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만능 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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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공장성소
작품등록일 :
2023.11.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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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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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런던의 연금술사(3)

DUMMY

어색한 침묵이 끝낸 건 바야드였다.


“그냥 자리를 비운 건 괜찮습니다. 검도, 갑옷도 사다주셨고, 창고를 관리할만한 물품도 약재상에서 항상 하던대로 받아오면 됐으니까요. 거기에 은퇴한 기사에게 저를 가르치게끔 돈도 주셨으니까요.


덕분에 스물 일곱의 나이까지 정말 수련과 대련만 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좋은 일인 지 압니다. 그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의 말이 끊긴 채로 한동안의 침묵이 이어졌지만, 굳이 뭔가 답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검이 필요할 수도 있는 일을 하러가면서 저를 부르지 않은 이유가 뭡니까? 무슨 그위네드 공왕의 탈영병이랑 함께 다녔다고요? 그 놈이 쫓아오는 추적자를 한명이라도 죽였답니까?”


정말로 나를 죽이고 싶은 원한이 생긴 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쓸모 없는 것인가 하고 고민했을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런 상황이 올 일이 아니었는데···. 많은 게 꼬였다. 그래서 너도 팔을 다치지 않았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만약에 제대로 아물지 않는다면 꼭 말하거라. 그래야 위험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너와 함께할 것 아니냐.”


그제야 조금 기분이 풀린듯 바야드는 그 주황색 머리를 긁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표정이 편해진 것을 보아하니, 본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나 싶다.


“그런데, 아무리 도시에 산다한들 너도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나? 가정을 꾸리고 새로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사랑하는 것 역시도 주의 뜻을 따르는 일이란다. 내가 좋은 처녀를 중매해주는 게 어떻더냐? 그동안 모은 것도 많은데 계속 홀몸으로 살기는 싫지?”


건장하고 얼굴도 훤칠하고, 아직도 결혼을 안한게 안타깝지 않나 싶어 말을 했는데, 투그라이와 바야드가 서로 눈을 마주치다가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이 여기로 달려오기 전에 토마스와 하던 이야기랑 맞물린다. 설마 윌리엄 왕자처럼 바야드 역시 남자를 탐하는 쾌락의 노예인가?


정녕 남색을 치료할 약재는 없는가.


사람이 모이고 위대한 도시가 생기면 풍족한 인간들이 죄를 짓는 게 당연해지는 그런 과정이 지금 런던에 벌어지고 있는 건가. 주여 부디 런던에 남은 의로운 이들을 보아 소돔과 같은 불기둥을 내리지 말아주소서.


“그 저는 지금···.”


바야드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마치 고대의 그리스인들처럼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할 것인가? 여자들은 남자의 갈비뼈일 뿐이니 완전한 인간끼리의 사랑을 하고 있다고?


“이미 결혼하고자 하는 상대가 있습니다.”


옆에 있는 남자와? 힘든 시기에 자신을 도와준···.


“여기 계신···.”


오 주여. 제 탓이옵니다. 저의 일꾼을 죄악에 빠지게 둔···.


“알 투그라’이 경의 여동생과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아. 아니구나.


“오, 그러한가? 그렇다면 당연히 그 여동생께서 우리의 주께 귀의하는 것이겠지?”


갑자기 어색한 침묵이 방 안에 내려 앉는다. 그리고 알 투그라’이가 내게 말한다.


“알라의 규율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내가 아무리 이 먼 타지에 왔다 한들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저 이교도 제국의 재상을 보좌하는 이인자의 자리에 오른 사람답게 완전히 그 신앙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그 순수하던 아이가 어찌 이리 변했을까. 신앙의 형제이기는 하나 신앙의 옳은 길은 이곳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그 마음이 불쌍하다.


“이곳에 있는 우리 주의 종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도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게 좋지 않겠소? 수도원 근처에서 골골대던 아이를 바다를 건너 사람 구실하게끔 키운 것도 저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10년간 편지나 몇장 보내면서 창고가 어떤지만 물어봅니까?”


“당신네 교리는 남의 자식의 아버지를 그 앞에서 욕보이라고 하더이까?”


때아닌 종교전쟁이 런던에서 일어나려는 때에, 진짜 종교전쟁의 포고문은 전 유럽을 달리고 있었고, 포고문은 전장을 정리하는 윌리엄 폐하의 막사에까지 다다랐다.


===


“이 세속에 전쟁을 빠르게 마무리 짓고 당장 성지를 되찾아야만 합니다!”


그래, 1095년에 십자군을 소집하는 건 알고 있었지.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프랑스를 안정 시키려 했는데. 전쟁이 이제야 끝나버린 건 흠이다. 내 이복동생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성지로 당장 말을 달리자 하지 않는가? 그래도 너무 이성을 거세당한 미친 자 같아, 일단은 내보내고 이야기를 들었다.


“예루살렘이 저 이교도의 손에 들어갔으니 이를 회복하기 위해 교황 성하께서 성전을 소집하셨습니다. 이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과거의 모든 죄를 면한다는 말씀이십니다.”


당장 교황이랑 저 분할된 프랑크 제국의 다른 한쪽이 분쟁을 가지자마자 곧장 남 이탈리아로 군대를 몰아 교황이 되려던 녀석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교황께서 나의 군대를 직접, 당장 부르셨소?”


조금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니 교황 특사라는 자를 지지고 볶기라도 해보려 했으나 그가 곧장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신앙의 형제가 이교도의 말발굽 아래 신음하고 있는데 어찌 같은 신앙을 가진 세속 군주들의 다툼을 두고 볼 수 있겠냐고 하셨습니다. 이 의미 없는 분쟁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면 어찌 크나큰 주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이미 사로잡혀 내 군영에 앉아있던 필립은 희망의 광명이라도 본 것처럼 눈물을 흘린다. 병신 같은 놈. 어렸을 적부터 균형의 수호자인 것처럼 도와줬다가 도와달라고 했다가 곧바로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믿을 수 없는 작자다.


일단 필립의 처분을 마무리 짓고 프랑스에 세워질 새로운 왕조의 성립을 보장받는 것을 미끼로 십자군에 합류하겠다는 약속을 해야될듯 싶다.


“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 없소. 이 자가 패배했고, 그저 나의 세력을 경계한 것 만으로 전쟁을 일으킨 그 대가를 치뤄야겠지. 그러니 나가보시오.”


전쟁이 너무도 오래 걸렸다. 어차피 중세에서 구도를 아무리 아름답게 짜봐야 모두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이상, 베드로 수사에게 부탁한 화약을 만들기 전에는 이 이상의 정복활동은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십자군이라면?


징집을 거부하는 귀족들을 강제로 병합시키거나 감옥에 가두고 직할령으로 포함시키거나. 통제력을 올리는 데에는 무궁무진한 방법이 있다. 필립을 위해 벌써부터 오를레앙 공작위라도 만들어서 살려둘까 고민할 필요도 없어졌다.


“기분이 나쁘지 않군. 그렇지 않은가 필립. 그러게 나를 그냥 두지 그랬나. 아니면 반란 진압을 부탁하지 말던가. 잉글랜드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프랑크도 10년이면 내 휘하의 귀족이 전부 장악하겠지. 네가 수백년간 이어져오던 이 국가를 죽인 거야.”


굳이 내가 직접 프랑스와 영국을 아우르는 새로운 왕조를 창조하거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니 천천히 직할 영지들을 안정화 시키는 게 내 성향에는 더욱 맞다. 하지만 손에 들어온 왕위라면, 받아내는 것이 좋겠지.


“그러면 이번처럼 저항도 못하고 죽었겠지. 아닌가? 가까이서 보니 조금도 늙지 않은 게 보여서 더욱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 딸, 콘스탄스가 브르타뉴의 공작과의 아들을 낳아 동맹도 굳건해진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게 프랑크 왕위를 넘기는 일 뿐이다. 그렇다면 너의 아들 정도는 살려주지.”


왕위조차도 없으면 반란이 끊이지 않는 온 땅을 그나마 안정화를 시킬 시도조차 안될 것 같아 일단 요구한 것은 왕위다.


“그러면 나는 죽나?”


“아니, 살아는 있겠지.”


노르망디의 수도원에 틀어박혀 평생을 썩겠지만 살아는 있을 거다. 그것으로 또 다른 십자군을 구성하는 군주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공수표를 던질 거다. 애시당초 모든 죄를 사해준다고 할 정도인데? 그냥 죽여도 상관 없을지도?


아퀴텐, 버건디의 공작들의 지지만을 확보하면 저 ‘신성로마제국’ 처럼 선제후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깔끔하게 아퀴텐, 버건디, 노르망디, 브르타뉴와 파리를 제외한 필립의 직할령으로 교회의 땅을 만들어 주교후령을 만들어주고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교회가 이걸 허락할 것 같나? 파문 당할 수도 있다고.”


파문? 당장 아버지도 파문당했는데 성지순례 1회로 바로 탕감 받았다. 나는 군대끌고 성지순례가는데 덤으로 프랑크 제국의 부활을 선포해줄 수도 있다. 당장 요구할 것 도 그것이고.


“죽이고 조금 더 정리하고 속죄한다고 대성당하나 지으면 되는 일 아닌가. 나에게 약간의 귀찮음을 주기 위해 자살할 셈인가? 만약에 그리 한다면 이 역시도 사실상의 자살이니···”


유다와 함께 지옥의 밑바닥에서 썩지 않겠는가. 라고 말하려 했는데 아직 단테는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개소리가 될 것 같아 입을 다무는데 필립이 손을 싹싹 빌면서 말한다.


“사, 살려주게. 서명하면 되나?”


“인장을 넘겨주고, 봉건 계약을 이전한다는 내용의 문서일세. 교황과의 연결으로 어떻게든 무마하려 하거나, 자네의 다른 봉신들을 부르는 것을 금하는 내용도 있네. 납치한 앙주의 백작부인을 다시 돌려줘야하는 조항도 있네.”


앙주 백작 부인과 사랑에 빠졌다면서 납치해온 정신나간 짓거리를 해놓고 그 말에 충격이라도 받은 듯 나를 바라본다.


“우리는 서로 사랑한단 말이오···!”


“그건 당신이 어긴 주의 신성한 계약을 두고 다시 생각해보게.”


왕위나 어떤 작위도 받지 못하고 갇히는 건 아무 말도 안하더니 납치한 여자 돌려 놓으라는 요구는 도저히 수용을 못한다는 듯이 군다.


“부디 방법이 없겠는가?”


“가족을 살려주는 것도 주께 죄짓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하는 일일뿐이고, 나는 네놈에게 죄를 덜 기회를 준 것 뿐이다. 어떻게 오입질을 하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다.”


“흥, 네 아버지도···”


그대로 불처럼 타오른 분노로 놈을 패다가 정신을 차리니 배를 부여잡고 용서를 빌고 있었다. 미래에서 빙의 했다한들 하도 온갖 잡놈들이 사생아라고 지랄을 하니 화가 나긴한다.


이럴때는 이런 놈의 기억을 없애는 스킬이라도 안나오나 싶어 한번 외처본다.


“스테이터스.”


이 시대에 태어나고 습관적으로 부르게 된 마법같은 단어는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이 가라앉는 효과가 있어서 이따금 혼자 말한다.


“자네가 매를 번 건 알겠지? 내 아내가 될 사람도 팼었는데 어떤 자신감으로 적이된 내게 그런 말을 했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전쟁터에서 앞장서서 싸우는 왕이 이렇게 비굴해질 수가 있는가.


“찍으시오.”


그렇게 자신의 인장을 녹인 밀랍에 내리누르는 모습을 보고 막사 밖을 나오자 교황 특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내가 뭘 요구할지 들으러 왔지 않나?”


“교황께서는 세속적인 군주가 아닙니다.”


프랑크 왕과의 동맹을 맺고 있던 교황에게 정치적인 부담이 크겠지.


“그렇다면 전쟁을 도와달라는 말 역시도 하지 말았어야지. 인정하게, 지금 내 멋대로 로마의 부활을 선언하건 저 안에서 질질짜는 병신처럼 불륜을 하건, 성전에만 나서서 성지를 회복할 수 있다면 뭐든 할생각인거 아닌가?”


특사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되묻는다.


“직접 성지에 군대를 이끌고 가실 생각이십니까?‘


“못할 것 없지.”


“폐하의 신실함에 감복했습니다. 그럼 교황 폐하께···”


“아니 그 전에 조건을 따져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프랑스의 지배권을 인정하고 즉위식을 거행해주게.”


기나긴 종교적 수사를 듣게 될거라고 생각했지만 특사의 말은 간결했다.


“저에게 그런 권한은 없습니다만, 주청드리겠습니다. 주께서 신실하신 폐하와 함께하시길.”


역사가 비틀려 가고자하는 영주가 몇없는가? 이렇게 교황이 절박한 줄 알았다면 조금 더 까다로운 조건을 달 것을 그랬다 싶지만 소중한 명분 판매기에게 괜한 원한을 사면 안되겠지 싶어 고개를 끄덕인다. 막사 안에서는 여전히 훌쩍거리는 전직 프랑스왕 필립씨의 목소리가 ASMR처럼 퍼진다.


몇대만 더 패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직 프랑크 왕 직위도 받지 못한 내가 그런 패악질을 부리기에는 이른 것 같아 참는다. 그렇게 참고서야 내가 이룬 업적이 조금 더 눈에 들어온다.


즉위식과 십자군이라. 이제는 손녀를 봐주던 런던의 연금술사를 내 곁으로 부를 때가 된 것 같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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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웨일스 병합전쟁(1) +1 23.12.15 64 2 13쪽
16 런던의 연금술사(7) 23.12.14 75 4 12쪽
15 런던의 연금술사(6) 23.12.14 69 2 13쪽
14 런던의 연금술사(5) 23.12.13 89 3 12쪽
13 런던의 연금술사(4) 23.12.12 76 4 13쪽
» 런던의 연금술사(3) 23.12.11 88 4 13쪽
11 런던의 연금술사(2) 23.12.10 98 4 14쪽
10 런던의 연금술사(1) +1 23.12.09 129 4 13쪽
9 수도사와 수도사의 문답 23.12.08 126 4 18쪽
8 전쟁을 늦추는 전령(4) 23.12.07 135 5 15쪽
7 전쟁을 늦추는 전령(3) 23.12.06 145 5 12쪽
6 전쟁을 늦추는 전령(2) 23.12.06 221 7 17쪽
5 전쟁을 늦추는 전령(1) +2 23.12.05 344 14 20쪽
4 웨일스(4) +1 23.12.05 380 14 11쪽
3 웨일스(3) +2 23.12.04 453 17 14쪽
2 웨일스(2) +2 23.12.04 692 18 15쪽
1 웨일스(1) +4 23.12.03 1,237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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