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만능 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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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공장성소
작품등록일 :
2023.11.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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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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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을 올리다(1)

DUMMY

원래는, 바야드를 약재상 토마스의 막내딸과 결혼 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여왕 폐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마틸다는 이제 막 열여섯이 되는 씩씩한 아가씨가 됐으니. 정말 괜찮은 상대일 터인데, 이런 이교도와 함께 결혼하게 되니 정말 아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훌륭한 연금술사의 여동생이라면 분명 지혜로운 여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내가 결혼식을 증거해주고 싶었지만, 얼마전에 마을 하나를 악마의 권능으로 불태워 버렸으니. 그런 내가 증거한다면 결혼식에 나쁜 악귀가 끼어들 것이라고 생각해, 웨스트민스터에서 서기 일을 도와주러 온 수도사 시몬에게 맡겼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렇게 길한 날이라고 보기도 힘들지만, 내가 지난 전쟁에서 세운 공이 크다는 말을 공포하신 국왕 폐하의 덕을 받아 내가 주선한 결혼에 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대인, 베두인, 그리스 정교의 사신, 교황특사마저 이 보잘 것 없는 평민의 결혼식에 참석했고, 성전으로 어지러운 가운데, 주께서 주관하신 평화의 발현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물론 결혼식을 주관하게 된 수도사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힘들어했다.


파티마는 기독교인의 풍습에 맞게 얼굴을 가리는 천을 벗고, 그 어두운 피부에 맞지 않게 아름다운 외모를 보이면서 바야드의 친한 친구들은 그에게 야유를 보냈지만, 교황특사가 뒤를 돌자 곧장 입을 다물었다. 바야드는 반지를 교환하고 나를 바라봤다. 참으로 건장하고 잘 자랐다. 성 마이클 수도원장의 사생아라는 비밀은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하겠지만, 아마 천년이 지난 미래에도 모르지 않을까?


생각 없이 박수를 치면서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의자에서 정강이로 진자운동을 하면서 촐싹이는 40년을 산 영혼을 보면 아마도 천년 뒤 사람들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을까 싶다.


그보다도 미래라면, 당장 겨울에 바야드는 성전을 하러 플랑드르로 향할텐데. 주께서 저 부부를 보우하시길.


영원을 기리는 가약을 라틴어로 물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바야드에게 시몬이 잉글랜드어로 다시 물어보는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가르치지 않았던가? 교황특사가 낄낄거리면서 웃는 모습에 화가 났지만 겨우 참아냈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나고 연회가 이어지자 교황특사가 내게 와서 묻는다.


“저 이교도와 보살피던 아이를 결혼 시킨 이유가 뭐요?”


“주의 사랑은 저 이교도에게도 내리는 법입니다. 이미 주의 날개 아래로 온 아이에게 이교도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말에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주억거리던 교황특사가 목소리를 높인다.


“주목! 주목!”


이곳에 온 이들 중에는 기사도, 남작도, 심지어는 로베르 드 세이 백작의 아들까지도 왔지만, 그 모든 직함이 교황특사라는 직책 앞에서는 빛이 바래는 법. 좌중이 금방 조용해졌다.


“성전의 소식이 온 기독교 세계를 뜨겁게 하는 가운데, 어찌보면 첫 성전의 승리를 증거하는 자리에 우리는 있습니다.”


설마, 지금 베두인도, 유대인도 있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한다고?


“이교도가 우리의 일원이 되고, 우리의 전사가 그 땅을 정복했으니 이 어찌 크나큰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이 바야드 공에게 찬사를···.”


이 정도의 음담패설은 새신랑과 새신부가 생긴 자리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여러 종교인들이 모인 곳에서 이런 식으로 입을 놀리면 어떤 싸움이 날지 모른다.


“성전,이라기에는 정말로 평화의 하나님의 증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아름다운 날에 전쟁과 같은 흉흉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처사 아닙니까? 교황께서도 평화를 위해 성전을 일으키신 것 아니겠습니까. 정복이니, 공격이니 저는 두렵습니다. 하하.”


그런데, 알 투그라’이는 여동생이 결혼하면서 착잡했는지 술에 거나하게 취한게 문제였다.


“말 잘했네. 어떻게 성전이 평화를 위한 결정인가? 네놈들은 다 똑같아. 신의 이름만 붙인다고 하여 전쟁이 신성해질 수는 없어. 나는 봤단 말이다. 그 불꽃을, 희게 타오르는 그 불경한 불꽃을···.”


그리고 이런 종교 논쟁이라면 절대로 지지 않는 교황특사도 약간 포도주에 취한 건 더 큰 문제였다.


“말씀 잘하셨습니다. 전쟁이 어찌 신성해질 수 없는 것이지요? 구약 성서에도 전쟁은 끊임없이 나옵니다. 블레셋인들을 몰아내는 전쟁,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한명도 남기지 않고 죽이고 벽돌하나까지 부숴버리지 않덥니까?


당신이 사랑하는 그 선지자 역시도 전쟁하지 않습니까? 지하드. 그대들은 전쟁을 위한 교리마저 있는데. 무엇이 그렇게 불만입니까.”


그 말에 약간 술이 들어간 나 역시 입을 열었다.


“예수님께서는 전쟁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모께서도 마찬가지이고요. 동쪽의 로마가 곤욕을 치루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는 세속군주의 일 아닙니까? 저는 속죄를 위해 이 성전에 나섭니다만, 제게 두려운 일이 있습니다. 이 전쟁이 속죄의 길이 아니라 더 많은 죄업을 쌓아올리고는 그것이 죄가 아니라고 하는 위선의 길이 될까 두렵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는 설마 교황청의 권위를 무시하는 건가?”


“교황청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생각하는 겁니다.”


“교황청은 예수님께서 내려주신 교회의 권위를 받은 베드로의 교회 위에 지어진 교회일세. 자네가 어떤 권한으로 교황청을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의 권위를 생각하던가?”


“저는 교황청의 권위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수도를 하는 한명의 신도로써, 주의 뜻을 궁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알 수 있듯이, 저는 폐하와 함께 성전에 가기로 마음먹지 않았습니까? 그를 위한 웨일스에서의 전쟁이었습니다.”


교황특사는 내 말을 곱씹듯, 잠시 침묵했다. 그때 데건위에서의 전투가 기억났는지 알 투그라’이가 절규하듯이 말한다.


“인간은 전쟁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인가!”


술이 들어가니 자신의 조국에 대한 회한까지도 돌아온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더 일이 커지면 어떤 소리를 들을지 모르는 일이 됐다. 왜 이렇게 빨리 취했나 보니, 그가 가진 연금술 도구로 증류시킨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냥 이걸 모두에게 줘서 완전히 취하게 하면 다들 기억 못하지 않을까?


“신성한 일은 잠시 제쳐두고, 이거나 드셔보시죠.”


그 뒤에 기억나는 건 돌 담벼락에 토하는 특사, 나, 그리고 알 투그라’이가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경비병에게 잡히고 폐하가 직접 와서 코를 감싸쥐고 나와 교황특사를 풀어주는 순간에야 정신을 차렸다.


“자네, 이게 무슨 짓인가?”


“즐거운 결혼식 아닙니까 폐하. 하하.”


조금이나마 또렷해진 정신에 토도 묻고 오줌이 묻어버린 내 모습이 인식이 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교황특사에 대한 놀라움도 있었다.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오른 것 치고는 꽤 놀 줄을 아십니다?”


“그저 교황 성하가 나고 자라신 곳에 근처에서 살아 그 성은을 받았을 뿐입니다.”


분명 어제 일이 전부 기억난다면 문제 삼을만한 발언이 많았는데 특사는 그다지 문제삼지 않고 나가는 것을 보아 다행이었다.


감옥에 알 투그라’이는 없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던 것을 기억하는데, 뭐라 중얼 거리면서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 저와 함께 하던 베두인 연금술사는 어디 갔는지 혹시 아십니까?”


“그 밤에 교회에서 울다가 세례까지 받았다던데. 잘된 일이 아닌가?”


자신이 증류한 술을 먹고 신나서 교황특사와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다가 뭐라고 지껄이니 갑자기 벌떡 일어난 이유가 그건가. 정말 교황의 권위가 그대로 영혼에 박혀버리니 한낱 이교도는 그 신성함에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축성당해버린 건가.


“올리버는 보셨습니까? 참 잘 자라지 않았습니까.”


약간 남은 술기운에, 특사는 나가고 나와 폐하만이 남은 감옥이니


“음. 인정하기는 싫지만, 내 딸의 얼굴이 보이더군. 그 아비가 누군지 찾아서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소식은 들었나. 이번에도 성탄절에 파리에서 프랑크 왕으로의 즉위식과, 재건된 프랑크 제국의 황제로의 즉위식도 함께 하기로 했네. 그리고 곧장 군대를 몰아 성전에 갈 거네. 기억해두게나.”


“결혼식으로 바빠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 즉위식 때에 마틸다에게도 그 주의 축복을 먹여줄 수 있겠나? 약간 모자른 것 같은 감이 들어서.”


“물론입니다. 건강한 결혼 생활은 주의 뜻을 받드는 통치의 첫걸음 아니겠습니까?”


다시 연금을 할 시간이다.


조금이나마 술을 깨고 집으로 돌아가니, 존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긴다.


“저, 성전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곳에 가는 로베르 말렛 경의 아들을 호위하기로 했습니다.”


“독살이나 안하면 다행이지. 흥.”


그냥 심술이나서 말하니, 녀석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진다. 갑자기 정말 주님을 찾기라도 한건지 요즘은 이렇게 말하면 상처를 받은 것 같아 더 이상 놀리기 힘들어졌다.


“말해보거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냐? 나도 성전에 가는데 굳이 그 사람과 가는 이유는 뭐고?”


“제가 신부님께 더 큰 폐를 끼칠수는 없으니 그가 제 경력을 인정해줘서 장비와 말을 지원해준다고 하니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신부님께서 부르신다면 도우러 가겠습니다.”


신부라. 정말로 생소한 그 호칭에 나는 모든 전쟁과 다툼, 도망침과 죽음의 원흉이라고도 볼 수 있는 녀석을 처음으로 똑바로 쳐다본다.


“존, 너가 회개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너도 언젠가 주께 용서 받을 수 있을 거란다. 어디에서든 그 마음을 잊지말고 지켜라.”


원수를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나는 기억한다.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를 따라야 수도사라고 본인을 칭할 수 있지 않겠는가.


“너의 마음이 진심이고, 길 잃은 양이 진실로 그 목자의 품에 돌아왔다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내가 그동안 너를 믿지 못했지만, 지금에야말로 너를 믿어보겠다. 그러니, 내 믿음을 다시 배신하지 말아주면 좋겠다.


너 역시, 지금 너의 믿음을 배신하지 마라.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너를 의심에 빠지게 하겠지만 말하건대, 네가 믿음을 잃지 않고 이 여정을 끝낸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쁠 것 같으니.”


존은 결의찬 눈으로 나를 보다가 어느 순간 무너져 내린다.


“감사합니다.”


이 아이는 이제야 세례를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리라.


“그러니 살아라.”


부디 목숨을 내던지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제야 자신의 인생이 시작됐을 텐데, 이를 내던지는 일은 주께서도 안타깝게 여기실 것이다. 공방의 대문을 열고 나가는 존에게 주의 가호가 있기를, 성호를 긋는다.


이제 정말 남은 건 12월 달까지 ‘주의 축복’을 조제하는 일만이 남았다. 하는 김에 올리버에게도 먹일 양을 만들고, 즉위식에 사용할 분까지 만들어야겠다. 시간도 많고, 폐하가 돌아왔으니 지원도 충분하다. 폐하가 바랐던 화약의 조제도 함께 완성하면 더 많이 만들 재료를 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지역과, 아라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까지 배를 보내서 사온다면 재료가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징발했던 배들의 주인에게 다시 한번 편지를 보낸다.


–3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1066년 성탄절에 런던에서의 폐하의 즉위식에서 보았던 빛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작가의말

매일 오후 6시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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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웨일스 병합전쟁(1) +1 23.12.15 64 2 13쪽
16 런던의 연금술사(7) 23.12.14 76 4 12쪽
15 런던의 연금술사(6) 23.12.14 69 2 13쪽
14 런던의 연금술사(5) 23.12.13 90 3 12쪽
13 런던의 연금술사(4) 23.12.12 76 4 13쪽
12 런던의 연금술사(3) 23.12.11 88 4 13쪽
11 런던의 연금술사(2) 23.12.10 98 4 14쪽
10 런던의 연금술사(1) +1 23.12.09 129 4 13쪽
9 수도사와 수도사의 문답 23.12.08 126 4 18쪽
8 전쟁을 늦추는 전령(4) 23.12.07 136 5 15쪽
7 전쟁을 늦추는 전령(3) 23.12.06 146 5 12쪽
6 전쟁을 늦추는 전령(2) 23.12.06 222 7 17쪽
5 전쟁을 늦추는 전령(1) +2 23.12.05 344 14 20쪽
4 웨일스(4) +1 23.12.05 380 14 11쪽
3 웨일스(3) +2 23.12.04 453 17 14쪽
2 웨일스(2) +2 23.12.04 693 18 15쪽
1 웨일스(1) +4 23.12.03 1,237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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