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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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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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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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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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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문양

DUMMY

마넬리는 칼을 데리고 마을 서쪽 문으로 향했다. 이미 그 곳엔 문지기가 도르래 앞에서서 마넬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넬리가 문지기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주자 문지기는 도르래를 돌려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미 후안은 나갔습니다.

도르래를 돌리며 문지기가 마넬리에게 말했다.

-역시. 마을 안을 뒤져봐도 없더군.

마넬리가 팔을 걷어 올리고 문지기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그녀는 문지기의 옆에서 그를 도와 도르래를 돌린다. 처음 문지기가 극구 사양했지만 마넬리는

-이런 날에도 일을 하는 자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네.

라며 그를 도와준다.

-다녀오십시오. 대장.

문을 다 열고 도르래를 고정하며 문지기가 마넬리에게 말했다. 마넬리는 마을 밖으로 나가며 그에 대한 응답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칼이 문을 통과하자 쿵 소리와 함께 열려있던 문이 닫혔다. 닫힌 문 위로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칼에게 날아왔다.

-후안이 벌써 간 모양이야. 우리도 얼른 속도를 내자고.

마넬리가 칼을 보며 말했다.

마넬리를 따라 걷자, 주변은 온통 숲으로 바뀌었다. 높디높은 푸른 빛의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으며 흙길은 푹신푹신하다. 주위에 시냇물이 흘러 청아한 소리가 흘러왔고 커다란 바위들에 녹색 빛의 이끼들이 듬성듬성 돋아나 있다.

갈림길이 없는 흙길 위로는 사람의 발자국이 아닌 다른 동물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찍혀 있거나 마을 입구까지 이어진 선이 그려져 있었다. 마넬리는 그 흔적 위로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바닥에 그려진 선 자국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칼은 그 자국이 목적지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 옆으로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맑은 시냇물 아래에는 다양한 형태의 돌멩이들이 물이끼가 없이 단정한 몸으로 잠들어 있었다.

길게 이어지던 길에서 뻗어 나온 샛길로 들어서자. 판자가 아닌 나무로 벽을 만든 곳이었다. 그 벽은 마을의 벽처럼 금속성의 슬레이트를 대충 끼워 용접한 것이 아닌 정교하게 나무로 만들어졌다. 마을의 벽처럼 전기가 흐르는 전깃줄도 없었다.

그러나 그 나무로 만들어진 벽은 어째선지 일부분이 부서져 있거나 허물어져 있었다. 부서져 생긴 커다란 구멍에는 짐승들이 돌아다닐 수 있는 정도였다.

-파토스!

그때 벽 중간에 있는 문이 열리더니 악성 곱슬머리의 파토스가 나왔다. 파토스의 리듬을 타는 듯한 흥겨운 발걸음으로 나와 마넬리와 칼을 맞이했다.

-대장, 왔어요? 후안 아저씨는 이미 와서 수리할 곳들을 둘러보고 계세요. 그런데 어···. 그, 누구였더라?

-칼. 이번에 혜가 데리고 온 생존자.

-아, 아! 아~ 맞다.

파토스는 머리를 긁적이던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칼에게 반갑게 다가왔다. 칼은 자연스레 그 손을 잡고 흔들었다.

-반가워요. 나는 파토스에요.

그가 다가오자. 썩은 밀짚 냄새, 썩은 나무 냄새, 흙냄새 등 뭔지 모를 퀴퀴한 냄새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와 동행하여 벽을 넘어 들어가니 그 냄새가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여기는 뭐 하는 곳입니까?

칼은 불쾌한 냄새가 나는 그곳에 대해 마넬리에게 물었다.

-ㅊ···.

파토스가 마넬리를 노려본다.

마넬리는 파토스의 눈치를 보며 다시 입을 연다.

-동물원이야. 동물원. 어 어~ 동물원.

그제야 파토스의 얼굴이 풀린다. 파토스가 콧노래를 부르며 마넬리와 칼을 인도하자 마넬리가 뒤에서 칼의 귀에 대며 작게 속삭인다..

-축사야. 축사.

그러나 그곳은 축사···. 아니 동물원이라 하기에는 동물들이 말 두 필 뿐이었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 여러 종류의 동물이 살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축사들을 만들었지만, 말이 있는 축사를 제외한 다른 곳들은 거의 다 비어있다. 게다가 축사들은 거의 다 허물어져 형태가 온전치 못한 것들이 많았다.

그 터에 있던 나무들은 모조리 베어 넓은 땅에 풀을 심어 놓아 동물들이 먹을 수 있게 한 모양이지만 이제 그곳에는 한가롭게 풀을 뜯을 수 있는 것은 축사에서 쉬고 있는 말 두 필 뿐이다.

칼은 축사 안으로 들어가며 바닥을 관찰하며 어느 곳으로 향했다. 칼의 예측대로 땅에 그려진 선 자국은 축사 안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국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 마넬리는 파토스와 이 축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파토스가 동물을 좋아해. 내가 동물원이라는 것이 예전에 있었다고 말해 준 적이 있는데 이렇게 까지 만들어 놓았더군.

파토스는 다양한 동물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나 후안과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동물원을 짓기 시작했다. 마넬리와 마을 사람들은 축사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독단적이지 않은 독단적인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이 농장을 지으면서 사람들은 축사의 ‘ㅊ’ 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원래는 마을 안에서 만들어 그곳에서 키우려 했지만 모종의 사건 이후로 마을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 사건은 파토스에게 매우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처음 이 농장이 지어졌을 무렵 다른 마을 간의 교류로 얻은 돼지나 토끼, 가금류, 말 등을 키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늑대가 기성을 부리던 당시 파토스가 다른 생존자 집단에 교류를 위해 잠시 비운 사이 녀석들이 습격을 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있던 돼지, 토끼, 닭, 기러기, 칠면조 등이 늑대로부터 도망치고 늑대는 늑대대로 축사를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 이후 말이라도 보호하기 위해 파토스는 다시 말을 끌고 마을로 들어와 마을 안에서 지내다 늑대가 토벌됨과 동시에 늑대 새끼들을 키워 다시 자기만의 동물원을 복구하기로 한 것이다.

이미 후안은 농장 안을 둘러보며 견적을 짜고 있었다. 공구에서 긴 막대를 꺼낸 수리할 곳에 이리저리 대보고 있었다. 그리고 낡은 종이에 목탄으로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뭘 하고 계십니까?

후안이 무엇을 적나 싶은 칼은 가까이 다가가 종이를 내려보며 후안에게 말했다. 종이에 적혀있는 숫자와 기호로 봤을 땐 후안이 그 막대를 이용하여 길이를 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 자네가 왜 여기 있나? 아~ 참! 마넬리! 오늘은 그냥 나 혼자해도 된다니깐.

열중이 종이를 보고 있던 후안은 종이에 그림자가 드리우자, 고개를 들어 칼을 발견한다. 그리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마넬리를 확인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마넬리는 후안을 보며 배시시 웃으며 대답한다.

-후안, 그래도 혼자보단 둘이 낫지.

후안은 다시 종이를 내려보며 글자를 쓰면서 말한다.

-마넬리, 오늘 공사 안 할 거야. 견적 보고 준비해야지. 오늘은 그냥 이렇게 둘러보고 축제가 끝나고 나서 준비할 터이니 오늘은 그만 물러가.


칼은 마넬리의 발꿈치를 보며 그녀를 따라 걷는다. 후안에게 퇴짜를 맞고 마넬리는 칼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그녀는 행선지를 칼에게 말하지 않은 채로 발걸음을 큼직큼직하게 옮기고 있다. 그 옆에는 길가를 따라 피어난 잡초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신선한 날씨를 만끽하고 있었다. 확실히 마을 밖이라 잡초들이 무성했다.

점점 그녀를 따라갈수록 길에는 이상한 잡동사니들이 널러져 있다. 그 정도는 가면 갈수록 점점 늘어났으며 거의 돌담처럼 쌓여있는 곳에 다다르니 천막 하나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익숙해 보이는 기계들이 있었다. 생존자 귀환을 위해 배치된 로봇들이었다. 그 로봇들은 심각하게 부서져 있거나 거의 분해되어 있었다.

-칼, 마을에 들어오며 외벽과 전기가 흐르는 전깃줄을 봤겠지. 이번에는 그걸 만든 사람을 보러 갈 거야. 우리 마을에서 엔지니어라 불리지.

마넬리는 낡은 천막 앞에 멈추었다. 낡은 천막 안쪽에서 무거운 금속성의 소리가 들려왔다. 둔탁하고도 경쾌한 소리는 박자감 있게 들려왔다.

-한나! 들어가도 되겠나?

마넬리는 큰소리로 천막을 향해 말했으나 돌아오는 응답은 없었다. 마넬리는 다시 한번 외쳤다.

-한나! 들어가겠네.

그때 안쪽에서 치지직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에이-씨 조졌네, 이거.

라는 소리와 천막에서 얼굴에 검은 기름칠을 한 여성과 남성이 튀어나왔다. 한 명은 가슴팍에 무언가를 감싸안고 튀어나왔고 다른 한 명은 무슨 거적때기를 가지고 다시 천막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야?

마넬리는 물건을 가지고 뛰쳐나온 여성에게 물었다. 검게 얼룩진 민소매에 멜빵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는 기름때가 묻은 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였다.

-전기를 끊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터질 뻔했어!

그녀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마넬리는 그녀에게 미간을 찌푸리며 묻는다. 주변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다.

-뭐가 말이야?

-이번에 새로 포획한 로봇 말이야. 조금 손봐서 쓸 만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전기를 연결했을 때 단자가 망가져 있던 모양이야. 스파크가 일더니 불이 붙었지, 뭐야.

천막 안에서 무언가 퍼덕퍼덕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약간 열린 천막의 틈새로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방금 거적때기를 들고 들어간 사람이 입을 손으로 막고 콜록거리며 다른 손으로 연기를 헤치면서 나왔다.

-한나! 내가 조심하라 그랬죠!

-그래 맥스 네 말이 맞아.

맥스는 연기에 눈이 매워 찌푸린 표정으로 한나에게 나무랐지만 정작 한나는 고개를 돌리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맥스는 눈물이 흘러나오는 눈을 감고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반대쪽의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후, 죽을 뻔했네.

마넬리는 천막으로 다가가 입구를 막고 있던 천막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안에 아직 갇혀 있던 연기가 빠져나와 마넬리의 얼굴을 스쳐 하늘로 올라갔다. 마넬리 역시 기침을 콜록거리며 연기를 손으로 헤치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뭐람.

기계에 남아있는 탄 흔적은 어떻게 손을 써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게 수색대가 잡은 녀석이라고? 심각하군.

그 뒤로 칼이 천막 안으로 들어온다. 아직 매캐한 연기가 남아 있지만 역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어온다.

칼은 로봇에서 불에 타다 반쯤 흔적이 소실된 문양을 발견한다. 칼이 예측한 바로는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문양은 본디의 모습은 잃어버린 채 작은 직사각형과 그 주위에 타원으로 추정되는 도형 2개가 남아 있었다. 겨우 남아 있는 문양을 바탕으로 원래의 모습을 예측하려 하였지만 사실 불에 의해 녹아내린 흔적이 다분했기에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칼은 골똘히 그것을 바라보다 손으로 짚어 본다. 사그라들 기미가 없는 불의 기운이 손가락 끝에 아린 느낌을 남겼고 흰색 페인트가 손가락이 지나간 방향으로 번져있었다.

마넬리는 옆에서 칼을 보며 말한다. 마넬리는 그나마 여기 있는 사람 중 지하도시와 가장 관련이 깊은 인물인 칼에게 혹시나 이 로봇에 대해 그 어떤 사소한 정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에 칼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칼에게 이 로봇을 보여주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손상되어 계획이 물 건너갔지만, 로봇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칼을 보며 그가 무엇인가 알고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다.

-칼, 혹시 이 로봇에 대해 아는 게 있는가?

칼은 눈썹을 움찔거리고 입을 벙긋거린다. 마넬리는 칼의 대답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 달리 칼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려는 것이 아닌 머릿속에서 터진 실밥처럼 튀어나온 기억 끄트머리를 잡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꿈에서 느꼈던 그 느낌과 다른 느낌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마넬리는 아무런 응답도 없는 칼의 곁에서 팔짱을 낀 채 속만 타고 있었다. 한번은 뭔가 경직되면서도 어색한 표정의 칼의 얼굴은 들여다보거나 한번은 들추어진 천막 밖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땅으로 시선을 한번 내리꽂고는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들어 칼에게 다시 물으려 했다.

-칼! 그 어떤 아는 것이라도-

-잘···.

따지듯 내뱉지 마 젤리의 말을 칼이 끊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 애타게 기다렸던 대답이 모르겠다니 마넬리는 팔짱을 풀고 허리를 짚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막 위를 한 번 바라보고 고개를 아래로 박고는 좌우로 내저으며 이마를 한 손으로 짚었다.

그때, 칼이 허겁지겁 움직이며 배낭을 벗어 땅에 내려 두었다. 땅에 내려 두어도 마넬리의 허리 높이에 오는 배낭을 칼이 미친 듯이 헤집기 시작하니 마넬리는 깜짝 놀라 칼 쪽으로 몸을 돌렸다.

칼의 몸은 바삐 움직이며 다급한 마음을 내비쳤지만, 그 얼굴은 여전히 평온하다.

어느 순간, 가방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AI다.

-후 답답해서 죽을 뻔 했-

칼은 공중으로 떠오르는 AI로봇을 손으로 홱 낚아채었다.

-AI, 너는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지. 분명히 너는 알고 있을 거야.

흥분한 칼의 목소리와 행동에 AI는 당황하는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왜···. 왜···. 갑자기 왜···. 왜 이래요?

그러나 칼은 AI가 당황하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고 AI의 디스플레이를 로봇 가까이 갖다 댄다.

-빨리 말해.

아직 로봇에 남은 열기에 손상될 위기의 AI는 당황하며 다급히 말했다.

-아, 아, 알겠으니까. 멀리 좀 떨어뜨려 줘요. 얼른! 이러다 고장 나버려!

때마침 천막으로 한나가 들어온다.

-대장···.

대장을 부르며 들어온 한나는 칼의 손에 든 AI 로봇에 시선이 꽂힌 채 말을 읊조린다.

-대장···. 이제···. 어···.

말을 더듬으며 한나는 AI를 붙든 칼의 손 옆으로 다가와 AI로봇을 본다.

-분명 이게 말했지.

놀란 건 마넬리도 마찬가지다. 배낭에서 튀어 오른 조그마한 물체가 마치 사람처럼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칼은 이번에도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AI에게 다시 물었다.

-이게 대체 뭐냐고?

AI는 흥분한 칼에게서 빠져나오기 위해 전기충격을 가했다. 칼은 손을 움찔거리더니 덜덜 떨며 AI로봇을 놓아주었다.

-진정해요. 그러다 부서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응?

AI로봇은 웅웅 떠오르며 칼을 향해 외치듯 말하다 자신을 보고 있는 마넬리와 한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한나의 뒤로 따라 들어온 맥스도 발견한다.

-응?

그리고 두리번거리며 천막 안을 살피다 이제야 불에 타 손상된 로봇을 확인한다.

-아아아악!


-그러니까 이게 AI라고?

한나는 곤란한 표정을 디스플레이로 내비치는 AI를 손가락 끝으로 톡톡 건드린다. 그럴 때마다 AI는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사람처럼 공중에서 흔들린다.

-우와와아아아 진짜지? 정말이지?

한나는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신이 난다. 맥스는 그 옆에서 해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마넬리는 자기 턱을 어루만지며 AI로봇을 바라보고 있다.

그 옆에서 칼은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아직 아린 느낌이 남아있는 손을 어루만지며 잠시나마 흥분했던 자신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낀다. 그 모습 정녕 자기 모습이란 말인가? 도대체 갑자기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칼은 불에 탄 로봇을 한 번 보고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저기···. 칼이라고 했나? 저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 로봇 한 번 뜯어봐도 될까?

-어허! 이런 야만적인 사람 같으니라고!

AI로봇을 칼의 옆으로 날아가 칼의 뒤에 숨었다.

-칼, 이런 야만인들은 누구죠? 얼른 뜨죠. 아무래도 이런 곳에서 더 이상 있을 수 없어요. 아이는요? 이런 곳에 애를 맡겼다간 이 사람들처럼 자랄 겁니다.

AI는 불에 탄 로봇을 보고 한나와 맥스를 보며 말했다.

-윽! 이 잔악하고 악랄한 놈들! 어떻게 로봇을 저렇게···. 혜가 처음 나를 땅에 처박아 둘 때부터 알았어! 응 그때 전자파로 거칠게 굴 때부터 알았다고!

그때 한나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아 그거? 내가 만든 건데. 저번에 잡은 로봇을 분해 보니까 전파 방해 장치가 있더라고 그래서 그걸···.

AI가 진심으로 하나를 역겨워하며 말했다.

-아무튼! 역시! 너희 다 그런 족속들이란 걸 알고 있었다고. 어떻게 로봇을 그렇게나···. 나는 이럴 줄 알았어! 칼! 어서 가요! 아! 뭐해요? 얼른 일어나-

칼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와중에 옆에서 쫑알쫑알 대며 말하는 로봇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칼은 AI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쳇, 네놈도- 한패- 애액-! 이런 시-!

칼은 무심하게 로봇을 한나에게 던져 주었다. 한나는 멀뚱히 바라보다 손안에 떨어진 AI를 보고 씩 웃는다. 맥스가 한나의 뒤편에서 그녀를 보았는데 그녀의 주변으로 스멀스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기운을 로봇도 느낀 모양인지 살려달라 애원한다.

-악! 이제 그-만! 그만! 악! 살려줘!

-나 해도 돼?

한나가 AI를 잡아먹을 듯이 입을 벌려 실실 웃는다. 입을 벌리며 드러나 치아가 지금 한나의 심정을 대변하듯 반짝거린다. 한나는 두 손으로 AI를 받쳐 올려 AI의 디스플레이를 눈앞에 갖다 댄다.

-칼! 이 사람 눈이 맛이 갔어요. 어?! 눈이 맛이 갔다니까아아!

-히히히~.

그 순간 칼이 한나 위에 먹음직스럽게 놓인 AI를 낚아채며 말했다. 한나는 손에서 로봇이 떠나자,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칼에게 매달렸다. 키가 작은 한나는 세차게 뛰며 AI를 잡은 칼의 손을 집요하게 노렸다. 그럴 때마다 칼은 손을 위로 들고 한나를 요리조리 피하며 AI에게 말했다.

-저 로봇은 뭐지? 내가 본 적이 없는 로봇이다.

칼은 지상을 돌아다니며 지하도시에서 파견한 무인 로봇들을 보았지만, 불에 탔더라도 남아 있는 부분과 프로펠러도 지금까지의 로봇들과 달랐다. 특히 저 문양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저 문양은···.

다시 머리가 아파지는 칼은 질문을 하다 말았다. 그 잠시 틈에 손에서 빠져나온 AI는 가볍게 떠오른다. AI는 귀찮은 한나의 손길을 피해 위아래로 수직 운동을 하며 천막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몰라요~

말이 끝나자마자 칼이 뛰어올라 AI를 잡고 말한다.

-한나, 하고 싶은 대로···.

-응!

한나는 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AI를 칼의 손에서 꺼내 두 손으로 떠받듯이 들고 간다.

-아! 악! 잠시만, 잠시만!

AI는 한나의 손에서 미끄러지듯이 날아올라오며 말한다.

사실 AI는 칼이 열기가 남아있는 로봇에 들이밀었을 때부터 이 로봇이 무엇인지, 이 문양이 무엇인지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제가 지하도시의 데이터망을 뒤졌지만, 나온 게 하나도 없어요. 여러 기밀 사항을 다 파헤쳐 확인했지만···. 역시···.하···. 저 문양이라도 확실히 남아 있다면 알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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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부탁 24.06.13 34 0 12쪽
7 대화 24.06.13 35 0 11쪽
6 오해 24.06.13 33 0 10쪽
5 늑대 24.06.10 4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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