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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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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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3
추천수 :
127
글자수 :
132,112

작성
24.05.18 00:00
조회
108
추천
3
글자
7쪽

원수 같던 동생 놈이 목숨을 살려줬다

DUMMY

그때 내 몸보다 거대한 이파리가 내 등에 철썩하고 들러붙었다.


다른 여덟 개쯤 돼 보이는 땅속에 숨겨져 있던 이파리들도 서서히 내 쪽으로 꽃봉오리가 닫히는 것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이것들이 닫히면 나는 곧 죽을 것이라는 실감이 됐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나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우어어엉! 허어엉! 살려줘! 제에발! 살려줘어! 흐으, 누가 좀···! 아무도 없어요?”


어디서 그 많은 양의 눈물이 나오는지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 사이 잎들은 벌써 반 이상 닫혔다.


그리고 등에 달라붙은 잎 때문에 나는 더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멀리서 어렴풋이 소리가 들렸다.


공포에 질린 나는 그게 내 날뛰어대는 심장 소리인지 다른 소리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런데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눈을 비비고 앞을 잘 보고 싶었지만 내 두 손은 그 망할 수박에 붙어있었다.


‘애초에 그건 수박이 아니라 그냥, 물컹거리는 수박을 닮은, 다른 것이었지!’


그렇게 생각한 내가 절망에 빠져 미쳐가던 그때, 진짜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야아! 기다려! 내가 구해줄게. 좀만 기다려! 오빠! 내가 구해줄 거야!”


“흐어엉! 으응! 나 여깃어! 수야! 나 여기에···있어!”


기뻐서 우는 소리와 함께, 내 평생 거의 부르지 않았었던, 동생의 이름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곧 잎이 다 닫히기 전에 뭔가가 쑥하고 들어왔다.


그건 바로 수였다.


그런데 동생에게서 똥냄새가 심하게 났다.


수는 온 몸에 똥을 잔뜩 묻히고 와서 나를 끌어안고 몸을 비벼서 자신의 몸에 묻은 똥을 내게도 묻혔다.


그리고 내 머리에도 손을 뻗어서 똥을 계속 발랐다.


그리고 그 똥은 내가 좀 전에 싸질러 놓은 그것이었다.


“야, 임마! 뭐 해? 이게 뭐야! 으웩! 웩!”


구역질이 심하게 났지만 위장이 비어서 인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수가 구역질 하는 나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낮게 소리쳤다.


“야! 이거 네 똥이거든!”


“응, 알어. 미안!”


그 와중에 나는 무안해져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가만있어! 움직이면 안 돼!”




수가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끈끈이 잎사귀들이 어느 새 다 닫혀 있었다.


‘아아! 이제 죽는 구나! 깨어나서 하루도 못 살고 똥을 쳐 바르고 죽네! 근데 하루살이가 하루만 살던 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동생은 여전히 나를 끌어안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불쌍한 녀석! 수박에 눈이 먼 오빠 때문에···, 미안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내 몸이 한쪽으로 쭈욱 기울어졌다.


‘어! 어어!’


그 순간 수와 나의 몸은 퍽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끈끈이 잎들이 ‘쩌저적’ 떨어져나가며 내 손도 자유로워졌다.




그때 수가 소리쳤다.


“오빠! 달려!”


우리는 같이 손을 꼭 잡고 달렸다.


‘근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달리고 있던 내 마음속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한참을 막 달려서 드디어 동굴 근처까지 온 우리는 잠깐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야! 너 땜에 똥까지 바르고···. 이, 이런 미친놈아! 어쩌자고 그걸 만져! 막 태어났냐? 세상에 공짜가 어딨다고···! 뭐 공짜로 주겠다는 놈들 다 거짓말인거 몰라? 그렇게 당하고 살았으면서도 느끼는 게 없냐고오!”


동생은 막 화를 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수도 예뻐 보였다.


‘샤랄랄랄라!’


어딘가에서 들어봤던 스윗한 노랫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며 동생 주위에 밝은 오라가 보였다.




“야! 이게에! 웃냐? 죽는 게 장난이야?”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던 수를 나는 와락 끌어안았다.


“오냐! 오빠도 사랑한다!”


내가 배시시 웃었다.


“아! 뭐래! 미친놈이!”


수가 화를 내며 동굴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화를 내고 있는 수의 표정은 말과는 정 반대였다.


나는 얼른 수를 쫒아가며 물었다.


“음, 근데 왜 똥이야? 왜 똥을 바르고 잎 사이로 쳐들어 온 거야? 그러다 너도 잘못됐으면 어쩌려고···.”


걷고 있던 수가 나를 돌아봤다.


“그럴 일 없었어. 육식초 센서에 우리가 먹지 못할 거라는 인식이 되면 풀려날 줄 알았거든!”


‘아! 그래서 똥이었구나!’


역시 똑똑한 수였다.




부모님은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가 우리 꼴을 보시고는 펄쩍 뛰며 놀랐다.


잠시 후 얘기를 다 들은 부모님이 수를 많이 칭찬했다.


그런데도 수는 계속 불퉁거렸다.


“아! 이거 어떡하냐고. 이똥을 어디서 씻어내냐고!”


“있어! 근처에. 온천.”


어머니가 계속 불 옆에서 일하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뭐? 어디 있는데? 그리고 어떻게 발견했어?”


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동생도 온천에 대해 처음 듣는 듯했다.


“음! 우리도 최근에 알았어. 우연히 발견했지. 흠! 흠!”


굉장히 수상쩍게 말하는 아버지가 어머니 쪽을 힐끔거렸다.




‘세상에나! 어제 불 근처에서 저녁을 만들던 부모님이 무슨 소년소녀처럼 장난치며 알콩달콩 하던 게 이거였구나!’


내 기분이 참 이상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찬바람이 쌩쌩 불던 어머니였는데, 둘 사이가 좋아진 건 다행이지만 왠지 배신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아버지 때문에 벌어진 위기를 함께 버텨온 전우 아닌가! 하! 세상에 어머니가 이렇게 변하는 날이 올 줄이야!’


하지만 내가 느낀 배신감과는 무관하게 어머니의 얼굴은 너무나도 편안해보였다.


얼마 후, 우리 넷은 숲길을 걷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다 부모님이 갑자기 큰 나무 앞에서 멈춰 섰다.


그 나무 둥치에는 발톱으로 할퀸 듯 보이는 생채기가 많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베이컨이 어느 새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다가 우리가 서자 같이 멈춰 섰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돌아보자 아버지가 나무로 다가가 코를 들이대 냄새를 맡았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무슨 해설사가 된 것 마냥 설명해줬다.


“봐라! 너희 아버지가 술을 끊은 이후고 후각이 다시 돌아왔어. 젊었을 때는 개 코였거든. 나무에 영역을 표시해 둔 포식자 냄새를 맡는 거야. 그러면 그놈이 근처에 있는지 알 수 있거든!”




아버지가 한참 코를 들이대고 있더니 돌아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곧 다시 출발했다.


어머니의 손에는 아버지가 만든 나무바가지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이윽고 나무가 뜸해지더니 바위가 많은 지대가 나타났다.


그러고도 한참 더 가서야 저 멀리 큰 웅덩이가 보였다.


웅덩이를 향해 밟고 지나가는 바위들이 엄청 따뜻했다.


그때 마침 비가 쏟아졌다.


수가 말한 것처럼 기후가 열대성으로 변한 것인지 잠깐 동안이었지만 비가 무슨 폭포처럼 내렸다.


그 덕에 똥 범벅이 돼있던 우리 몸은 좀 깨끗해졌다.


어머니가 빗속에서 우리에게 소리쳤다.


빗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지만 손짓을 봤을 때 몸을 문질러서 빗물에 몸을 씻어내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몸을 어느 정도 씻어내고 나니 금세 비가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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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베이컨의 상태가 이상하다 24.05.27 68 3 6쪽
17 아버지와 노랑이들 24.05.26 71 2 7쪽
16 환상의 맛, 코코넛 게 24.05.25 70 4 7쪽
15 최상위 포식자, 그레이를 만나다 24.05.24 76 5 6쪽
14 죽이기엔 너무 사랑스러운 햄망이 24.05.23 77 3 8쪽
13 우연히 발견한 부싯돌 24.05.22 82 3 6쪽
12 오해를 풀고 베이컨과 다시 친해지다 24.05.21 84 3 6쪽
11 온몸을 던져 구명지은을 갚다 24.05.20 85 3 6쪽
10 단란하고도 어색했던 온천탕에서 만난, 오리새 24.05.19 98 3 6쪽
» 원수 같던 동생 놈이 목숨을 살려줬다 24.05.18 109 3 7쪽
8 육식초 24.05.17 116 5 7쪽
7 만 년 후, 눈물의 재회 24.05.16 128 6 8쪽
6 불의 발견 +1 24.05.15 135 3 7쪽
5 먼저 깨어난 아버지와 베이컨 24.05.14 147 6 8쪽
4 실험에 참여했는데, 모르는 곳에서 깨어났다 24.05.13 148 6 9쪽
3 자, 이제 출발이다 +1 24.05.12 151 4 9쪽
2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 +1 24.05.11 172 7 11쪽
1 쥐구멍엔 볕 뜰 날이 없다 +1 24.05.10 228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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