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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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3,593
추천수 :
127
글자수 :
132,112

작성
24.05.20 00:00
조회
85
추천
3
글자
6쪽

온몸을 던져 구명지은을 갚다

DUMMY

마음이 다급해졌다.


우리 수를 구하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일어선 나는 바위 위에 서서 손을 내저으며 새의 주위를 끌어 보려고 소리쳤다.


“야! 이 멍청한 새야! 네 알 내가 가져갔다. 와 봐! 새끼야! 오라고!”


하지만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그놈은 오로지 수를 잡는데 집중한 것 같았다.


절박해진 마음에 나는 옆에 굴러다니던 제법 큰 돌멩이를 주워서 힘껏 새에게 던졌다.


그리고 온천욕으로 ‘추욱’ 늘어져있던 나의 소중한 부위를 앞뒤로 움직이며 새를 약올려댔다.


“아놔! 이거나 먹어라! x새야!”





그 순간 그 오리새는 동작을 멈추고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리고 탕에서 새의 부리를 피하며 소리 내지르던 수도, 그리고 수의 비명에 쫒아왔던 부모님도 동시에 입을 ‘쩌억’ 벌리고 나를 응시했다.


그때 지금 몹시 헐벗고 있다는 사실이 퍼뜩 떠오른 나는 내 얼굴이 ‘화르륵’ 하고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으아! 쪽팔려!’


그렇지만 그 느낌도 한순간, 거대 오리새는 그 무시무시한 발톱을 치켜세운 채 날개를 쫙 펴 펄럭이며 내게 돌진했다.


“어어! 아아악!”


나는 그놈에게 쫓겨 바위를 미끄러지듯이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거친 현무암 표면에 피부가 쓸리는 느낌이 났지만 공포감이 앞서 딴 생각할 새가 없었다.


그리고 내 허벅지 깊이의 탕에 잠수하듯이 들어간 다음 밖의 상황을 보려고 몸을 뒤틀었다.


그때 바로 눈앞에 오리새의 주둥이가 들어오며 내 코를 스쳤다.


‘으아악!’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식겁한 나는 잠수한 채로 바닥을 짚고 새가 있는 반대방향으로 이동했다.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놓친 것에 화가 났는지 오리새는 탕 가장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우는 소리를 냈다.


‘께게겍! 께겍!’


그 소리가 우렁찼다.


곧 다시 오리새가 주둥이를 내가 있는 곳에 처박았다.


이번엔 더 깊이 넣었는지 주둥이가 내 턱을 찍었다.


순간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그리고 내 몸에서 나왔는지 새빨간 피가 물에서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아아! 육식초에게서 기껏 살아남았는데 하루도 안 돼서 오리새에게 죽는다니 진짜 허망한 인생이다!’


어차피 숨도 더 이상 못 참겠는데 밖으로 나가자고 생각한 내가 물 밖으로 나오려고 맘먹었을 때였다.


별안간 오리새가 있던 가장자리 바위 위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펄쩍 뛰어오르는 것을 봤다.


“으아아! 경우야! 아빠가 간다. 구해줄게!”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바위에서 뛰어올라 기다란 오리새의 목을 몸으로 찍어 누른 뒤 들고 있던 나무창으로 위에서 그 놈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푸하!’


나는 물 위로 얼른 올라왔다.


오리새의 피가 탕 안에 순식간에 퍼져 물은 금세 새빨갛게 변했다.


그리고 바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하아! 괜찮냐? 경우야!”


숨을 몰아쉰 아버지가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고는 물었다.


그런 아버지의 얼굴에는 오리새의 피가 잔뜩 튀어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걱정하는 마음만은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순간 내 안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나는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허어, 으음! 네! 괜찮아요.”


나는 한손으로 눈물을 얼른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 너 정말 용감했어. 동생 살리려고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다니 참 사이좋은 남매다. 장하다. 장해!”


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였다.




우리는 죽은 새 옆에서 어머니가 요리해 온 오리새의 알을 맛있게 먹었다.


오리새도 알도 불쌍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알은 정말 맛있었다.


음식을 먹고 어느 정도 요기를 한 우리는 아버지가 가져온 돌칼들로 오리새를 손질했다.


배를 가르고 나온 내장들을 꺼내고, 몸통에 난 부드러운 깃털들을 뽑았다.


어머니는 새 머리에 풍성하게 나 있는 두꺼운 깃털들과 오리주둥이를 쓸데가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챙겼다.


얼마 후 피 냄새를 맡고 작은 육식 동물들이 모여들었다.


여우같이 생긴 놈들이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저것들이 몰려왔으니 이제 곧 더 큰 놈들이 올 거다. 최대한 챙길 수 있는 것만 챙겨서 가야돼. 얼른!”


부모님의 신경이 바짝 곤두서있었다.


우리는 새의 가슴 쪽, 큰 고기 덩어리와 깃털, 주둥이 그리고 날개를 잘라서 나눠 들고 그 자리를 황급히 떠났다.




동굴로 돌아오니 어느새 저녁 무렵이 돼 있었다.


뒤에 두고 온 오리새 고기가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까 모여든 여우들 수를 보건데 아버지가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오리새 가슴살을 나무꼬챙이에 꽂아 불에 금방 구워냈다.


신선해서 맛있었는지 아니면 아직도 배가 고파서 맛있었는지 몰라도 그 큰 알을 먹고도 우리는 허겁지겁 그것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는 어머니가 한쪽 바구니에 뒀던 풀을 열심히 빻았다.


그 빠른 손놀림에 초록색 반죽이 금세 만들어졌다.


어머니는 그 반죽을 큰 이파리에 모아서 들고 왔다.


“이거 붙이자. 상처가 덧나지 않게 해줄 거야.”


“헤겍! 이걸 어떻게 얼굴에 붙여요! 안 할래요.”




나는 기겁하며 어머니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 푸르스름한 근본도 모르는 풀을 내 몸에 쓴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어머니는 강경한 내 눈빛을 보시더니 마지못해 가져온 것을 한쪽으로 치웠다.


“하이고! 알았다. 알았어. 안할 테니 얼른 쉬어라!”


이미 아버지는 여기저기 난 상처들에 어머니가 찧은 풀을 덕지덕지 바르고 그 위에 나뭇잎을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붙인 곳에서 녹색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 눈엔 무척 괴기스럽게 보였다.


무슨 좀비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 중에 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나는 억지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자리에 얼른 누웠다.


눈을 감고 있으려니 턱밑과 허벅지에 난 상처들이 쑥쑥 아려오기 시작했다.


‘아이구! 아프다. 아퍼!’


그리고 ‘툭’ 또 필름이 끊기듯 잠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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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년 (부제: 경우의 수)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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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아버지와 노랑이들 24.05.26 72 2 7쪽
16 환상의 맛, 코코넛 게 24.05.25 70 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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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연히 발견한 부싯돌 24.05.22 82 3 6쪽
12 오해를 풀고 베이컨과 다시 친해지다 24.05.21 84 3 6쪽
» 온몸을 던져 구명지은을 갚다 24.05.20 86 3 6쪽
10 단란하고도 어색했던 온천탕에서 만난, 오리새 24.05.19 98 3 6쪽
9 원수 같던 동생 놈이 목숨을 살려줬다 24.05.18 109 3 7쪽
8 육식초 24.05.17 116 5 7쪽
7 만 년 후, 눈물의 재회 24.05.16 128 6 8쪽
6 불의 발견 +1 24.05.15 135 3 7쪽
5 먼저 깨어난 아버지와 베이컨 24.05.14 148 6 8쪽
4 실험에 참여했는데, 모르는 곳에서 깨어났다 24.05.13 149 6 9쪽
3 자, 이제 출발이다 +1 24.05.12 151 4 9쪽
2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 +1 24.05.11 173 7 11쪽
1 쥐구멍엔 볕 뜰 날이 없다 +1 24.05.10 22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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