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3,563
추천수 :
127
글자수 :
132,112

작성
24.05.19 00:00
조회
97
추천
3
글자
6쪽

단란하고도 어색했던 온천탕에서 만난, 오리새

DUMMY

드디어 탕에 도착했다.


옷을 입은 채 들어가려는 나를 어머니가 말렸다.


“경우야! 옷 벗고 들어가야지. 그리고 네가 쓸 탕은 여기 아니야. 저기야!”


어머니가 큰 바위 건너편을 가리켰다.


나는 곧 어머니가 가리킨 쪽으로 향했다.


‘탕이 두 개나 있다니 대단하네! 그건 그렇고 옷이 너무 얇아서 입고 있는 줄도 몰랐잖아! 참!’


어머니의 말에 급 무안해진 나는 걸어가며 생각했다.


“경우야, 같이 가자!”


아버지가 웃으며 나를 따라왔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나는 상관없다는 듯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깨닫고 살펴본 아버지의 옷은 많이 헤어져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깨어나서 고생 많이 했다고 하더니 저게 그 흔적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아버지랑 어색하게 둘이만 목욕하려니 한숨이 절로 났다.


철이 들고 부터는 아버지와 한 번도 목욕탕에 같이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터덜터덜 걸어서 곧 건너편에 있는 탕에 도착했다.


탕 옆에서 아버지는 익숙한 듯 옷을 쓱쓱 벗고 물로 들어갔다.


“어! 시원하다! 어서 들어와. 너도!”


“예? 네에!”





힘없이 대답한 나는 천천히 옷을 벗고 탕으로 들어갔다.


물에서 계란 썩은 냄새 비슷한 냄새가 났다.


유황온천이면 그런 냄새가 난다고 했던가!


전에 일했던 편의점 사장이 유황온천을 극찬하며 하는 말을 주워들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유황온천에 다녀오면 피부가 계란처럼 미끈거린다던가 뭐 그런 내용이었다.


탕에 들어가 몸을 담그자 아늑한 기분이 들며 기분이 좋아졌다.


‘푸우우! 푸우! 푸우우!’


온천물을 손안에 담아서 세수를 여러 번 했다.


아버지가 한쪽에 놔뒀던 나무바가지를 건네며 말했다.


“이거 써라. 경우야!”


“어? 예에! 고맙습니다.”


“어어! 그래!”


어색하게 말하는 나를 보고 역시 어색해진 아버지가 대답했다.




어머니랑 수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건너편에서 한참동안 재잘거리며 웃었다.


아버지와 나는 어색함을 곱씹으며 물에 몸을 담근 채 도통 아무 말이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탕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가 탕을 나가며 말했다.


“어허! 시원하다. 뭉쳤던 몸이 다 풀렸어. 너는 천천히 씻고 나와라. 내가 더러워진 옷 빨아 놓으마.”


“아! 네!”


아버지가 내 옷을 들고 일어섰다.


그때 내 뱃속에서 ‘고르르륵’ 커다란 소리가 났다.


‘아! 왜 지금 나대는 거야.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선 잠자코 있었던 것이 일을 다시 시작했나 보다!’


그 소리에 나는 무척 곤란한 생각이 들었다.


그 큰 소리를 듣고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배가 고팠구나. 조금만 기다려라! 아버지가 먹을 것 좀 구해 오마!”




곧 옷을 다 입은 아버지가 내 옷을 들고 바위를 넘어갔다.


넘어간 아버지가 저편에서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참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아버지는 나무창을 들고 깊은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물속에 있으니 몸이 나른해졌다.


잠시 졸고 있었나 보다.


어머니가 바위 뒤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경우야! 옷 빨아서 바위 위에 널어놨어. 바위가 따뜻해서 금방 마를 거야. 목욕 끝나면 가져다 입어라.”


“네, 어머니!”


대답하고 또 한참이 지났다.




멀리서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나는 쪽을 봤다.


여러 군데 얼굴과 손에 생채기가 난 아버지가 얼룩덜룩한 타조 알같이 큰 알을 들고 웃고 있었다.


“경우야! 이것 봐라. 너 아침부터 못 먹었잖냐. 육식초한테 죽을 뻔하고. 그래서 내가 큰맘 먹고 저 높은 나무위에 올라가서 큰 새알을 훔쳐왔다!”


아버지는 아침에 내가 잡아먹힐 뻔 했던 그 식물을 육식초라고 부르는 듯 했다.


내 생애 그렇게 큰 알은 실제로 처음 봤기 때문에 무척 놀랐다.


아버지는 내 표정에 만족했는지 호기롭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 옆에 펄펄 끓는 탕에 넣으면 금방 맛있게 삶아진다. 금방 해 올게. 조금만 기다려라! 허허허!”


‘후와! 정말 큰 알이다! 얼마나 푸짐하고 맛있을까!’


그 알을 요리해서 먹을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침이 흘러나와 ‘츠릅’하고 침을 삼켰다.





좀 떨어진 곳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웃으며 얘기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여왔다.


바위 뒤편에서는 수가 물을 첨벙거리는 소리가 가끔 들렸다.


탕에 앉아 물을 바라보니 비가 온 뒤 개 인 하늘이 그대로 비춰져 있었다.


그때 물에 비친 하늘 위로 펄럭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검은 큰 그림자가 ‘쉬욱’하고 지나갔다.


놀란 나는 얼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뭔가 커다란 나는 것이 우리가 있는 곳 바로 위 하늘을 빙 한 번 돌았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큰 갈색의 박쥐같은 날개에 몸통은 날렵하고 부리가 오리처럼 생긴 길이가 오 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새였다.




그것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꼭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순간 내 머릿속에 아버지가 들고 있던 큰 알이 스쳐지나갔다.


‘이런! 어미 새인가?’


큰 두려움에 휩싸인 나는 재빠르게 탕의 가장자리로 간 뒤 거기서 나와 바위 뒤로 얼른 몸을 숨겼다.


‘펄럭! 퍼얼럭!’


새의 날개 짓 소리가 엄청났다.


그리고 바로 위를 나는지 우리 주위로 바람이 세게 일었다.


‘펄럭! 퍼얼럭! 터덕! 쿵!’


갑자기 수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까아악! 도와줘!”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맨몸인 것도 잊은 채 수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단숨에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커다란 새가, 수가 있는 탕 가까이 내려 앉아, 수를 부리로 쪼려고 넓적한 주둥이를 내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수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요리조리 잘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새는 날카로운 발톱도 가지고 있었는데 만약 그것에 스치기라도 한다면 몸에 깊은 상처가 날 게 분명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 년 (부제: 경우의 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베이컨의 상태가 이상하다 24.05.27 68 3 6쪽
17 아버지와 노랑이들 24.05.26 71 2 7쪽
16 환상의 맛, 코코넛 게 24.05.25 70 4 7쪽
15 최상위 포식자, 그레이를 만나다 24.05.24 75 5 6쪽
14 죽이기엔 너무 사랑스러운 햄망이 24.05.23 77 3 8쪽
13 우연히 발견한 부싯돌 24.05.22 81 3 6쪽
12 오해를 풀고 베이컨과 다시 친해지다 24.05.21 84 3 6쪽
11 온몸을 던져 구명지은을 갚다 24.05.20 85 3 6쪽
» 단란하고도 어색했던 온천탕에서 만난, 오리새 24.05.19 98 3 6쪽
9 원수 같던 동생 놈이 목숨을 살려줬다 24.05.18 108 3 7쪽
8 육식초 24.05.17 116 5 7쪽
7 만 년 후, 눈물의 재회 24.05.16 128 6 8쪽
6 불의 발견 +1 24.05.15 135 3 7쪽
5 먼저 깨어난 아버지와 베이컨 24.05.14 147 6 8쪽
4 실험에 참여했는데, 모르는 곳에서 깨어났다 24.05.13 148 6 9쪽
3 자, 이제 출발이다 +1 24.05.12 150 4 9쪽
2 세상 살기 너무 힘들다 +1 24.05.11 171 7 11쪽
1 쥐구멍엔 볕 뜰 날이 없다 +1 24.05.10 226 6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