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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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안
작품등록일 :
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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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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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는 전쟁 영웅 - 7

DUMMY

비가 그쳤지만, 먹구름에 달빛 하나 없는 밤이었다.

어느 악공(樂工)이 퉁소를 부는 건지, 참으로 애잔했다.

어찌나 심금을 울리는지, 일본군 진영에서 아직 잠이 들지 못한 병사들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고향 생각난다.”

“괜히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우리 아버지, 아프신 거 두고 타향에 온 게 마음에 걸리네.”

“에이꼬. 설마 그새 딴 놈한테 마음을 주는 건 아니겠지?”


병사들뿐만 아니라, 아픈 걸 참으면서 죽음을 각오한 기요마사도 얼굴을 찡그렸다.


‘뭐냐, 저 소린?’


괜히 마음이 요동친다.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이렇게 물어볼 정도다.

내일 아침 공성이 시작될 때, 굳이 먼저 나설 필요가 있을까?

다친 곳이 아물고 나서 공을 세울 기회는 충분히 있는데?


“이런!”


순간, 기요마사가 고개를 내저으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침상에서도 품었던 칼을 빼 들고 나갔다.

그런 다음, 소리가 나는 쪽에 귀를 기울인 기요마사.


“음······.”


한두 곳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아닌 듯했다. 그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언제 나왔을까? 유키나가도 이미 칼을 찬 채, 깊은 한숨을 터트렸다.


“골치 아프게 하는군.”

“고니시, 칼을 찼구나. 직접 나설 생각인가?”

“필요하다면?”


유키나가는 원래 신중하고 전략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 조선 출정에서는 평소와 달리 공격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이는 아마도 히데요시의 압박 때문일 것이다.

어둠이 짙게 깔려서 그렇지, 두 사람 모두 인상을 쓰고 있었다.


“여러 곳에서 일부러 저렇게 하는 거 같아.”


쫑긋한 귀를 돌려보니, 성 쪽이 아니었다. 막사를 세운 뒤쪽, 그것도 사방에서 들린다.

기요마사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흘려냈다.


“젠장, 이것들이 지금 일부러 저러는 거란 말이야? 우리 못 자게 하려고?”

“그래.”

“이거,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겠어.”

“맞아. 슬슬 걱정되고 있지.”


적이 노리는 건 분명했다. 이 구슬픈 퉁소 소리.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기에는 엄청난 무기였다.

병사들이 잠을 못 잔다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이러다가 사기가 저하되는 것은 물론, 내일 아침에 완벽한 몸 상태로 공성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이 어그러지게 생겼다.


“고니시, 안 되겠어. 내가 직접 부하들을 이끌고, 저것들을 다 죽여버려야겠다.”

“이 어둠 속에서 말이냐? 소리를 듣고 갔다가, 기습이라도 당하려고?”

“끙······.”


기요마사는 앓는 소리를 냈다. 유키나가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다. 오히려 다쳐서 그런지, 자꾸 생각이 얕아지는 본인을 속으로 욕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기요마사!’


그와는 다르게 유키나가는 냉정했다.


“대신 몇 명은 조를 짜서 수색하게 할 수 있지. 그렇게 하면, 최소한 적의 규모를 알 수 있거나, 퉁소 소리를 멈추게 할 수도 있을 거다.”


이 또한 기습에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잠을 못 이루는 병사 일부를 그렇게라도 돌려서, 뭔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시 퉁소의 다른 효과를 이 두 사람은 망각했다.

그건 바로, 성안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일본에 향수병을 불러일으킨 구슬픈 소리가 반대로 성안 사람들에게는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다는 것을······.


* * *


처음에는, 성 위에서 적의 야습을 대비하기 위한 조선의 병사들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뭔 소리지?”

“뭔 소리긴? 퉁소 소리잖아?”

“몰라서 묻나? 내 말은 왜놈들이 저런 걸 부를 리가 없지 않은가?”

“어? 그러네.”


조선에서 사는 사람은 지금 퉁소가 내뱉는 의미를 다 알고 있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걸 자극하는 내용의 타령 등등, 평소에 가끔 듣는 퉁소 소리였다.

한데, 지금 타향 땅에 와 있는 사람들이 누구겠는가? 당연히 일본의 침략군이었다.


“그럼, 저건 누가 부르는 거야?”

“이야, 이거······.”

“설마 원군이 온 건가?”

“원군······? 그러네! 원군이 왔다! 원군이 왔어!”


병사들이 동요하자, 드디어 김류가 성 위에 올라와서 외쳤다.


“원군이다! 우리를 돕기 위해서, 성밖에 원군이 당도했다!”


그는 아예 이렇게 결정지어 버렸다. 동시에 저 원군이 누구인지 단번에 짐작했다.


‘이혼, 왔냐?’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인다. 광해가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원군의 출현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아니지. 이거, 진주 대첩에서 김시민이 쓰던 심리전 아닌가?’


그랬다. 원래의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은 악공을 불렀다. 그리고 성 위에서 진주성을 둘러싼 일본의 병력에 구슬픈 퉁소 소리를 들려주게 했다.


‘와, 내가 저걸 생각 못 했네.’


이곳에서든, 현실에서든. 진작 떠올렸다면, 밤마다 퉁소 소리를 적에게 들려줬을 텐데.

아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혹시 성 내에 퉁소를 다루는 자 있느냐?”


그때였다. 누군가 대답하는 대신 반문이 들어왔다.


“퉁소로 뭘 어쩌려고?”


늘 김류보다 한 박자 늦게 올라온 이일이었다. 그러자 김류가 예의를 갖추며 고개를 숙인 뒤,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거들어야죠. 그리고 호응해야죠. 저 밖에 있는 세자 저하의 원군에.”


이일은 눈을 부릅떴다.


“세, 세자 저하라고? 그분이 직접 오셨다고?”

“네, 거의 확실합니다. 저하께서는 한양에서 소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직접 병력을 끌고 오겠다고.”


마음이 동요되었다. 당연히 좋은 쪽으로다. 뒤따라 올라온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


“세자 저하께서 직접 오시다니?”

“서, 설마······.”

“약속했다지 않은가.”

“그래도 저하의 출정을 성상이 허락했겠는가?”


장수들의 의문을 뒤로 하고, 세자가 원군을 끌고 왔다는 소식이 곧바로 병사들에게 전해졌다.

당연히 기쁜 수군거림이 이어지고, 누군가는 목소리를 크게 냈다.


“세자 저하께서 원군을 데리고 오셨다!”

“세자 저하께서 우리를 살리려고, 직접 오셨다!”


병사 중 일부는 실상 유생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창칼을 들고 자원하기 전, 그들은 분명히 김류가 한 말을 들었으니.


- 상감과 세자께서 노심초사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소! 심지어 세자께서는 상감께 청하여 직접 군을 이끌고 남하하기로 하였소! 또한, 세자께서 목 놓아 말씀하시었소! 조선의 의로운 자들이여, 함께 백성과 강산을 구하자! 이 땅을 밟은 왜적을 절대 살려서 돌려보내지 말자!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반신반의. 하지만 지금 김류가 또 한 번 확언하자, 이들의 마음이 다시 한번 들끓었다.


“세자 저하, 천세! 천세!”

“세자 저하, 천세! 천세!”


이렇게까지 되니, 이일은 슬쩍 걱정이 앞섰다.


‘음, 경솔한지고. 그러다가 세자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어쩌려고······?’


한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큰 상관 없었다. 간신히 성을 막고, 왜적이 물러난다면?

그때 가서 잠시 실망할 뿐이다.


‘그래. 차라리 세자께서 오셨다고 생각하게 두는 건, 나쁘지 않아.’


이렇게 마음먹자, 오히려 편해졌다. 그리고 세자 천세를 부르짖던 목소리가 잦아들 무렵, 이일이 묵직한 음성을 쏟아냈다.


“퉁소를 다루는 자, 앞에 나서라! 우리도 세자 저하께, 여기서 잘 버티고 있다! 화답해야겠다. 하하하.”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잠시 후, 호응의 퉁소 소리가 성안에서 밖으로 울려 퍼졌다.


* * *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었지만, 성에서 외치는 소리를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 세자 저하, 천세! 세자 저하, 천세!

- 세자 저하, 천세! 세자 저하, 천세!


그 이후, 구슬픈 퉁소 소리가 광해의 귀에 들려왔다.


‘역시, 바로 알아듣는군.’


견훤산성에 있는 김류의 호응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 미소를 보며, 옆에 있던 류성룡이 물었다.


“저하, 지금이라도 좀 더 안전한 곳에 계심이, 어떠신지······.”

“좌상,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저들은 이미 기습을 한 차례 당했소. 많은 병력으로 나올 만큼, 어리석지 않소.”

“그렇다 하더라도, 아군은 너무 넓게 퍼졌습니다. 넓으면 얕고, 얕으면 뚫릴 수도 있는 법입니다.”

“뚫을 만큼의 병력도 못 보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부가 될 곳이오. 더구나 내 주변에는 호위 무사와 항왜 등이 지키고 있소.”


세자의 고집에 류성룡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저하는 진정 금상을 하나도 닮지 않으시다.’


그는 한양에 있을 임금을 떠올렸다.

아예 고집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마음이 잘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더 정확히는 무척이나 감정적이었다.

반면, 세자는 감정을 읽을 수가 없다. 가끔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대신, 한 번 뱉은 말은 끝까지 이루고야 만다.


‘그게 더 믿음직해 보인단 말이지.’


류성룡의 생각은 여기서 멈춰야 했다. 슬슬 주변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광해의 얼굴도 진지해졌다.


“시작됐소.”


호통과 고함, 그리고 비명. 이어서,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서서히 잦아진다.

광해는 속으로 바라고 바랐다. 저 비명이 아군이 아닌, 적군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이기를.

간절한 바람을 속으로 되뇐 이유는 간단했다. 그만큼 일본의 개인 전투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문득 충무공의 난중일기 내용이 떠오른다.


- 적 소년병 하나를 우리 수군 다섯이 당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김충선의 항왜들을 잘 분산하여 배치해 놓았다.

과연 그들이 얼마나 활약할까?


* * *


아까보다 구슬픈 퉁소 소리가 더 커졌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견훤산성에서도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본의 막사 주변에 온통 퉁소 소리가 가득 메워지면서, 5인 1조로 보낸 병력 중 첫 번째로 복귀한 부하가 무릎을 꿇었다.


“도노!”


이미 교전 소리를 들었기에, 견훤산성을 향해 원군이 왔다는 것을 확신한 유키나가.


‘퉁소만 불며, 우리를 기만하는 작전이길 바랐는데.’


살짝 기대했다. 원군이 아닌, 일부만 주변에 있기를.

그리고 그들이 원군인 척하기 위해, 퉁소만 불었기를.

이런 유키나가의 기대가 여지없이 빗나갔다.


“왜 너 하나뿐이냐?”

“그것이, 그것이······.”


말문이 막히는지, 병사는 계속 더듬었다.

유키나가는 이유를 더 묻지 않았다.


‘음······.’


나머지 넷이 당한 것은 분명 적이 있다는 증거.

이후로도 속속 복귀했다. 모두 다른 방향이었고, 다섯이 돌아온 무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심지어 돌아오지 않은 무리는 모두 당했다고 봐야 했다.


‘제기랄.’


그런데 또 이상한 보고가 뒤따른다.


“도노! 적이 우리와 같은 복장에, 같은 무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뭣이라?”


듣는 순간, 유키나가의 표정이 굳었다. 하면, 적 중에 이쪽을 배신하고 넘어간 이들이 존재한다는 뜻인가?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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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물속에서, 바다에서 - 1 +1 24.08.14 1,652 5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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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7 +3 24.08.12 1,608 49 11쪽
39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6 +4 24.08.11 1,608 48 11쪽
38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5 +3 24.08.10 1,637 49 11쪽
37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4 +3 24.08.09 1,627 47 11쪽
36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3 +3 24.08.08 1,644 4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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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전세 역전의 조짐 - 5 +2 24.08.02 1,723 46 11쪽
29 전세 역전의 조짐 - 4 +3 24.08.01 1,691 48 11쪽
28 전세 역전의 조짐 - 3 +2 24.07.31 1,710 51 12쪽
27 전세 역전의 조짐 – 2 +4 24.07.30 1,759 50 12쪽
26 전세 역전의 조짐 – 1 +3 24.07.29 1,779 50 11쪽
25 세자는 전쟁 영웅 – 8 +2 24.07.28 1,795 46 12쪽
» 세자는 전쟁 영웅 - 7 +2 24.07.27 1,732 49 11쪽
23 세자는 전쟁 영웅 - 6 +3 24.07.26 1,733 4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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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세자는 전쟁 영웅 - 4 +3 24.07.24 1,760 49 12쪽
20 세자는 전쟁 영웅 - 3 +2 24.07.23 1,757 47 13쪽
19 세자는 전쟁 영웅 - 2 +2 24.07.22 1,761 4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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