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차르칸의 기본서
3화. 차르칸의 기본서
1달간 참았던 식욕이 폭발했는지 정신없이 음식을 쑤셔 넣었다.
밥과 김치에 한 그릇, 자투리 고기 넣고 만든 김치찌개에 두 그릇. 라면에 밥 말아서 세 그릇.
도저히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게 배에 기생충이 들었나 착각할 정도였다.
밥만 3공기를 먹고도 남아 간식으로 달달한 디저트 몇 개를 집어먹으니 그제야 배가 좀 찬다.
자기 전에 너무 과식한 거 아닌가 싶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다.
“크으! 살 것 같네.”
몸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워낙 텅텅 비어있기도 했고.
너무 급하게 먹어서 체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오랜만에 들어오는 제대로 된 영양분에 활기가 차올랐다.
더부룩하기는커녕, 든든한 게 조금씩 잠이 몰려온다.
눈꺼풀이 무거워 뜨려고 하면 내려간다.
“오늘 하루는 푹 자자.”
낡은 침대로 몸을 던졌다.
정신이 순간 툭 끊기더니 어두컴컴한 원룸에는 숨소리만 미약하게 들려왔다.
내가 일어난 건 12시간이 지난 저녁 6시였다.
“으어! 푹 잤다!”
정말 오랜만에 신경 쓸 거 없이 푹 잤다.
그간 몸을 얽맸던 피곤함이 싹 다 날아갔다.
잘 먹고 푹 잔 것도 있는데 각성의 여파가 컸다.
각성 자체가 축복이라 여기는 건 돈도 있지만, 신체 능력이 가장 컸다.
큰 부상도 빠르게 나으며 병에는 잘 걸리지 않게 된다.
1달 동안 쌓인 피로가 하루 만에 사라진 것 보면 말 다 했지.
기지개를 쫙 켜며 일어나는데 배에서 익숙한 신호가 들려왔다.
꼬르륵.
“배에 진짜 기생충이라도 들었나?”
어제 한껏 먹었던 음식이 벌써 다 소화된 거다.
각성자들은 식비가 많이 들어간다고 하니 정말인 듯하다.
회복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다시 한번 허전한 배를 가득 채워줬다.
든든해진 배에 아공간으로 들어가려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알바 갈 시간이지.”
1시간 30분 정도 남았는데 각성한 지금 갈 필요가 없어졌다.
각성하면 넘쳐나도록 벌 수 있는 게 돈이다.
하지만 그간 잘해주신 게 많은데 통보로 띡 내뱉는 건 예의가 아니지.
이 시간대가 딱 사장님이 자리에 있으니 대충 옷을 걸쳐 입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5분 거리이기에 도착은 금방이었다.
“음? 찬영이? 교대 시간 멀었을 텐데 왜 벌써 왔어?”
“드릴 말씀 있어서요. 오늘부터 사정 때문에 못 나올 것 같습니다.”
길게 말할 필요 없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교대 시간까지 1시간 30분 남짓이라 화낼 법도 한데 환하게 웃어줬다.
“나쁜 일은 아니지?”
“예. 좋은 일입니다.”
“그거면 됐어. 그간 일 한 건 계좌이체 해 줄게. 그보다 잠을 잘 잤나 보다? 어제랑 다르게 얼굴 때깔이 고아졌네.”
“오늘 잠을 푹 잤거든요. 죄송해요. 적어도 하루 뒤에는 말해야 하는 건데.”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1시간 30분이면 다른 알바 구하기 충분한 시간이야. 죄송할 것까지야.”
정말이지 내게는 너무 과분한 사장님이다.
처음 만남 때부터 그랬다.
보통 알바 2개를 동시에 하면 하나에도 집중하기 힘들어 꺼리기 마련인데 바로 채용해줬다.
대우는 말할 것도 없다.
목마르면 음료수 하나 꺼내 마셔도 된다고 하고, 자취생이라 말하니 반찬과 음식까지.
아마 천사가 있으면 사장님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많이 감사했습니다. 시간 되면 언제 한번 놀러 올게요.”
“그래. 잘 지내라.”
무슨 좋은 일인지 물을 법도 한데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괜히 부담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언제 한 번 한우를 산처럼 쌓아서 들고 와야겠네.’
공사장 일 쪽은 따로 계약한 거 없이 가서 일하는 거기에 이걸로 정리는 전부 끝났다.
작별 인사를 끝으로 빠르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괜히 능력을 드러낼 필요는 없으니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공간 도서관에 들어갔다.
“시작해 볼까나.”
어제 놓았던 기본서 앞에서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 뒤 펼쳤다.
낡은 표지 넘어 페이지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무슨 외계어처럼 적혀 있어 당황했다가 금방 해결됐다.
[한국어로 전환됩니다.]
그제야 구불구불한 외계어가 내가 잘 아는 한국어로 변했다.
책장 옆에 놓인 고급스러운 소파에 누워 천천히 기본서를 탐독했다.
확실히 마법은 마법이다.
첫 장부터 읽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버거웠다.
“한국어 맞는 거지? 왜 이해가 안 되냐?”
이게 단어인지 문장인지도 이해가 힘들었다.
자연스레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중간에 선을 그은 것처럼 뚝뚝 끊겼다.
왜 재능의 영역인지 이해된다.
덧셈 뺄셈이 나와야 할 초입부터 무슨 인수분해, 이차방정식이 나오다가 갑자기 미적분이 쏟아진다.
그걸 한꺼번에 다 이해해야 하는데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예상한 상황이었다.
마법사들이 떠벌떠벌 거리기로는 특성, 가호가 좋은 마법사들도 마력을 느끼는 데만 며칠이 걸린다고 했으니까.
한동안은 기본기만 잡고 있어야 하는 줄 알았지만, 잠깐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한다는 건가?”
몸이 자연스레 움직였다.
단전에서부터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무언가 울컥 쏟아지더니 손끝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짙은 푸른색이 손바닥 위에 피어올랐다.
보자마자 단숨에 알 수 있었다.
“마력이다.”
읽은 지 30분도 안 되어 벌어진 결과였다.
가호 중에 ‘뇌 사용률 99.9%’ 덕분도 있고, 얻은 특성 자체가 대마법사라는 단어를 달고 있었으니 이 정도 습득률은 기본이지.
우연이 아닌지 다시 사용해봐도 문제없이 잘 사용된다.
자연스레 내용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무아지경에 빠져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었다.
한순간도 놓치기 싫어 눈을 깜빡이는 횟수를 최대한 줄였다.
그렇게 두꺼운 기본서를 단 2시간 만에 독파할 수 있었다.
그대로 소파에서 나와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천천히.’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정확도.
심호흡을 반복하며 호흡을 맞추고는 단전에서부터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력이 단전 전체를 가득 채웠다.
집중.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력이 흐르는 회로와 중심부를 만들어줘야 했다.
자동차가 엔진 없이 기름만으로 달릴 수 있겠나?
그 모든 걸 갖춰야 달릴 수 있다.
기초 마법서가 알려준 대로 마력을 움직였다.
온몸의 사이사이 퍼트린다.
신체의 모든 곳이 길이며 엔진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
“크흡.”
온몸에 땀이 쏟아지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멈추면 절대 안 된다.
마법을 못 사용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주의사항에서 잘못되면 반 불구가 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그건 사양이다.
이를 꽉 물었다.
심장이 가까울수록 통증은 배로 증가한다.
살을 찢고 뚫는 기분?
태어나면서 난생처음 느껴본 고통이었다.
시야가 연신 흔들리며 입안은 쩍쩍 갈라진다.
숨조차 겨우 내쉬는 상황 속 변화를 느낀 건 심장에 도달하고 나서였다.
“허어. 허억!”
꽉꽉 막혔던 숨이 탁! 풀리며 여름 장마의 꿉꿉함만이 느껴지던 몸이 에어컨 앞에 선 듯 시원했다.
춥다는 게 아니다.
18도의 공기를 내뱉고 있는 에어컨 공간 안에 담요를 덮고 있는 기분?
고통도 아예 싹 사라지며 내가 움직일 필요 없이 마력이 심장으로 향한다.
긴장을 놓았다.
내가 고생할 거 없다.
몸 전체에 자리 잡은 마력들이 자연스레 거대한 주력인 엔진, 심장을 찾아냈다.
남은 모든 마력이 심장에 깃들었다.
[몸이 마력에 완벽하게 적응합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0서클에 도달했습니다.]
[스킬, ‘차르칸의 호흡법(SSS)’을 획득합니다.]
<차르칸의 호흡법(SSS)>
[패시브]
차르칸이 태어나면서부터 죽기 전까지 그의 모든 정수가 담긴 호흡법입니다. 마법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호흡을 선사합니다.
1. 마력 회복 속도가 500% 상승합니다.
2. 마력 용량이 ‘마력 스탯 25’ 상승합니다.
3. 마력 소모량 10% 감소.
4. 마법 사용 속도가 100% 감소합니다.
5. 마법의 위력이 130% 상승합니다.
6. 마법의 최대 범위가 30% 상승합니다.
7. 마력을 좀 더 예민하게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이찬영>
직업 : 마법사
가호 : [초월급 대마법사 아공간의 주인] [자연의 축복] [뇌 사용률 99.9%]
특성 : 초월급 대마법사의 아공간(EX)
서클 : 초월급 마도서 [0/10]
[힘 : 5] [체력 : 5] [민첩 : 5] [감각 : 5] [마력 : 5 + (125)]
스킬 : [차르칸의 호흡법(SSS)]
“SSS!”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특성이 SSS급을 가진 헌터들도 얻기 힘든 SSS급 스킬이 기본 마법서 읽었다고 얻었다.
각성할 때보다 더 어안이 벙벙하다.
효과만 7개로 가호가 2개는 있는 수준이다.
그 어떤 마법사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초반에 이런 스킬 같은 건 주어지지 않는데 어마어마하다.
이제야 겨우 ‘마력’이란 걸 알았을 뿐인데.
과연 정상(10서클)은 어떨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예상외로 너무 일찍 끝났는데.”
땀으로 흠뻑 젖은 웃통을 벗어 던졌다.
원래 예상 시간은 대마법사의 아공간이길래 하루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도 마력을 이해하기에는 짧은 시간.
그런데 휴대폰 시간을 보니 지난 건 총 5시간 정도.
아공간이 딱히 개방된 것도 없으니 그냥 쉴까했다.
마력을 익히느라 힘들어 서클은 오늘 당장 제작은 불가능하다.
아공간을 바로 나가려는데 기본기 익히느라 까먹었던 마지막 페이지가 생각났다.
“마력 총탄이랬나?”
내가 익힌 건 기본기일 뿐, 서클이 아니다.
서클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서클만 없어서 속성 마법을 못 사용할 뿐이지 ‘무속성’ 마법은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력 총탄이었다.
지구에서도 잘 알려진 마력을 알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마법이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마력을 정밀하게 깎아내 구체화하여 원거리에서 쏘아내는 방식으로 기본적인 만큼 배우기 쉽다.
서클을 만들기 전에 배워서 나쁠 거 없지.
무속성은 마력 사용량이 적은 것에 반해 효율도 뛰어나니까.
무속성 마법을 사용해야지 서클을 만들 수 있기도 하고.
마지막 페이지로 책을 펼쳤다.
내 머릿속에 모든 단어가 이해된 건지 마력 총탄은 쉽게 익힐 수 있었다.
설명 자체가 쉬워진 덕도 컸다.
“그러니까 손에 마력을 뱉어낸 다음 압력으로 꽉 누르면 총탄이 만들어진.... 됐다.”
[0서클, ‘마력 총탄’이 ‘서클’에 저장됩니다.]
<초월급 마도서 [0/10]>
[0서클] - [마력 총탄 : 숙련도(0.1/100)]
손바닥 위에 내 손 반만 한 크기를 지닌 푸른색 총알이 두둥실 떠올랐다.
분명히 흔히 헌터 유튜브에서 보던 그 ‘마력 총탄’일 텐데 크기가 20~30배는 크다.
대물 저격 총 전용 탄환이랄까?
“새끼손가락 반보다 작지 않았나?”
바로 사용해 보려다가 여기가 어딘지 깨달았다.
“여긴 안 되겠네.”
초월급 대마법사라는 사람이 방어 장치 하나 준비하지 않을까 싶긴 해도 내가 쓸 아공간이다.
안전한 공간이 널렸는데 괜히 위험한 길을 건널 필요는 없지.
아공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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