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마소천(聖魔燒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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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지컬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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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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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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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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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행 - 6

DUMMY

일을 마친 진호연이 담벼락을 넘어온 순간이었다.


“전하!”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파, 대호법 적오원군이 다급히 불렀다.


적오원군은 이전처럼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심지어 등바구니가 아니라 잘려나간 허벅지로 지팡이를 꽉 붙들고 우뚝 서있었다.


“이 각이 다 되었사옵니다! 무리하시오면 옥체···!”

“괜찮아, 할매.”


진호연은 노파에게 빙긋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알잖아. 조금만 쉬면 돼.”


그리 대답했으나 안색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핏줄이 이리저리 튀어나오고 우묵한 눈두덩의 눈알도 바깥으로 점점 돌출되고 있었다. 마치 사람이 속에서부터 터져 죽을 것만 같은 꼬락서니였다.


진호연은 흙바닥에 가부좌를 틀었다.


“···후우우웁.”


배와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가 숨을 멈췄다. 뱃속의 압력을 크게 높이자 목과 관자놀이의 핏줄이 도드라졌다.


“쿠흡! 커허헉!”


진호연의 입에서 물컹한 핏덩이가 쏟아졌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음에도 울렁거리는 뱃속에서 신물이 치솟았다.


혈맥을 폭주하는 정기가 진호연의 육신을 어그러뜨리고 있었다.


“크으윽!”

“전하!”


머리의 상단전, 가슴의 중단전, 아랫배의 하단전.


진호연은 삼단전이 모두 트이고 십이정경과 기경팔맥이 대통하여 초인의 경지(超人境)를 넘어 우주만물과 통하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터를 잘 닦은 삼단전 중 하단전에 금단(金丹)을 품었으니 신선이 될 기본인 선골을 갖췄다 이르는 구체품(具體品)에 다다랐음에도 내력을 다스리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선조의 피가 너무나도 강하게 발현된 탓이었다.


기가 순수하다 못해 농밀했다. 힘의 밀도가 너무 높은 탓에 깨끗하고 맑게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쇳물처럼 무겁고 용암처럼 끈적하게 흘렀다.


음양의 절맥증처럼 어느 한쪽의 기운이 극도로 발달해 몸을 해치는 난치병이나, 태어날 때부터 탁기가 가득하여 혈맥을 틀어막는 죽을병과는 전혀 달랐다.


그저 힘이 너무나도 순수하고 거대하여 육신이 버티지 못하고 파괴되는 증상이었다.


천인(天人)이었던 시조 무성왕의 아들딸도 이런 경우가 없었다. 지금껏 그 누구도 무성왕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가 없었건만, 피도 흐려진 먼 후대의 자손인 진호연이 그를 빼닮은 듯이 태어나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주인님의 체질이라, 어찌하면 좋을까.”


노파가 푸념했다.


지독한 고통에 신음하는 진호연을 차마 못 보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주인님, 제발 전하를 굽어살펴주시옵소서.”


노파는 먼 옛날 자신을 거두고 커다란 은혜를 베풀었던 무성왕에게 간절하게 기도했다.



***



커다란 등짐을 이고, 적오원군까지 목말 태운 진호연은 험한 산길을 질주했다.


한참이나 달려가던 그가 발을 멈췄다.


“저기, 할매.”

“말씀하시옵소서.”


진호연의 몰골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얼굴은 피가 몰려 터지기 일보 직전에, 진땀을 어찌나 흘렸는지 곳곳에 말라붙은 소금기가 잔뜩이었다.


“무게 더 늘려. 적당히 했던 놈들은 다 죽었다며.”

“아니 되옵니다. 적당히 했던 자들만 죽은 게 아니라 정도를 넘었던 자들도 죄다 죽었음을 어찌 모르시옵니까?”

“후우우.”


진호연은 단내 풀풀 풍기는 입을 앙다물고 발을 뗐다. 전신을 덜덜 떨면서도 지독한 의지로 산길을 올랐다.


“후우.”


지금 당장이라도 허파와 염통이 목을 타고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등에 업힌 노파가 천근추의 술수를 얼마나 교묘하게 운용하는지 어깨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 무게를 고루고루 분배하여 짓누르고 있었다.


정말 몸뚱이의 뼈마디 하나하나가 천근의 철추같이 느껴졌으나 이를 악물고 걸음을 뗐다.


“전하, 힘드시면 말씀을 하셔야 하옵니다.”

“으그으으윽! 대호법이면 대호법답게 더 엄하게 가르쳐.”

“본분도 지키지 못한 이 노괴가 무슨 대호법이라 하겠사옵니까···.”


진왕가의 대호법 적오원군(赤烏元君).


무성왕을 보필하던 대호법이 지금까지 생존을 했으니 나이만 하더라도 이백 세를 넘어갔다.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올 정도로 심후한 내공을 쌓았기에 한때는 좌우호법을 포함하여 세 명의 호법이 삼락삼절이라는 이름으로 강호무림의 절대자로 군림했던 적도 있었다.


백 세 이후에는 그늘에서 암약하며 왕가를 수호했었으나, 역도들에 의해 진왕가의 대종이 도륙 당한 지금은 대호법이 아닌 대역죄인에 불과했다.


적오원군은 깊은 자괴감과 죄악감에 시달렸다.


그녀가 간사한 계략에 속아 출타한 사이, 역도들이 진왕부(秦王府)로 들이닥쳐 담장 안의 모두를 죽여버렸다.


바깥으로 유인당했던 적오원군 역시 매복했던 자들의 습격에 휘말렸다. 천하에서 내로라할 수준의 절대고수들을 단신으로 때려죽이고 목숨을 부지하기는 했으나, 그 대가로 두 다리를 잃고 불구가 되고야 말았다.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진왕부로 돌아왔으나,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모조리 송장이 되어버린 참상뿐이었다.


적오원군은 잿더미 속에서 통곡했다.


무성왕이 거두어 신공을 사사하고 하늘의 영약을 받아먹어 기나긴 삶을 얻었음에도 그 은혜에 보답하지 못했으니 이게 첫 번째로 죽을 죄요.


기나긴 세월 동안 주인의 후손에게 빌붙어 호의호식을 했음에도 밥값을 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로 죽을 죄요.


두 가지 죽을죄를 짓고도 염치없이 살아있으니 이것이 세 번째 죽을 죄였다.


뻔한 함정에 빠져 적통을 수호하지도 못하고 자신마저 병신이 되어버린 노물이라며, 그렇기에 하늘에 있는 주인과 대대로 모셔왔던 왕들의 종묘에 향을 올릴 자격도, 동료였던 삼락삼절의 두 영령을 볼 면목도 없노라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때였다.


왕부를 살피고 시신을 헤아렸던 적오원군은 뭔가가 부족함을 깨달았다.


시신 중에 진왕가의 세자 진호연과 그 비복인 정씨내외와 두 딸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세자의 곁에 머물러야 하는 유모와 근시호위가 종적을 감추고, 더불어 세자의 흔적도 사라졌다.


이는 역도들에게 참변을 당한 것이 아니라 이변을 눈치채고 도주했다는 뜻이었다.


적오원군은 삼 년의 세월 동안 진호연과 정씨일가의 행방을 찾아 헤맸고, 불행 중 다행으로 죽어가던 진호연을 발견해 그의 목숨을 구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세자와 대호법.


둘이 살아온 십수 년의 세월 동안 구구절절한 사연이 많기도 많고, 모진 고생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혹시 모를 추적자를 피해 북쪽의 평원 너머의 혹한의 땅도 가봤고, 서쪽 대사막을 지나고 초원을 건너 파란눈의 색목인들이 바글바글한 땅까지 달아났었다.


그런 와중에 굶주림은 어찌나 고됐던지···.


도둑질로 연명하기 어려울 때에는 길바닥에서 비파를 타며 노래를 부르고, 구걸마저 여의치 않을 적에는 진호연이 외로운 아낙들의 하룻밤 서방이 되어 밥을 빌어먹어야 했었다.


그 참담한 세월을 그리자 심장에 핏덩이가 맺히고 배를 칼로 찢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후우우.”


상념에 잠겼던 적오원군이 눈을 떴다.


힘차게 산길을 달려야 할 진호연의 발이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적오원군이 억누르는 힘을 줄이자 진호연이 정색했다.


“아직, 할 수 있어···.”

“전하, 이 노물이 말씀 올렸지 않사옵니까.”


진호연은 침을 흘리면서도 할 말을 했다.


“단전, 단전에 내력만 가득하다고···.”


숨이 가빠 잇지 못하는 뒷말은 적오원군이 받았다.


“···강한 것이 아니옵니다. 그 힘을 능히 견딜 만큼 강인한 근골을 가져야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오행정기가 순환하듯 내외의 힘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라 아뢰었사옵니다.”


강철같이 탄탄한 골격과 용수처럼 질긴 근육이 바탕이 되어야 내가공부로 쌓은 내력도 빛을 발하는 법, 무성왕은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한 개의 최후의 한 개의 진짜 마무리 하나를 성취하는 인내심이야말로 무공을 대하는 자들의 기본이라 했더랬다.


“하지만 너무 과하면 독이 된다고도 말씀을 올렸지 않사옵니까.”

“무성왕께서 그를 누누이 설하시오매, 뭇사람들이···.”

“전하, 너무 혹사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더, 더 해. 나는 내가 알아···.”


적오원군은 진호연의 지독한 고집을 익히 겪었기에 천근추의 수법을 교묘하게 놀리며 무게를 점차 더해갔다.


이러다 진호연이 죽는 게 아닐까 생각했으나, 적당히 사정을 봐줬다가는 진호연의 성격상 멈추기는커녕 더욱 고되게 자신을 몰아붙일 걸 알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일 각을 더 달렸을 때, 산의 정상이 코앞에 보였다.


“씨이익···.”


이미 목에서는 피비린내와 쇳소리가 나고, 통나무 같은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으나 진호연은 멈추지 않았다.


“전하! 마지막 한 걸음만 더!”

“씨익, 쓰히이이.”


진호연이 겨우 한 걸음을 내디뎌 이 산봉우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다.


“흐하아악! 흐아!”


그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짐과 동시에, 목말을 타고 있던 적오원군이 풀쩍 뛰었다.


잘려나가 반틈밖에 남지 않은 다리로 지팡이를 꽉 붙들어 바닥에 내려서니, 그 모습은 마치 천년 묵은 나무요괴처럼 보였다.


“어서 숨 좀 돌리시옵소서.”

“흐아아아아.”


진호연은 배낭과 철비파를 맨 그대로 주저앉았다.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이 열려 숨을 들이마시느라 침과 콧물을 줄줄 흘려댔다. 잠시라도 침을 삼키려 숨을 멈췄다가는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벌렁거리는 건 위쪽의 구멍만이 아니었다.


너무 숨이 차서 아래쪽의 두 구멍도 펄떡펄떡 뛰는 중이었다. 잠시라도 방심했다가는 힘이 풀려 똥오줌을 죄다 지릴 지경이었다.


그런 진호연을 본 적오원군이 흐뭇하게 웃었다.


“심지가 이리 굳건하시오니 어찌 복수를 못 하리이까. 천하가 원수들의 피와 살로 뒤덮일 것이옵니다. 응당 그럴 것이옵니다.”



***



철장비웅의 저택.


경사를 알리는 홍등이 즐비한 이곳에 송장이 널브러져 지독한 시취가 진동했다.


웃전이고 아랫것이고 가릴 것 없이 몰살당한 참변을 처음으로 알아챈 것은 마을의 어느 청년이었다.


혼사를 앞둔 집에서 대문이 열리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겨 담벼락 안을 들여다보곤 대경했었더랬다.


이후 이틀거리의 관아로 달려가 참변을 고했고, 관원들이 부랴부랴 달려와 현장을 임검하게 됐다.


“이 많은 사람을 대체 어떻게···?”

“끔찍하구만. 그리고 무서워.”


진호연이 벌여둔 무참한 현장을 살피던 관원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지간한 시체는 다 봤었던 오작인(仵作人)들도 이렇게 철저하게 살인을 저지른 현장은 처음이었기에 속이 울렁거렸다.


바깥으로 나온 오작인이 바람에 달랑이던 붉은 등롱을 툭툭 두들겼다.


“제대로 죽였어. 경사를 앞두고 말이야.”

“지독한 원한이 있나 보구만.”


경험이 별로 없는 오작인도 이 현장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죽인 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걸.


“멸문이라···.”


관원은 수염 난 턱을 긁적이다가 옆의 늙수레한 오작인에게 물었다.


“개방에서는 어찌 보시오?”


옆의 늙은 거지가 단죽을 물고 입을 뻐끔거렸다.


“쇤네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라, 떠오르는 거라도 대충 말해보시구랴.”

“그야 나으리 생각이랑 똑같습죠. 원한도 아주 지독한 원한이 분명하고, 여러 사람이 벌인 소행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 벌인 짓거리입니다.”


개방은 무림에도 속했지만 본디 관의 체계에 포함된 일종의 걸인관리기구였기에 단두들은 특수한 공무를 봐야 했고, 방도들은 관의 명령에 따라 여러 잡무에 불려가는 일이 잦았다. 특히 시체를 수습하고 검시하는 오작은 개방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늙은 거지는 허연 연기를 뻐끔뻐끔 뿜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한 사람이 엄청난 고수라는 게 좀 문제기는 한데···.”


무참하게 살해당한 철장비웅과 그의 처자식을 제외하면 나머지 가솔들의 사인으로 추정되는 상처는 동일했다.


미간에 손가락 둘이 들어갈 크기의 구멍을 뚫어놓은 관통상이었다.


창이나 꼬챙이로 하나하나 쑤셨다기에는 시체들의 표정과 자세, 상흔이 맞지 않았다. 총포 비슷하기는 한데, 또 총포라 단정하기에는 탄환이 발견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창이건 총이건 사람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면 사람들이 도망이라도 쳤어야 하는데, 죽은 이들은 집안일을 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는지 도망친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늙은 거지는 관통상의 원인을 기척조차 없는 암살의 고수가 쏜 기탄(氣彈)으로 추측했다.


“···그야말로 마탄(魔彈)이로다.”


이런 파괴력을 지닌 기탄을 일시에 흩뿌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들은 상당한 실력을 지닌 고수에게 당한 게 분명했다.


“시체들 꼴을 보면 각자 하던 일을 하던 중에 갑작스레 죽어나갔을 겁니다. 아마 지금도 자기가 왜 뒈진지 모를 겁니다요.”

“그렇소?”

“아니아니, 아니지. 지금도 자기가 뒈진 줄 모르고 있을 겁니다요. 머리가 저렇게 뚫리면 고통 없이 바로 죽는다 들었습니다.”

“정말이오?”


거지가 고개를 저었다.


“쇤네가 어찌 압니까요. 그냥 그리 배웠던 건데. 뒈질 적에 저리 뒈져 보고 아팠다면 나으리께 찾아가 아팠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요.”

“됐소이다. 꿈에도 나오지 마시구랴.”


그런 중에 저택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수수한 회색 장포에 검은 도건(道巾)을 갖춘 도사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삼 척 길이의 평균보다 다소 짧은 검이 들려있었다.


늙은 거지가 그들을 보고는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끄응, 무당산이 또 홀랑 타버리기라도 했나? 드럽게도 빨리 내려왔구먼.”


그는 역참마다 말을 갈아치우고 한계까지 경공을 펼치며 달려온 무당파 제자들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무당파의 제자들이 슬그머니 다가오는 늙은 거지를 발견하고 의관을 정제했다.


그들 중 나이 지긋한 노인이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넸다.


“혹시 이곳의 부단두(府團頭)가 맞으신지요?”

“그렇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아, 처음 뵙겠습니다. 무당의 백종(白琮)이라 합니다.”

“어이쿠야, 소문으로만 듣던 백종진인이셨습니까. 명성은 익히 접했습니다.”


무당파 원로회의 장로 백종자.


침착하고 냉철한 성정을 바탕으로 무당파의 유려한 검공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한 검수로 이미 마흔 언저리에 일류고수의 경계이자 사람의 한계인 극정(極頂)을 넘어 초인경(超人境)에 발을 들인 고수였다.


지금은 그를 넘어 더욱 경지가 올랐기에 무당파의 백종자라고 하면 바위도 두부처럼 자르는 매서운 검공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또한 강호무림의 온갖 사건사고와 분쟁을 조사하고 중재했던 경험이 풍부한 노강호였으니, 외문제자로 이름을 올린 명사의 비보를 접한 무당파에서 백종자를 탐찰인(探察人)으로 선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늙은 거지도 자신을 소개했다.


“이미 아시겠지만 소인은 황류(黃鷚)라 합니다.”


황류 또한 한 지역의 부단두에 오를 정도로 강호무림의 경험이 풍부하고 무공 또한 만만치 않은 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특히나 일류 오작인으로 살인현장을 임검하여 범인을 색출하는 실력은 소문이 자자했다.


“황류개, 반갑습니다.”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는 말투와 다르게 백종자의 표정은 영 어두침침했다. 개방의 부단두와 안면을 텄으니 반갑게 인사를 해야 하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밝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철장비웅은 혼란의 시기에 혁혁한 공을 세워 황실로부터 큰 포상을 받아 대협객으로 명성을 날린 뇌진도 방환의 무리였기에 하루속히 흉수를 찾아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무당파의 위신을 생각하자면 응당 그리해야 함이나, 시신과 현장을 잠시 둘러본 백종자는 살수가 가공할 무력을 지닌 고수임을 알아봤기에 앞으로의 일이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런 백종자의 얼굴을 살핀 황류개가 듬성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자, 초면에 나눌 인사가 많기는 해도 우선 급한 불을 확인하고 나누십시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황류개는 백종자를 내원의 안쪽으로 안내했다.


정자의 다탁 주변으로 널브러진 철장비웅 일가의 처참한 시신을 그대로 지나쳤다. 지금 저런 송장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처럼 정자 너머의 담벼락으로 백종자를 이끌었다.


“이것 좀 보시지요.”


벽에는 피를 찍어 써 내려간 검붉은 벽서가 있었다. 손가락으로 썼지만 시원하고 망설임 없는 필체가 주인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범인이 남긴 벽서 앞에 선 백종자의 낯빛이 하얗게 죽었다.


“나, 뇌진도 방환은 과거의 죄업을 결자해지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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