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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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1
작품등록일 :
2024.06.2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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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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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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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007] 이기면 장땡

DUMMY

— 쏴아아아


괴한의 습격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폭풍의 영향권 안으로 진입한 것인지 배 위에는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파도로 인해 배가 심하게 흔들리고 빗방울로 앞을 보는 것이 힘들다. 옷도 다 젖어서 몸도 더 무겁다.


일반적으로 악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유운에게는 도리어 다행이었다.


자신이 힘든 만큼 상대도 폭풍으로 인해 공격이 무뎌졌고, 덕분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하아, 하아...”


그러나 그것도 한계였다. 유운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몸 곳곳에 괴한들의 공격으로 상처가 나서 따끔거리고 괴한들을 상대하느라 체력은 바닥났다.


무엇보다도 가장 문제는···


‘...내력이 모이지 않아.’


무공을 사용하기 위해 내력을 끌어모으려고 해도 내력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흩어진다.


유운은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배에 타고 시간이 지나 출출해질 즈음 선원 중 하나가 자신에게 배를 채우라고 먹을 것을 줬었다. 마침 배가 출출했던 터라 받아먹었는데 거기에 산공독(散功毒, 일시적으로 내력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독의 일종)이 묻어있었던 것이리라.


유운은 주변을 둘러봤다.


‘현재 보이는 괴한의 수는 8명. 그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은 나와 무건, 수리 님에 장필득과 표사 한 명, 그리고 원래 선원 4명 정도.’


수는 비슷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상대는 전부 무공을 익혔어. 몇몇은 이류, 거기다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은... 일류다.’


반면 자신과 표사는 삼류, 장필득만이 이류 초입 수준이고, 나머지 선원들은 무공조차 익히지 않은 일반인이다. 그나마 무건이 일류의 경지지만, 무건은 지금 산공독으로 인해 내력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상태. 거기다 괴한 3명이 달라붙어 집중 마크를 하는 중이라 우리를 도울 여력이 없다.


자신도 폭풍으로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미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여기서 살아도 문제다.’


폭풍은 점점 심해져서 이제는 일어서 있는 것도 힘들 정도다. 이대로 가다가는 배가 버티지 못하고 파도에 휩쓸려 전복될 수도 있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유운이 시선을 돌려 한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괴한들의 대장과 독고 수리가 싸우고 있었다.


기대감을 품고 봤지만, 상황을 확인한 유운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전황은 척 보기에도 수리가 압도적으로 불리해 보였기 때문이다.


대장은 천천히 수리를 압박하고 있었고 수리는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공격을 피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수리 님이 밀리는 거지? 수리 님은 우리처럼 중독된 것도 아닐 텐데...?’


유운이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어딜 보는 거냐!”


“큭!”


유운이 상황을 살피며 한눈판 사이, 괴한 중 하나가 접근해 유운을 공격했고 유운은 뒤늦게 이를 눈치채고 검을 들어 올려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늦은 반응은 온전히 공격을 받아내기에는 부족했다. 다행히 급소는 피했지만, 팔뚝에 길게 붉은 선이 그어진다.


“크크, 싸움 중에 한눈을 팔다니... 역시 귀한 집 자식이라서 그런가? 싸움을 안 해본 티가 나는군.”


“...내 정체를 알고 있나?”


“몰랐으면 우리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이런 배를 왜 공격하겠어. 뭐, 그쪽도 나름대로 대비를 한 듯 보이긴 하지만 아쉽게 됐군, 전설의 닌자는 여기서 죽을 거다.”


그렇게 말하며 괴한은 천천히 유운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항해봤자 소용없다. 어차피 모두 죽을 것이니. 하늘이 돕지 않는 이상···”


괴한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갑자기 배가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흔들렸기 때문이다.


— 출렁출렁!


“미친, 이게 무슨...!”


“...!”


이때까지 중에서 가장 심하게 배가 흔들리며 서 있는 것은 물론 배 위에서 버티는 것도 힘든 상황.


유운은 다급하게 근처에 있는 기둥을 잡고 버텼다.


“하아, 하아...”


잠시 후, 배의 흔들림이 멈추고 유운은 한숨 돌릴 수 있다.


식겁했다. 이런 날씨에 바다로 떨어진다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으아아아악!!!”


어디선가 비명이 들렸고 유운은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린 곳을 봤다.


그곳에서는 누군가가 바다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를 본 유운은 누군지 몰라 주변을 돌라보며 확인하려던 찰나, 옆에 있던 괴한 한 명이 소리쳤다.


“단자아앙!!!”


“...뭐?”


단장이라고?


그러면 수리가 이겼다는 건가?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밀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유운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바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전설의 닌자아아!!”


그에 유운이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방금 바다에 빠졌던 단장이라는 녀석이 수면 위에 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배 쪽을 보며 분노의 일갈을 내뱉고 있었다.


“겨우, 겨우 이걸로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오산이다! 당장, 내가 거기 올라가서...!”


그때였다.


— 번쩍!


눈앞에 벼락이 내리쳤다.


갑자기 가까운 곳에 낙뢰가 떨어져 놀라는 것도 잠시 유운은 바로 낙뢰가 떨어진 곳을 봤다.


그곳에는 수리에게 화를 내던 단장이 번개에 맞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었다.


“...”


“...”


번개가 치고 그를 보고 있던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이게 아니지.’


이내 정신을 차린 유운이 배에 있는 이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들의 수장은 전설의 닌자, 수리 님이 쓰러뜨렸다! 싸움은 끝났다!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해라!”


그 말을 들은 괴한들은 서로를 보며 눈치를 보았다.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 철컹


누군가 검을 내려놓고 손을 들었다.


항복의 의미였다.


그리고 곧이어.


— 찰칵


— 챙


하나, 둘 무기를 내려놓고 손을 들었다.


투항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니 다들 그에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했다. 단장이 벼락에 맞는 것을 모든 이들이 봤다. 그 이전에 수리와 싸우고 있었고 재빠르게 유운이 그들을 선동하며 수리가 하늘에서 벼락을 떨어뜨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괴한 무리를 이끄는 단장이 죽은 상황에 집단의 방향성을 결정할 결정권자가 없는 상황에서 무려 번개를 조종하는 이가 있다고 생각하면 저항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걸로 됐나...’


처음에는 어떻게 되는 건가 싶었지만, 어찌어찌 넘긴 것 같아 몸에 힘이 풀린다.


문득 하늘을 봤다.


방금까지 비를 쏟아내던 먹구름이 점차 걷히고 멀리서 노을이 지는 것이 보였다. 바람도 잦아들며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다에 평화가 찾아왔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설마 진짜 수리 님이 한 건가?’


유운은 수리를 쳐다봤다.


수리는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다. 도저히 벼락을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순간 멍청해 보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연이겠지.’


유운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앞으로의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이곳은 바다 한 가운데. 상황 정리하고 육지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없었다.


유운은 바쁘게 움직여 상황을 정리했다.




* * *




바다 위에서 갑자기 벌어진 난투가 어찌어찌 끝이 나고 우리는 무사히 연대시에 도착했다.


선장이 죽으면서 배를 조종할 사람이 사라졌다고 들었을 때는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다행히 살아남은 선원 중 한 명이 부선장이라서 선장에게 어느 정도 인수인계를 받은 상태여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배에서 올라탈 때 사람들이 한가득 타서 북적거렸는데 내릴 때는 분위기며, 인원수까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오를 때는 40명이 넘게 탔었는데 내릴 때는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


배에서 내린 후, 우리는 우선 대련시의 관에 투항한 괴한들을 넘기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가 한 건 아니고 심유운이 다 처리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말만 많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심유운은 의외로 유능했다.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었는데 수속을 마치기까지 반 시진도 안 걸렸다.


심유운은 괴한의 정체를 해적이라고 설명하며 배에 잠입해 배를 통째로 약탈하려고 했던 것이라 말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해적들의 수준이라던가, 이상한 부분들이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이후 새롭게 마차를 구하고 적당한 객잔의 방을 빌려 쉬고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표사가 줄었지만, 폭풍을 만나고 짐들이 바다로 떠내려가서 옮길 것이 많지 않았기에 운송 자체는 도리어 더 편해졌다. 원래는 마차 세 대 분량이 마차 한 대 분량으로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배에서는 이상하게 발동되지 않은 것 같던 행운도 산동성에 도착한 뒤부터는 제대로 작용하면서 이동하는 내내 편안했다.


다만 장필득은 뭐가 그리 급한지, 쉬지도 않고 이동했다. 도시에는 들르지도 않고 노숙을 하면서 해가 뜨자마자 출발해 해가 진 뒤에도 오랫동안 이동하다 노숙했다.


강행군 끝에 원래라면 못해도 닷새는 걸릴 거리를 무려 사흘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아, 진짜 힘들었네...”


태산시에 도착한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너무 힘들었다.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별거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 고생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수리 님, 고생하셨습니다.”


태산시에 도착하고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던 와중에 심유운이 내게 다가와 그렇게 말했다.


나름 곱상하게 생긴 녀석도 지금은 나처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해 꼬질꼬질한 건 기본에 눈 밑에는 검게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그래, 너도 고생했다...”


나는 적당히 그렇게 말했다. 지금은 무림 고수 흉내를 낼 정도로 내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못했다.


어차피 이제 만날 일도 없을 테니 나는 적당히 말했다.


심유운도 그런 내 태도의 변화를 알아차릴 정도는 아닌지 굳이 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를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던 심유운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응?”


“수리 님, 감사합니다.”


내게 감사 인사를 하는 심유운을 보며 나는 손을 휘저었다.


“아, 아냐.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아닙니다. 이번 운송에 수리 님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리 님이 아니었다면 지금 여기에 저는 없었겠죠.”


“됐다니까, 그러네. 근데, 그것보다...”


“뭐죠?”


나는 잠시 말을 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보수는...?”


“아, 그렇죠. 도착했으니 돈을 받으셔야죠. 안 그래도 그에 대해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뭐?”


보수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다니? 설마 안 주는 건 아니지?


나는 순간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짐도 많이 줄었으니 보수를 주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안돼! 이 개고생을 하고도 돈도 못 받으면 진짜!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에 심유운이 무언가를 건넸다.


“자, 여깄습니다.”


심유운은 주머니를 내게 주었다.


그래, 다행히 보수는 주는구나.


안심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응?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쨌든 보수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심하는 것도 잠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원래 계약대로라면 은자 5냥에 습격을 받게 되면 추가로 25냥을 받는 게 맞았다.


물론 습격을 받았다고 무조건 은자 30냥을 받지는 않았다. 그랬으면 짐승 한 마리만 만난 걸로 원래 보수보다 6배나 받는 건 말이 안 되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무려 무공을 배운 해적 떼를 만났다. 솔직히 30냥도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이 자기 맘대로만 굴러가지는 않는다. 기한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하긴 했지만 그래도 표물이 많이 분실된 것도 사실. 그걸 메꾼다고 생각하면 보수를 받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한다.


“수리 님...?”


“어, 어, 그래. 받지.”


나는 긴장하며 심유운의 손에 들린 주머니를 받아들였다.


주머니를 받은 나는 깜짝 놀랐다.


주머니를 넘겨받자마자 주머니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주머니에서 동전 소리가 나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형태도 동전 꾸러미가 아니라 뭔가 다른 느낌인데. 조각상... 같은 느낌?


아무리 생각해도 은자가 아니었다. 나는 주머니를 열어봤다.


그리고 넘어졌다.


그런 나를 보며 심유운이 씨익 웃었다.


“이, 이건?!”


“네, 맞습니다. 이번 운송에서 수리 님 덕이 크니 본래 얘기한 것보다 더 많이 담았습니다.”


나는 심유운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심유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나는 믿을 수 없어서 주머니 안을 다시 봤다.


그곳에는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물건이 있었다.


“금원보 1개입니다.”


금원보.


금을 말발굽 모양으로 주조한 것. 그냥 금이라고 해도 엄청난 보물이지만 금원보는 그 자체로 하나의 화폐로 여겨진다.


그 가치는 시세에 따라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은자 100냥이 넘었다.


무려 대도시에서 저택을 하나 살 수 있을 정도의 값어치였다.


“이, 이, 이, 이.”


나는 언어 기능이 고장 나서 계속 이상한 말을 되뇌었다.


금원보라니. 제값도 못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 정도나 받을 줄은 몰랐다.


심유운은 말을 이었다.


“물론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당장에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죄송하네요. 마음 같아서는 금원보 10개도 드리고 싶은데...”


“아, 아니! 이걸로도 충분하잖아!? 진짜 고맙다!”


“예, 예? 아, 마,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너무 기뻐서 심유운을 와락 끌어안고 그렇게 말했다.


심유운은 급발진하는 나를 보며 잠시 당황한 듯했다.


이후 금원보를 받고 이때까지 쌓인 피로가 싹 날아간 나는 심유운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럼 이제 어떡하실 건가요?”


“하남성(河南省)으로 갈 예정이다. 그 이후에 그곳에서 적당히 자리를 잡고 생활할 생각이야.”


하남성은 남궁세가가 자리 잡은 안휘성(安徽省)의 바로 위쪽에 있는 곳이었다.


실질적으로 문파나 세가가 몰려 있는 지역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어 앞으로 다른 곳으로 갈 일이 생겨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을 들으며 심유운은 아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쉽네요. 마음 같아서는 따라가고 싶지만...”


“빈말은 됐어. 그보다 너는 이제 심양시로 돌아가는 거냐?”


“아무래도 그렇겠죠. 물론 그 이전에 이곳에서 할 일이 있어서 그걸 처리해야겠지만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나와 심유운은 있어야 할 곳이 달랐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맡은 일과 심유운이 맡은 일은 다르니까.


뭐, 나는 그다지 아쉽지 않았지만 심유운은 그 짧은 새에 나한테 정이라도 들었는지 내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이건 좀 징그러운데.


나는 심유운의 손에서 내 손을 빼면서 말을 꺼냈다.


“아무튼, 고생했으니 언젠가 볼 수 있겠지.”


“...그래요. 언젠가 말이죠.”


심유운은 그 말을 듣고 내게서 조금 떨어져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나중에 보면 되겠네요.”


“그래, 그때까지 잘 지내라고. 어디서 객사하지 말고.”


“하하, 수리 님도 꼭 임무를 완수하시고 돌아오셨으면 좋겠네요.”


“...그래.”


심유운의 말을 들은 나는 내 상황을 되새겼다.


그렇다. 심유운은 이제 모용세가로 돌아가지만, 나는 내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돌아갈 수 없다.


‘남궁 기룡.’


나는 목표 대상을 떠올렸다.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불리는 녀석.


그러나 내가 이번 일을 포함해 최악이라고 생각될 때도 나는 어떻게든 이겨냈다.


그러니 이번에도 할 수 있다.


나는 운이 좋으니까.


그렇게 각오를 다진 나는 심유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반드시... 반드시 나중에 보자.”


“...네!”


그렇게 심유운과의 작별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목표는 하남성의 장주시(郑州市).


임무 수행을 위한 자본금은 마련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임무를 시작한다.




* * *




심유운은 도시를 떠나는 독고 수리의 뒷모습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독고 수리를 보던 심유운의 옆에 진무건이 다가왔다.


“유운 님, 정말 그를 포섭하지 않아도 괜찮은 겁니까?”


무건은 유운에게 정중한 태도로 그렇게 물었다.


유운은 놀란 듯 물었다.


“응? 웬일이야? 네가 그런 말을 다 하고? 평소에는 이놈은 이래서 안 된다, 저놈은 저래서 안 된다 해놓고?”


“그야 그 녀석들이랑 저 자는 다르지 않습니까. 무려 그 전설의 닌자입니다. 심지어 이번에도 그렇게 활약하지 않았습니까?”


“흠, 글쎄...”


유운은 계속 수리를 보고 있었다.


유운이 수리를 보고 있는 것은 아쉬움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무재는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사람 보는 눈은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무려 무건이 전쟁고아로 팔려 나왔을 때부터 그의 무재를 알아본 그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도 독고 수리에 대해서는 한 번에 평가내리기 어려웠다.


아무리 봐도 그는 여타 다른 인재와 같은 날카로움이 없었다.


그리고 직접 봤을 때는 더욱 그랬다. 닌자라는 사람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전혀 숨기지도 못하고 뭘 하든지 어설펐다.


사람을 볼 때 조건을 까다롭게 따지기 그지없는 무건조차 이렇게 말하니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무건. 네가 봤을 때 독고 수리의 경지가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했지.”


“저도 제대로 그 깊이를 알기 힘들었습니다. 저보다는 분명 높겠죠.”


“그럼 절정(絶頂)?”


“...”


“설마, 화경(化境)이라고?”


“...제가 느끼기에는 그렇습니다. 특히 이번 일로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설마 무건이 이렇게까지 높게 생각할 줄이야.


유운은 다시 무건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화경일 리가 없잖아? 화경이라면 최소 대문파의 장문인 급이야. 그런 고수가 겨우 암살단의 단장 한 명한테 쩔쩔맨다고? 절정 고수라도 이해하기 힘든데.”


“...그건 저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만 무려 하늘에서 번개를 떨어뜨리지 않았습니까? 그런 기교를 부리기 위해서는 최소 화경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듭니다.”


“흠...”


확실히 무건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쳤을 때 도리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무건이 이렇게까지 수리를 높게 평가하는 게 이상하잖아.’


유운은 독고 수리에 대해 퍼진 소문들을 떠올렸다.


하나 같이 괴이하기 짝이 없는 소문들.


어쩌면 무건이 이렇게 수리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유운이 배 위에서 수리가 단장을 상대하는 것을 보며 내린 분석은 이랬다.


운.


다만 그 정도가 많이 지나쳤다.


그러니 사람들이 다들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지.


‘뭐, 됐어.’


유운은 타인의 의견보다 자신을 더 믿었다.


독고 수리는 이상한 부분이 많았지만, 자신이 품을 정도는 아니다.


설령 독고 수리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틀렸다고 해도 이후에 그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유운은 판단했다.


‘그리고 씨앗은 뿌렸다.’


독고 수리가 대단한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운은 이미 대처했다.


독고 수리가 별 볼 일 없는 녀석이면 지금 자신의 판단이 옳게 되며 현재 세간의 평가처럼 대단한 녀석이라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것이다.


‘남궁 기룡의 암살.’


그를 위해 돈을 두둑이 줬다.


그가 그렇게 대단하다면 그 돈으로 뭐라도 할 테니까.


유운은 수리가 도시를 나가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다.


“암살단은 여전히 연대시에 구금돼 있지?”


“물론입니다. 얼마 안 가서 도착한다고 했으니 이제 이를 이용해 압박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 그러면 되겠지.”


유운은 단정하게 차려입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 위에 와룡관을 썼다.


유운은 그리고 방을 나와 넓은 복도를 걸었다.


심유운. 그것은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니었다.


그의 진짜 이름은 제갈 유운(諸葛 遊雲). 그 정체는 제갈세가의 삼 공자였다.


그리고 현 제갈세가에서 가주 자리에 가장 가까운 남자.


물론 그에게는 형이 둘 있었지만 둘 다 가주의 자리에는 맞지 않다고 가신들에게 평가되고 있어 사실상 제갈 유운이 다음 가주가 될 것이 유력했다.


그런 그가 모용세가에 유학을 하러 간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모용세가와 동맹을 맺기 위해.


현재 대륙을 지배하는 제국은 사실상 붕괴 직전이었다.


그로 인해 지방에서 힘을 가진 호족들이 각자 군대를 정비하며 자신의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갈세가도 마찬가지였다. 제갈세가는 그에 대비하고자 모용세가와 비밀스럽게 만나기 위해 제갈 유운을 유학을 명목으로 보낸 것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 모용세가의 협력을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니까.


‘이건 완수했다.’


다른 하나는 전설의 닌자라고 불리는 독고 수리와 만나는 것.


그에 대한 소문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흥미가 생겼고 직접 만나 평가를 하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려고 했다.


다만 이것은 모용세가에 머무는 내내 완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독고 수리와 접촉하려고 하면 마침 임무를 나가서 만날 수 없었고, 독고 수리가 돌아올 때쯤 제갈 유운도 할 일이 생겨 만날 틈이 없었다.


‘근데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만나게 됐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그리고 내린 결론이 독고 수리는 포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임무를 모두 완수한 제갈 유운은 돌아가기에 앞서 자기 형인 제갈 소운(諸葛 笑雲)이 자신을 암살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이에 대비했다.


가짜 귀환 행렬을 만들고 자신은 표사로 위장한다.


거기에 상행이 많아지는 시기에 맞춰 이동하기까지 했으니, 절대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설마 암살단을 만나게 될 줄이야.’


운송이 빨라지면서 더욱 습격의 위험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방심했고, 그로 인해 산공독까지 섭취하며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그것은 독고 수리 덕분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제갈 소운을 완전히 처벌할 수 있겠지.’


어쨌든 이에 따라 자신이 가주 자리에 앉는 것이 확정되었으니 어찌 보면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지금 제갈 유운은 암살단 잔당의 진술과 함께 자신을 지지하는 가신들과 함께 제갈 소운을 압박하러 가는 중이다.


‘흠, 독고 수리...’


그는 잠시 그 이름을 되뇌다 이내 그 이름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래, 언젠가 만나겠지.


그때 보면 자신의 평가가 맞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제갈 유운은 제갈 소운과 가신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때, 제갈 유운은 이 만남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올지 몰랐다.


다른 사람과 달리 독고 수리에 대한 제갈 유운의 평가는 거의 정확했다.


그러나 그가 간과했다면 사람이란 계속 변화하니, 현재의 평가가 그때도 동일할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독고 수리로 인해 원래 죽었어야 할 제갈 유운이 살아남았다.


이 사소한 소동으로 인해 앞으로 천하의 판도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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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무쌍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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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016] 사제, 충돌(師弟, 衝突) 24.08.16 4 0 24쪽
15 [015] 피로 물드는 밤 24.08.12 6 0 14쪽
14 [014] 불청객은 악재와 함께 24.08.11 7 0 14쪽
13 [013] 사람은 적응의 동물 24.08.08 11 0 14쪽
12 [012] 악연도 인연이다 24.08.08 16 0 19쪽
11 [011] 시작이 반 24.08.07 16 0 12쪽
10 [010] 흔들림 24.08.05 13 0 13쪽
9 [009] 살얼음판 위 평온 24.08.02 13 0 14쪽
8 [008] 제자 고용 24.08.01 14 0 18쪽
» [007] 이기면 장땡 24.07.29 16 0 23쪽
6 [006] 폭풍을 부르는 해상난투 24.07.28 14 0 11쪽
5 [005] 운수 좋은 날 24.07.25 16 0 15쪽
4 [004] 새벽진담 24.07.23 16 0 19쪽
3 [003] 호위닌자 24.07.21 19 0 14쪽
2 [002] 일할 시간 24.07.19 25 0 17쪽
1 [001] 가문에서 쫓겨났다 24.07.18 4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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