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만능 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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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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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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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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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연금술사(6)

DUMMY

캔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무스 은하께서는 더 이상 내가 그의 광인에 가까운 멈추지 않는 저서 집필 고난에는 쓰지는 못할 것 같으니, 얼른 밤에 몰래 가라고 하셨다. 대주교님께서는 밤에 순찰을 미리 쉬게 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밤에 움직이라고 까지 말했다.


이미 내가 수도원에 남지 않을 경우까지 준비한 용의주도한 대주교님의 계획에 전율하며 곧장 말을 타고 런던으로 달렸다.


그런데 어느정도 달리다보니 통금령으로 이미 닫힌 런던의 관문에 들어갈 방법이 없는 것을 깨닫고 중간지점에서 다시 야영을 한다. 야영준비는 안했던 탓에 도망치던 시절처럼 내 주머니에 있는 여러 도구로 임기응변을 해야했다.


“또 도망치는 것처럼 이렇게 자네요.”


자신을 짓누르던 죄의 무게를 세례로 떨쳐낸 덕분일까, 올리버가 드물게도 먼저 말을 한다.


“그러게나 말이다. 물론 아직도 그리피스는 우리를 쫓고야 있을 테니 아직 도망치는 신세가 맞지.”


그 원흉인 존을 바라보니 깊게도 생각을 하는지 작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느라 내 시선을 느끼지도 못한다.


“네. 전쟁이니 뭐니. 사실 잘 모르겠지만요.”


천년 뒤에는 28년의 삶을 살아오던 성인이 전쟁을 잘 모르는 그런 세상이 됐는가. 지금 같은 세상에는 전쟁 없는 인간의 삶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반란이든, 침략이든 정당한 전쟁이든 멈추지 않고 벌어진다.


“그게 좋은 거다. 평화를 지키는 게 더 어렵고 값비쌀 때가 있는데, 통치자는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단다. 그래서 폐하가 좋은 통치자라고 나는 생각을 했단다. 자신의 계승자를 척지에 넣는 한이 있어도 잠시간의 평화를 더 소중히 생각하시는 분이니까.”


“그런 것치고는 정복왕이라고 불리시는 건 재밌네요.”


재밌는가? 아니면 전쟁을 희망하지 않던 군주가 쉬지 않고 전쟁을 해야만 했던 현실이 슬픈가.


“그렇지. 전쟁을 멈추기 위해 전쟁을 쉬지 않고 하셔야했으니. 어느 순간 정복왕이 되신 게다. 물론 잉글랜드에서의 전쟁은 곧장 정복하셨지만, 그 역시도 적법한 계승권을 행사하신 것 아니겠나? 그러니 주께서 전투를 도우신 거야.”


주께서 세속의 전투를 과연 도우시겠느냐는 질문에는 답하기 힘들다만, 질문을 달리하여, 주의 이름 앞에 행한 맹세를 지키는 전투를 돕겠는가 하면, 도우시지 않겠는가.


“그래요?”


오늘은 뭔가 길게 생각하지도 않고 대답까지 하는구나. 바람직한 어린아이의 행동이지만, 곧장 이어지는 말은 정말 생각없는 말이다.


“지금이 1095년이잖아요. 이제 성지로 원정군을 보내는 포고문이 내려올 거에요.”


미래의 지식인가? 그걸 그냥 말하지 않는가.


“잠깐, 올리버.”


존이 듣고 있지 않나. 고 말하려던 차에 녀석이 곧장 말을 잇는다.


“세례할 때 보였어요.”


좋은 변명이다. 물론 년도 운운한 것까지 덮을 수는 없겠지만, 존의 작은 머리통으로 상상해보아야 미래에서 올리버가 왔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겠지.


“그래, 성모께서 너를 보우하시길.”


성전이라. 교황청에서 그런 포고문을 이 머나먼 잉글랜드까지 보낼 것인가? 하지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자거라.”


“네. 아버지.”


말에는 힘이 있다고들 한다. 분명 세속적인 욕망은 전부 벗어던졌을 텐데, 내게도 가족을 이루고 싶은 욕망은 남아 있던 건지 약간 마음이 동하지만 이를 가라앉히고 말한다.


“흥, 그렇게 부르지 마라. ”


“세례할 때 그렇게 말했으면서.”


말을 늘어뜨리면서 이상하게 몸을 배배꼬는 것이 약간 공포스럽다.


“왜 이러는 거냐.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


“거짓말. 주께 맹세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거라. 그래도 스승님이라고 불러라. 나도 사회적 입지가 있지 않으냐?”


아무리 안 그래도 갑작스럽게 아이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내가 만든 사생아가 아니냐는 물음을 골백번은 들은 것 같은데 아버지라고까지 부르면 그냥 사실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존이 정말 운이 나쁘게도 방금 전 대화 내용은 듣고 정말 곧장 올리버를 사생아로 오해한 건지 눈을 크게 뜨고 말한다.


“그렇게 고결한 척은 있는대로 했으면서 본인은 그냥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사셨네요!”


영아를 죽여버린 너랑 같더냐? 라는 말을 삼키고 차분히 말한다.


“내가 양자로 들였을 뿐이다. 단지 여기저기 사생아가 아니라고 말하고 다니는 게 달갑지 않으니 한 말이야. 천천히 네가 내 양자라는 말을 하고 다니다보면 부르고 싶은대로 부를 날이 오겠지. 올리버, 마음 상하지 말거라.”


그 어느 부모가 이리도 상냥하고 논리적으로 자식에게 설명하던가? 축복받은 지성 덕분이다. 이를 내려주신 주께 감사드리나이다.


잠시 표정이 어두워졌던 올리버가 다시 밝게 웃으며 곧장 누워 잠을 청한다. 폐하께 이 아이도 미래를 안다고 말씀드려야할지, 아니면 이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살 수 있게 숨겨야할지. 고민이 되는 밤이다.


꿈을 꾸었다.


황홀하고 두려운 날의 기억이었다. 눈을 뜨니 아직 별이 하늘에 떠있다. 저 넓은 하늘이 두려워 잠시 땅을 바라보고 기도를 끝내니 다들 일어나 다시 런던으로 달렸다.


다시 돌아오면서 위병에게 돈을 얼마 쥐어줘야했다. 얼마 전에 체스터 백작의 깃발과 함께 온 사람이라 말해도 그런 기억이 안 난다면서 돈을 뜯기에 이름을 기억해뒀다. 평등하게 통행세를 걷는다면 모를까 만만해보이는 양민에게 무작위로 뜯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못하니 폐하께 직접 말해야겠다.


그런 헛생각이나하면서 대로를 지나는데 항구쪽 대로에서 갑작스런 말발굽 소리와 나팔 소리가 들려온다.


“듣거라! 듣거라! 윌리엄 폐하의 충성스런 시민들이여! 우리의 윌리엄 폐하께서 간악한 프랑스의 왕 필립을 붙잡고 그 즉위식을 교황청에 보증 받았다고 한다! 폐하의 위대한 승리를 찬양하라!”


환호성과 함께 또 다른 나팔소리가 들려온다.


“동로마의 신앙의 형제들이 이교도의 횡포에 신음하다 못해 성지회복을 위해 교황께 지원을 요청했으니 이에 참여하는 자들은 모든 죄를 사하여 준다고 한다. 이를 교황께서 이르셨나니.


내가 무엇보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중대한 사항으로 긴급히, 나, 우르반은 주의 허락으로 말미암은 주교의 장이고, 온 세상의 성직자의 위에 서는 자로, 이 모든 부분 중에 신성한 가르침을 담은 한 대사, 주의 종으로 너희에게 왔노라···.


성전으로 가는 길에 죽은 모든 이들은, 땅이건, 바다에서든, 이교도들과의 전투에서 죽은 이들이건, 모두가 모든 죄가 즉시 지워질 것이니···.”


그 말을 듣던 존은 뭔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뭔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쟁의 뜨거운 열기가 어떤 이성적인 자의 생각마저 태워버리는 모습을 목도한 것 같다. 아니면 존은 정말로 회개를 바라는 것일까?


“존. 전쟁을 본 적 있더냐? 잘 생각하거라.”


영웅의 서사시를 보고 전장에 나간 아이는 그 빛이 연옥에서 연기와 이빨의 맞부딛힘으로 태어난 것을 모른다. 교황 성하의 선포라는 시린 빛이 얼마나 많은 젊은이의 눈을 멀게 할까 두렵다.


갑작스러운 따뜻함에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존은 말을 몰다 말고 가만히 말을 세우고 겨우 들릴만한 소리로 중얼거린다.


“당신은, 제게 회개를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


굳이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죽기를 바라는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뒤섞여 복잡한 마음이 들어서일까.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다.


공방에 다다르니 알 투그라’이는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바야드도 기대해야할지 아니면 그의 가족이 될 사람과 공감해야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했다.


“너를 쫓아내고 상관을 살해하고, 가족을 죽인 국가를 그렇게도 위하는 이유가 뭔가? 원래 사랑하던 자네의 조국은 이제 없다고 생각해도 좋은 것 아닌가?”


“그것이 제게 편하겠지요. 감사합니다.”


성전이 선포된 이상, 더 이상 이교도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힘들어질 것 같은데 악마가 정신에 깃들까 걱정이다.


“부디, 이상한 짓 하려하지 말게.”


걱정을 담아 말하니, 알 투그라’이가 웃으면서 고개를 젓는다.


“하하, 알라께서 금한 일을 갑자기 행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제 여동생의 결혼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생각없는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병사들도 긴장한 듯 내게 묻는다.


“저희 백작님도 성전에 나서십니까?”


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위네드 공왕의 군대와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에서 왔다보니, 성전의 빛보다는 전쟁의 두려움이 큰 것 같았다.


“아에틀링, 걱정하지 말거라. 만약에 교회에서 자네의 주군에게 군대를 요청한다면 내가 대주교께 청원해보마. 만약 우리 폐하께서 그러신다면, 내가 설득하겠네. 그러니 큰 걱정하지 말거라.”


어차피 안 가겠다는 이들을 저 멀리 소아시아땅까지 데려갈 간 큰 귀족이 어디 있겠는가? 중간에 어떤 짓을 할줄을 알고, 부담없는 책임을 지는데 편해지는 사람들이 많기까지 하면 굳이 책임을 안 질 이유가 있나?


그렇게 성전과 관련된 이야기를 잠재우고 2층의 공방에 올라가 올리버에게 내가 만든 장치에 대한 설명을 했다.


세피로트의 나무와 7일간의 창조를 함께 상징하는 도구는 결국 저급한 물체의 승화, 천구의 신성한 힘을 빌어 그 자체로 가진 성질을 강하게 하는 데에 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이 필요한 만큼, 아직 책으로는 정립한 적 없지만 헤이스팅스 전투도 일어나기 이전에 작센에서 보았던 그 연금술사들의 모임에 대해 떠올린다.


===


“안녕하십니까, 이 모임을 만들기 위해 온 세상에 편지를 뿌린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라고 합니다. 모두들 제가 보냈던 장치를 보고 왔겠지요. 저는 미래에서 미래를 보고 왔습니다.”


나의 스승, 아브란체스의 토마스께서 바늘로 각각 시간을 정밀하게 나타내는 팔뚝만한 원반 같은 물건을 내게 손짓하여 가져오게 한 다음 각각 톱니를 가리키며 묻는다.


“나무로 이런 톱니를 만드는 건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분명하오, 물론 철로 이를 만들기에는 크기가 너무 커질 것 같으니 생각한 것처럼 효과가 나지 않겠지만. 보아하니 하루동안 한바퀴를 돌게끔 안에 톱니 내부에 납덩이를 넣어서 이를 조정한 것 같은데 맞소?”


미래가 어쨌느니 하는 소리는 곧바로 무시하고 스승님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또한 이 추 같은 것으로 움직이는 것이 일정하게 움직이게끔 한 것도 대단하오. 그래서 실험을 해보니 다른 것들도 이런 형태를 하면 일정하게 움직이더군. 이런 원리는 어떻게 발견했소?”


“하하. 그게 바로 제가 미래에서 보고 온 것들입니다. 제가 온 미래에서 저는 충격적인 사건을 목도했습니다. 이 대륙의 기독교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중대한 사건이지요. 그래서 이곳에 모이신 당대의 유명한 연금술사님들께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희는 이 중대한 사건을 막기 위해 ‘화약’을 만들어야 합니다.”


검은 가루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게 무슨 작용을 하기에?


“저는 400년뒤의 미래에서 왔습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은 이 악마같은 가루에 의해 망가집니다. 불을 태우면 빠르게 타오르면서 마치 덜 마른 장작을 넣고 태울 때처럼 터져나가지요.”


“겨우 그런 물질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한단 말인가?”


동로마의 양식을 입고 있는 사람이 코웃음을 치면서 말한다.


“물론, 이 가루가 당시 동로마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이제부터 규약을 지키기로 주께 맹세하는 자만이 이 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스승님께서는 곧장 대답하시지 않고 나를 바라보셨다.


“어린 아이일 뿐입니다. 이런 아이에게 맹세를 시키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저만 맹세하면 어떻겠습니까?”


왜 그렇게 조건을 다셨을까. 나로서는 아직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맹세 안할자와 ,맹세할 자가 나눠지고 그 뒤로 이어진 말은 앞으로 내가 세상을 보는 법을 영원히 바꿀 말이었다.


“규약을 말하기 전에, 저희가 세상을 보는 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의 본질은 하나이고, 눈은 이를 받아들이는 창과 같은 것입니다.


그 세상의 본질을 찾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찾는 행위와 같은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합니다. 우리의 오감을 넘어 가장 위대한 흐름이 우리에게 흘러오는 것을 직접 느끼는 것.


저는 이를 발출(emanation)이라고 합니다.”


작가의말

매일 오후 6시 연재입니다.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는 비밀결사로 알려진 장미십자회를 설립했다고 알려진 전설적 인물입니다. 1378년에 태어났다고 하며, 작중에서는 죽은 뒤에 수백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태어난 설정입니다. 진자의 운동을 발명하기 수백년 전입니다만, 장미십자회가 여러 발전된 기술을 숨긴 비밀결사라는 기록을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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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웨일스 병합전쟁(3) 23.12.15 55 3 12쪽
18 웨일스 병합전쟁(2) 23.12.15 52 3 12쪽
17 웨일스 병합전쟁(1) +1 23.12.15 64 2 13쪽
16 런던의 연금술사(7) 23.12.14 76 4 12쪽
» 런던의 연금술사(6) 23.12.14 70 2 13쪽
14 런던의 연금술사(5) 23.12.13 90 3 12쪽
13 런던의 연금술사(4) 23.12.12 76 4 13쪽
12 런던의 연금술사(3) 23.12.11 88 4 13쪽
11 런던의 연금술사(2) 23.12.10 98 4 14쪽
10 런던의 연금술사(1) +1 23.12.09 129 4 13쪽
9 수도사와 수도사의 문답 23.12.08 126 4 18쪽
8 전쟁을 늦추는 전령(4) 23.12.07 136 5 15쪽
7 전쟁을 늦추는 전령(3) 23.12.06 146 5 12쪽
6 전쟁을 늦추는 전령(2) 23.12.06 222 7 17쪽
5 전쟁을 늦추는 전령(1) +2 23.12.05 344 14 20쪽
4 웨일스(4) +1 23.12.05 380 14 11쪽
3 웨일스(3) +2 23.12.04 453 17 14쪽
2 웨일스(2) +2 23.12.04 693 18 15쪽
1 웨일스(1) +4 23.12.03 1,238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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