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3,599
추천수 :
127
글자수 :
132,112

작성
24.05.21 00:00
조회
84
추천
3
글자
6쪽

오해를 풀고 베이컨과 다시 친해지다

DUMMY

누군가 내 턱을 건드린다는 느낌에 나는 퍼뜩 의식을 차렸다.


그런데 몸이 무척 나른해서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또 베이컨이 내 다리를 핥다가 턱을 건드리나 보다! 아아! 참, 턱 다쳤는데···! 이놈이 건드려서 상처가 덧나면 안 되는데!’


눈을 감고 그렇게 생각한 내가 귀찮아하며 눈을 스르르 떴다.


순간, 불과 내 얼굴에서 십 센티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어머니 얼굴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에엑!”


본능적으로 ‘파밧’ 하고 일어난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이미 동굴 벽에 가 매달려 있었다.


“끄악! 뭐예요! 어머니! 놀랐잖아요.”


그리고 반사적으로 턱을 만졌다.


거기엔 이미 부드러운 천 같은 게 붙어있었다.


‘으악! 내 상처에 뭘 한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제보다 아픔이 훨씬 덜했다.


그리고 왠지 허벅지의 상처도 괜찮은 것 같았다.


허벅지를 내려다보니 그곳엔 이미 어머니가 어제 만들었던 초록 반죽이 붙여졌다가 떼어진 흔적이 있었다.




동생 말에 따르면 어제 내가 죽을 뻔 했던 육식초 얘기를 듣고 어머니는 아침 일찍 아버지를 앞세우고 그곳으로 갔었다고 했다.


그리고 가지고 간 오리새의 고기를 끈끈이 수박에다 던졌다.


놈이 미끼를 덥석 물어서 그 넓적한 이파리들을 오므리자마자 부모님은 돌로 만든 찍개로 놈을 파내버렸다.


“이 썩을 놈! 우리 자식들을 넘봐! 응? 아주 이참에 뒈져라! 뒈져!”


아버지는 어머니가 그 놈의 뿌리까지 아작 내는 동안 한 번도 못 들어본 온갖 육두문자를 들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그 때 엄청난 공포를 경험한 듯 했다.


‘아! 이래서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했나! 아아! 어머니!’


그 얘기를 듣는 동안 나는 가슴이 뭉클하고 먹먹해졌다.


어쨌거나 그 일을 처리하고 돌아온 어머니가 오리새의 날개 가죽을 자른 데에다, 육식초에서 나온 것인 듯 보이는, 끈끈이를 가장자리에 발랐다.


그리고 벌어진 턱의 상처에 어제 찧은 풀을 놓고, 그 위에 가죽을 붙이는 과정에서, 내가 일어난 것이라고 수가 말해줬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턱에 붙어있는 것에 대해 몹시 찝찝한 생각이 들었지만, 꾹 참고 조용히 내 자리를 정리했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한 것을 알기에 나는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다.




아침을 먹는데 베이컨이 밖에 나갔다 돌아왔는지 막을 것을 찾으며 동굴 바닥을 코로 훑고 다녔다.


아버지는 그런 베이컨을 보고 귀여워하면서 오리새의 고기를 조금 떼서 주었다.


녀석은 그것을 눈 깜짝할 새에 해치우더니 또 얻어먹을게 없는지 살피다가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달려왔다.


“에잇! 저리가!”


나도 모르게 베이컨에게 소리 질렀다.


아마도 어제 내가 육식초에게 잡힌 상황에 기겁하고 도망친 게 미운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녀석은 내 소리에 놀라서 겁을 집어먹고 아버지 품으로 달려가 머리를 숨겼다.


‘아차! 내가 너무 심했나?’


순간 나는 움찔했다.


가족들이 잠시 다 동작을 멈췄다가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식사를 계속했다.


그때 밥을 먹던 동생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제 오빠 도와주라고 나를 데리고 간 게 베이컨이야. 좀 잘해라!”


‘이런! 내가 뭔 짓을 한 거지?’


금방 내 마음에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식사 후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소리로 베이컨을 불렀다.


“베이컨! 이리 와!”


하지만 녀석은 눈만 힐끔거릴 뿐 좀처럼 오지 않았다.


‘하아! 녀석 상처를 많이 받았나 보다!’


베이컨 얘기를 듣고 죄책감이 들었던 나는 일부러 남겼던 음식을 바로 내 옆에 두고 말했다.


“알았어. 오기 싫음 안 와도 돼. 그 대신 이거 먹어라!”


곧 고개를 돌리고 있던 내 귀에 베이컨이 살금살금 다가와 쩝쩝 맛있게 먹는 소리가 들렸다.


금방 다 먹었는지 소리가 그치고 따뜻한 것이 내 품을 파고드는 느낌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었다.


“녀석! 고맙다. 어제 살려준 것도 모르고 오해나 하다니 미안하다!”


나는 베이컨을 끌어안았다.


왠지 처음 봤을 때보다 덩치가 훨씬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끌어안아 올려보니 확실히 더 묵직한 느낌이 있었다.




“더 커질 걸! 돼지 후손이면 곧 덩치가 오빠 다섯 배는 더 커지게 될 거야.”


수가 밖에서 들어오며 말했다.


“그렇구나! 생각보다 더 훨씬 빨리 커져서 놀랬어.”


녀석을 쓰다듬으며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그랬어. 오빠! 베이컨이 얼마나 영리한지 볼래? 이리 나와 봐!”


수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절뚝거리며 수와 베이컨을 따라갔다.


그리고 동굴 입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수가 내 옆에 있던 베이컨을 불렀다.


“베이컨! 이리 와!”


녀석이 쪼르르 수에게 달려갔다.


“베이컨! 엎드려!”


수의 명령에 녀석은 금방 자세를 낮춰 엎드렸다.


“베이컨! 굴러!”


그랬더니 녀석은 몸을 쫙 펴고 옆으로 굴렀다.


“베이컨! 점프!”




그러자 녀석이 제자리에서 뛰었다.


다리가 짧아서 땅에서 그닥 많이 멀어지진 못했지만 어쨌든 그건 성공이었다.


베이컨이 성공할 때마다 수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음식을 조금씩 떼서 줬다.


“와! 대단하다. 언제 이렇게 한 거야?”


“뭐? 훈련놀이? 며칠 안됐어. 베이컨이 똑똑해서 금방 하더라고. 근데 장애물 넘기는 어려워하는 것 같아. 다리가 짧아서 그런 건가!”


내 질문에 남은 음식을 베이컨에게 마저 주고 있던 수가 대답했다.


내 눈엔 그 훈련들을 성공시키는 수가 더 대단해 보였다.


‘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다!’


돌아서는 수에게 내가 말했다.


“저기,수야! 어제 일 고맙다.”


수가 나를 힐끗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으응! 나도 고마워! 그렇게 온 몸을 걸고 나를 구해줘서! 하하하!”


그 얘길 듣고 내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지만 오랜만에 그렇게 밝게 웃는 동생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 년 (부제: 경우의 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베이컨의 상태가 이상하다 24.05.27 69 3 6쪽
17 아버지와 노랑이들 24.05.26 72 2 7쪽
16 환상의 맛, 코코넛 게 24.05.25 71 4 7쪽
15 최상위 포식자, 그레이를 만나다 24.05.24 76 5 6쪽
14 죽이기엔 너무 사랑스러운 햄망이 24.05.23 78 3 8쪽
13 우연히 발견한 부싯돌 24.05.22 82 3 6쪽
» 오해를 풀고 베이컨과 다시 친해지다 24.05.21 85 3 6쪽
11 온몸을 던져 구명지은을 갚다 24.05.20 86 3 6쪽
10 단란하고도 어색했던 온천탕에서 만난, 오리새 24.05.19 98 3 6쪽
9 원수 같던 동생 놈이 목숨을 살려줬다 24.05.18 109 3 7쪽
8 육식초 24.05.17 117 5 7쪽
7 만 년 후, 눈물의 재회 24.05.16 129 6 8쪽
6 불의 발견 +1 24.05.15 136 3 7쪽
5 먼저 깨어난 아버지와 베이컨 24.05.14 148 6 8쪽
4 실험에 참여했는데, 모르는 곳에서 깨어났다 24.05.13 149 6 9쪽
3 자, 이제 출발이다 +1 24.05.12 151 4 9쪽
2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 +1 24.05.11 173 7 11쪽
1 쥐구멍엔 볕 뜰 날이 없다 +1 24.05.10 229 6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