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처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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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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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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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DUMMY

AI로봇이 재부팅되자 칼과 아이는 방금과 같은 상황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우려와 달리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겼다.

다시 전원이 들어오며 작동한 AI로봇은 매뉴얼을 운운하던 이전과 달리 나사가 빠진 면모를 보였다. 칼과 아이를 오가며 살피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이곳저곳을 관찰하였다. 나무나 풀에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거나 하늘을 보며 가만히 있는 등 지금까지 AI로봇과 동행해 오던 칼의 입장에선 AI로봇의 행동이 이상할 뿐이었다.

AI로봇이 관찰을 다 끝냈는지 칼과 아이에게 다가와 말했다.

-후 다행이네.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어.

전형적인 기계음이었던 로봇의 음성은 인간 남성의 목소리를 내었고 말투가 더 가벼워졌다.

칼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심스럽게 로봇을 바라보았다. 로봇은 아차 싶어 설명을 시작했다.

-아! 아! 아, 저는···. 어···. 그렇지 이번에 새로 업그레이드된 AI입니다. 임시 시행된 AI로 당분간 당신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칼은 아직 의심의 눈초리로 로봇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칼의 손을 잡고 아직 눈물이 남아있는 순수한 눈빛으로 로봇을 바라보았다.

로봇의 곤란한 얼굴이 이모티콘처럼 디스플레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방금까지 요란하게 외치던 생존자 귀환은 어찌 되나?

아이가 칼을 안고 고개를 칼의 어깨에 묻었다.

-아! 그거···. 그거 어디서 그런 구닥다리 매뉴얼을 들먹이고 있습니까? 이제 그런 구시대의 유물 같은 AI는 없습니다. 자랑스러운 신세대의 AI가 올바르게 인도하겠습니다. 자자, 이런 곳은 얼른 떠납시다.

AI로봇이 칼을 밀면서 얼른 자리를 뜨자고 한다. 칼은 기운이 없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일어나 AI로봇이 밀어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AI로봇은 이동하는 칼을 보고 나서 뒤쪽 귀환 시설이 있던 자리를 예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쳇!


-그렇다면 매뉴얼이 어떻게 되는 거지? 생존자는 어찌해야 하나?

귀환 시설에서부터 꽤 멀리 걸어온 칼이 로봇에게 물었다.

-매뉴얼도 새로 바뀐 건가?

AI로봇은 찜찜한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으흠, 아···. 그러니까? 음···. 그래 당분간은 지하 도시의 인구 증가로 생존자를 받을 만한 여력이 없어요. 그래서 한동안 생존자를 임시로 보호해야 합니다.

칼은 AI로봇의 말을 듣고 가만히 서서 로봇을 보았다. 로봇은 실실거리며 웃는 표정을 내비쳤다.

-뭐···. 문제라도?

-아니···. 아니 문제는 없어? 단지···.

-단지?

로봇은 땀을 뻘뻘 흘리는 표정을 내비치고 있다.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이군.

칼은 로봇을 지나치며 말했다. 순간 로봇에서 딸꾹질 소리가 들린 듯했으나 칼은 로봇이 딸꾹질할 리 없다며 웃어넘겼다. 심지어 그는 실감 나는 AI의 반응과 말투로 참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칼 품에 안기어 어느새 곤히 자고 있었다.

-큰일이군. 입이 하나 더 늘었으니.

-응 저 말인가요?

로봇이 대답했다.

-아니, 이 아이 말이야. 어제 지하 도시로 보내기 전 음식을 주려고 있는 재료를 거의 다 써버렸단 말이지. 음, 이 근방 방사능 정화도 해야 하는데···. 어?

칼은 그동안 놓치고 있던 부분이 떠올랐다.

-이 아이는 어째서 이런 상황 속에서 살 수 있지? AI, 일반인이 그 방사능 폭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

-그럴 수 없죠. 생명 정지까지 몇 분도 안 걸리는데 어떻게 그 속에서 돌아다닙니까? 미쳤습니까?

-그렇지 말이 되지 않지. 그럼 이 아이는 뭐지?

-이 아이가 뭔데요?

칼은 그 빗속에서 아이의 신호를 감지하고 난리를 치던 AI로봇의 모습이 떠올랐다. 귀청이 떨어질 때까지 귀환시키라고 득달같이 달려들던 로봇이 이런 태도를 보이니 칼은 이상할 따름이었다.

-어제 그 빗속을 뚫고 지나온 아이잖아? 네가 어제 그렇게 귀환시켜야 한다고 난리 치지 않았나?

-아! 아! 그랬었죠. 정말 신기하네요. 어떻게 그 비를 맞고도 이렇게 살아있다니 대단하네요. 하-하-

AI로봇은 대충 얼버무리고는 잠든 아이의 주변을 웅웅거리며 날아다닌다.

칼이 로봇을 낚아챘다. 그리고 로봇의 얼굴이 투영되는 디스플레이에 얼굴 가까이 대고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러니까. 도대체 이 아이는 어떻게 그 빗속을 뚫고 왔냐 말이다. 아는 거 없어?

-악! 얼굴 좀 치우고 말해요. 깜짝 놀랐잖아요. 어디 가서 그 얼굴 함부로 내밀고 다니지 말아요. 사람들 놀라서 뒤집어지는 꼴 보기 싫으면.

칼은 AI로봇을 꽉 쥐고서 위아래로 마구 흔들어 댄다. 로봇이 곡소리를 내며 놓아 달라고 하지만 칼은 더욱 세차게 흔들어 댄다. 그리고 다시 디스플레이에 얼굴을 갖다 댄다.

-뭐라고?

-음, 제가 뭐라고 했나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얼굴에 대한 일 절의 언급도-

-다시 해야겠네.

칼은 다시 로봇을 세차게 아니 신나게 흔들기 시작한다.

-앆! 제발!


-일어나···.

아이는 눈을 감은 채 들리는 목소리에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짓는다. 희고 고운 빛들이 아이를 내리쬐고 있다.

-딸, 일어나야지~

딸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한없이 따뜻하다. 평화로운 이 분위기는 영원할 것 같다.

-딸! 일어나!

갑자기 긴박한 목소리에 눈을 뜬 아이는 눈앞에 마을이 불타는 광경이 보인다.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어머니의 등은 피로 옷이 얼룩져있었다. 아이는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사라져 가는 집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화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망치며 아이와 어머니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 마당에 모녀 앞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검은색 차림의 사람은 한 손으로 총기를 어깨에 멘 채 멜빵을 쥐고 있었고 한 손으로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무전기에 대고 말을 시작했다.

-실험체 FAL-39425 확보

그 사람은 총구를 아이의 이마에 갖다 대었다. 불길이 치솟는 그 속에서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명확히 한 단어를 들을 수 있었다.

‘사살’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의 귀에 속삭였다.

-도망쳐!

아이는 눈을 떴다.

이번에도 모닥불 옆이다. 여전히 밤하늘은 수많은 별로 반짝였다. 어제와 다른 점은 습기가 가득한 동굴이 아닌 옆에 물이 흐르는 계곡이었다. 모닥불이 물이 흐르는 곳까지 비추지 않아 그 형체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모닥불이 반사되며 드러나는 수려한 물결과 쉼표 없이 연주를 이어가는 물소리로 그 계곡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가 누워있는 자리는 칼이 바닥에 깔린 돌을 정리하고 그 위에 매트를 깔았다. 아이는 푹신한 매트를 손으로 꾹꾹 눌러보았다. 그 부드러움이 아이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아이가 깨어난 것을 보고 칼이 다가왔다. 칼은 가까이 다가가면 아이가 또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칼은 가볍게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름이 뭐니?

아이는 멍하니 칼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름이 없는 건가? 혹시 말은 할 줄 아나?

이번에도 아이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 입을 열 기미가 없었다.

-말을 못 하는 모양이군.

-아니면 실어증일 수도···.

로봇이 옆에서 거들었다.

칼은 공중에 떠 있는 로봇을 손끝으로 톡톡 건드렸다. 로봇은 칼을 불편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왜요? 어제 누가 하도 흔들어 대서 조금만 건드려도 예민하거든요. 조심히 해주시죠.

-다시 해야겠네.

로봇은 기겁하며 말했다.

-아뇨, 아뇨. 아무렇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죠.

칼은 로봇을 보며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로봇이 칼을 옆으로 다가가자, 아이에게 들리지 않게 입을 가리고 말했다.

-이런, 아이에게 물어볼 수도 없군. 보고된 사례 중 이런 경우는 없나?

-음···. 아뇨, 없습니다.

로봇이 작게 속삭였다.

칼은 아이가 깨어나면 어떻게 아이가 그 빗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물어볼 심산이었지만 아이의 상태로 보아 원하는 대답은커녕 말소리 한번 들을 수 없을 거라 여겨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은 그만두었다.

-정말 네가 아는 건 없어?

여전히 칼은 손을 입으로 가린 채 로봇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저도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그러나 알아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방법?

-아이가 실어증이라면 뇌에 전기충격을 가하여- 악!

칼은 로봇의 말을 듣기도 전에 로봇의 얼굴이 비치는 디스플레이를 손으로 밀쳐내었다. 로봇은 공중에서 뒤로 쳇바퀴를 돌며 날아갔다.

칼은 귀환 시설 앞에서 겁에 질린 채 울기만 하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가 보인 모습은 단순히 무서운 것을 보고 놀란 모습은 아니었다.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물어볼 질문이 산더미 같은 칼은 아이에게 캐묻지 않았다. 아이가 지금 말할 수 없을뿐더러 아이에게 트라우마를 일으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의 상태도 좋지 않으니, 질문은 다음으로 넘겼다.

-이대로 며칠만 더 가면 내 집이 나온다. 일단 거기로 간 다음 너를 어찌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사실 칼은 아직 정화되지 않은 침엽수림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이 아이가 피폭 지역에서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아이를 그런 곳에 데리고 간다는 것은 좋지 못한 생각이라 여긴 칼은 로봇에게 물었다.

-매뉴얼에는 이럴 때 어떻게 하라고 적혀있나?

-정화고 뭐고 그게 중요합니까? 아이 먼저 챙겨야지? 그딴 구닥다리 매뉴얼은 집어치라니까.

기존의 매뉴얼에 따른 지시를 내리던 로봇이 매뉴얼을 따르지 말라니 게다가 로봇은 정화 작업보다 아이의 생명을 우선시하였다. 칼이 알기엔 로봇은 항상 정화 작업을 우선시했다. 업그레이드를 통해 많은 정책이 바뀌었나 생각하며 칼은 자신이 머무르는 곳, 자신이 직접 만든 집이 있는 곳으로 아이를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는 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매트 위에 누웠다. 하늘의 별들은 한없이 아른거리고 계곡은 쉬지 않고 목청껏 노래를 하지만, 이 고요한 밤의 정적은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짝이는 것들은 어두운 밤의 고요를 부추기는 듯했다. 아이는 더 이상 지하 도시로 갈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이 여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밥 먹어라.

아이는 옆으로 누워 고개만 움직여 칼을 바라보았다. 칼은 나무토막 위에 걸터앉고 꼬챙이에 끼운 물고기를 아이에게 흔들어 보았다. 아이는 일어나 칼에게 가서 꼬챙이를 건네받았다.

-이 근방 일대부터 내 집까지 가는 길은 이미 정화가 완료된 상태다. 이 계곡이 흐르고 있는 상류까지 포함해서 말이지. 이 물고기는 먹어도 괜찮다. 거기다 이미 기기로 측정해 봤으니 안전하다.

아이는 또 멍하니 칼을 바라보았다.

칼은 아이가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먹는 시늉을 보여주려 했으나 칼이 먹기도 전에 이미 아이는 물고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껍데기 안에 졸깃한 육질은 부드러웠다. 칼이 비늘을 제거하고 내장까지 깔끔하게 빼낸 뒤 속까지 소금과 후추로 양념해서 물고기의 흰 살에 간이 잘 뱄다. 짭짤한 맛보다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허겁지겁 먹기는 하지만 아이는 먹는 도중에도 뼈는 잘 골라내었기에 칼은 아이에게 가시를 조심하라고 말하다가 말았다.

칼은 아이가 물고기의 반 정도 먹었을 때 자신이 들고 있는 물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아이의 먹는 모습을 집중해서 본 건 칼뿐만이 아니었다. 로봇도 아이가 먹는 모습을 같이 지켜보았다.

-생각보다 요리를 잘하시나 보네요.

로봇은 칼에게 물었다.

-우리가 거의 감정이 없어도 감각이 없는 건 아니니까. 꽤 오랫동안 돌아다니다 보니 이것저것 알게 되어서 다양한 요리를 해봤지. 물론 실패가 더 많았고.

-음···. 이런 것들을 어떻게 배워요?

-도서관.

-네? 그런 시설이 지상에 존재하나요?

-물론 거의 없지. 그런데 간혹가다 상태가 어느 정도 양호한 유령도시가 있다. 그런 곳은 아직 도서관이나 책이 남아있지.

로봇은 놀라운 표정을 디스플레이로 내비친다.

-뭐야 벌써 그만큼이나 먹었어? 어 잠깐 그건···.

아이는 잘 익은 물고기가 끼워진 꼬챙이를 하나 더 집었다. 그것은 칼이 먹으려 둔 것이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칼은 콧방귀를 끼며 아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칼은 아이의 머리를 사정없이 흐트러뜨리고 칼은 주전자의 든 물을 컵에 따라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우적거리며 씹어대는 입을 꼭 다물고 칼에게 웃으며 물을 건네받는다. 아이다. 이제 자라나기 시작한 아이. 지켜주어야 한다.

-내가 키운 허브를 넣고 끓인 허브차다. 아마 오늘 밤은 푹 잘 거다.

아이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칼은 집으로 가서 심어야 할 농작물과 사냥으로 재워둘 훈제를 더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 왕성한 식욕을 채우려면 한동안 시달릴 것이라 예상한다.

칼은 체념하는 태도로 자기 자리에 누우며 말했다.

-AI 휴면 모드

-에? 휴면 모드?

-뭐?

-아! 아! AI 휴면 모드

-그래. 주위 감시 잘 부탁해 늘 하던 대로~

칼은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

로봇은 작게 속삭였다.

-하~ 잠은 다 잤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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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수색대 24.06.13 29 0 11쪽
11 후안 24.06.13 32 0 12쪽
10 마넬리 24.06.13 32 0 12쪽
9 마을 24.06.13 33 0 12쪽
8 부탁 24.06.13 34 0 12쪽
7 대화 24.06.13 35 0 11쪽
6 오해 24.06.13 33 0 10쪽
5 늑대 24.06.10 42 0 11쪽
4 납치 24.06.10 46 0 10쪽
» AI 24.06.10 5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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