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만능 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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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공장성소
작품등록일 :
2023.11.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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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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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연금술사(1)

DUMMY

새벽기도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수도사들의 옷이 사락거리는 소리만 들려온다. 그 누구도 좋은 아침이라는 말조차도 하지 않고 한 곳으로 만 향한다. 나 역시 일어나 예배당으로 향한다.


장서관 담당의 수사인 부제가 예배당의 재단에 놓인 촛불을 켜고 우트레드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향로를 들어올리고 사람의 수를 헤아리면서 기다린다. 나와 올리버, 그리고 세명의 병사까지 합하여 셈을 하던 우트레드는 약간 종종 걸음으로 달려오는 어린 수도사가 오고 나서야 제단의 성서를 펴고 고백의 기도를 한다. 우리도 그에 맞추어 암송한다.


“나는 하느님과 영원히 동정이신 성모마리아와 성스러운 미카엘 대천사와 성스러운 세례자 요한과 성스러운 사도들이신 베드로, 바울과 축복받으신 루테리우스와 카시안과 축복받으신 ···.


저의 죄이고, 저의 죄이고, 저의 완전한 죄입니다. 저는 저의 충만한 악과, 불의하고 불경한 생각, 말 오염, 제안, 환희, 동의, 말과 약속 으로 말미암은 오만으로··· 불륜과 신성모독과···.


보는 것과 듣는 것과 맛과 향과 촉감으로 죄를 지었고···”


심장이 마구뛰고 단어가 반복되어 들리는 듯하다.


부디 주께서 나를 바라보기를 바라지만 내 영혼은 차갑고 차갑다. 존, 너도 너의 의지로 죄를 지은 자 아니더냐. 너에게는 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느냐?


녀석은 그냥 졸린 사람의 눈만을 하고 있다. 내게 죄를 고백하고 싶다 했던 말은 모두 거짓인가.


“...Christum.”


신기루 같은 환상에서 깨어나니, 아침 미사가 끝났다.


모든 수도사들이 자신이 일해야할 곳으로 속속히 빠져나가는 가운데 나의 일행들은 나를 따라 예배당 가운데에 잠시 서있다가 예배를 마무리하는 우트레드에게 다가가는 나를 기다린다.


“그럼 가보도록 하겠네 우트레드 형제. 부디 보안관에게는 소식을 전해주게.”


어제의 대화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우트레드를 믿고 굳이 더 긴 이야기는 안했다. 설마 곧이 곧대로 딱 7일째에 공격하는 천치는 아니겠지 않은가.그래봤자 우스터셔 자체로만 그위네드를 직접 공격할만한 병력을 모으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도하니까.


말 안장에 여러 주머니를 달아준 것을 보아하니 보급품 같은 경우에도 나름대로 달아준 듯 싶었다. 주머니를 살피니 달리면서 먹기 좋은 말린 음식들과 말에게 햝게 할 소금 덩이, 그리고 무가 있었다.


체스터 백작가의 깃발을 들어올린 아엘틀링이 힘차게 말했다.


“오늘은 글로스터셔는 지나서 옥센포드셔까지는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강력한 백작중 한명인 체스터 백작의 깃발을 보고도 나를 보고 포상금을 챙기려 할만큼 간이 큰 이는 없었고, 이따금 말을 쉬어주면서 최대한 빠르게 달려 쉽튼에 다다랐다. 마을은 번영하는 게 한눈에 보일만큼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풍차가 5개나 지어져있었다. 문장을 가진 병사들을 보고 문장을 알아볼만한 사제를 불러왔고 사제가 곧장 응대를 나왔다.


“체스터 백작님의 병사들과 귀한 손님을 쉽튼 중에서도 국왕폐하의 직할령인 이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까운 곳에는 역참이 없는 듯해서 여기서 밤을 보낼 작정이었기에 말에서 내려 사제에게 직접 말했다.


“주께서 함께하시길, 저희는 국왕폐하의 충성스러운 봉신인 체스터 백작의 명을 받아 런던으로 가는 길입니다. 가능하다면 쉴 곳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번성한게 분명한 마을에 빈 집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곧장 사제가 우리에게 안내하기를 청하기에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를 데려간 곳은 교회였다.


흔치는 않아도 전쟁 없이도 부랑자라는 것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이들을 받았던 것 같은 짚더미가 놓인 방을 안내해준다. 나름대로 대접을 하려고 만든 방인듯, 한번도 안쓴 듯한 천을 깐 방을 안내했다.


“감사합니다. 주께서 당신과 함께하시길.”


짚을 조금 풀썩이니 벌레가 우수수 도망쳐서 올리버가 싫어하겠다 싶어 봤지만 이 정도면 좋다면서 풀썩 눕는 병사들을 보고 천이 잘 덮인 곳에 누웠다. 이렇게 벌레를 무서워하는 것을 보니, 미래는 벌레도 없던가? 그럼 새들은 어떻게 살고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나 개는 어떻게 살겠는가?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이 좀 지나니 다들 중요한 짐을 자기 근처에 두고 잠에 들었다. 병사가 옆에 둔 무기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에 있는지 눈에 익히고 올리버를 들어다가 방의 안쪽에 넣어놓고 밖으로 나간다. 불이 켜져 있는 예배당이 눈에 띈다.


“아직 주무시지 않으십니까?”


예배당에 들어가니 사제가 있어서 황급히 성호를 그으면서 다시 발을 들여놓는다.


“아, 주께서 제 불경을 용서해주시길. 잠이 올 때가 아니다보니 말입니다. 항상 이곳에는 불을 켜놓는 모양입니다.”


“아. 폐하의 명령, 아니 요청으로 매년 마을에 인구 기록을 적는 시기라 말이죠. 제 방을 내어 드렸으니 여기에 있는 단상에서 작업을 하는 수 밖에요.”


“아, 겨울에 런던에서 보낸 종이를 채우는 일이군요. 종이는 성탄절 이후에 곧 오지 않았습니까?”


충분히 시간이 있지 않았냐는 물음에 머쓱한 웃음을 띄우면서 사제가 말한다.


“나태는 죄입니다만, 새로 아이들에게 성서를 가르치는 데에 시간을 쓰다보니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저도 같이 다니는 아이를 가르칩니다.”


괜히 반가워 말하니 그도 반가운지 미소지으면서 아이들 얘기를 한다.


“정말 골칫덩어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엿한 어른이 될 때 기쁨이 더 클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기록을 한번 살펴봐도 좋겠습니까?”


어느 집에 누가 태어나고 죽고, 죽은 원인이 적혀있다. 그리고 새로 이주해온 자들의 기록 역시 적혀있다. 꽤 세밀하고 정확하게 적힌듯 하다.


“감찰관이 여름에 확인을 하러오니 정확히 적는 게 이들에게 편한 일입니다.”


사람의 수와 재산, 밖에서 봤던 농지의 크기, 그리고 풍차의 수를 종합하면 이 마을 하나로 기사 세명의 무장을 유지할만한 소출이 나올 것 같다. 그런 것은 제쳐두고 이 사제의 글씨는


“아름다운 글씨입니다. 이런 종이에 적는게 아쉽군요.”


일정한 서체로 적은 라틴어가 이어진 종이가 몇장이고 이어져있겠지만 아직 마르지 않은 종이를 넘길수는 없어 보여준 페이지만 보고 다시 돌려줬다.


“아이들에게 보여줄 책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열심히 갈고 닦으니 이렇게 됐습니다. 분명 베드로 수사께서는 저보다도 훨씬 잘 적으시겠지요.”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사제니까 내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어 한숨을 내쉬면서 변명을 준비했는데 그가 먼저 말한다.


“소문은 들었고 그런 일을 안 하실 분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걱정되는 건 또 다시 이 땅에 전쟁이 도래할까 두려울 뿐입니다.”


“여기까지 전쟁이 닿을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잠시간 침묵이 내려앉고, 그가 성호를 긋고 짧게 기도한다. 기도를 마치고 그가 내게 곧장 묻는다.


“약을 짓는다 들었으니 궁금한게 있습니다. 마을에 사람이 늘어나고···”


“그럴때는 우물에 방부 약초 역할을 하는 곽향속의 나무의 수액을 기름에 녹였다가 물에 조금씩 풀거나, 나무토막을 넣어두는 것도 좋습니다. 또 무엇인가···”


밤이 깊도록 그와 이야기를 하고나서야 잠을 잘만해서 잠에 들었고 농민들이 포상금을 받겠다면서 횃불을 들고 교회를 포위하고 빨리 나오라는 꿈을 꿨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나름 살만한 농민에게는 그런 식으로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으니까.


병사들은 마을 사람들이 필요한 게 있냐하기에 밀 한포대라도 가져가고 싶은지 약간 미련을 가지는 듯 싶었으나 어차피 가져갈 수도 없다고 재촉하니 수긍하고 함께 달렸다.


엉덩이가 아플 정도로 달리고, 이제 런던에 가까워 올때 올리버가 말을 건다.


“런던이 금방이네요. 오랜만에 돌아가는 느낌이 어때요?”


올리버가 태어난 후로는 런던을 간 적이 없다. 혹여나 아기를 봤던 이들이 알아볼까 싶어 조심했는데 이제와서 생각하니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 어차피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크지 않던가?


“오랜만에 런던에 뒀던 공방에 가 볼 수 있으니 기대가 되는구나. 친구의 가게도 갈 수 있겠고”


나이도 들만큼 든 친구가 10년도 넘게 지난 지금 살아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얼마 전까지도 편지를 주고 받았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삶을 마감하지는 않았지 않겠나.


점점 집들의 배치가 촘촘해지기 시작하더니 테메스 강(오늘날의 템즈강)의 넓은 모습과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윌리엄 폐하가 지으신 왕궁이 그 높다란 자태를 뽐낸다.


“보거라. 올리버 네가 기억하는 런던이 남아있더냐?”


꾸벅꾸벅 졸던 말거는 소리에 올리버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미래의 런던과 지금의 런던은 어느정도 다르더냐?”


“많이 다르네요. 여기가 런던인가요?”


“그래,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도시지. 로마같은 도시에는 빛이 바래지만, 이 브리튼 섬에서는 가장 큰 도시인데는 틀림이 없다.”


“정말 크네요.”


에셀링은 런던에 온 적이 한번도 없는지 성벽의 크기와 규모에 압도된 듯했다. 체스터 성의 크기에 자부심을 가지던 병사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제부터는 잘 따라와야 한다. 도시의 길은 오랜시간에 걸쳐서 마구 지어진 집들 때

문에 찾기 힘들단다.”


관문은 체스터 백작의 인장을 밀랍으로 찍어 봉인한 편지와 깃발을 보고 곧장 통과시켜주었다.


러드 관문을 지나 이어지는 길을 따라 지나가다가 집 사이로 난 길을 지나야 할 때 뒤따라 오는


그래도 남동쪽에 보이는 높다란 왕궁을 표지로 삼고 길을 찾으면 어렵지 않다. 왕궁으로 향하는 큰 대로에 표지판에 약재상이라는 표시인 막자사발과 RX 라고 적힌 표지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이교도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표식이지만 바꾸지 않는 건 여전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랜 친구가 여전히 두꺼운 눈썹을 정리하지 않고, 주름은 늘을대로 늘어버린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베드로! 소식은 들었네만 여기까지 왔구려! 걱정하지 말게, 이 런던에서 자네의 목에 걸린 포상금을 받고자할 악독한 이는 한명도 없을 테니!”


“토마스. 예수께서 함께하기를. 너의 따뜻한 말이 나와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되네. 런던은 어떤가?”


토마스는 뒤이어 들어오는 체스터 백작의 병사 세명을 보면서 눈썹을 치켜뜬다. 같이 온 이냐는 물음이겠지 싶어 고개를 끄덕였더니 곧장 그가 앉은 자리에서 단검을 꺼내려 하기에 손목을 붙잡아 막았다.


오해를 풀고 토마스가 머쓱한 듯 모두에게 악수를 청하고, 귀한 차라면서 대마를 끓인 차를 가져왔다. 개인적으로 밧줄 끓인 맛이 나서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날 위해서 목숨을 걸 각오까지 한 친구에게 감사를 표하는 마음으로 차를 마셨다.


“요즘 런던은 어떤가? 그리고 그런 소식을 들었을 텐데 내 공방은 무사한가?”


“런던은 항구로 들어오는 연락선만을 목 빼놓고 기다리는 중이라네.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온 연락선이 성을 점령하고 루이 왕자를 사로잡았다는 소식을 가져왔으니. 완전히 이겼다는 소식만 받으면 폐하의 귀환이 가까워오지 않겠나?”


성호를 그으며 주께 감사를 드렸다. 이렇게 알맞은 시간에 알맞은 소식이라니!


“알려줘서 고맙네. 섭정이신 윌리엄 왕자께서는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알고 있나?”


“사흘 전에 사냥에 나가셨네.”


“...? 소식을 못 들으셨나?”


그위네드 왕궁이 불타고 온갖 백작들이 방어태세를 단단히 올리고, 심지어는 우스터의 주교대행조차도 전쟁의 소식을 아는데?


“본인의 남자친구와 사냥을 나가셔야겠다고 했다는 소문이 있네만-주여, 내 경솔한 말을 용서하소서- 아마도 짧게 갔다 오신 것 아니겠나?”


내 인생에 왕족의 짧은 사냥이라는 말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남색을 낫게할 약이란 건 없는 겐가···.”


없는 걸 알고 있으니 이제 남은 건 정말 연금술 뿐이다.


“나의 공방은 잘 지켜지고 있는가?”


토마스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나의 불안감도 점점 고조된다. 그의 입술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만 그는 침묵한다.


작가의말

오후 6시 매일 연재입니다. 소제목이 추가 됐습니다. 

윌리엄 2세로도 알려진 정복왕 윌리엄의 넷째 아들은 죽을 때까지 자녀를 보지 못했고, 급한 성격과 동성애 성향으로 유명했고, 붉은 윌리엄이라고도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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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식을 올리다(1) 23.12.16 74 3 12쪽
20 웨일스 병합전쟁(4) +2 23.12.16 62 3 11쪽
19 웨일스 병합전쟁(3) 23.12.15 55 3 12쪽
18 웨일스 병합전쟁(2) 23.12.15 51 3 12쪽
17 웨일스 병합전쟁(1) +1 23.12.15 64 2 13쪽
16 런던의 연금술사(7) 23.12.14 75 4 12쪽
15 런던의 연금술사(6) 23.12.14 69 2 13쪽
14 런던의 연금술사(5) 23.12.13 89 3 12쪽
13 런던의 연금술사(4) 23.12.12 76 4 13쪽
12 런던의 연금술사(3) 23.12.11 87 4 13쪽
11 런던의 연금술사(2) 23.12.10 98 4 14쪽
» 런던의 연금술사(1) +1 23.12.09 129 4 13쪽
9 수도사와 수도사의 문답 23.12.08 126 4 18쪽
8 전쟁을 늦추는 전령(4) 23.12.07 135 5 15쪽
7 전쟁을 늦추는 전령(3) 23.12.06 145 5 12쪽
6 전쟁을 늦추는 전령(2) 23.12.06 221 7 17쪽
5 전쟁을 늦추는 전령(1) +2 23.12.05 344 14 20쪽
4 웨일스(4) +1 23.12.05 380 14 11쪽
3 웨일스(3) +2 23.12.04 453 17 14쪽
2 웨일스(2) +2 23.12.04 692 18 15쪽
1 웨일스(1) +4 23.12.03 1,237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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