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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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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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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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글자수 :
13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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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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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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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9쪽

실험에 참여했는데, 모르는 곳에서 깨어났다

DUMMY

“여보쇼! 도대체 뭐요? 우리 딸 해외유학 기념으로 놀러왔는데···. 뭐요? 당신!”


“아! 동의서를 주시기에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 냉동수면 실험에 참가하는 거 알고 오신 거 아닌가요?”


박사의 말에 아버지의 얼굴이 벙해졌다.


“뭐어? 아, 아니오! 나는 아니오! 이런 무슨!”


당황한 아버지의 시선을 동생은 모르는 척 외면했다.


곧 아버지가 손을 내저으며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적잖이 놀란 박사를 쳐다보며 어머니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십 분만 주세요.”




어머니가 나가고 동생 놈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수면 장치에 저희 몸만 들어가나요?”


박사가 입을 벌리고 문 쪽을 쳐다보다가 수의 질문을 받고 고개를 돌렸다.


“네? 아! 아뇨. 특수한 옷을 입고 들어갈 거예요. 초저온에도 끄떡없는 물질로 된 복장이에요.”


곰곰이 생각하던 동생이 다시 물었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인류 모두 수면실에서 적합한 환경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건가요?”


“하하! 합당한 질문이긴 한데 불행히도 자원은 한정적이에요.”


박사의 대답에 동생이 금방 수긍했다.


“그러네요. 또 있는 놈들만 혜택을 보겠죠. 그럼, 적합한 환경이 되려면 최소 만 년 이상 걸릴 텐데 그때는 어떻게 캡슐에서 나오나요?”


동생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박사가 잠시 생각했다.


“음, 장비 없이 자연이 해결해 줄 방법이 있긴 하죠.”


그 후 알 수 없는 용어들이 나오고 나는 ‘뭐래는 거야’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를 쫒아간 어머니가 걱정이었다.




슬슬 걱정이 커지고 있을 즈음, 정말 십 분여 후, 말한 것처럼 어머니가 아버지랑 같이 돌아왔다.


그때 아버지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박사는 돌아온 아버지를 격려하듯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정말 잘 돌아오셨어요. 이제 준비실로 가실까요?”


곧 준비실에서 아버지와 나는 캡슐에 입고 들어갈 지급된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주 얇은 쫄쫄이 같은 그 옷은 입고나자, 마치 피부라도 되는 양 착 몸에 밀착됐다.


별로 느낌이 어색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50대 아저씨의 몸매가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아버지의 몸을 보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준비실을 나가려는데 아버지가 등 뒤에서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저기, 경우야! 아버지가 미안하다.”


“네? 아뇨! 괜찮아요.”


무안해진 나는 얼른 방을 나와 버렸다.


동생 놈은 몸매도 완벽해서 그 이상한 쫄쫄이 옷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하지만 어김없이 그놈은 내 모습을 보더니 비웃으며 크게 소리쳤다.


“어이! 몽글리! 역시는 역시네!”


‘역시라니 무슨 말이지?’


저런 말이 더 짜증난다고 생각한 나는 귀까지 빨개진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정말 못 참겠다고 생각한 내가 한마디 하려고 나섰을 때 어머니가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며 나를 막았다.


젓가락 같이 마른 어머니의 몸을 보니 나는 그만 마음이 슬퍼져 금방 진정이 됐다.





우리 넷은 처치 실에서 각자 침대에 누워 수면 주사를 맞았다.


수면 후 액체에 넣어질 거란다.


그제야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하지만 그 두려움이 채 실감이 되기도 전에 뚝 하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꿈을 꿨다.


내가 기분 좋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하하하!”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원해지며 웃음이 났다.


그때 구름이 내 옆으로 흘러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바로 옆쪽에는 독수리가 기쁜 기색으로 나와 함께 날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녀석이 친구에게 하듯 한쪽 눈으로 내게 윙크했다.


“하아! 이 멋진 녀석!”


기분이 무척 좋았다.


나와 그 녀석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


곧 태양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양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생각했다.




그때 엉덩이가 갑자기 따끔거렸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랬더니 악마 같은 처키 놈이 뒤에서 바짝 쫒아오며 그 놈의 뾰족한 꼬리로 내 엉덩이를 찔러대고 있었다.


“에헤헤! 헤헤! 몽글리! 이 새꺄!”


순간 번개가 번쩍하고 하늘을 가르며 내게 내리쳤다.


겁먹은 나는 양팔을 올려 얼굴을 막았다.




“어어, 경우야!”


“에고, 아들! 아드을!”


“야! 야아! 몽글리이!”


사방에서 나를 불러대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에 떴다.


‘삐이이이’


귀가 엄청 크게 울렸다.


곧 멍했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며 몸에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아! 아야야!”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생각한 것만큼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오, 경우야! 살아났구나.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아버지였다.


웬일인지 아버지의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있었다.


그리고 머리도 엄청 자라있었다.


모양이 최소 단발은 될 거 같았다.


‘뭐야? 수면 캡슐에 들어가지 전에 아버지가 저렇게 노숙자 같은 몰골이었나?’


나는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루 정도는 푹 쉬어야 된다. 그래야 몸이 풀려. 걱정하지 말고 쉬어. 여기는 안전하니까.”


어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여기가 안전하다니!’


내 마음속에 계속 의문이 떠올랐다.




막 태어난 강아지가 이런 기분일까?


앞이 잘 안보였다.


나는 계속 눈을 비비며 꿈뻑 거렸다.


곧 어머니가 물로 정성스럽게 내 눈을 씻어줬다.


그러자 차츰 시야가 선명해졌다.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봤다.


동굴 안이었다.


그리고 내가 누워 있는 곳 옆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다.


그때 동생이 나뭇가지를 부러뜨려서 불에 던졌다.


그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가운 눈빛이 됐다.


“요오! 오빠!”




거의 생전 처음 들어본 진지한 호칭에 내 신경이 곤두서며 소름을 돋았다.


사실 이건 두 번째였다.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동생을 울렸던 동네 개구쟁이를 때려 눕혔을 때, 딱 한 번 동생이 나를 이렇게 불렀다.


그때도 아마 난 치를 떨었던 것 같다.


대번에 내 반응을 알아차린 동생의 얼굴이 빨개졌다.


“하아! 대우 좀 해줄랬더니. 야! 몽글리! 치를 떨어? 앙?”


동생 놈이 내 가슴팍을 마구 때렸다.


사실 힘주어 때리진 않아서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맞으면서도 가족이 다 같이 있다는 게 실감이 나서 그제야 웃음이 났다.


“헤헤! 인제, 너 같다!”


내가 웃었다.


그러자 동생도 같이 웃었다.




불을 쬐면서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몸이 좀 풀렸는지 움직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몸을 천천히 일으킨 내가 불 앞에 가 앉았다.


동생은 불이 꺼지지 않게 큰 나뭇가지들을 계속 던져 넣으며 모닥불을 지켰다.


잠시 밖에 나갔었던 어머니가 잎이 넓은 나뭇잎에 물을 받아 왔다.


“자, 얼른 마셔라! 목이 많이 탈거야.”


나는 시키는 대로 나뭇잎 끝에 입을 대고 천천히 물을 들이켰다.


‘내 생에 이렇게 맛있는 물을 먹은 적이 있던가!’


큰 나뭇잎에 담긴 물을 나는 꿀꺽꿀꺽 다 들이켰다.




그러다 문득 현실감이 찾아왔다.


‘근데, 우리는 분명 수면 캡슐에 들어갔는데 어째서 동굴에 있는 거지? 그 연구실에서 깨어났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여기는 어디지?’


끝없이 일어나는 질문들에 머리가 아파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왜, 어디 아프니? 아버지가 곧 먹을 거 구해서 오실 거야. 조금만 기다려! 좀 누워라. 아직 많이 지쳐있을 텐데.”


어머니 말을 따라 나는 잠시 몸을 다시 뉘였다.




우리가 있는 동굴은 꽤 깊은 것 같았다.


내가 누워있는 곳에서 바깥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가까이 있는 모닥불을 계속 보고 있자니 눈이 몹시 따가워진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내가 누워있는 반대편에 앉아있던 동생과 어머니가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밖에서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눈을 떴다.


그건 아버지가 돌아오는 소리였다.


아버지의 품안에는 서너 개의 큰 노란 과일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뒤로 작은 강아지만한 짐승이 불쑥 따라 들어왔다.


그것은 곧 아버지를 앞질러 쏜살같이 안으로 돌진해 달려왔는데, 몸은 카푸치노 거품 색깔의 짧은 털들로 덮여있고 목이 짧고 귀는 작아서 동그란 게 이리저리 펄럭거렸다.


그리고 다리는 매우 짧아서 ‘타닷’거리며 뛰어 다녔다.


‘뀌익! 귁! 꾸익!’


그것은 꼭 돼지 같은 소리를 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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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베이컨의 상태가 이상하다 24.05.27 69 3 6쪽
17 아버지와 노랑이들 24.05.26 71 2 7쪽
16 환상의 맛, 코코넛 게 24.05.25 70 4 7쪽
15 최상위 포식자, 그레이를 만나다 24.05.24 76 5 6쪽
14 죽이기엔 너무 사랑스러운 햄망이 24.05.23 78 3 8쪽
13 우연히 발견한 부싯돌 24.05.22 82 3 6쪽
12 오해를 풀고 베이컨과 다시 친해지다 24.05.21 84 3 6쪽
11 온몸을 던져 구명지은을 갚다 24.05.20 85 3 6쪽
10 단란하고도 어색했던 온천탕에서 만난, 오리새 24.05.19 98 3 6쪽
9 원수 같던 동생 놈이 목숨을 살려줬다 24.05.18 109 3 7쪽
8 육식초 24.05.17 116 5 7쪽
7 만 년 후, 눈물의 재회 24.05.16 128 6 8쪽
6 불의 발견 +1 24.05.15 135 3 7쪽
5 먼저 깨어난 아버지와 베이컨 24.05.14 148 6 8쪽
» 실험에 참여했는데, 모르는 곳에서 깨어났다 24.05.13 149 6 9쪽
3 자, 이제 출발이다 +1 24.05.12 151 4 9쪽
2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 +1 24.05.11 173 7 11쪽
1 쥐구멍엔 볕 뜰 날이 없다 +1 24.05.10 22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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