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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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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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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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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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

DUMMY

사장님은 열두시가 되기 전 내게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편의점을 빠져나가버렸다.


이래서 머리 아파도, 돈이 없어도 사장하려고 하는 거다. 에효!


그날은 정말 제대로 당첨인지 진상들이 줄을 지어 왔다.


담배 사며 반말 찍찍 지껄이는 놈, 뻔히 봐도 중학생인데 술 사려고 진상부리는 애새끼, 라면 먹고 안치우고 뻔뻔하게 나가는 놈 등등, 끝이 없었다.


치열하게 일하다보니 금방 새벽 다섯 시가 훌쩍 넘었다.


사람이 뜸해지고 나도 그 시간이면 좀 졸 수 있다.


그래도 좀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딩동’


그때 누가 들어오는 소리에 나는 졸다가 일어났다.


한눈에 봐도 엄청 취한 놈이었다.


그런 놈들은 특히 조심해야한다.


‘절대 신경 건드리지 말자! 신경 끄자! 빨리 나가라! 빨리 빨리 가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놈은 진열장들을 천천히 한 바퀴 돌더니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들고 비틀비틀 계산대로 걸어왔다.


“끅! 끅! 야! 야, 야! 이거 계산해!”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네. 1600원입니다.”


순간 그놈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아차’ 하는 순간에 보란 듯이 그놈이 시비를 걸었다.


“너어! 네에가 우습냐? 우스워? 에이 썅!”


그놈은 진상넘버 12501호가 됐다.




내가 진상을 가늠하는 척도는 다음과 같다.


화가 나는 정도가 0에서 10까지 라면 하는 짓이 7이상 되는 놈들이 진상이다.


그리고 나는 하나하나 그놈들을 에피소드와 함께 기억하고 있다.


놈의 척도는 8정도였다.


왜냐면, 첫째, 내가 좀 쉴 수 있는 시간에 왔고, 둘째, 계속 반말을 지껄이고, 셋째, 술 먹고 되도 않는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됐든 이 상황을 잘 넘겨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한 내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말한 내가 그놈을 쳐다보는데, 그놈이 계산하려던 물병을 들어 내 머리를 후려쳤다.




그때 ‘삐’ 내 머릿속의 인내한도가 넘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 이 X발놈아!”


내 주먹이 술 취한 그놈의 살찐 얼굴을 치자 그놈의 얼굴 살이 물결무늬를 만들며 출렁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놈의 놀란 눈과 함께 그놈 입에서 흩뿌려지는 침을 봤다.


‘에잇! 더러워!’


그리고 ‘퉁’ 하고 그놈이 바닥에 쓰러졌다.


‘하아아아···! 아이고! 난 망했다!’


당황한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수그린 채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 누운 놈의 상태를 살폈다.


그놈은 맞았는데도 바닥에 쓰러진 채 코까지 골고 있었다.




일단 안심이 된 나는 한숨을 몰아쉬고 편의점에서 나와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안 돼 사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자다 뛰쳐나왔는지 머리가 그대로 승천할 기세였다.


그 후 사장과 함께 쓰러져 있던, 술 취한 그놈을 병원응급실로 옮겼다.


그렇잖아도 비실거리는 몸에 창백한 얼굴을 한 사장의 얼굴이 더 귀신같이 보였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정말 사장에게는 미안했다.


“뭐, 너도 참다 참다 그랬겠지. 에고! 혹시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CCTV영상 보여줄 거니까 걱정 말고, 집에 가서 좀 쉬어라. 어여 들어가! 자, 여기! 택시타고 가라!”


사장이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내줬다.


“아이, 괜찮아요. 이제 지하철 다니니까 그것 타고 가면 돼요!”


나는 뒷걸음질 쳤다.


사장이 쫓아와 내 주머니에 돈을 찔러줬다.


이내 내 마음이 착잡해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진상 12501호, 그놈 얼굴이 자꾸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 x자식!’


잠을 잘 수 없었던 나는 그냥 눈을 떴다.


그때 지하철 광고판에 있던 한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냉동 수면 장치 (Cryogenic Sleep) 임상 참가자 모집, 2주 참여, 소정의 참여금액 보상!’


‘우와와! 이주일간 잠만 자면 돈을 준다니 개꿀이겠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다음날 마침 출근을 하려는데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날 나한테 맞았던 주정뱅이 놈이 병원비를 요구했다면서 경찰에 가면 일이 더 복잡해질 테니 원하는 금액을 주고 합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저어, 고맙습니다. 사장님! 괜히 저 때문에 애쓰셨네요.”


하지만 사장이 그다음 한말에 나는 기가 막혔다.


정당방위인건 알지만 그런 사건이 있었으니 그만 나와 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물어준 치료비가 내가 일한 돈보다 훨씬 더 컸다는 말도 함께였다.


‘아휴! x발! 그럴 줄 알았다. 착한 척 하는 놈들은 꼭 남들 뒤통수를 친다. 그래.

잊자! 잊어! 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니고···.‘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날 나는 어머니에게 일자리에서 잘렸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서 밖을 배회하다가 전날 사장에게 받았던 오만 원으로 삼겹살을 사서 집에 들어갔다.


온갖 나물들로 저녁상을 차리고 있던 어머니가 내가 사온 삼겹살을 보더니 말없이 프라이팬을 꺼내 구웠다.


저녁을 먹는 내내 어머니와 처키 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음, 편의점 얘기를 하긴 해야 되겠지?’


그때 나는 흥분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자꾸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목이 매어왔다.


‘목을 먼저 가다듬어야지!’


“크흠흠! 크허으음!”


목청을 가다듬은 나는 말을 시작했다.


“저, 그냥 편의점 그만 뒀어요. 좀 멀기도 하고 돈도 안 되고···, 내일부터는 딴 데 알아보려고요.”




그때 어머니는 말없이 식사를 계속 하고 있었고, 처키 놈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 나를 째려봤다.


나도 모르게 그 눈빛에 몸이 움찔거렸다.


“야! 우리도 알어, 다 안다고오! 몽글리! 너, 너 짤렸잖아아!”


그렇다.


처키 놈은 나를 ‘몽글리’라 불렀다.


원숭이 같이 생긴 못난 놈이라는 뜻이란다.


‘아아! 이 악마 같은 처키 놈이 다 알고 있다!’


“뭐라고? 이 처키 새끼가!”


나도 흥분해 소리쳤다.


눈을 서로 부라리고 있던 우리 남매를 한 번씩 쳐다본 어머니가 ‘탕’하고 손바닥으로 상을 내리쳤다.


상에 놓여있던 반찬 그릇에서 김치 국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통에 우리 둘은 동시에 움찔하며 조용해졌다.


어머니가 그렇게 우리에게 화내는 일은 일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다른 일이 또 있는 걸 거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으냥, 조용히 밥, 좀 먹자!”


한자 한자 조용히 힘주어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는 정말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어머니 눈치가 보였다.


심지어 그 막나가는 처키 놈마저 눈치를 봤다.


식사를 마치고 목이 몹시 타는 듯 물을 벌컥벌컥 들이 킨, 어머니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끄응! 음, 사채, 이노무 시키들이 다만 몇 백이라도 안 갚으면, 가만 안 둔단다.”



그 말에 가만히 앉아 있던 동생 놈이 말없이 일어나 찬장 문을 열고, 소화제를 가져와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두 알, 내 손에도 두 알을 줬다.


우리는 얼른 소화제를 삼켰다.


그때 뭐라도 말해야겠다고 생각해 마음이 다급해진 내가 말했다.


“저기, 있잖아. 그, 냉동 수면, 어떻게 생각해?”




다음 날, 우리 셋은 꽤 오래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머니의 주된 의견은 이랬다.


“냉동이라니 우리가 돼지고기도 아니고, 사람이 냉동 된다니! 그걸 어떻게 믿고 참가해! 그리고 너희 둘은 앞날이 창창한데··· 어쩌고저쩌고···.”


처키 놈은 알아듣기도 힘든 과학의 원리와 현 과학 수준을 운운하며, 우리는 실험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우리가 죽는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하다니 과연 처키 놈이었다.


두 사람의 입심에 밀려 나는 몇 마디 하지도 못하고 금방 뒤로 밀려났다.


격앙된 목소리로 얘기하는 둘을 놔두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손해 볼 것 뭐 있냐는 생각이 들어 광고에 나온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 후 집에 돌아갔을 때에도 여전히 논쟁 중인 두 사람을 보고 내가 말했다.


“있잖아! 2주 참가 하는데 이백 만원 준다는데···.”




그 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리가 참가의사를 밝히자 그쪽에서 먼저 여러 번 연락을 했다.


일단 설명회에 초대된 우리는 정해진 날짜에 그들이 말해준 주소로 갔다.


그곳에는 사무실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우리는, 자신을 수의학 박사라고 소개한, 허 박사의 프리젠테이션을 안락한 회의실에 앉아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들었다.


박사의 브리핑이 끝나고 기다렸다는 듯이 수가 질문 공세를 했다.


“현재 Cryonics 기술로는 혈액을 모두 제거하고 동결 보호제 주입 후,··· 어쩌고저쩌고...우리가 안전하게 깨어나는 게 가능하긴 한가요? 뇌기능이 저하되지 않는 게 확실해요? 저 인간은 몰라도 나는 실제로 머리를 쓰거든요!”


동생 놈이 나를 가리켰다.


‘하! 분하지만 받아칠 말이 없네!’


“크흐흠!”


무안해져서 헛기침을 한 내가 돌아앉았다.




동생의 질문에 웃은 허 박사는 암호 같은 기호가 많은 그래프와 자료들을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을 했다.


박사의 말에 의하면 우리 피를 빼내서 한쪽에 보관할 일도 없으며 자신이 개발한 액체를 쓰면, 딱 한 번, 처음에 수면캡슐을 초저온 상태로 만드는데 약간의 설비가 필요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액체가 극저온에 달하면 반영구적으로 자체 유지가 된다나 뭐라나 그런 말을 했다.


그 전까지 나는 한 번도, 동생이 그렇게 오래 가족 아닌 누군가와 얘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동족은 동족을 알아본 다는 것인가!


보기에 평범한 외모를 하고 있는 박사도 분명 동생처럼 ‘돌아이’ 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참을 동생과 신나게 얘기하고 난 박사가 어머니와 내게 물었다.


“뭐, 더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박사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던 어머니가 대답했다.


“저, 50대 주정뱅이도 가능한가요? 사지는 멀쩡해요.”




그로부터 한 시간 이내에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동의서를 따로 한 장 더 받아가지고 우리는 사무실을 나왔다.


“제주에 있는 시설에서 한다니까 이참에 가족끼리 여행한다 생각하면 되겠다. 너희 아빠가 순순히 따라올까 걱정되긴 하다만···!”


그때 동생 놈이 엄마를 보고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엄마, 걱정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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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단란하고도 어색했던 온천탕에서 만난, 오리새 24.05.19 98 3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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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육식초 24.05.17 116 5 7쪽
7 만 년 후, 눈물의 재회 24.05.16 128 6 8쪽
6 불의 발견 +1 24.05.15 135 3 7쪽
5 먼저 깨어난 아버지와 베이컨 24.05.14 147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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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 이제 출발이다 +1 24.05.12 151 4 9쪽
»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 +1 24.05.11 172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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