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맛, 코코넛 게
내가 도착하고 얼마 안 돼, 아버지와 수도 그 날 사냥한 햄망이와 열매들 그리고 마 같이 생긴 뿌리들을 잔뜩 가지고 돌아왔다.
덕분에 그날 저녁은 진수성찬이었지만 불행히도 난 많이 먹지 못했다.
왜냐면 내 뇌리에는 낮에 본 그레이의 모습이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먼저 보내고, 열매를 따러 올라간 높은 야자나무에서 본 바다얘기로 들떠있었다.
아버지와 수는 이제 이동거리를 더 늘려서 바다가 있는 곳까지 가 볼 계획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신나게 얘기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때 딴 생각을 하면서 베이컨과 놀아주고 있었는데 어머니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경우야! 왜 그래? 몸이 안 좋아?”
걱정하는 어머니를 보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괜찮아요. 조금 많이 피곤하네요. 저 먼저 일찍 잘게요.”
그날 일찍 자리를 펴고 눕긴 했지만 나는 늦게까지 잘 수 없었다.
그레이가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우리가 머물고 있는 동굴쯤은 금방 찾아내서 우리를 눈 깜짝할 새에 다 죽여 버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계속 들었다.
이런 저런 걱정에 새벽녘까지 깨어 있었던 나는 밤 늦게야 겨우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다음 날 우리는 그 전날 옮겨 설치한 덫을 확인하러 갔다.
그런데 아쉽게도 덫에 걸린 동물이 하나도 없어서 수와 나는 큰 실망을 했다.
아버지는 그런 우리를 보고 위로하듯이 말했다.
“걱정마라!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정 동굴로 가져갈 게 없으면 어제 따 놓은 열매랑 마 뿌리 먹으면 되지. 오늘은 조금 더 바다 가까운 쪽으로 가 보자. 어제 나무에 올라가서 보니까. 그곳엔 더 큰 나무들이 있던데! 그쪽엔 아마 먹을 만한 과일들이 더 있을 것 같더라.”
아버지의 제안에 우리는 흔쾌히 야자수가 더 많이 모여 있는 바다 가까운 지역으로 갔다.
그곳엔 우리가 어제 덫에 잡혀있는 걸 봤던, 노랑이들이 나무들 위에 무리지어 사방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놈들이 이미 먹은, 썩어가는 열매들이 온 땅위를 굴러다녔다.
“아! 진짜, 다 먹었네! 다 먹어치웠어. 여기는 노랑이들이 다 따먹어서 건질 게 없겠는데 딴 데로 가보는 게 낫지 않을까?”
수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굴러다니던 큰 코코넛 껍질을 힘없이 찼다.
그 껍질은 그늘진 곳으로 굴러가 다른 썩어가는 열매들과 부딪혔다.
그때 ‘샤샤사샥’ 하고 뭔가가 소리를 냈다.
나는 긴장하며 그곳을 살폈다.
그랬더니 조그만 바위같이 생겼던 것이 수가 찬 코코넛 껍질에 맞아서 몸을 옮기느라 움직이는 것을 봤다.
그것은 오지 탐험 프로그램에서 봤던 큰 코코넛 크랩을 닮아있었다.
“봐! 저기! 큰 게가 있어!”
아버지와 수는 내가 가리킨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곧 아버지는 들고 있던 돌창을 세우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게가 있었던 자리 부근 큰 식물들을 비집고 들어가 창으로 그 근처를 여러 번 쑤셔댔다.
수와 나는 그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그때 아버지가 기뻐하며 소리쳤다.
“와아아! 잡았다아!”
아버지가 힘겹게 식물이 우거진 곳에서 걸어 나오며 아래쪽을 향해 들고 있던 돌창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거기엔 집게발로 매달린 아까 봤던 게가 매달려 있었다.
그건 킹크랩처럼 컸다.
“어? 우와! 대박!”
우리 남매의 입에서 기쁨과 놀람의 탄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아버지가 놀라는 우리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허허허! 그치? 나도 깜짝 놀랐다. 수야! 이놈 묶게 줄 좀 꺼내 와라!”
수가 재빠르게 달려가 줄을 가지고 왔다.
아버지와 나는 한참을 실랑이 한 끝에 그놈의 집게발을 묶고 가져가기 쉽게 그 게의 몸에 끈을 여러 번 둘러서 매듭을 지었다.
그리고 우리는 잔뜩 기대에 부푼 채 다른 숨어있을 다른 게를 찾아 코코넛 열매들이 뭉쳐있는 곳을 헤집으며 다녔다.
신이 나서 열심히 게를 찾아다닌 결과 우리는 그날 오후, 무려 총 세 마리의 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들뜬 마음으로 각각 게를 한 마리씩 들고 동굴로 향했다.
“이거, 이거 오늘 대박이구나. 허허허!”
동굴로 가는 모두의 발걸음이 신이 났다.
어머니는 우리가 들고 간 게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좋아했다.
“세상에나! 이게 뭐예요? 어머, 크기 좀 봐···! 어떻게 요리하지?”
잡아온 게를 요리하는 문제로 의논하던 우리는 결국 가장 손이 덜 가는 게찜을 만들어 먹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불에 올려놓고 끊일 수 있는 그릇이 없었던 지라 오랜만에 온천에 가서 목욕도 하고 게를 삶아오기로 했다.
베이컨은 처음 보는 신기한 동물을 보고 호기심에 다가갔다가, 게가 집게발로 녀석을 찔렀던 지, 갑자기 소리를 꽥 지르며 동굴 한 쪽으로 도망쳐 버렸다.
“하하하하! 녀석, 우리 몰래 훔쳐 먹어보려다 된통 당했지?”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는 녀석을 보고 나는 한참 웃었다.
그러다 오리새 사건 이후로 온천에 가본 적이 없었던 나는 문득 걱정이 됐다.
“근데, 목욕을 할 수 있을까? 그 오리새 일이 있었잖아....”
“걱정 마. 오빠! 그 다음날 아빠랑 가서 확인했는데 남아있던 것도 다 다른 동물들이 깨끗이 먹어치웠더라. 그리고 내린 비에 탕이 씻겨서 깨끗했어.”
수가 쾌활하게 말한 뒤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엔 오빠가 저번처럼 그렇게 온몸으로 안 구해줘도 될 거야. 안심해! 하하!”
“그, 그래! 알려줘서 고맙다.”
우리 대화를 듣고 계시던 부모님까지 웃기시작하자 얼굴이 더 빨개진 내가 먼저 길을 나서며 말했다.
“어어! 그럼, 먼저 출발할게요.”
그날 저녁, 우리는 기분 좋게 온천을 마치고 삶은 게를 맛있게 나눠 먹었다.
뭘 먹고 포만감을 느껴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밤새 비가 내렸다.
비를 피해 몰려 온 모기들을 쫒으려고 어머니는 모기 쫒는 나무를 태워 밤새도록 연기를 냈다.
나는 편안한 얼굴로 쉬고 있는 가족들을 보며 위험한 일도 많고 모기떼한테 시달리기도 하지만,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한 우리 가족이 이 정도면 잘 지내고 있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사이좋게, 가깝게 지내본 적이 있었을까! 어쩌면 냉동수면실험에 참여하기로 한 게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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