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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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3,594
추천수 :
127
글자수 :
132,112

작성
24.05.17 00:00
조회
116
추천
5
글자
7쪽

육식초

DUMMY

그날 저녁, 음식 비슷한 것을 먹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배가 너무 고팠다.


하지만, 먹을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아까 먹은 그게 오늘 아버지가 구해온 전부였구나! 그 쬐끔을 가지고 모두 다 같이 나눠 먹은 거였어. 근데 내가 제일 많이 먹었는데···.’


생각하다 보니, 한 건 아무것도 없이 먹는 건 제일 많이 먹은, 나 자신에게 현타가 왔다.


그 새 모두 잘 준비를 하고 누웠다.


눕자마자 나는 우리가 지냈던,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방 하나 딸린 지하집이 지금 이 자리에 비하면 천국이었음을 실감했다.


‘하아! 이래서 사람들이 캠핑을 가는 건가? 자기 집의 소중함을 느끼려고!’


등은 자꾸 배기는데, 타닷타닷 모닥불 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나는 어느 새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피곤했었나 보다!’


그리고 툭하고 필름이 끊겼다.




눈만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아침이 밝아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은 벌써 일어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겨우 간신히 일어나 눈을 비비고 있는데 베이컨이 내게 달려와 안겼다.


녀석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근육질이었다.


‘역시 자연에서 구른 놈이라 생활 근육이 장난이 아니군! 나를 알파라고 인식하는 건가? 역시 보는 눈이 있군!’


그러나 내 감상이 무색하게도 베이컨은 내 허벅지 안쪽을 열심히 핥아댔다.


그럼 그렇지!


놈은 내 바지에 눌러 붙은 액체를 먹으려고 온 거였다.


나는 귀찮아서 그놈이 하는 대로 놔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랫배에서 신호가 왔다.




부모님은 보이지 않고 동생은 동굴 안쪽에서 뭔가를 살피고 있었다.


곧 두 번째 신호가 왔다.


‘어서 가야한다!’


몹시 급해진 내가 물었다.


“하아하! 야아! 처키야! 우리 화장실 어떡하냐?”


“뭐?”


“아이! 씨! 똥 어디다 싸냐고?”


내 물음에 처키 놈은 대답은 안하고 찌그러지는 내 얼굴을 보고 재밌다는 듯이 웃기만 했다.


베이컨은 배를 잡고 앉은 내 엉덩이를 핥아댔다.


커다란 폭발의 예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나는 말했다.


“하아! 야! 제발. 쪼옴!”




그제야 동생 놈이 만족했는지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따라와! 알려줄게. 안 오면 놓고 간다아!”


“하! 쫌, 잠깐만!”


나는 어기적거리며 간신히 동생 놈을 따라갔다.


동굴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는 동생을 보고 또 나를 골탕 먹이려고 억지로 멀리 끌고 가는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을 때, 동생이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식물들이 웃자란 곳 옆쪽에 파놓은 구덩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다 싸!”


“뭐 화장실 비슷한 거 있는 거 아니었어? 하! 씨! 저렇게 구덩이 파놓고 쌀 거면 아무데나 싸지 왜 끌고 온 거야? 어이가 없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성인 두 세 명이 겨우 서 있을 만한 얕은 구덩이로 가서 옷을 내리려고 했다.


어쨌든 볼일이 급했으니까 말이다.




동생이 그 모습을 보고 확 짜증을 내면서 멀찍이 물러났다.


“야! 동굴 옆에서 싸면 냄새도 날거고 우리를 잡아먹을 지도 모르는 포식자들에게 우리 여깃네, 맛있네 하고 선전하는 거잖아! 안 그래?”


말하는 동생을 저지하며 내가 소리쳤다.


“아, 그래! 알았다. 알았어. 이, 이제 가 봐!”


동생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나는 바지를 내리며 앉았다.


‘뿌지직! 뿌직! 토도도돗! 뿌왁!’


바지를 내리자마자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안에 있던 것들이 말릴 새도 없이 튀어나왔다.


“야! 진짜. 죽을래? 나 아직 안 갔거든!”


동생이 소리를 꽥 질렀다.


그놈은 아직 소리가 들리는 사정권 안에 있었던 듯했다.




그 사실에 내 마음속엔 미안함과 통쾌함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엉덩이가 따뜻해졌다.


혹시 방금 싼 똥이 엉덩이에 닿았나 하는 의심이 들어서 나는 얼른 뒤를 돌아봤다.


그랬더니 베이컨이 언제 다가왔는지 내 엉덩이를 막 핥아대고 있었다.


더 심했던 것은 녀석의 발이 이미 내가 싸지른 똥을 밟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으악! 베이컨! 저리 가! 더러!”


나는 소리 꽥 지르면서 베이컨을 계속 밀어내고 그놈은 내가 말리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 혀를 날름거리며 끊임없이 내 엉덩이를 핥아댔다.


할 수 없이 나는 놈의 옆구리를 찰싹 때렸다.


‘꾸엑! 뀌이이! 뀡!




꽤 충격을 받았는지 베이컨은 큰 소리를 내고, 우다다다 소리 내며 물러나 구덩이를 빠져나갔다.


그제야 낯선 기척에 놀랐던 내장이 진정이 됐던지 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쾌변이었다.


그때 멀리 떨어져 있던 동생이 소리쳤다.


“야! 몽글리! 나 진짜 간다! 으이구! 더러운 소리 다 듣고. 짜증나, 정말!”


“야! 잠깐만! 뭐로 닦는지는 알려주고 가야지! 그리고 나 다 쌌다고. 같이 가!”


혼자 남겨지기 불안했던 나는 동생에게 계속 말을 시켰다.


“거기 근처 잎 넓은 식물, 따서 닦어. 으이구! 그런 것도 알려줘야 하냐?”


“아, 알았어. 쫌만 기다려!”




나는, 아직 멀리 가지 않고 구덩이 언저리에서 기회만 보고 있는, 베이컨의 눈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똑바로 응시하면서 큰 나뭇잎을 몇 개 땄다.


곧 구덩이에서 나온 나는 불안한 마음에 동생을 다시 불렀다.


“야! 갔냐? 나 두고 가버렸냐?”


“아! 씨! 아직 있거든! 빨리 와라! 진짜 간다.”


멀리서 들리는 동생 소리를 따라가던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커다랗고 맛있어 보이는 수박 같은 게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옛날에 마트에서 봤었던 수박보다 훨씬 색이 진하고 달콤하면서도 어쩐지 좀 썩은 듯한 냄새가 풍겨왔다.


‘수박 향이 멀리서부터 이렇게 진하게 날 리가 없지만 아마 만 년 후라서 그런 거겠지!’




막 볼일을 마치고 나온 참이라 허기가 심하게 몰려왔다.


‘우와! 저걸 가져가서 먹으면 배부르겠다! 아니 가면서 몇 입 먹어도 되겠지?’


그쪽으로 가는 내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드디어 도착해 수박을 들어 올리려고 했는데 수박에 무슨 접착제라도 붙여놨는지 땅에 붙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수박에 달라붙은 내 손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은 수박을 닮은 큰 끈적거리는 스펀지 같았다.


멀리서 베이컨이 내 쪽으로 달려오다가 갑자기 겁에 질렸는지 ‘우다다’ 거리며 뒤로 잽싸게 물러났다.




‘꽥! 꾸엑!’


녀석은 재빨리 수풀 속으로 달아났다.


‘아! 이게 뭐야! 망했다!’


곧바로 나는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너무 놀랐는지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살려···사알려줘!”


깊은 한숨을 쉬듯 맥 빠진 소리가 나왔다.


‘아아! 이래선 아무도 못 듣겠다. 애초에 우리 가족 외에 누가 있나! 동생은 동굴로 돌아갔을 거고 부모님은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식은땀이 등줄기를 흐르며 불길한 기운이 나를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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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베이컨의 상태가 이상하다 24.05.27 69 3 6쪽
17 아버지와 노랑이들 24.05.26 72 2 7쪽
16 환상의 맛, 코코넛 게 24.05.25 70 4 7쪽
15 최상위 포식자, 그레이를 만나다 24.05.24 76 5 6쪽
14 죽이기엔 너무 사랑스러운 햄망이 24.05.23 78 3 8쪽
13 우연히 발견한 부싯돌 24.05.22 82 3 6쪽
12 오해를 풀고 베이컨과 다시 친해지다 24.05.21 84 3 6쪽
11 온몸을 던져 구명지은을 갚다 24.05.20 86 3 6쪽
10 단란하고도 어색했던 온천탕에서 만난, 오리새 24.05.19 98 3 6쪽
9 원수 같던 동생 놈이 목숨을 살려줬다 24.05.18 109 3 7쪽
» 육식초 24.05.17 117 5 7쪽
7 만 년 후, 눈물의 재회 24.05.16 128 6 8쪽
6 불의 발견 +1 24.05.15 135 3 7쪽
5 먼저 깨어난 아버지와 베이컨 24.05.14 148 6 8쪽
4 실험에 참여했는데, 모르는 곳에서 깨어났다 24.05.13 149 6 9쪽
3 자, 이제 출발이다 +1 24.05.12 151 4 9쪽
2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 +1 24.05.11 173 7 11쪽
1 쥐구멍엔 볕 뜰 날이 없다 +1 24.05.10 22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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