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3,597
추천수 :
127
글자수 :
132,112

작성
24.05.16 00:00
조회
128
추천
6
글자
8쪽

만 년 후, 눈물의 재회

DUMMY

어느 아침 일찍 일어난 베이컨이 불 옆에서 열심히 뭔가를 핥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게 뭔지 확인하려고 다가갔을 때, 아버지는 한쪽이 터진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액체를 봤다.


“하하하! 그때 너무 기뻐서 크게 소리 지르는 통에 베이컨이 놀라서 뛰쳐나갔었지!”


아버지가 그 기쁨을 다시 경험하는 것처럼 얼굴이 환해지며 웃었다.


그 날은 하루 종일 어머니 주머니 옆에 붙어서 아버지는 터진 부분 근처에 불을 쪼였다.


그리고 오후 늦게 부드러워진 단면을 확인하고 주머니를 끌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꺼내고 나면 나올 끈적거리는 액체와 껍질 부분을 ‘말소’들에게 맡길 참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아버지는 돌칼로 열심히 주머니를 찢고 어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어머니를 업고 와서 동굴안 자신이 자던 자리에 소중히 눕히고 따뜻하게 재웠다.


밤새 베이컨이 왔다 갔다 하며 어머니 몸에 붙은 액체를 핥아서 없애줬다.


‘베이컨은 그때나 지금이나 식성이 끝내주는 녀석인가 보다!’


나는 그 순간에도 주변을 돌며 먹을 것을 찾고 있는 녀석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날 어머니는 눈을 떴다.


아버지는 눈뜬 어머니를 끌어안고 한동안 울었다.


그때 어머니가 뱉은 첫 마디는 이거였다.


“누구 죽었어요?”


“생긴 몰골을 보니까 혼자 살아보려고 무지 애썼나 보더라!”


어머니가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아버지는 혼자 있었던 외로움을 만회하려고 했는지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어머니 옆에 붙어서 하루 종일 수다를 떨었다.


덕분에 어머니는 어느 날 저녁 심하게 멀미를 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생활력이 강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상황,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재빠르게 파악하고 생활필수품 만들기에 바로 돌입했다.


제일 먼저 아버지가 처음 사냥에 성공했던 뱀 가죽을 손질해서 신발을 만들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디자인 면에서나 용도 면에서나 상당히 뛰어난 품질을 자랑했다.




그 다음 어머니는 식물 줄기를 엮여서 바구니를 만들었고, 그걸 들고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가 아버지가 말한 커다란 구렁이의 잔해를 발견했다고 했다.


숲속 동물 친구들이 얼마나 깨끗하게 먹어치웠는지 하얀 뼈 잔해만 남아있었는데, 게 중 쓸모 있어 보이는 뼈들을 가져와 어머니는 또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빠르게 살림살이가 늘려가는 와중에도 부모님은 열심히 자식들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불 가까이 두고 자주 뒤집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 놈의 주머니가 먼저 터졌다.


동생 놈은 나보다 불과 두 밤 전에 나왔는데 이미 모든 걸 다 파악한 듯했다.


‘역시 피지컬이 좋던 가 아니면 머리가 좋던 가 둘 중 하나는 해야 생존율이 높아지는 거다! 그건 단지 원시로 돌아갔을 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거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수는 깨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보고, 어머니가 만들어 준 신발을 챙겨 신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참 뒤, 동굴로 돌아온 동생이 처음 한 말은 이거였다.


“아아아! 우리는 허 박사한테 제대로 당한 거야! 휴우! 이제 휴대폰 없이 진짜 어떻게 사냐! x발!”




그렇게 동생은 한동안 시무룩해 있다가 금세 또,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더니, 동굴 안팎을 열심히 관찰하며 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식물들과 주변의 동물들을 보고 와서, 부모님에게 적어도 우리가 살던 시대에서 수천 년 어쩌면 만 년 이상 지났을 거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유일한 천재인, 동생의 말을 일말의 의심도 없이 믿었다.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더 깊은 허기가 밀려왔다.


어머니는 내 모습을 보고 눈치를 챘는지 막대기를 휘적거려 아까 묻은 딱딱한 과육들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깨끗한 나뭇잎 접시에 담아서 제일 먼저 내게 내밀었다.


허기에 내 손이 심하게 떨렸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음식을 나눠주는 어머니를 곁눈질하면서 나는 앞에 놓인 음식을 허겁지겁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던가!


그것은 정말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너무 급하게 먹었던지 목이 막혀서 기침이 심하게 나오면서 음식이 입에서 튀었다.


‘아! 아까워!’


나는 후딱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집어서 다시 입에 얼른 넣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도 3초 룰은 지켰다!’




주워 먹은 조각에서 먼지 맛이 같이 났다.


곧 어느 정도 허기가 채워지자, 그제야 음식 맛이 느껴졌다.


바나나, 감자 그리고 고구마를 섞은 것 같은 맛이었다.


어머니가 나무 그릇에 물을 담아다 내게 내밀었다.


나는 벌컥벌컥 받은 물을 마셨다.


“그거 내가 깎아 만든 그릇이다. 쓸 만하지?”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물었다.


“네에? 네! 뭐!”


과거, 가족에게 그렇게 소원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자상한 표정으로 말하는 게 어색하고 또 화가 났다.

‘진작 좀 잘하지!’


나는 울컥 뛰어나오려던 말을 꾹 참았다.




음식을 다 먹고 모두 모닥불 주변에 앉았다.


“근데, 야! 처키! 전에 했던 말은 뭐야? 우리가 살던 시대에서 만 년 이상 지났을 거라는 게?”


내 물음에 부모님의 시선이 동생에게 향했다.


그때 불멍을 하고 있던 처키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흐음, 그거야 간단해! 몽글리라면 어려울려나?”


금세 처키 놈이 또 놀리는 표정이 됐다.


“수야! 그러지 말고, 오빠가 오늘 깨어나 힘들 텐데 놀리지 말고 빨리 말해줘라.”


어머니가 동생을 다그쳤다.


“아, 알았어. 그냥 장난 좀 쳐본 거야. 잘 생각해봐. 처음에 설명 들었던 대로, 연구소에서 우린 캡슐 안에 들어갔겠지? 근데, 그 캡슐들은 다 어디 갔을까? 우리가 있던 건물들은···?”


그래도 녀석은 순순히 대답해주긴 싫다는 눈치였다.




‘그래! 뭐, 그래도, 어제, 같이 처키 놈이랑 캡슐 안에서 잠든 것 같은데 그렇게 오래 안 볼 수 있었다니 기분 최고다!’


그 생각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 놈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음, 그럼 우리가 옮겨진 거 아냐? 숲으로···.”


“하긴···, 또 다른 실험이 있었다면 가능하겠네. 근데 우리가 참여한 실험은 아직 검증단계였어. 다른 시도를 했을 거라고 보긴 어렵지!”


동생이 제법 진지하게 내 물음에 답해줬다.


“그러면?”


“봐봐! 우리가 들어간 캡슐의 구성은 대부분 플라스틱이었지. 플라스틱이 분해되는 데는 적어도 오백 년 이상 걸릴 거라고. 그리고 우리가 있었던 건물은 콘크리트로 돼 있었고.”


동생의 설명이 뭔가 복잡해졌다.


“그럼, 수 천 년 일수도 있는데 왜 만 년이야?”


“전에 진화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어. 가령 쥐가 코끼리 만해지려면 오백만 년이 걸린다는 내용이었어. 그리고 1만 년 전에 지구는 빙하기의 끝자락이었지! 우리가 살았던 시대는 점점 오염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자연현상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더 뜨거워지고 있었지.”




동생의 설명에 나는 몸이 차츰 동생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걸 느꼈다.


‘고등학교 때 이놈처럼 설명 잘하는 선생을 만났더라면 대학에 갔겠지!’


내 반응에 빙그레 웃고는 동생이 계속했다.


“아빠가 사냥한 그 큰 구렁이 뼈를 봤어. 그리고 식물들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크기로 높게 자라고 있었고. 아빠가 깨어나서 있었던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아빠는 눈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없대. 내가 관찰한 바로는 우리가 있는 곳이 꼭 열대우림 같았어. 그런 기후변화를 보이려면 최소 만 년 이상은 지나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지.”


동생의 명쾌한 설명에도 내 마음은 더 심란해졌다.


‘흐음, 그러면 우리가 그럼 남아있는 최후의 인류···?’


그렇다고 하기 에는 퍽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외계인과 처음 조우하는 자리에 그야말로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 나가서 인류의 기준이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 년 (부제: 경우의 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베이컨의 상태가 이상하다 24.05.27 69 3 6쪽
17 아버지와 노랑이들 24.05.26 72 2 7쪽
16 환상의 맛, 코코넛 게 24.05.25 70 4 7쪽
15 최상위 포식자, 그레이를 만나다 24.05.24 76 5 6쪽
14 죽이기엔 너무 사랑스러운 햄망이 24.05.23 78 3 8쪽
13 우연히 발견한 부싯돌 24.05.22 82 3 6쪽
12 오해를 풀고 베이컨과 다시 친해지다 24.05.21 84 3 6쪽
11 온몸을 던져 구명지은을 갚다 24.05.20 86 3 6쪽
10 단란하고도 어색했던 온천탕에서 만난, 오리새 24.05.19 98 3 6쪽
9 원수 같던 동생 놈이 목숨을 살려줬다 24.05.18 109 3 7쪽
8 육식초 24.05.17 117 5 7쪽
» 만 년 후, 눈물의 재회 24.05.16 129 6 8쪽
6 불의 발견 +1 24.05.15 136 3 7쪽
5 먼저 깨어난 아버지와 베이컨 24.05.14 148 6 8쪽
4 실험에 참여했는데, 모르는 곳에서 깨어났다 24.05.13 149 6 9쪽
3 자, 이제 출발이다 +1 24.05.12 151 4 9쪽
2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 +1 24.05.11 173 7 11쪽
1 쥐구멍엔 볕 뜰 날이 없다 +1 24.05.10 229 6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