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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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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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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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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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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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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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먼저 깨어난 아버지와 베이컨

DUMMY

나는 그 짐승을 보고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곧 모닥불을 돌아서 내게 돌진한 그 놈은 달려들어 내 다리를 핥아댔다.


“으아! 아아악! 이게 뭐야! 저리 갓!”


내가 크게 소리 지르는 통에 그 짐승이 놀랐는지 ‘타다닥’ 하고 도망쳐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버지는 들고 있던 노란 덩어리들을 어머니에게 주고 그 짐승을 끌어안고는 머리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었다.


“어구구! 우리 베이컨 놀랐구나! 괜찮아. 경우가 너를 처음 봐서 그래. 헤헤헤! 이거 어리광 부리는 것 좀 봐!”


아버지는 그게 꼭 자기 자식이라도 되는 양 귀여워했다.




어머니는 그 장면을 보고도 무심한 듯 보아 넘기고 아버지가 건넨 노랑 덩어리들을 한쪽에 있던 돌로 찍어서 조심히 깬 다음 반으로 쪼갰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단단해 보이는 과육 같은 게 꽉 차있고 가운데에는 물 같은 게 차 있었다.


어머니가 그걸 내게 불쑥 내밀었다.


“자아, 얼른 마셔봐! 기운이 좀 날거야.”


어머니에게서 그것을 받아서 쭈욱 들이켰다.


왠지 스포츠 음료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음! 나쁘지 않네!’


그리고 갑자기 배가 엄청 고파졌다.


동생과 어머니는 노란 것들을 쪼개고 거기서 나온 액체를 아버지와 나눠 마셨다.




그것들을 다루는 모습이 셋 다 무척 능숙해 보였다.


물 같은 액체를 마시고 남은 딱딱한 과육부분을 셋이 같이 한참동안 여러 조각들로 쪼갰다.


그리고 그 조각들을 큰 나뭇잎에 여러 번 싸서 모닥불 귀퉁이에 아직 불씨가 남아있는 재 밑에 묻었다.


어머니는 남은 자잘한 부분들을 아직 개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던 그 짐승에게 줬다.


‘아그작 아그작’


맛있게 먹는 소리가 났다.


그 돼지랑 개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짐승이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내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버지 얘기에 따르면 이랬다.


몇 주 전인지 아니면 몇 달 전인지 아버지가 제일 먼저 눈을 떴다.


이상한 소리에 놀라 일어나보니, 아버지의 몸이 낮은 나무에 반쯤 걸쳐진 채, 다리 부분이 이상한 고치 같은 것에 묻혀있었다.


상체는 바닥에 떨어진 채였다.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니 울창한 숲 한가운데 나무가 이리저리 얽혀 있었고, 어머니와 나, 동생은 투명한 막에 싸여 그 안에서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 주변엔 등치가 큰 짐승들이 모여 있었단다.


그 짐승들은 뭔가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막과 그 안에서 흘러나온, 액체를 먹고 있었다고 했다.




너무 놀라서 꽥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도 맘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버지는 한동안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죽었구나!’ 생각하고 자포자기해 눈을 감고 있으려니 한참이 흘렀고, 다리 부분이 툭 떨어져 몸 전체가 갑자기 바닥에 닿았다.


아버지는 이제 그 짐승들이 달라들어 자기를 먹겠거니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서 쩝쩝, 우걱우걱 소리가 나는데도 자신의 몸이 뜯겨서 아프거나 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고 여겼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 눈을 떴다.


예상 외로, 소와 말을 섞어놓은 것처럼 생긴, 그 큰 짐승들은 자신의 주위에 떨어진 미끌거리는 액체와 막만을 한참동안 먹어치우고는 유유히 사라졌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동물들을 ‘말소’라고 불렀다.




“으아! 아으헉!”


무서움과 어지러움 때문에 한동안 몸이 마비된 듯 움직이지 못했던 아버지가 드디어 뻣뻣해진 몸을 억지로 펴며 일어났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까지 그 자리에 남아있던, 지금은 ‘베이컨’이라고 부르는, 이상하게 생긴 짐승을 봤다.


아버지는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걸어가서 우리 셋을 싸고 있던 타원형의 주머니를 살펴봤다고 했다.


두드리고 긁어보고 때려 봐도 너무 단단해서 자신은 우리를 꺼낼 수 없었고, 미동도 안하는 우리가 죽었을까봐 걱정이 된 아버지는 한동안 목 놓아서 울었다.

아버지가 울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는 왠지 서글퍼졌다.




한참을 울고 났더니, 배가 고파진 아버지는 아직도 주변에서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액체를 핥고 있던 베이컨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땅을 파는 것을 봤다고 했다.


‘파바바밧!’


땅을 파고 있는 베이컨 옆에서 같이 맨손으로 땅을 파본 아버지는 고구마 같이 생긴 뿌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베이컨이 그 뿌리를 먹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먹었다고 했다.




그 후, 베이컨은 갑자기 없어졌다가도 아버지가 입고 있던 쫄쫄이 옷에 묻은 액체 때문인지 금방 다시 나타나 자신의 신체 여러 부위를 핥고 가곤 했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리고 처음에 봤을 때는, 그 이상하게 생긴 짐승이 무척 싫다고 생각했지만, 혼자면 무섭기도 하고 또 자꾸 보니까 정이 생기고, 어떻게 보면 귀여운 것도 같아서 녀석에게 이름까지 붙여줬다고 했다.


곧 그대로 밤이 되자, 숲에는 금방 어둠이 찾아와 한치 앞도 안 보이고 금방 체온이 떨어진 아버지는 베이컨을 따라다니다 이 동굴을 발견했다.


“밖에 방치된 셋이 무척 걱정이었지만, 그 날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어.”


아버지가 그 날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날은 동굴에서 베이컨을 끌어안고는 뜬눈으로 밤을 샜지!”


아버지가 말하며 품안에 안고 있던 베이컨을 예쁜 듯 다시 쓰다듬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우리 셋이 들어있는 단단한 타원형의 물체를 차례로 동굴로 끌어왔다.


‘우리가 죽었다 해도 가족들을 그렇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겠지!’


얘기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도중에 배가 고파지면, 베이컨과 함께 파서 먹었던, 뿌리를 캐서 생으로 먹었다.


드디어 우리 셋을 다 동굴로 옮겨온 아버지는 마실 물을 열심히 찾아 다녔다.


아버지가 본 숲은 우리가 살던 시대에 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열대우림처럼 나무가 훨씬 커서 하늘이 안 보일 정도였고 항상 습했다.




처음에 아버지는 맨발로 다니다가 발을 여러 번 베이고 나서는 질겨 보이는 큰 나뭇잎을 여러 개 따서 발을 감고, 여기저기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칡넝쿨 같은 것을 뜯어내 발에 감았다.


또 아버지는 베이컨이 큰 식물의 여러 겹 겹쳐진 나뭇잎 사이에 고인 물을 찾아내 마시는 것을 보고, 아버지도 따라 마셨다.


비가 자주 오고 숲이 울창해, 햇볕이 강해도 볕이 닿지 않는 곳에 물이 고여 있는 듯 했다.


“아구구! 고맙다. 베이컨!”


아버지가 얘기를 하다가 그때 일이 떠올랐는지 베이컨을 또 토닥였다.


‘뀌익! 뀍!’


그 모습이 진짜 돼지 소리 내는 개인 것만 같았다.





어쨌든 그렇게 날이 지나고 두 번째 밤이 찾아왔다.


그 날은 우리가 들어 있는 타원형 고체가 옆에 있어서 안심이 된 건지, 아님 숲을 헤매고 다닌 게 피곤해서 인지 아버지는 금방 잠이 들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밖에서 ‘쏴아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쏟아지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곧 잠에서 깨, 비오는 소리를 걱정스럽게 들었다.


아마도 비가 많이 와 동굴에 물이 차거나, 비를 피해 들어온 야생 동물의 습격을 두려워해서였을 것이다.




그때 빛이 번쩍하고 얼마 있다가, ‘우르릉 쾅’ ‘콰광’ 천둥소리가 들렸다.


“도시에 살적에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던 그 소리가 그때는 죽을 듯이 무섭더라.”


아버지가 말했다.


쉴 새 없이 천둥소리가 들리다가 잠시 비가 멈춘 사이, 겁에 질려 벌벌 떨던 아버지가 베이컨을 끌어안고 막 잠이 들었을 무렵이었다.


가까이서 번쩍 빛이 났다.


바로 연이어 ‘꽈과광’ 큰소리가 바로 옆에서 나는 듯 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무서운지. 아버지가 벌벌 떨고 있었을 때, 밖 어딘가에서 계속 소리가 났다.


‘타닷! 타다다닷!’


“그게 무서운 와중에도 왠지 익숙했어.”


그때를 회상한 아버지가 말했다.


그리고 그 익숙한 소리를 따라 아버지는 용기를 내 바깥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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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베이컨의 상태가 이상하다 24.05.27 68 3 6쪽
17 아버지와 노랑이들 24.05.26 71 2 7쪽
16 환상의 맛, 코코넛 게 24.05.25 70 4 7쪽
15 최상위 포식자, 그레이를 만나다 24.05.24 76 5 6쪽
14 죽이기엔 너무 사랑스러운 햄망이 24.05.23 77 3 8쪽
13 우연히 발견한 부싯돌 24.05.22 82 3 6쪽
12 오해를 풀고 베이컨과 다시 친해지다 24.05.21 84 3 6쪽
11 온몸을 던져 구명지은을 갚다 24.05.20 85 3 6쪽
10 단란하고도 어색했던 온천탕에서 만난, 오리새 24.05.19 98 3 6쪽
9 원수 같던 동생 놈이 목숨을 살려줬다 24.05.18 109 3 7쪽
8 육식초 24.05.17 116 5 7쪽
7 만 년 후, 눈물의 재회 24.05.16 128 6 8쪽
6 불의 발견 +1 24.05.15 135 3 7쪽
» 먼저 깨어난 아버지와 베이컨 24.05.14 148 6 8쪽
4 실험에 참여했는데, 모르는 곳에서 깨어났다 24.05.13 148 6 9쪽
3 자, 이제 출발이다 +1 24.05.12 151 4 9쪽
2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 +1 24.05.11 173 7 11쪽
1 쥐구멍엔 볕 뜰 날이 없다 +1 24.05.10 228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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