자네가 진실로 주께 맹세코 그 아이를 죽이지 않았던가?”


“진실로, 나는 그 아이의 죽음에 관여하지 않았네. 오히려 살리고자 했었지.”


“그렇다면 됐네. 이 섭정 건은, 세속의 사람이라면 좋은 기회를 주어 고맙다고 했겠다만, 나는 그러지는 않겠네. 안 그래도 폐하가 바꾼 행정체계에 적응하느라 많은 일들이 미뤄진 상황이네.”


폐하께서 오신 미래의 행정체계를 적용이라도 한 건가? 아무래도 궁금해질 수 밖에 없는 마음에 나는 그에게 물어봤다.


“한번 볼 수 있겠나?”


길버트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그 긴 손가락을 내게 가리키며 말한다.


“보기만 하는 건 안 되네. 돕는다고 약속한다면 그리하지.”


“조금은 돕는다고 약속하겠네.”


책처럼 정리된 종이들은 일단 위에 년도가 적혀 있었다. MXCV. 모두 한곳에 도장으로 찍기라도 한듯 같은 공간에 찍혀있었다. 년도인가?


“이번 년도의 문서라는 뜻이지. 그 중에서 극히 일부를 내가 감당하고 있네. 서레이, 미들섹스, 그리고 허트포드셔의 문서지. ”


첫째 줄의 가운데에 년도, 그 밑줄의 왼쪽 끝에 그 샤이어(주)를 보여준다. 그 밑에는 그 주의 어느 백. 그리고 어떤 문제인지 적혀있다.


모든 법률 판결과 영지의 이동, 처분된 가축과 그로 인한 대금, 걷어야할 세금. 죽은 인원, 사인. 노예의 수까지.


“한 샤이어만 수백장이 나오는 군. 마치 둠스데이북과 비슷한 형식이네. 그래서 자네는 뭘 하는 거지?”


“정리된 판결과 세금, 그리고 실제로 걷힌 세금과 죽은 인원의 사인이 옆 백에서 보낸 사인과 일치하는 지를 대조한 후, 정식 보고를 올리네. 요즘은 수녀원까지 이 작업을 시킨다고 하네. 바킹의 수녀원에서도 이런 행정작업을 반복하고 있다지. 몇 사람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업무에 교황특사께 탄원까지 한 이가 있다네. 옥센포드셔였나? ”


효율적이다. 획기적이지는 않지만 종이의 물량만 충분하다면 할법한 시도다. 실제로 폐하께서 제일 먼저 지은 것들은 수차와 풍차로 돌아가는 제재소다.


“이런 식이면, 걷히지 않는 세금이 거의 없다시피 하겠군. 실제로 죽지 않은 이를 죽었다고 하기 위해서는 접경한 모든 백과 입을 맞춰야할텐데 한번이라도 감찰관이 방문을 한다면 잡힐 것이고.”


그렇게 감탄을 흘리면서 나는 이만 주께 기도드리고 가보겠다고 말했지만, 금방 잡혔다. 그날은 하루 종일 글씨만 썼던 것 같다. 그래도 기도는 드렸다. 그 와중에도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게 해준 주를 찬양했다.


작가의말

매일 오후 6시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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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82 바얀티무르
    작성일
    23.12.17 18:03
    No. 1

    미래인 월리엄씨에게 시달리는 영국의 수도사, 수녀들이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4 공장성소
    작성일
    23.12.19 06:21
    No. 2

    재밌게 봐줘서 감사합니다. 현대의 행정체계를 조금이나마 본뜨려면 글을 읽을 줄 아는 인원이 최대한 행정처리에 투입되어야 하다보니 그렇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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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식을 올리다(1) 23.12.16 74 3 12쪽
20 웨일스 병합전쟁(4) +2 23.12.16 62 3 11쪽
19 웨일스 병합전쟁(3) 23.12.15 55 3 12쪽
18 웨일스 병합전쟁(2) 23.12.15 51 3 12쪽
17 웨일스 병합전쟁(1) +1 23.12.15 64 2 13쪽
16 런던의 연금술사(7) 23.12.14 75 4 12쪽
15 런던의 연금술사(6) 23.12.14 69 2 13쪽
14 런던의 연금술사(5) 23.12.13 89 3 12쪽
13 런던의 연금술사(4) 23.12.12 76 4 13쪽
12 런던의 연금술사(3) 23.12.11 87 4 13쪽
11 런던의 연금술사(2) 23.12.10 97 4 14쪽
10 런던의 연금술사(1) +1 23.12.09 128 4 13쪽
9 수도사와 수도사의 문답 23.12.08 126 4 18쪽
8 전쟁을 늦추는 전령(4) 23.12.07 135 5 15쪽
7 전쟁을 늦추는 전령(3) 23.12.06 145 5 12쪽
6 전쟁을 늦추는 전령(2) 23.12.06 221 7 17쪽
5 전쟁을 늦추는 전령(1) +2 23.12.05 344 14 20쪽
4 웨일스(4) +1 23.12.05 379 14 11쪽
3 웨일스(3) +2 23.12.04 452 17 14쪽
2 웨일스(2) +2 23.12.04 692 18 15쪽
1 웨일스(1) +4 23.12.03 1,237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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