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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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안
작품등록일 :
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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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역전의 조짐 - 6

DUMMY

김류의 간언에도, 광해는 분노를 억누르지 않았다.


“유키나가의 사위? 흥. 그게 어쨌다는 말이냐? 설마 저 왜놈의 목숨값으로 뭐라도 받아낼 성싶으냐? 또한, 이미 역도가 된 놈이 다스리는 대마도도 역도의 무리나 다름없다. 후에, 나는 그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삼을 것이다.”


이러한 광해의 뜻이 요시토시의 귀에 스며들자, 그는 더 벌벌 떨었다.

솔직히 요시토시는 세자의 평소 성품을 잘 모른다. 그랬기에 지금은 광해의 격노 한 번으로 목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대마도에 있는 섬사람들은?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쿵!


소 요시토시는 다시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저하! 전쟁을 치르면서, 일본은 조선의 포로를 많이 잡았나이다. 파리와 같은 소신의 목숨값이지만, 그들과 교환할 수 있사옵니다. 아니, 소신이 죽더라도, 다른 포로를 내주고 데려올 수 있다고 생각하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마도를 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절반은 거짓말이다. 히데요시는 자신이 아끼는 유키나가의 사위라서 그를 대우한 것일 뿐, 대마도는 안중에도 없다.

그러나 유키나가는 다르다. 그래서 종종 어떤 곳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일본은’이나 ‘히데요시는’ 등등 유체 이탈법을 쓰면서 광해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래도 광해가 풀어질 기색이 없자,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또한, 대마도는 금광과 은광, 그리고 철광까지 있는 섬이옵니다. 요즘에는 고귀이마라는 작물도 기르고 있사옵니다.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캐는 법, 기르는 법, 잡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겠사옵니까? 그 섬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여, 간청하옵니다. 소장까지는 죽여도, 대마도에 있는 저하의 백성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드디어 광해의 표정이 변했다.

신료들 또한 요시토시의 말 중에서 어떤 것을 듣고 광해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이번에는 류성룡이 나섰다.


“저하, 평의지가 죽어 마땅한 자이나, 대마도 상황을 좀 더 알아보고 처리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저자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이어지는 이덕형도 마찬가지.


“경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이혼은 연기하는 중이었다. 요시토시가 말했던 내용은 원래 알고 있던 사실. 그런데 이제야 신하들 말을 경청하는 표정을 애써 짓고 있었다.

광해는 서늘한 눈빛으로 다시 요시토시를 보고 물었다.


“금, 은, 철이라고? 틀림없으렷다?”

“그렇사옵니다.”

“물고기도 많이 잡힌다?”

“틀림이 없사옵니다!”

“한데, 고귀이마라는 게 무엇이냐?”


분노의 목소리가 사그라지고, 슬슬 궁금증을 드러냈다.

이를 보고, 류성룡이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저하께서는 저런 건 변하지 않으셨단 말이야.’


어렸을 때부터 광해를 봤기에, 지적 호기심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아는 류성룡이었다.


“땅에 심어서 키우는 작물입니다. 석 달 만에 자라서, 식량 대신으로 할 수 있사옵니다.”

“석 달?”


광해와 김류만 아는 사실이었지만, 신료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때는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 3개월 만에 쌀을 대신할 식량이라고?

광해는 짐짓 의심을 드러냈다.


“나는 믿기 힘들구나.”

“당장 보여드릴 수 있사옵니다. 그걸 가져온 부하들이 꽤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즉시 대령하라.”


머릿속으로는 계산에 들어갔다. 고구마를 심는 시기는 5월에서 6월. 고로, 곧 파종 적기가 도래한다.


‘당장, 씨를 뿌릴 수 있겠어.’


어렴풋이, 숙종 때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들여왔다는 기록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걸 앞당겨서, 올해 8월부터 수확한다면?


‘전쟁을 치를 동력뿐만 아니라, 전후에 백성들의 굶주림을 어느 정도 덜 수 있으리라.’


광해와 김류는 지난 석 달 동안 온갖 분야에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었다. 그중에는 조선의 고질적인 문제인 기아를 해결할 방안도 있었다.

대동법이란 제도도 있었지만, 쌀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는 지상 과제가 우선했다.

식량 안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두 사람의 꿈과 야망은 실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드디어 고구마가 모습을 보였다.

종사관 중 하나가 왜놈에게 빼앗아 온 것인데, 현대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매우 작았다.


“지난밤에 배급했던 것이옵니다. 저걸 구워 먹을 수도 있고, 쪄먹을 수도 있사옵니다. 심지어 생으로 먹어도 아무 탈이 없사옵니다.”


살려고 발버둥 치는 요시토시의 설명에, 광해는 가져온 고구마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 어떤 문헌에서 고귀이마를 본 일이 있다. 정확히 고귀이마라고 적히진 않았지만, 모양이 이것과 비슷하구나. 이걸 땅에 심으면 자라기도 한다지?”

“그렇사옵니다! 어떤 척박한 땅이라도, 잘 자라옵니다. 그거 하나를 심으면, 백 개로 늘어나기도 하옵니다!”

“알고 있다. 그리고 더 쉬운 방법이 있다. 반쯤 물에 담가놓고 싹을 틔운 뒤, 땅속에 심으면 된다고 적혀있었다.”


작물은 초반에 살아남기가 가장 힘들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안전하게 키운 뒤에 땅에 심으면, 더 튼튼하게 자랄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 널리 퍼진 모내기도 그래서 주목받았다.

광해는 그걸 좀 더 일찍 도입하려고, 지금 슬쩍 운을 띄웠다.

그것도 모르고 요시토시가 말하길.


“그, 그건 처음 들었사옵니다. 하오나, 저하의 말씀이 옳은 것 같사옵니다!”


경험도 못 한 자가 무조건 옳다고 말하니, 광해는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표정의 변화 없이,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좋다. 네놈을 죽이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마. 단, 쓸모가 있거나, 죽여야 할 때, 따로 부를 것이다. 너는 그때까지 목숨을 잘 부지하고 있으라.”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잠시였지만, 생명줄을 잡았다는 생각에, 요시토시가 또 한 번 머리를 땅에 찧었다.

광해는 또 한 번 속으로 실소를 머금은 뒤, 모든 신료와 무장에게 다음 명령을 내렸다.


“잘 쉬는 것도 전략 중 하나요. 성의 방비를 튼튼히 하되,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재우시오.”


물론 그 자신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곧바로 김류를 따로 불렀으니······.


* * *


낮에는 새를 밤에는 쥐를 조심해야 하기에, 김류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광해에게 물었다.


“혹여, 요시토시를 진짜 죽이려고 했사옵니까?”

“당근.”


오히려 광해가 남의 눈과 귀를 의식하는 것 같지 않았다.


“죽일 마음이 들어야, 뭐든 끌어낼 수 있는 법.”

“그가 죽었다면, 일이 복잡해지옵니다.”

“혹은 더 편해질 수도 있지. 내 이미지는 늘 범생이었잖아.”


정확히는 모범생이라기보다는 부드럽고 의지가 굳지 못 한 왕자 시절을 기억하는 신료들이 많았다.

몇몇은 인간 말종 임해군이나 순화군의 성정이 광해에게 조금 더해졌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였다.

물론 지금은 상당히 변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긴 카리스마나 강성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장착되어야, 훗날에 선조와 대립할 수 있겠죠.”


광해에게 영향받은 듯, 김류도 이제 거리낌 없이 말한다. 생각해 보니, 누가 들어도 무슨 말인지 반쯤은 모를 것 같다.


“그래도 요시토시를 죽이지 않은 것은 잘 결정하신 겁니다. 덕분에 고구마를 일찍 들여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왜놈들의 수중에 있는 고구마를 싹 수거해 놓도록.”

“명을 받겠사옵니다.”

“지금 가란 이야기가 아니야. 그건 조금 있다가.”


김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광해가 그를 멈춰 세웠다. 고구마가 본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상의할 게 있지. 우선 한양에 장계를 보내야 해. 그리고 화포장 이장손을 요청할 생각이야.”


광해는 화포장 이장손의 존재가 필요했다. 전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데려오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비격진천뢰를 만들어서 사용할 생각이다.

그 생각을 읽고, 김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포탄이 몇 개 남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상주 이남을 수복하려면, 끊임없이 제조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네가 병력을 끌고 보은으로 가야 할 듯싶다.”


뜻밖의 지시에, 김류가 눈을 깜빡였다.


“보은이라면? 삼년 산성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광해는 한양에서 장인 유자신에게 구로다 나가마사가 이끄는 제3번 대의 북진을 막으라고 전했다. 그런데 아직 그곳의 소식이 들어오지 않았다.


“삼년 산성은 천혜의 요새이옵니다. 안에서 웅크리고 있다면, 쉽게 점령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알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걸. 그렇지만 막는 게 다가 아니지.”

“아······.”


김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광해가 한 말의 의미. 여기처럼 삼년 산성에서도 왜군을 몰아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를 위해, 광해는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냥 가지 말고, 충선을 데려가라.”

“충선을요? 아니, 철포대가 필요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있으면 더 좋지. 그러나 전라도와 충청도를 지키는 게 더 먼저야. 곧 파종 시기가 다가오거든.”

“네······.”


조선에서 농사는 한 해에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조선 팔도 중에서 대략 60%의 쌀 수확이 이루어지는 곳이었으니.


“그러고 보니, 아까 고구마를 말씀하시면서, 살짝 의도가 보였습니다. 혹, 이참에 모내기를 시행할 생각이옵니까?”

“그래, 맞아.”

“음, 그렇군요.”


모내기, 다른 말로 이앙법.

다른 곳에서 벼를 길러서, 원래 논에다 심으면 장점이 그렇게 많았다.

생산량이 확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요, 노동력의 75%를 감소시킬 수 있었다.

조선은 이런 좋은 방법을 왜 안 했을까?

세금 때문이다. 여기서 노동력이란 곧 양인을 말한다.

그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어떻게 세금을 거두어들일 수 있겠는가.

이를 두려워한 조선은 초기부터 아예 이앙법을 금했다.

광해는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너도 알다시피, 잉여 노동력은 곧 국력이 될 거야. 그리고 가장 좋은 변화의 시기는 역시 전란 때지. 바로 지금.”


세자의 혜안에 김류가 웃었다.


“지당하신 말씀. 소장, 저하의 큰 뜻을 받들겠사옵니다.”


변화, 더 나아가, 개혁은 아무 때나 시도할 수 없었다.

역설적이지만, 시스템이 파괴된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적용할 수 있었다.

조선의 경우, 지금이 적기일 수 있었다.

단 한 가지, 전세 역전의 조짐이 확실히 보인다면 말이다.

다행히 한 가지 깜짝 놀랄 희소식이 다음 날 들어왔다.


“저하, 전라 좌수사 이순신이 옥포에서 127척의 적 함선을 맞이하여, 무려 100척을 격침하는 대승을 거두었나이다!”


육로에서도, 해로에서도 일본의 초반 기세는 급속하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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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6 +4 24.08.11 1,606 48 11쪽
38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5 +3 24.08.10 1,635 49 11쪽
37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4 +3 24.08.09 1,625 4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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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전세 역전의 조짐 - 4 +3 24.08.01 1,690 4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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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세자는 전쟁 영웅 - 2 +2 24.07.22 1,760 4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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