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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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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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는 전쟁 영웅 - 2

DUMMY

광해가 제안한 장소 문경새재를 듣고, 신립의 얼굴에 내키지 않은 표정이 새겨졌다.

당연하다. 문경새재, 다른 말로 조령(鳥嶺)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나는 새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그런 곳에서 기병의 운용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우중에 적을 맞이해서 험준한 지형에 기댄다면, 승리 확률은 매우 높을 것이오. 어찌들 생각하시오?”


이번 질문은 신립이 아닌, 피곤해서 거의 눈이 반쯤 감긴 신료들을 향했다.

개중 정신을 바짝 차린 이가 권율이었고, 그나마 그는 손뼉을 치며 동조했다.


“소신도 같은 생각을 하였사옵니다.”

“그렇소이까?”

“자고로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아군이 잘 알고, 적이 모르는 곳에서 싸우라고 했습니다. 문경새재라면, 딱 그 말이 들어맞는 곳이지요. 더구나 비까지 온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혹, 저하께서는 따로 천문과 병법을 공부하셨사옵니까?”


광해는 웃음으로 권율의 질문에 답했다.


‘했죠. 현실에서 많이.’


시간이 멈춘 과거에서와는 다르게, 현실에서의 지난 석달 동안 이혼은 김류처럼 밀덕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물론 김류와 비교하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제법 전략과 전술을 입에 올릴 수 있었다.

광해는 권율의 대답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광해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었다.

작은 조정일망정, 분조를 이끈 뒤에 왕의 품격이 느껴졌다.

지금도 그랬다.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다가도 낮고 진지한 목소리에 졸기 일보 직전인 신료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며 대답했다.


“저하의 뜻에 따르겠사옵니다!”

“날씨와 지형지물을 이용한 탁월한 전술인 줄 아뢰오!”


광해의 웃음이 진해진다.


‘피곤할 때 몰아붙여야, 내가 원하는 답을 얻는 법이지.’


그의 노림수가 성공했다.

다만 탄금대를 결전의 장소로 마음먹은 신립의 표정은 좋지 못하였다.

광해는 아까부터 그의 표정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료들을 물리치면서 그에게 남도록 청하였다.


“도 순변사, 어째 마뜩잖은 얼굴인 듯하여, 따로 이야기하고 싶었소.”

“저, 저하,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괜찮소. 말씀하시오.”


성군의 조건, 귀가 열려있어야 한다. 최소한 신하들에게 그런 군주로 보일 필요가 있었다.

더군다나 신립은 현시점에서 조선 최고의 장수.

물론 이혼은 원래 그를 중용하지 않으려 했다.

임진왜란 초기에 기병 8천과 함께 무참하게 패배를 맛보고 자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 다녀와서 김류의 말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 나도 이일을 다시 마주했을 때, 진짜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렇지만 지금이 아닌 더 먼 훗날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차라리 갱생시키기로 했지.

- 더 먼 훗날이라면?

- 임진왜란 이후, 어쩌면 여진과 싸워야 할 그날을 위해서.

- 아, 기병전?

- 그래, 신립은 공성이나 수성보다는 기병 운용에 더 특화한 장수야. 이일은 편제 운용, 훈련, 그리고 보급 관리 쪽으로 괜찮지. 최소한 그들의 노하우가 다른 젊은 장수에게 전수되려면, 이번 전쟁에서 살리는 게 낫지 않을까?


단순히 살리는 것을 넘어서, 군신 간 믿음도 쌓아야 했다. 이런 이유로 이혼은 신립의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괜찮다니까요. 도 순변사는 이 나라 최고의 명장 아니오? 군략에 있어, 어찌 공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겠소? 혹시 문경새재에서 기병대 운영이 힘들 거 같아서 걱정하시는 거요?”

“실은······, 그렇사옵니다.”


이제야 신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의 의견을 개진한다.


“애초에 소신은 탄금대를 염두에 두고 있었사옵니다.”

“탄금대라. 나쁘지 않소. 배후에는 강이 있어서, 안 그래도 왜적에 두려움이 있는 병사들의 결의를 다질 수 있겠지.”


광해는 독심술을 할 줄 아는 걸까? 신립은 자기 속을 뻔히 들여다본 듯 말한 세자를 보고 살짝 놀랐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소이까?”

“어, 어떤?”

“1차 저지선을 문경새재로 하는 거요. 그러다가 만약에 거기서 우리가 패퇴한다? 그럼, 재빨리 병력을 수습한 후, 탄금대에서 도 순변사의 기병대에 의존하여 왜적을 막는다면? 이 전략은 어떻소?”

“음······.”

“물론 아무런 방도도 없이 하는 말이 아니오. 자, 들어보시오.”


전쟁은 큰 그림이 먼저다. 세세한 것을 들다가, 여기저기 엉킬 수 있었다.

그래서 광해는 1차 저지선과 2차를 먼저 언급했고,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을 짓는 신립에게 구체적인 전술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게 서서히 통한다. 처음에는 미심쩍은 얼굴로 미간을 좁히던 신립이 나중에는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아니, 신립은 광해를 그 이상으로 평가했다.


‘이렇게 촘촘하게 전술을 짰다?’


아까 누군가가 세자를 칭송하듯 꺼낸 말이 귓가에 맴돈다.


- 혹, 저하께서는 따로 천문과 병법을 공부하셨사옵니까?


물론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이 병법이었다.

인간은 공포 앞에서 겁먹은 고라니보다 몸이 더 움직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그 어떤 전술도 통하지 않을 테니,


‘막상 왜놈들에게 통하는지는 그때 가봐야 알 거 같구나.’


다른 건 몰라도, 세자가 천문을 공부한 것은 확실한 모양이었다. 다음날은 흐렸다. 그다음 날 아침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당장 비가 올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런 날씨를 예측한 세자가 제갈공명의 후신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먹구름 낀 하늘만큼 우울하진 않았다. 왠지 모르게 세자가 짜놓은 그물 안에 적이 들어올 것 같았다.

마흔다섯, 아직은 힘이 떨어지지 않은 신립의 눈빛에 아집이 아닌 투지로 불탄다.

그 의지를 담아, 오늘까지 모인 4천 기병대에 명령을 내린다.


“출발!”

“와아아아!”


한양에서 출발할 때부터 느꼈지만, 병사들의 사기는 예상보다 드높았다.

신립은 그 이유를 안다. 세자의 출정. 이 나라의 국본이 전쟁에 나섰는데, 그 누가 목숨을 던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세자는 권율 등과 함께 일부 병력을 데리고 하루 먼저 문경새재로 떠나기까지 했다. 류성룡을 포함해서 많은 신료가 반대했으나, 그런 황소고집은 처음 봤다.


‘그래, 저하께서도 목숨을 걸고 계신다.’


문경새재까지 한달음에 달려가자. 그리고 꼭 승리하자.


* * *


조선 땅을 밟은 일본의 제2번 대는 규슈 중부 세력이다.

무려 22,800명의 정벌군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부산과 언양, 그리고 울산과 경주를 거쳐서 곧바로 충청도를 향해 쉼 없이 진격하는 중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기요마사의 심복인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눈치를 보고 청했다.


“도조, 자칫, 병사들이 너무 지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잠시 쉬어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음······.”


기요마사는 잠시 고민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까지 먹고, 저녁에 출발한다.”


원래 일본 사람은 아침과 저녁만 먹는다. 그런데도 점심을 먹이라는 뜻은 곧 밤에 움직이겠다는 의미.

고된 행군이 예정되었기에 병사들의 피로감이 높아지겠다고 생각한 나오시게였으나, 주군의 입에서 나온 명령은 절대 돌이킬 수가 없었다.

다행인 점은 기요마사의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 식사하던 중에 여러 가신과 부장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쳤다.


“근처에서 고니시의 부대가 발이 묶인 모양이야. 으하하!”

“그게 정말이옵니까?”

“그렇다. 상주에서 아주 작은 성도 점령하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다는데, 내가 이럴 줄 알았다. 고니시, 그놈이 그동안 운이 좋았던 거지. 으하하!”


기분이 좋아져서 좀 더 쉬어갈 줄 알았다. 한양 입성을 경쟁하는 유키나가의 정벌군이 발이 묶이기도 해서, 여유도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말이 기요마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고삐를 늦출 필요가 있나? 식사가 끝났으면 곧바로 출발하자.”

“도, 도조······.”

“어허, 병사들에게는 원래 먹이지 않던 간식(점심)도 먹였다. 먹으면서 휴식도 했으니, 쉬는 건 한양에 들어간 뒤에 해도 괜찮지 아니한가. 조선 왕의 목을 베고 나서 말이야! 사야가!”

“네, 도조!”


반대하는 이들을 꼴 보기 싫은지, 장수 하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면서 하는 말.


“너는 최후방을 맡아라.”

“최후방 말이옵니까?”

“그렇다. 마지막에 쫓아오면서, 혹여 불나방 같은 조선 놈들이 있다면 알아서 처리하길.”

“네,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입이 큰 만큼 목소리 또한 컸다. 실제로 주먹이 들어갈 정도라고 소문이 났다.

그래서 기요마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외모를 통해 머리를 잘 굴리지 못하는, 불같은 사람이라고 선입견을 품는다.

절대 아니다. 기요마사가 성질이 급하긴 하지만, 예상외로 계산에도 밝다.

당연히 후방을 튼튼히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키나가의 제1번 대가 상주에 발이 묶였다면, 최근 여기저기서 생겨난 조선의 의병이 뒤를 덮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뒤에서 기습 해오면, 진짜 귀찮단 말이야.’


그는 히데요시가 자랑하는 칠본창(七本槍) 중에서 가장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장수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의 병력에는 조총 부대, 즉, 철포대 비중도 정벌군 중에 가장 높았다.


- 총알 앞에 창검이 무슨 소용인가? 갑옷 또한 뚫리니, 무겁게 하고 다닐 필요가 없다!


이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군의 경량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게 빛을 발하는 걸까? 조선 땅을 밟은 유키나가의 제1군보다 늦었는데도, 드디어 추월할 기회가 생겼다.


‘고니시 이놈! 나중에 네 구겨진 얼굴을 보면, 밥맛이 너무 좋을 거 같구나! 으하하! 으하하!’


유키나가는 자신보다 먼저 조선 땅을 밟을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게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노와 짜증이 솟구쳤던 지난날이었다.

지금은 기쁨과 흥분이 벅차올랐다. 이것이 잠시 기요마사의 신중함을 가렸다.

속도에는 관성이 있는 법. 문경새재에 들어오고 나서도 그 빠르기를 줄이지 못했으니.


“도조! 도조!”

“주변을 살피면서 진격하는 게 어떻사옵니까?”


깊숙한 곳에 들어서서야, 주변에서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이제야 기요마사는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확실히 예감이 이상했다.


“워······!”


일단, 기요마사가 참모들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말을 잠시 멈추었다.


“음······.”


먹구름이 잔뜩 끼어서 그런지 몰라도, 사위가 꽤 어두웠다. 해가 떨어지기 직전이었는데도 그랬다.

어쩌면 양쪽이 절벽이라서 더 그런 기분을 느낀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전투 경험을 통해서 자꾸 그의 등골을 찌르는 무언가가 신호한다.

조심하라고. 제발, 조심하라고.


‘가만있어 보자. 절벽이라고?’


다시 좌우의 절벽을 번갈아 가면서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봤다.

만약 자신이 조선군이었다면? 이 절벽 위에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을까?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두두두두······!


갑자기 앞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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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물속에서, 바다에서 - 4 +2 24.08.17 1,515 49 12쪽
44 물속에서, 바다에서 - 3 +1 24.08.16 1,550 49 12쪽
43 물속에서, 바다에서 - 2 +2 24.08.15 1,593 48 12쪽
42 물속에서, 바다에서 - 1 +1 24.08.14 1,652 52 13쪽
41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8 +1 24.08.13 1,655 50 12쪽
40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7 +3 24.08.12 1,608 49 11쪽
39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6 +4 24.08.11 1,607 48 11쪽
38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5 +3 24.08.10 1,636 49 11쪽
37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4 +3 24.08.09 1,625 47 11쪽
36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3 +3 24.08.08 1,644 45 11쪽
35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2 +4 24.08.07 1,670 46 11쪽
34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1 +3 24.08.06 1,746 46 11쪽
33 전세 역전의 조짐 - 8 +4 24.08.05 1,729 46 12쪽
32 전세 역전의 조짐 - 7 +2 24.08.04 1,679 48 12쪽
31 전세 역전의 조짐 - 6 +2 24.08.03 1,662 48 11쪽
30 전세 역전의 조짐 - 5 +2 24.08.02 1,723 46 11쪽
29 전세 역전의 조짐 - 4 +3 24.08.01 1,690 48 11쪽
28 전세 역전의 조짐 - 3 +2 24.07.31 1,710 51 12쪽
27 전세 역전의 조짐 – 2 +4 24.07.30 1,758 50 12쪽
26 전세 역전의 조짐 – 1 +3 24.07.29 1,778 50 11쪽
25 세자는 전쟁 영웅 – 8 +2 24.07.28 1,795 46 12쪽
24 세자는 전쟁 영웅 - 7 +2 24.07.27 1,731 49 11쪽
23 세자는 전쟁 영웅 - 6 +3 24.07.26 1,733 48 10쪽
22 세자는 전쟁 영웅 - 5 +2 24.07.25 1,743 47 13쪽
21 세자는 전쟁 영웅 - 4 +3 24.07.24 1,760 49 12쪽
20 세자는 전쟁 영웅 - 3 +2 24.07.23 1,757 47 13쪽
» 세자는 전쟁 영웅 - 2 +2 24.07.22 1,761 45 11쪽
18 세자는 전쟁 영웅 - 1 +2 24.07.21 1,823 4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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