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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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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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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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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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자, 이제 출발이다

DUMMY

출발 전날, 다시 깨어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는 실험에 참여할 생각에 문득 내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래서 밖에 나가 친구 놈과 이것저것 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늦게 집에 돌아갔다.


집에서는 동생과 어머니가 바쁘게 술상을 차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일하는 식당에서 얻어온 돼지갈비를 정성스럽게 굽어 상위에 올렸다.


동생은 상을 다 차리고는, 마지막으로 상 밑에 동의서를 잘 놓아뒀다.




그날 밤늦게 아버지가 이미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집에 들어섰다.


치킨 한 마리를 손에 들고서 말이다.


아버지가 들어서는 소리에 동생이 얼른 나가 반가운 얼굴로 아버지를 맞았다.


평소에는 아버지가 돌아와 얼굴 좀 보려고 제 방에 들어서면 쫒아내기 바쁜 놈이었는데 말이다.


그때 어머니는 평소처럼 싱크대 옆에서 봉투를 붙이고 있었다.


집에 들어선 아버지가 동생 놈을 보고 깜짝 놀랐다.


“허이쿠! 깜짝이야! 수냐? 우리 수 맞어?”


아버지는 다시 확인하려는 듯 게슴츠레 술 취한 눈을 크게 뜨려 애쓰며 물었다.


“어어, 아빠! 나 맞어. 어서 와! 오늘 힘들었지? 아, 빨리 들어와! 나 할 말 있다고오.”


“어? 어어! 그래.”


수의 재촉에 답하면서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술에 취한 와중에도 느낀 건지 입구에 엉거주춤 서 있는, 아버지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내가 아버지를 끌어당겼다.


“아버지! 수가 할 말 있다잖아요. 나쁜 일 아니니까 어서 들어와요!”


‘그래! 분명 우리에겐 나쁜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곧 아버지를 억지로 상 앞에 앉히고 동생과 내가 옆에 앉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냉장고에서 소주 두 병을 꺼내왔고 역시 상 근처에 앉았다.


그 때문에 아버지의 불안감은 극에 달한 것 같았지만 술이 앞에 놓이자 버릇처럼 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아버지가 취주 본능을 참으며 두려운 눈빛으로 어머니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눈치 빠른 동생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버지를 살살 달랬다.


“아이, 아빠! 오늘 좋은 소식이 있어서 엄마한테 내가 부탁했어. 말하자면 경사야. 경사!”


“으응? 경사아? 우, 우리 집에···?”


아버지의 목소리에 의심이 가득했다.


‘아휴! 하긴, 못 믿을 만하지!’


그 태도에 깊은 공감이 됐다.


“으응, 그러니까 한 잔해!”


동생이 소주 뚜껑을 열고 맥주 컵에 가득 술을 따랐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침을 삼켰다.


동생은 내 앞에 놓여있던 소주잔에도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저기, 오빠도 좋은 날이니까 한 잔 해야지! 자!”


‘끄아아악!’


내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나의 절규와 함께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나는 얼른 술을 벌컥 들이켰다.


내가 들이키는 모습을 보고는 조금 안심이 됐는지 아버지가 연이어 술을 기분 좋게 들이켰다.


“키아! 좋다아! 좋아!”


아버지는 어머니가 맛있게 구워놓은 돼지갈비를 들고 맛있게 뜯어 먹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동생이 입을 열었다.


“근데, 아빠! 무슨 좋은 일인지 안 물어봐?”


술이 들어가자 긴장이 완전히 풀린 아버지가 배시시 웃었다.


“아차차! 흐으으! 미안해. 우리 따알! 히이! 무슨 좋은 일이야?”


“응, 아빠도 알지? 내가 머리 무지 좋은 거.”


“응, 아주 잘 알지. 그럼!”


아버지는 술을 다시 따르며 대답했다.


“그래서 외국에 있는 아주 유명한 대학에서 나더러 공부하러 오래! 공짜로! 학비랑 생활비랑 다 준다고.”




금시초문이었다.


‘진짜 그런 일이 있는 건가?’


나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동시에 눈이 동그래져서 동생을 쳐다봤다.


그때 동생은 천연덕스럽게 앉아있었다.


“그런데 내가 미성년자잖아! 그래서 부모님 동의가 필요하대. 엄마는 이미 사인했는데, 아빠 것도 필요하다고.”


동생이 말하고 있는 중에 아버지가 마시려던 술잔을 내려놓더니 동생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이고오! 수야아! 우리 딸! 내가, 보고 싶어서 안 돼! 그냥 가지 마라. 응? 한국에 있어도···,한 달에, 한, 두어 번 보는데···. 이제 영영 못 볼까봐 아빠는 겁난다. 흐으어엉!”


아버지가 울고 있었다.




그제야 그 정신 나간 놈의 계략을 눈치 챈 나는 아버지의 모습에 당황했다.


‘미친 놈! 왜 이렇게 치밀하게 짠 거야!’


엉겨 우는 아버지를 달래며 여전히 천연덕스럽게 동생이 말했다.


“아빠아! 걱정 마. 내가 자주 오면 되지. 지들이 모셔 가는데 그 정도는 해주겠지. 그리고 공부 끝나면 돈 많이 주고 나 취직시켜 줄 거래. 그럼 아빠랑 엄마 일 안 해도 돼! 내가 다아 알아서 해줄게. 이제 뚝!”


감격해서 흐느껴 우는 아버지를 토닥이며 동생이 덧붙였다.


“아이, 아빠! 이제 그만 울어! 좋은 일이니까 한 잔해!”


“흐어! 엉! 오냐! 우리 수 최고다!”


아버지는 넙죽 동생이 준 술을 잘 받아마셨다.


“자! 여기다 사인하면 돼!”


감격한 아버지는 동생 놈이 들이민 서류를 보지도 않고 서명해줬다.


“아! 그리고 거기 대학에서 돈을 미리 줘서 우리 내일 제주도로 놀러 갈거야!”


동생이 자리에서 서류를 들고 일어나며 말했다.





아버지는 연달은 기쁜 소식에 넋이 나갔는지 동생이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술잔을 허공에 들고 있었다.


‘도대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넋이 나간 건 우리 셋 다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나는 아직도 자고 있는 아버지를 깨워 옷을 입혔다.


잠이 덜 깬 아버지는 어제 동생이 말한 것도, 같이 술을 마신 것도 꿈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우리는 큰 가방하나에 단출하게 짐을 꾸렸다.


그리고 거의 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했다.


키오스크에서 표를 출력하고 자리에 앉았다.


동생은 남은 돈으로 커피를 사왔다.


말없이 커피를 마시는 어머니를 보고 내가 물었다.


“근데, 어머니! 안 무서워요?”


어머니는 나를 잠시 지그시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뭘!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리고 가족 다 같이 잖냐. 그럼 된 거지!”


‘어머니다운 대답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금방 시간이 다 돼서 우리는 탑승구로 향했다.


비행은 순조로웠다.


비행기로 한 시간 걸리는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 있는데, 그동안 한 번도 못 와봤다니 내 인생도 참 구리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 공항 TV에서는 육지와 제주를 연결하는 터널공사 뉴스가 한창이었다.


앞으로 일 년이면 해저 터널이 완성되어 차로도 제주도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단다.


공항 앞에는 우리를 픽업하러 온 회사에서 나온 직원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 사람이 여행사 직원인 줄 알고 좋은데 많이 데려가 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했다.


그 말을 들은 그 직원이 몹시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차에 타자마자 직원이 물었다.


“저기, 식사하고 가실게요. 어디 가고 싶은데 있으세요?”


동생은 이런 상황도 예상했었는지 스마트 폰에 저장해 놓은 음식점 이름을 대면서 거기로 가달라고 했다.


제주도 은갈치 전문점이었다.


방사능 오염 걱정이 전혀 없는 양식 갈치란다.


“경우야! 많이 먹어라. 우리 수 덕분에 이런 데도 오고 좋지?”


음식점에서 나온 음식을 보고 감탄하며 이미 주문해 놓았던 술을 따라 마시던 아버지가 말했다.


“어어, 예에!”


할 수 없이 억지웃음을 지어보이며 내가 대답했다.


그때 어머니와 동생은 말없이 밥을 먹고 있었다.


‘됐다! 지금까지는 순조롭다!’


아버지에게 언제 들킬까 나는 계속 조바심이 났다.


연구소가 한라산 근처에 있었는지 점심을 먹고 출발한 차는 그쪽을 향해 달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는 신이 나는지 콧노래를 계속 흥얼거렸다.


드디어 차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우리를 연구소 직원이 나와 맞았다.


“어서 오세요! 갈텍에 잘 오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여기가 숙소냐?”


“아버지, 들어가시죠!”


나와 동생의 손에 이끌려 아버지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짐을 들고 있었다.


“박사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직원의 안내대로, 점점 더 몸을 버티며 주위를 계속 둘러보는, 아버지를 양쪽에서 부축한 우리는 이층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섰다.


동생은 서명된 아버지의 동의서를 박사를 만나자마자 건넸다.


“호호호! 가족 분들이 한꺼번에 참가하신다니 전례 없는 경우네요. 반갑습니다.”


박사가 웃으며 인사했다.


그때 아버지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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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베이컨의 상태가 이상하다 24.05.27 68 3 6쪽
17 아버지와 노랑이들 24.05.26 71 2 7쪽
16 환상의 맛, 코코넛 게 24.05.25 70 4 7쪽
15 최상위 포식자, 그레이를 만나다 24.05.24 75 5 6쪽
14 죽이기엔 너무 사랑스러운 햄망이 24.05.23 77 3 8쪽
13 우연히 발견한 부싯돌 24.05.22 81 3 6쪽
12 오해를 풀고 베이컨과 다시 친해지다 24.05.21 84 3 6쪽
11 온몸을 던져 구명지은을 갚다 24.05.20 85 3 6쪽
10 단란하고도 어색했던 온천탕에서 만난, 오리새 24.05.19 98 3 6쪽
9 원수 같던 동생 놈이 목숨을 살려줬다 24.05.18 108 3 7쪽
8 육식초 24.05.17 116 5 7쪽
7 만 년 후, 눈물의 재회 24.05.16 128 6 8쪽
6 불의 발견 +1 24.05.15 135 3 7쪽
5 먼저 깨어난 아버지와 베이컨 24.05.14 147 6 8쪽
4 실험에 참여했는데, 모르는 곳에서 깨어났다 24.05.13 148 6 9쪽
» 자, 이제 출발이다 +1 24.05.12 151 4 9쪽
2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 +1 24.05.11 171 7 11쪽
1 쥐구멍엔 볕 뜰 날이 없다 +1 24.05.10 227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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